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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한 방에서 찻물을 내리는 소리가 고즈넉하게 울렸다.

 

자신이 원래 있던 방으로 돌아온 장화는 난생 처음으로 밀폐된 공간에 자기 이외의 다른 사람을 들여놓았다.

 

“첫 번째 임무를 맡은 소감이 어때?”

 

자기 외의 다른 목소리가 들리는 것이 퍽 어색하다. 임무 하달이라던가 전력 보강을 위해 다른 바이오로이드와 합을 맞췄던 적은 있었지만 이렇게 평화로움을 느꼈던 적은 없었다.

 

침대 하나 말곤 텅 비어있는 하얀 방에 사령관이 가지고 온 커피포트 하나가 놓였다.

 

보글보글 물이 끓는 소리.

 

다른 곳도 많은데 그는 구태여 장화의 침대 옆 콘센트를 사용했다.

 

“딱히... 할 말은 없습니다.”

 

“왜? 임무에 실패했으니까?”

 

“......”

 

“뭐, 사람이 늘 성공만 할 수는 없지.”

 

등을 돌린 채 바닥에 놓인 물병을 지그시 바라보던 사령관.

 

장화는 그 뒷모습이 익숙했다. 그가 한 말도 귀에 익었다. 자신에게 하달된 작업이 꼬일 때면 마리아는 늘 그런 모습으로 장화를 반겼으니까.

 

물론, 반겼다는 것이 결코 좋은 의미는 아니었다.

 

-하지만 니네는 사람이 아니잖니? 니들은 실수를 할 자격이 없어.

 

그 뒤로 가차없는 폭력이 이어졌다. 회초리든 전기 충격기든, 장화에게 고통을 줄 수 있는 물건은 가리지 않고 이용하며 그녀를 벌했다.

 

그러니 저 말에 담긴 저의가 결코 자비롭지 않으리라, 그렇게 생각했다.

 

“홍차? 아니면 그냥 물?”

 

하지만 이어지는 폭행은 없었다.

 

사령관이 컵에 물을 따르며 말했다.

 

“...목 마르지 않습니다.”

 

“입술 바싹바싹 마르는 게 보이는데 안 마르기는 무슨. 아니면 내가 여기에 뭐라도 탔을까봐 무서워서 그래?”

 

“......”

 

“그래, 그렇게 주의 깊게 생각하는 것도 좋지.”

 

사령관은 어깨를 으쓱이며 마저 물을 따랐다.

 

무섭다고? 설마. 

 

앙헬 리오보르스의 측근들을 죽이며 숱한 계략과 술수 속에서 살아남은 장화다. 고작 차 한 잔 따위에 겁에 질릴 리가.

 

다만 장화가 거절했던 것은 괜시래 속이 더부룩했던 탓이다.

 

-여사님. 물 좀 더 드시겠어요?

 

이유 없이 떠오르는 과거의 기억.

 

싸락눈이 날리고 거리에 연말의 분위기가 물씬 풍기던 그 날의 트라우마가 떠오른 탓이다.

 

‘왜...’

 

하필 지금일까? 수백 번의 임무를 겪으며 지웠다고 생각한 것이 하필 이럴 때 떠오르는 것은 뭐 때문이나?

 

장화는 가장 먼저 주변을 살폈다. 심장이 조금 두근거리긴 하지만 심폐계에 문제가 생긴 것은 아니었고, 모듈이 과부하된 감각도 없었다. 몸이 문제가 아니라는 얘기. 그 말은 다른 곳에 이유가 있다는 말이었다.

 

‘......’

 

다른 곳이라.

 

그렇다고 할 만한 것이 어디 둘이나 있겠나?

 

“사령관...님.”

 

“그래. 장화야.”

 

“혹시... 에너지 바 같은 건 없나요? 빵이라던가. 썩은 것도 괜찮습니다.”

 

장화의 말에 사령관이 멈칫, 팔을 멈췄다가 다시 움직이며 말했다.

 

“썩은 건 갖다 버려야지. 그런 거 먹으면 배탈 난다.”

 

“...죄송합니다. 저는 그냥...”

 

“됐어. 미안하단 얘기 들으려고 여기까지 온 거 아니니까.”

 

휘릭, 몸을 돌려 앉은 사령관은 침대 옆 바닥에 컵 두 개를 나란히 놓았다. 한 잔에는 붉은 홍차가 들어 있었고, 다른 쪽은 그냥 평범한 맹물이었다.

