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 지금은 바빠서 밤일은 나중에.."


단순한 인사에도 기겁하는 그의 모습에 가볍게 웃음이 입 밖으로 삐죽 나왔다. 태생부터 글러먹은 성격인지라 욕망에 충실했었기에 그가 나를 향해 갖고 있는 저런 공포심은 이해가 가면서도, 한편으로는 너무 지나치게 들이댄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 정도.


그러나 이렇게 오해를 받고, 그 오해를 풀지 않는 것 또한 성미에 맞지 않았기에 그를 안심시켜주려 노력했다.


"하핫! 섹스야 말 그대로 밤에 해도 되는 것 아니겠나? 그저 정말 그대 생각을 하고있었을 뿐이야."

"섹스라니.. 그나저나 아스널이 갑자기 내 생각? 무슨 고민이라도 있어?"


무슨 큰일이라도 난 것 마냥, 그는 내 이마에 손을 얹고 열을 재 보는 제스처를 보였다. 그에게 나라는 존재가 어떤 이미지로 박힌 것인지 절절하게 묻어나는 모습. 아마도 내 사소한 걱정은 틀린 것이 아닌 모양이다.


"열은 없으니 걱정 말게, 그저..."

"그저?"

"음..."


그에게 나는 평범한 여성으로 보이는 것일까? 그는 나에게 평범한 애정을 바라는 것일까? 차마 말하지 못한 질문들이 목 언저리를 오르내리며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지금도 걱정스러운 눈으로 말끝을 흐리는 나를 바라보는 그의 시선을, 나는 차마 마주보지 못하고 있었다.


언제나 욕망에 솔직한 삶을 살아왔다 자부하고 있었지만, 지금과 같이 속마음을 꺼내는 것은 처음으로 겪어보는 두려움으로 다가오며 마음을 강하게 움켜쥐고 압박해온다. 그에게서 어떤 대답이 들려올까. 그것을 두려워 하고 있음에 틀림 없을 것이다.


"괜찮아, 말해 봐. 무엇이든 털어 놓으면 마음이 편해지니까."


가볍게 손을 부여잡고 자리에 앉히며, 그가 자연스럽게 커피포트에 물을 올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의 그런 대답에 마음이 내려앉으며 드디어 그를 향한 의문들이 언어라는 형태로 표현되었다.


"그대는 나.. 아스널이라는 여성을 이성으로써 어떻게 생각하나?"

"어.. 너를?"

"그렇다."


역시, 사람 좋은 그 역시 나와 같은 여성은 부담스럽겠지. 지금도 그는 대답을 머뭇거리고 있으니 틀림 없으리라.


"딱히 대답을 바로 듣고 싶은 것은 아니니 걱정 말게. 그저 평범한 애정에 대해서 생각해 본적이 없어서 말이다. 뭐, 그대도 알다시피.. 내 성격이 이런 성격이니..."

"확실한 건, 난 아스널이라는 여성을 아주 좋아한다는 거야."

"뭐..?"


다정다감하게 따스한 눈매며, 살며시 호선을 그리고 있는 입가. 그는 진심으로 행복해 보이는 표정으로 말을 이어 나갔다.


"난 아스널의 솔직한 성격, 전혀 싫어하지 않아. 물론 부담스럽지도 않고."

"진심인가?"


거짓말도 할 줄 모르며, 그렇다고 여성 답게 조신하지도 못하다. 하물며 다른 대원들처럼 열심히 꾸미는 성격도 아니다. 그런 생각들을 그에게 말하며 도대체 어째서 그런 말을 한 것인지 그에게 묻자, 그는 망설임 없이 대답하기 시작했다.


"첫째, 거짓말을 할 줄 모른다는 것은 자신에게 솔직하다는 거야. 그리고 둘째, 여성이라고 꼭 조신해야 할 필요는 없어. 마지막으로 셋째, 아스널은 꾸미지 않아도 충분히 아름다워."

"여, 역시.. 조금 부끄럽군."


충분히 아름답다는 말에 얼굴에 핏기가 쏠려 화끈거리기 시작했다. 발랑 까진 성격인지라 보통 창피함을 느끼는 것은 이쪽이 아닌 그였지만, 지금 이 시간만큼은 그가 나의 얼굴을 달아오르게 만들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내 모습에 그는 새로운 장난감을 본 아이 마냥 기뻐하며 웃기 시작했다.


"아스널도 그런 걱정을 하는구나? 그리고 얼굴도 붉힐 줄 알고 말이야."

"그, 그대에게만은.."

"응?"

"그대에게는.. 예외인 것이 당연하지 않은가."


전혀 평소의 아스널 답지 못한 대답이라 표현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간신히 그에게 들릴 정도로 작게 내뱉어진 대답에 쥐구멍에 숨고 싶을 정도로 창피한 감정이 몰려왔다. 서로의 육체를 탐하며 격렬한 사랑을 주고 받을 때는 전혀 느끼지 못했던 창피함이라는 감정이, 겨우 그의 단 한마디에 생겨났다.


"하핫! 역시, 앞으로의 일정은 그냥 내일의 내가 하는 걸로 해야겠어."

"아흣!"


갑작스레 젖가슴을 향해 손을 뻗어 노골적인 애무와 함께 얼굴을 쓸어 내리는 그의 손길에 또다시 마음이 녹아 내리기 시작했다. 생각해보면 사실 그 역시 나와 똑같이 욕망에 솔직한 성격이었으니, 결국 지금까지 했던 고민은 쓸모 없었을지도 모른다.


"이거.. 기세가 등등해 졌군.. 그런 모습을 보였으니, 어쩔 수 없나."

"그럼, 침실까지 갈 필요 없이, 여기서 바로 시작할까?"

"뭐, 나는..."


잠시간의 뜸을 들이며 그의 옷 속에 손을 뻗어 탄탄한 그의 상체를 어루만졌다. 지금부터 그의 탄탄한 저 가슴이, 연약한 여성의 가슴에 맞닿을테지. 서로의 욕망에 솔직하게 대응하면서, 서로를 원하는 감정에 솔직하게.


처음부터 그래왔고, 앞으로도 그렇듯이.


"그대라면... 어떤 식이던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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