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 내가? 핫팩에게?"


능글맞은 뱀의 혓바닥과 얕은 호선을 그리는 눈매. 천아는 명백히 시라유리의 말에 웃고있었다. 분명 천아 자신을 살살 긁어보려는 요량이었을 시라유리를 바라보며, 천아는 표정을 전혀 관리할 생각도 없는 모양인지 무심하게 다시 따뜻한 코코아로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그런 그녀를 노려보던 시라유리의 표정 역시 더욱 차갑게 가라앉았다.


태생부터 암살자와 첩보원. 당연히 서로 살가운 관계일 리 없었고, 오히려 적대하던 과거가 더욱 많을 것이다. 하물며 무엇보다 천아 같은 부류의 여자는 시라유리에게 쥐약과도 같았다. 마치 '즐거운 토모'를 보는 것 같은 묘한 이질감. 가슴속 한구석에서 시큰거리는 가시처럼, 이런 부류의 여자를 시라유리는 생리적으로 혐오했다.


그러나 둘은 묘하게 닮은 구석이 많았다. 표면에 존재하지 못하고 음지에서 활동했으며, 혼자 다니는 것을 선호한다. 그런 기묘한 동질감이 지금의 혐오감이 뒤섞인 적대적 감정을 더욱 부추기는 것이리라.


결국, 간단히 요약하면 시라유리와 천아는 서로를 '싸가지 없는 년' 정도로 여기고있었다. 


"일단 그 호칭부터 바꾸시죠."

"호칭?"

"사령관 님을 핫팩이라고 부르는 것을 그만두란 말입니다."


시라유리의 목소리는 차분했으나, 눈매는 여전히 냉기가 한가득 서려 있었다. 명백히 느껴지는 적의. 물론 겨우 그것 정도로 천아 역시 순순히 태도를 물릴 생각 따위는 추호도 없었다. 시라유리가 080기관의 요원, 즉 첩보원이었다면 천아는 현장에서 직접 실행하던 특작요원쯤 되는 위치였으니, 지금의 적대심은 웃으며 넘길 수 있었다.


"내가 왜 그래야 해? 흐응~ 알겠다... 너, 질투하지?"

"무, 무슨..! 질투 같은 걸 제가 왜 해야 하죠?"


첫 시작은 시라유리에게서 시작된 것이지만, 천아는 능숙하게 그것을 피해내고 오히려 시라유리를 몰아붙였다. 겉보기엔 도도하고 고귀한 양갓집 규수마냥 행동하는 시라유리지만, 그 속내는 누구보다 치밀하고 음흉하다는 것을 잘 아는 천아로써는 시라유리를 상대하는 것에 전혀 어려울 것이 없었다.


"그래도 좀 봐줘~ 그럼 나도 입을 다물어 줄 테니까."

"갑자기 무슨 헛소리를 하십니까?"

"그리고 핫팩을 핫팩이라고 부르지 뭐라고 불러~ 아, 오빠~ 라던가? 애기아빠?"


천아의 말에 시라유리가 결국 쾅 소리가 나도록 티테이블을 두드렸다. 거듭되는 도발에 감정을 조절하는 것에 실패한 것이다. '아차' 스러운 표정을 짓는 시라유리와 그런 그녀를 보며 더욱 짙은 미소를 띄우는 천아. 천아는 느긋한 어조로 말을 이어 나갔다.


"왜? 질투 같은 거 하지 않는다며? 그럼 내가 가져도 되는 거 아니야?"

"사령관 님은 애초에 물건이 아니십니다!"

"누가 물건으로 갖는데? '여'성' 으로써 우수한 수컷을 갖겠다는 거지."


물론 반 정도는 농담이나 다름 없는 도발이었다. 시라유리도 천아의 속내는 꿰뚫어보고 있었으나, 결국 알량한 자존심이 사고를 치고 말았다.


"그, 그러시던 말던 무슨 저랑 상관이죠? 그건 사령관 님께서 선택하실 문제라구요."

"푸흣! 이년 이거 표정 존나 대박이네, 하하핫!"


싸늘하다 못해 살기가 흘러나올 정도로 표정이 구겨진 시라유리의 면전에서 천아는 거침 없이 웃음을 터트렸다. 물론 한 손은 여전히 나이프를 쥐고 있으니 여차하면 반격할 작정이었으나 그럼에도 한가지 걸리는 것이 있었다.


'핫팩이 싸움은 절대 하지 말라고 그랬었나..'


누가 알았을까. 사냥개가 완벽히 애완견으로 길들여져, 사냥감에게 이를 들어내기는 커녕 오히려 주인의 손길만을 바라도록 변해버렸다. 천아는 결국 한숨을 푹 내쉬고는 티테이블 위에 모든 무장들을 주섬주섬 내려 놓고는 말했다.


"나도 딱히 너랑은 죽일 작정으로 싸우고 싶지도 않고, 무엇보다 그럴 이유도 없으니까... 저기 멀리서 살벌한 거 겨누는 언니한테 걱정 말고 등대출신 꼬맹이나 보러 가라고 해주겠어?"


방금 전까지 서서히 열기를 뿜어내기 시작하던 분위기가, 거짓말 같이 사그러들기 시작했다. 애초에 생각해보면 싸울 이유가 전혀 없는 자리였다. 서로 불편한 관계임을 깨달은 사령관이 주선한, '전혀 쓸모없는 선의'에서 비롯된 자리.


결국 사령관의 뜻이라면 죽는 시늉도 할 시라유리와, 알게 모르게 길들여진 애완견 천아가 각자 사령관의 뜻을 이기지 못해 어디까지나 친목을 도모하기 위해 어울리지도 않는 티테이블에 마주앉아, 담소를 나누는 시간을 갖게 된 것이었으니까.


"크흠, 흠! 뭐, 저도 당신에게 무례했군요. 그건 사과하죠."


사령관의 의도가 생각난 시라유리가 서둘러 사과를 건넸다. 물론 그것이 진실된 반성은 추호도 없으며, 오히려 에이미를 꼬득여 멀리서 저격까지 준비했다는 사실을 사령관의 귀까지 흘러가게 하고 싶지 않았기에 나온 행동이라는 것을, 천아 역시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긁어 부스럼을 만들 필요는 없다는 것을 잘 아는 천아였지만, 저렇게 상대방이 필사적으로 나오니 묘한 가학심이 고개를 빼꼼히 들기 시작했다. 도도한 꽃과 같은 시라유리가 안절부절 하는 모습이란, 장화나 바르그를 놀려먹는 것과는 전혀 다른, 색다른 재미가 있었다.


"고마워~ 그럼 나도 너가 핫팩이 잘 때 몰래 침입한 사실을 저~언부 비밀로 해 줄게."

"...?!"


어느새 간신히 심적 여유를 되찾은 시라유리는, 천아의 마지막 말에 다시금 속이 타 들어가기 시작했다.



꼴려서 딸치러 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