 

침대 위에 앉은 채 물끄럼이 상황을 지켜보던 장화에게 사령관이 손짓했다.

 

“뭐 마실래?”

 

“... 방금 괜찮다고 말씀 드린 것 같은데요.”

 

“마시라고 한 적 없어. 둘 다 따뜻하니까 들고만 있어도 핫팩 역할은 해줄 거다.”

 

“춥지 않습니다.”

 

“이불 덮고 있는 것만 봐도 추워하고 있단 거 안다.”

 

사령관이 고개를 까딱이며 침대 위에 깔려 있는 두꺼운 이불을 가리켰다.

 

장화의 두 다리를 폭 덮고 있는 새털 이불. 그 모습이 왠지 모르게 부끄러웠다.

 

“...감사합니다.”

 

결국 장화가 고른 것은 붉은 꽃잎이 둥둥 떠있는 홍차였다.

 

과연 들어보니 따스했다. 투명한 유리컵 위로 훗훗한 온기가 사르르 녹아 있었다. 오른손으로 쥐어 조심히 잡아드니 손끝이 살짝 아렸다.

 

“뭐... 감상이라도 말씀 드려야 하나요?”

 

“그래주면 좋겠지만 안 해도 돼. 지금 쉬어야 할 사람은 내가 아니라 너니까.”

 

언제는 뭘 하라고 하더니 또 이제는 하지 말라고 하고. 도통 명령에 시원스러운 맛이 없다.

 

“...예.”

 

바이오로이드에겐 그런 인간이 더 까다롭다는 걸 알아서 저러는 걸까? 장화는 퍽 불편한 마음을 간신히 숨기며 입가에 홍차를 가져다 대었다.

 

후끈.

 

‘아야...!’

 

뜨거운 기운에 마른 입술이 순간 마비되더니, 혀끝에 온수가 닿았다. 

 

오소소 올라오는 혓바늘. 저릿해진 미뢰에 장화의 표정이 잠시 일그러졌다. 하지만 그 뒤로 이어지는 향긋한 향기가 놀란 혓바닥을 달랬다.

 

부드럽게 입속을 채워가는 붉은빛의 향. 마비된 혀보다 비강으로 들어오는 차의 향기가 먼저 느껴졌다. 마치 맛이 느껴지는 듯 진한 향기에 미간을 찌푸렸다. 그녀가 지금껏 먹어온 음식 중 이토록 순수하게 향으로 채워져 있던 것은 없었던 탓이었다.

 

썩은 에너지 바에선 서걱서걱 씹히는 캬라멜이 끔찍했다. 얼음장 같았던 물은 마실 때마다 머리가 울렸다. 그녀에게 있어 무언가를 섭취하는 공정은 늘 맛을 보는 개념보다 지릿한 통증을 동반한 촉감을 제공하는 과정에 더 가까웠다.

 

그러니, 지금 이 경험에 대한 총평을 굳이 서술해보자면.

 

‘...맛있다.’

 

대충 맞을 것이다.

 

“잠깐만, 나 약 좀 먹을게.”

 

“예?”

 

하지만 맹물을 선택한 사령관은 그런 거창한 생각을 떠올리지 못한 모양이다.

 

한 손 가득 쥐고 있던 알약을 입속에 털어넣고 물을 쑤셔 넣어 꿀꺽꿀꺽 삼켜 넘길 뿐. 어찌나 급하게 삼켰던 지 목의 울대가 울컥이며 울렁이는 것이 훤히 들여다 보일 정도였다.

 

“으으...! 다음부턴 약 좀 줄여달라고 해야지. 두 번 먹었다간 목구멍 찢어지겠네.”

 

“... 괜찮으세요?”

 

“응? 아, 응. 그래. 괜찮아. 음... 아니다. 안 괜찮아. 아마 안 괜찮을 거야.”

 

“상황이... 심각한 모양이네요.”

 

“심각한지 아닌지 모르니까 안 괜찮다는 거야. 그래도 네 말투보단 괜찮겠다.”

 

“예?”

 

사령관이 몸을 돌리고 장화를 마주 보았다.

