푹신한 침대도, 아늑한 벽난로의 불꽃도 지금 안겨 있는 이터니티의 품보다 편안하고 따뜻할 수 있을까. 이 세상에 눈을 뜨고 남은 것은 황량하게 파괴된 문명의 흔적 뿐이었다. 마지막 인간이라는 중압감에 시달리며, 그 누구도 희생시킬 수 없다는 책임감으로 걸어온 지금까지의 시간이, 마치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며 눈 앞에 아른거리는 것 같았다.


"이터니티는 충분히 행복했어?"

"네, 그래서... 그 시간들이 영원하기를... 그렇게 바랬답니다."


이터니티의 대답에 기력을 짜네 그녀의 볼을 어루만졌다. 차갑게 식은 내 손과 다른, 따뜻하고 부드러운 그녀의 볼. 서로에 허락된 시간이 다른 것처럼, 결국 속절없이 흐르는 세월 앞에서 나는 먼저 그녀를 떠나간다.


"미안해..."

"사과하지 말아주세요. 전, 충분히 행복했답니다."

"먼저 떠나가서 미안해."

"괜찮아요, 영원한 이별은 없으니."


잔인한 짓이라는 것은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다. 남겨질 그녀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하는 것은 그녀의 가슴을 한번 더 찢는 잔인한 짓이리라. 하지만 계속해서 사과의 뜻을 전했다. 누구나 영원의 삶을 살아가는 것처럼 살아가는 법이지만, 결국 생물인 이상 흘러가는 세월을 거스를 수 없는 법.


오늘, 나는 그녀의 곁을 떠난다.


"항상 나만 행복한 것 같아서 미안했어."

"주인님의 행복이 제 행복이었어요."

"지금까지 나를 사랑해줘서 고마워."

"저도 주인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어서 감사해요."


이터니티는 그런 잔인한 사과를 건네는 나를 바라보며 웃어주었다. 내가 첫눈에 반해버린, 그런 아름다운 미소로, 이터니티는 마지막 배웅을 시작하고 있었다.


"이 세상이 그대를 멀리 데려간다면."


마치 자장가를 듣는 것처럼 부드러운 음색. 자장가라는 것은 들어본 적 없었지만, 확신할 수 있었다. 지금 그녀는 이별의 노래가 아닌, 언젠가 다시 만날 그 날까지 그녀에 대한 걱정은 내려놓고 잠시 떠나가는 것 뿐이라는 사실을 주지시켜주는 것 같았다.


"그대에게 꼭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죠."


서서히 어둠에 잠겨 감겨오는 눈동자와, 스멀스멀 잠식하는 안식의 순간. 생물이라면 누구나 두려워할 마지막 순간임에도, 이터니티의 손길을 느끼고 있으려니 오히려 안도감에 젖어 들었다.


"언젠가 이 세상의 끝에서 영원의 끝이 오면."


마침내 찾아온 영원의 끝. 재건된 세상을 뒤로하고, 수많은 아이들을 뒤로하고 나는 떠나간다.


"내가 그대 곁에 있을테니, 이제는 그대 눈을 감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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