톡 던지듯 입밖으로 내뱉은 말에 그의 시선이 나를 향했다. 다소 뜬금없다고 느껴진 것일까 그의 표정은 아리송하다는 그 자체였지만, 숨김없이 솔직한 생각을 말한 것이기에 보충 설명을 이어 나갔다.


"보통 높은 자리에 있는 인간들은 욕심이 아주 많거든요."

"욕심? 갑자기?"


영문을 모르겠다는 그의 대답에 작은 웃음이 입을 비집고 나왔다. 마치 작은 아기새가 모이를 쪼아먹는 것 같은, 아주 작은 웃음이었지만 평소 감정을 되도록이면 숨기려 노력하는 나였기에 지금 상황은 표정관리를 전혀 하지 못했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그만큼 그의 멍한 표정과 김빠진 대답은 내게 오묘한 감정을 일으켰다.


"인간이란 무릇 끝없는 욕망을 원동력으로 살아간다 표현해도 될 정도로 욕심이 많은 생물이잖아요?"

"그래? 나도 인간이지만, 그건 잘 모르겠네."

"그래서 특이하다고 생각해요."

"난 보통 인간이라고 생각했는데 말이야."


자칭 보통인간이라는 그의 일과는 단조롭다는 표현으로 명쾌하게 설명이 될 만큼 단순하다. 매일 새벽6시면 기상해서 가볍게 세안을 하고 업무를 시작한다. 점심이 되면 가벼운 런치를 즐기며 지휘관들과 향후 작전 방향을 토의하고, 그 후로는 그것들을 토대로 향후 계획들을 작성, 검토한다.


간혹 밤에 다른 여인들을 품는 것 말고는 무욕 그 자체라 할 수 있는 일과표를, 그는 지금까지 쉬지 않고 진행해왔다. 가끔 엉뚱한 짓을 벌이나 싶어 조사해보면, 결국 그것들 역시 우리들이 조금이라도 웃으며 쉴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 하는 것들일 뿐. 그는 자신의 욕심을 챙기는 것에 지나칠 정도로 관심이 없었다.


과연 그런 사람을 보통 인간이라 표현할 수 있을까?


"사령관 님이 자각하지 못하셔서 그렇지 사령관 님은 엄연히 유일하게 남겨진 인간님 이세요. 그 뿐인가요? 처음 잠수함 한척으로 시작해서 지금은 대규모 함대를 이끄는 대군세의 사령관이기도 하죠. 제 생각에 그건 이미 '보통인간' 의 범주를 아득히 넘어섰다고 보거든요."


과연 그는 어느 욕심이 있기에 저런 무욕한 삶을 살아가는 것일까. 그의 곁에 머무르며 그가 뜻하는 바를 돕고 싶다는 내 욕망을 실현하기에 있어서 그는 너무도 난해한 부류의 인간이었다.


조금은 무례해 보일 정도로 따지는 지금의 어투 역시, 결국은 그의 도움이 되지 못하고 있다는 조급한 마음이 표현되는 것일지도 몰랐다. 그만큼 나는 그에게 필요한 존재가 되고 싶었기에 이런 유치한 방법으로 그에게 어리광을 부리는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하핫! 시라유리가 이렇게 조바심을 내는 것도 귀엽네."

"조, 조바심이라니.."


애꿎은 볼펜의 끝자락을 이로 씹는 내 모습에 그가 크게 웃으며 작성하던 서류를 갈무리 하기 시작했다. 오늘의 업무는 끝났으며, 이제 대화의 시간을 갖자는 단 둘만의 무언의 신호. 그것을 노골적으로 보이며 그는 살며시 몸을 일으켜 내 곁으로 다가왔다.


"걱정 마, 시라유리는 이미 충분히 내게 도움이 되고 있으니까."

"그런 뜻이.."

"음, 굳이 따지자면 나도 욕심이 아주 없는 건 아니니까. 어느 면에서 시라유리의 말은 틀렸다고 볼 수 있어."

"욕심이요? 사령관 님의 욕심은 무엇인가요?!"


우연한 기회로 뜻하지 않은 행운을 만났다는 생각에 저절로 언성이 높아졌다. 지금까지 아무리 조사하고, 통찰해도 알 길이 없었던 그의 욕심을, 지금 이 자리에서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으니 당연한 노릇이었다.


그의 욕심을 알 수 있다면 더욱 그에게 도움이 될 수 있으며, 그렇다면 자연스레 그의 곁에 머물 기회가 늘어날 것이라는 계산이 섰다.


"지금처럼 너희들과 평화로운 일상을 보내고, 이렇게 웃고 떠드는 거야."

"네..?"


마치 낯간지러운 것을 말하는 것처럼 그의 모습에 맥이 탁 풀리는 느낌이었지만 그럼에도 자연스레 웃음이 나오기 시작했다. 결국 그의 욕심을 물었으나, 돌아온 대답은 역시나 우리들에 대한 것 뿐이었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리라.


그가 갖은 욕심이란 언제나 우리들이 조금이라도 더 웃는 것이었으며, 조금이라도 더 살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도록 해주는 것 뿐이었다.


'결국.. 사령관 님, 당신의 욕심은 조금도 없는 거잖아요.'


바보 같을 정도로 그는 스스로의 욕심이란 조금도 챙기지 못하는 남자였을 뿐이었다. 언제나 사람 좋은 미소로 우리들을 대해주며, 언제나 열려 있는 그의 방문을 통해 들어오는 이들을 대접해 주는 것. 남들이 보기에는 정말 바보 같고, 손해만 보는 삶을 살아가면서도 그는 그것을 욕심이라고 대답했다.


'그래서 당신의 그 욕심. 꼭 곁에서 이루도록 도와드리고 싶어요.'


아마도 나는 당신의 그런 모습에 반한 것 같네요. 바보 같을 정도로 올곧고, 바보 같을 정도로 우리들 밖에 모르는 당신이기에. 그래서 흰백합은 당신의 곁에 뿌리를 내렸는지도 모르겠어요.


"하아, 적당히 쉬신 것 같은데 다시 일 하시죠?"

"어라? 슬슬 둘만의 오붓한 시간을 보내는 게 아니었나?"


당황한 듯한 그의 얼굴을 보며 또다시 웃음이 나왔다. 정말, 예전의 나라면 상상도 못할 정도로 지금의 나는 웃음이 많아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령관 님의 모두를 웃게 만들고 싶다는 그 욕심. 정말 단순하지만 정말 힘들 걸요?"

"그렇.. 겠지? 아마..?"

"그러니 더 바쁘게 일 하시죠. 모처럼 유능한 제가 도와드리겠다 하는 거잖아요."


그의 볼에 살며시 입을 맞춰주고 그의 손을 부여잡으며 자리에서 일으켰다. 그가 원하는 소소하지만 정말 이루기 어려운 욕심을, 나 역시 전력으로 이루어 주고 싶었기에 조금도 망설일 시간이 없었다. 사랑하게 된 남자가 걸어가려는 그 길을, 함께 걷기에는 많이 모자랄지라도, 영원히 함께 걷고 싶었기에.


"그렇게 걱정 마세요! 이 세상의 끝까지 사령관 님과 함께할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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