 

“너 원래 그렇게 존댓말 하는 애 아니잖아. 막 욕도 하고 자기 마음에 안 맞으면 꺼지라고 하기도 하고. 그런 애가 이렇게 깍듯하게 대우해주니까 좀 어색하다, 야.”

 

“......”

 

눈만 마냥 깜빡여진다.

 

살면서 온갖 인간을 다 만나봤고, 말 한마디 실수했다고 지랄하던 인간도 수두룩하게 봤다. 그런데 아직도 못 본 인간 군상이 있었던 모양이다.

 

설마 자기 존대해준다고 싫어하는 인간이 있을 줄이야. 이쯤 되면 그냥 억까 아닐까?

 

“뭐야. 왜 그렇게 봐?”

 

“... 어이가 없어서...”

 

괜시래 머리를 긁적였다.

 

“... 요.”

 

구태여 뒤에 붙은 존대용 어말어미 때문에 사령관이 코끝을 찡긋거렸다.

 

인류 마지막 생존자가 이런 인간이라 좋아해야 하는 걸까 싫어해야 할까.

 

장화는 껌뻑이는 눈으로 최대한 당혹감을 숨기려 했다. 하지만 자기가 자기 감정 숨기는 것에는 퍽 재주가 없던 사람이었음을 잠시 잊었던 모양이다.

 

“그래, 뭐. 이상해 보이긴 하겠지. 그래도 어쩌겠니. 장화에 대한 내 첫인상은 그런 애였는 걸.”

 

첫인상?

 

“...저희가 전에 만난 적 있었나요?”

 

“그런 게 있어. 그냥 내가 너에 대해 많이 알고 있다고만 생각하렴.”

 

대충 고개를 돌리며 얼버무리는 사령관이었다.

 

“아무튼 편하게 해. 나한테는 존댓말하는 장화가 엄청 불편해보이거든.”

 

“... 알겠습니... 아니. 알았어... 으으.”

 

“이상하니?”

 

장화는 눈을 꼭 감은 채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픽, 하고 웃는 소리가 나는 것은 기분탓이었을 것이다.

 

픽.

 

픽.

 

그 때, 침대 맡에서 유리컵이 픽, 하고 쓰러졌다.

 

그와 함께 들리는 거친 숨소리.

 

“에?”

 

사령관이 앓는 소리를 냈던 것이다.

 

“하아... 하아... 하아...”

 

바닥에 앉아 있던 사령관이 가슴을 부여잡고 전신을 떨고 있었다. 피빅- 필름이 끊기기라도 하는 것인지 그의 몸에는 매초마다 규칙적으로 발작이 일었다.

 

“사령관...!”

 

도와줘야 하나? 하지만 어떻게?

 

이불을 헤집으며 자리에서 일어서려던 장화를 사령관이 손을 뻗어 막아 세웠다.

 

“아...니... 괜찮아. 원래 약 먹으면 몸이... 이러거든.”

 

“이게... 대체 무슨...”

 

그렇게 얼마나 있었을까, 깊게 숨을 들이마신 사령관이 한층 상쾌해진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그래도... 후우. 하나 같이 쎈 약들이라 약빨은 있어. 앞으로 몇십 분은 멀쩡할 거야.”

 

“왜 그런 약을... 먹는 거야?”

 

“애들 걱정시키고 싶지 않아서.”

 

쿨럭, 그 기침을 마지막으로 사령관의 신음 소리가 멎었다. 약의 효력이 들기까지 채 30초가 걸리지 않은 것이다.

 

“걱정...?”

 

“왜, 자기 남편될 사람이 비실거리고 있으면 당연히 걱정이 되겠지. 그런데 난 내 와이프가 걱정하느라 자기 신경을 못 쓰게 되는 게 너무 싫거든.”

 

사령관은 웃음을 지었다. 조금 자조적인 향취가 섞여 있는 미소를.

 

대체 왜?

 

무엇에 웃을 수 있는가, 무엇 때문에 자조하는가, 눈앞에 있는 사람에 대해 장화는 아무 것도 읽을 수가 없었다. 알고 있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단지 이 대화를 통해 얻은 것은, 사령관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이 없다는 사실이었다.

 

이 사람에 대한 지식의 서재에는 텅 빈 책장만 가득하다.

 

‘... 뭐지.’

 

알 수 없는 감정이 장화의 마음에 휘몰아쳤다. 깊게 느스러지는 혈류, 심장을 타고 흐르는 맥박이 길 잃은 듯이 가슴 언저리에서 맴돌았다.

 

호기심? 공포? 기묘한 흉통을 동반한 두근거림? 비슷한 감각을 꼽으라면 압도되는 억압이었다. 하지만 상명하복의 관계가 주는 압박과는 과히 달랐다.

 

부드러움이 쌓여 짓누르는 것이다. 단단하지 않다 하여 무겁지 않은 것이 아니었다. 생애 처음 느껴보는 감각은 하얀 솜사탕처럼 복실거렸지만 동시에 어깨를 깊게 짓눌렀다. 그것이 짓누름인지, 아니면 단지 폭신한 손으로 껴안음인지, 장화는 알지 못했다.

 

알고 있는 것은 ‘사령관’이란 이름이 적힌 책장이 텅 비어있다는 것.

 

불현듯, 장화는 그곳에 무언가를 꽂아 넣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 가족...”

 

첫 번째로 묻고 싶은 것은 그것이었다.

 

“가족이라도... 될 생각이야?”

 

“응.”

 

담백한 대답.

 

“바이오로이드랑... 인간이?”

 

“응.”

 

기가 막힐 만큼 짧고 간결한 답이었기에 장화의 세상이 주춤거렸다.

 

“... 가능하겠어? 사는 영역이 다른 존재들이야. 생긴 거 빼면 같은 거 하나 없는 다른 종족이라고. 인간이 위. 바이오로이드가 아래. 완전히 구분된 족속들이잖아. 아니야?”

 

“맞아.”

 

“그런데도 되겠다고? 당신, 그게 얼마나 바보 같은 생각인지 몰라서 그래? 멸망 이전에 그런 인간들이 어떤 끝을 맞이했는지 들어본 적 없어?”

 

장화가 죽였던 대상들 중 바이오로이드와 부부가 된 인간들이 몇 있었다. 그들은 리오보로스 일가에 고용된 비밀 연구원 중 한 명이기도 했고, 저명한 사회 인사이기도 했고, 기업의 기밀을 알아차려 쫓기게 된 일반인이기도 했다.

 

죽이기 어려운 인간도 있었고, 쉽게 죽일 수 있는 인간도 있었다. 

 

후폭풍 때문에 팀 단위로 움직여야 했던 타겟도 있었고, 죽여도 티 하나 안 나는 타겟도 있었다.

 

모두가 달랐다.

 

다만 한 가지 똑같았던 것은, 모두가 불행했다는 것이다.

 

“자기 아내라고 생각하던 바이오로이드에게 질려서 길거리에 대충 버려버리고 도망친 인간도 있어. 진심으로 사랑해서 아이를 낳았다가 성장 부작용을 견디지 못하고 죽은 인간도 있었어.”

 

제 삶에 지쳐 포기해버린 인간들.

 

장화의 기억 속에 그들은 ‘죽이기 쉬운 인간’이었다. 그게 얼마나 너저분한 의미였는지 장화는 잊지 않았다.

 

엠프레시스 하운드가 죽이기 쉽다는 것은, 죽음에 저항할 의지마저 증발해버린 시체 같은 인간이라는 뜻이었으니까.

 

“그래. 지금 아니면 인류 멸종이니까 그럴 수도 있어. 하지만 가족이라니? 단지 씨받이로 썼다 해서 전부 다 아내가 되는 건 아니잖아. 원래 인간이란 건 다 그런 거 아니야?”

 

“모든 인간이 다 그렇게 생각하진 않아.”

 

“하지만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인간들은 그렇게 생각했지.”

 

장화는 그녀의 주인을 떠올렸다.

 

“바이오로이드를 자기 대신 죽게 내버려 두고, 운 좋게 살아 돌아오면 다시 죽을 때까지 반복하는 거. 인간이 살아남는 방법은 그런 거잖아.”

 

장화는 눈앞의 인간을 이해할 수 없었다. 마치 1+1이 2라는 것을 구태여 알려줄 필요가 없듯, 지극히 당연한 상식은 떠올릴수록 피곤한 법이었다.

 

하지만 이 사람은? 그런 상식이 퍽 불편하다는 듯 눈살을 찌푸렸다. 1+1이 2라는 것이 마음에 안 든다 하는 것처럼, 

 

장화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감정이었다.

 

그런 사령관이, 머뭇거리던 입을 마침내 열었다.

 

“바이오로이드도 바이오로이드와 가족이 될 수 있잖니.”


“...뭐?”

 

장화는 눈을 꿈뻑였다. 그 뒤로 무어라 말을 이어지긴 했으나 들리진 않았다. 그 모습을 알아차렸던 것인지 사령관도 굳이 뒤이어 말을 잇지 않았다.

 

그저 망연한 눈으로 장화를 올려다 볼 뿐.

 

달칵.

 

달그락 거리는 유리컵 소리가 울려퍼졌다. 손을 꼼지락거리던 사령관은 무슨 대단한 화두라도 던진 것처럼 웅혼한 눈빛으로 장화를 바라보았다.

 

“......”

 

침묵는 제법 길게 이어졌다. 장화는 사령관이 한 말을 해석하기 위해, 사령관은 그런 그녀를 기다리기 위해.

 

그리 대단한 문장은 아니었다. 하지만 장화에게 있어 그 문장은 대단한 해석이 필요할 만큼 광오한 이야기였다. 물론 해석의 결과는 그녀가 아닌, 그녀 머릿속에 있는 감정 모듈이 결정짓는 것이었지만.

 

“... 그거. 아니지?”

 

장화는 헛웃음을 지었다.

 

좋게 이어지던 대화였다. 어색하긴 했을지언정 장화의 삶에서 처음으로 느껴보는 감정이었다. 복실거리는 솜사탕 같은 감각을 손으로 톡 건들 때 느껴지는 포근함이 말로 표현할 수 없게 풋풋했다.

 

이 사람도 그걸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니 굳이 이 이야기를 꺼내서 자신을 괴롭게 하지 않을 것이다.

 

그녀는 어느새 자신이 이 사람을 믿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탓에 만의 하나라도 느껴지게 될 배신감의 크기가 굴린 눈두덩이처럼 커져버렸음을 깨달았다.

 

-여사님.

 

하지만 결국, 감정 모듈이 결론내린 해석은.

 

-행복해지려 하지 마세요.

 

그 만의 하나였다.

 

바이오로이드와 바이오로이드의 가족.

 

그 말의 의미가 무엇인지, 고심 끝에 모듈이 장화에게 ‘가르쳤다’.

 

“몽구스...”

 

머뭇거리는 장화의 어조에 사령관이 말을 멈췄다.

 

침묵이 어색했던 탓에 장화는 그걸 긍정의 의미로 받아들였다.

 

그러자 모듈은 다시 한 번, 그녀가 떠올려야 할 상식들을 가르쳐주었다.

 

“...하.”

 

어이가 없었다. 왜 지금까지 눈치채지 못했던 걸까?

 

생각해보면 이 인간이 자신에게 말을 걸 이유는 없다. 있다면 쓸모 있는 자신을 조금 더 오래 써먹기 위함.

 

하지만 홍련이 있는 이상 그게 불가능하단 건 이 사람이 더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니 굳이 시간을 들여 가스라이팅을 해보려 한 것이리라.

 

“지금 뭐 하는 거야?”

 

이제 모듈은 그녀가 취해야 할 행동을 가르쳤다.

 

장화가 쥐고 있던 홍차를 바닥에 내던졌다. 유리컵이 깨졌다.

 

“설마, 그 가족‘놀이’나 하는 것들을 보고 결혼해도 되겠다, 그런 상상을 한 거야? 아니지. 지금 그딴 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

 

이불을 걷어치우고 침대 밖으로 다리를 내렸다. 사령관이 기침을 했을 때 하려던 행동을 똑같이 따라 하며 그의 앞에 우두커니 섰다.

 

“왜.”

 

그 다음으로, 모듈은 그녀가 느껴야 할 감정을 가르쳤다.

 

그녀는 사령관의 목덜미를 거칠게 잡아 올리며 말했다.

 

“그딴 왜 나한테 말하는 건데. 이제 와서 그 개자식들을 용서라도 해달라고?”

 

“......”

 

“고작 ‘놀이’였을 뿐이야. 그 년들이 하고 있었던 건 그냥 ‘놀이’라고. 피를 나눈 적도 없고, 같은 추억을 공유하지도 않아. 공장에서 찍어내듯 만들어진 것들이 그냥 자기들끼리 엄마, 엄마, 거리는 거라고.”

 

모듈은 그녀에게 사령관의 악독함에 대해 설포했다.

 

장화의 입술이 떨렸다. 잠깐이지만 이 사람에게 마음을 열었던 자신이 한탄스러웠다.

 

아파하는 모습에 동정심이라도 느꼈던 것일까? 말에 진중한 무게가 있어서 자기도 모르게 의지하고 싶었던 것일까? 뭐든 홀로 살아남아야 하는 바이오로이드가?

 

옷자락을 쥐고 있던 손에 힘이 들어갔다. 꾸욱, 천조각이 마찰하는 소리가 방 안을 채웠다.

 

그러자 모듈은, 그녀에게 현실을 가르쳐주었다.

 

“이름.”

 

장화가 물었다.

 

“태어날 애 이름은 정해봤어?”

 

“......”

 

“홍련이 한둘 있는 것도 아니고, 거기 있는 전부랑 결혼하면 애들 이름은 어떻게 할 거야? 다 다르게 할까? 아니면 지들 어미처럼 다 똑같이? 태어났는데 자기 엄마랑 똑같이 생긴 인간이 수십 명이나 있다면 애들은 무슨 기분일까?”

 

임무 도중, 장화는 폐허 속에 어린아이를 본 적 있었다.

 

하얀 보자기에 감싸인 채 쌕쌕 숨을 몰아쉬는 아이를. 임무 때문에 죽인 타겟의 집안을 뒤처리 하는 도중 찾아낸 것이다.

 

인간의 것으로 보이지 않을 만큼 강렬한 분홍빛의 홍채를 가지고 있던 아기는, 바이오로이드와 인간의 산물이었다. 결혼 이후 불화로 부모 양쪽에게서 유기된 것이었다.

 

그 아이를 죽이란 임무를 들었을 때, 장화는 자신과 비슷한 나이일 아이를 보며 생각했다.

 

“생각해봤어?”

 

너도 버려졌구나.

 

“애들이 태어나면 몇이나 죽을 거 같아? 성장 부작용을 막는 방법을 찾았다 해도 전부 다 성공할 수는 없겠지. 자기 애가 죽으면 어떨지 생각해본 적은 있어?”

 

장화도 알고 있었다.

 

자신이 굳이 생각할 필요 없는 상념이다. 이 사람이 어떤 애를 낳든, 그 애가 죽어서 슬퍼하든 말든 자신이 신경 쓸 필요 없는 일이었다.

 

허나, 모듈이 말했다.

 

-반론해.

 

신경쓰지 않으면 머리가 찢어질 것 같다.

 

-그 잘난 ‘놀이’를 하겠다고 널 이렇게 농락하고 있잖아.

 

분노가 근육 대신 손을 움직였다. 힘줄을 타고 흐르는 격노가 너무도 격렬해 양손이 찢어질 것 같았다.

 

-지금 당장 찢어 죽이지 않은 것만 해도 잘 참고 있는 거야. 그러니까 말 몇 마디 심하게 하는 것 정도는 해도 되잖아?

 

하지만 거절할 수 없었다.

 

혼자 몽구스 팀 전체를 몰살했을 때, 미호의 저격에 왼팔이 찢겨지고 드라코의 방패에 뼈가 부러졌을 때도.

 

그녀를 움직이게 한 건 그 분노 하나뿐이었으니까.

 

뜯겨져 나갈 것 같이 잔인한 두통이었으니까.

 

“말해봐. 당신도 그 개자식들의 소꿉놀이에 참여할 거야?”

 

“...왜 굳이 그걸 묻는 거니?”

 

잠시간, 고요해지는 사위.

 

모듈은 그녀에게 응당 답해야 할 정답을 알려주었다.

 

장화는 아랫입술을 짓씹으며 대답했다.

 

“만약 그렇다고 하면, 내가 당신을 죽여야 하니까.”

 

홀로 하나의 부대를 상대할 수 있게 만든 힘. 장화에게 그 힘이 깃들어 있는 이유는 그 분노 때문이었다.

 

모듈에 심어진 기계적인 분노 때문이었다.

 

그녀는 기계적으로 사령관의 멱살을 잡았다. 으득거리는 마찰음은 그의 옷자락이 찢어지는 소리였다.

 

“장화야.”

 

허나 사령관은 빙그레 웃을 뿐.

 

“장화야.”

 

“......”

 

그녀의 이름을 세 번 불렀다.

 

“장화야.”

 

울림.

 

떨림.

 

혹은 목소리.

 

누군가 이토록 잔잔하게 자신의 이름을 부른 것은, 모듈이 생각했던 시나리오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랬기에 사고의 공백이 생겼고, 공백 속으로 그 울림이 안개처럼 스며들었다.

 

그 말 하나에 소용돌이치던 감정이 차츰 잦아들었다. 아니, 다른 방향으로 휘몰아쳤다. 분노가 그녀의 손을 사령관에게 향하게 했던 것처럼, 한마디 말이 촉발한 알 수 없는 감정이 그녀의 손을 자신에게로 향하게 만들었다.

 

팽팽한 감정의 줄다리기는, 마침내 그의 음색 하나로 균형이 무너졌다.

 

“노는 게 싫니?”

 

“... 뭐?”

 

조금 이상한 질문.

 

“나는 옛날부터 노는 게 좋았단다. 그래서 장화는 어떤가 들어보고 싶어.”

 

“그게 무슨...”

 

“아, 맞다. 장화는 지금까지 놀아본 적이 별로 없지. 그럼 간단한 게임 하나 해보자.”

 

사령관은 그렇게 말하곤 자신의 손바닥으로 장화의 눈을 가렸다. 갑작스럽게 어두워진 시야에 당혹스러웠다.

 

하지만 반응할 새도 없이 사령관의 반대쪽 손이 장화의 양손을 붙잡았다. 조심스럽게 그녀의 두 손을 펼쳐 무릎에 올려다 놓은 사령관은, 나머지 손을 그 위에 살포시 올려 놓았다.

 

머릿속에 느껴지는 감정도, 분노도, 전부 흐릿해질 만큼 찰나의 순간. 사령관이 조용히 규칙을 설명했다.

 

“어려운 게임은 아니야. 지금 내가 손가락을 몇 개나 폈는지 알아맞히기만 하면 돼. 대신 눈은 감고 있어야 한단다.”

 

“이게 대체 뭔...”

 

“그럼 시작.”

 

순간 사라진 사령관의 온기. 장화의 양손은 꽃을 찾아 헤매는 나비처럼 흩어진 따스함에 움찔거렸다.

 

시야가 어두웠다. 하지만 사령관의 손가락 틈으로 조그맣게 새어나오는 빛살 덕에 어둠은 조금 옅어졌다.

 

손을 들어올렸다. 인기척이 느껴지는 것은 그보다 조금 더 앞이었다.

 

다만 너무 가까이 있어 사방에 인기척이 가득했다. 그 속에서 손이 있을 곳을 찾는 건 꽤 어려운 일이었다.

 

‘...뭐야.’

 

왜 이런 바보같은 짓을 하고 있는 거지?

 

순간 속으로 의문이 들어찼다. 사령관의 손을 찾아 팔을 뻗는 자신의 꼴이 어린아이가 버둥거리는 것처럼 우습게 느껴졌다. 어쩌면 그 우스움조차 그녀의 것이 아닌, 그녀의 모듈이 주문한 지시였을지 모른다.

 

하지만 어느새 장화는 그 둘의 차이를 잊어버렸다.

 

자괴감이 일었다.

 

그렇게 놀이를 포기하려 했을 때,

 

“자.”

 

사령관의 손이 그녀에게 다가갔다.

 

폭. 그녀의 양손이 잊어버렸던 온기로 다시 가득찼다.

 

‘...아.’

 

머리가 순간 찡, 하고 울렸다.

 

“내가 손가락을 몇 개나 펼쳤을까?”

 

“......”

 

장화는 말없이 그의 손을 더듬거렸다.

 

모듈이 시켜 한 것은 아니었다. ‘어울리는 척을 해줘야 풀어주겠지.’라던가, ‘여기서 거절하면 자기 주인 괴롭혔다고 뭐라 하겠지.’ 같은, 자기합리화에 필요한 핑계들이 떠오르긴 했지만 모듈의 지시에 의함은 아니었다.

 

확신할 수 있었다.

 

왜냐하면 그녀의 손을 움직이게 한 가장 커다란 감정은.

 

‘...따듯하다.’

 

모듈이 절대 가르쳐주지 않은 감각이었으니까.

 

사령관이 눈을 가려주고 있었지만 장화는 스스로 눈을 감았다. 시야가 완전한 어둠으로 가득 차니 손을 타고 들어오는 촉감이 더욱 예민해졌다.

 

“... 사령관.”

 

이 사람의 지문은 얼마나 거친지, 

 

손등에 새겨진 상처는 몇 개였는지, 

 

손금은 어떤 모양인지, 

 

어느 손가락에 굳은살이 맺혀 있는지,

 

장화는 조그맣게 입을 열었다.

 

“정답... 말해도 돼?”

 

“얼마든지.”

 

필요한 정보를 얻기 위해 손등을 어루만졌다. 구태여 쓸모없는 정보를 구하기 위해 손가락 사이를 살며시 더듬었다.

 

그렇게 모듈이 닿지 않는 깊숙한 곳에 온기를 쑤셔 넣고 나서야, 장화는 그의 손에 깍지를 끼며 대답했다.

 

“다섯 개.”

 

“왜 그렇게 생각했어?”

 

“그게 아니면 이렇게 깍지를 낄 수 없었을 테니까.”

 

그녀의 말에 사령관은 피식 웃으며 손가락을 접었다.

 

톡. 톡. 

 

톡. 톡. 

 

톡.

 

장화의 손등 위로 덮어지는 다섯 개의 감각.

 

그는 그녀보다 강한 힘으로 그녀의 손을 껴안았다.

 

“축하해. 네가 이겼네.”

 

사락, 사령관이 눈을 가리고 있던 손을 떼었다. 하지만 장화는 여전히 눈을 감고 있었다. 행여라도 눈을 뜨면 게임의 끝이라 생각해 그가 손을 떼어버릴까 두려웠던 탓이다.

 

꼬옥, 장화의 손이 힘을 주며 떨려왔다.

 

지금의 감각에 이는 이 기묘한 감정을 알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알 수 없었지만 두렵지 않았던 까닭이었다.

 

마땅히 두려워해야 할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기에, 장화는 제 모습이 참으로 기괴하다 여겼다.

 

“이겼으니까 상이라도 줘야겠네. 뭘 주면 좋겠니?”

 

장화의 손등을 간지럽히며 사령관이 물었다.

 

이 때를 기회라 생각한 장화는 망설이지 않고 말했다.

 

“... 놓지마.”

 

“뭐를?”

 

“...... 손.”

 

“손? 아까는 엄청 싫어했으면서.”

 

“상 줄 거면 군소리 하지 말고 줘.”

 

장화는 끝까지 눈을 뜨지 않고 사령관의 대답을 기다렸다. 결국 사령관은 대답하는 대신 장화의 손을 자신의 얼굴에 가져다 대고 고개를 끄덕였다.

 

“이거면 대답이 됐지?”

 

“......응.”

 

그제야 장화의 눈은 살며시 세상의 빛을 받아들였다. 그녀가 다시 눈을 뜬 것은 제법 오랜 시간이 흐른 뒤였다.

 

정적.

 

둘은 한참이나 말이 없었다.

 

장화는 가슴이 부푼 것 같았다. 서로 연결되어 있는 손을 볼 때마다 속에 있는 언저리가 부풀어 오른 것처럼 얼굴이 빨개졌다. 그녀가 보았던 다른 임산부들이 그랬던 것처럼, 그녀는 다른 한 손을 가슴께로 모았다.

 

몽실거리는 감정.

 

그녀가 이해하기엔 난해하기 짝이 없는 것이었다.

 

“놀이라고 했지?”

 

사령관이 웃으며 말을 이었다.

 

“한 번 놀아보니까 어때? 재미있지 않아? 자기도 모르게 진심이 되고 그러지? 이거 여기서는 은근 인기 있는 놀이야.”

 

“......”

 

“내가 하고 싶은 말이 뭔지 알겠니?”

 

물끄럼히 장화는 보는 시선이 깜빡였다. 양쪽 뺨이 상기된 채로 몽롱히 그를 바라보던 장화는 물끄럼히 그와 연결되어 있는 자신의 손을 바라보았다.

 

진심이었다라.

 

맞는 말이리라. 평소 장화였다면 손가락이 살에 쓸리는 소리만 듣고도 몇 개가 펼쳐졌는지 알아차렸을 테니까.

 

이리 오래 걸릴 놀이는 아니었다. 하지만 눈을 떠보니 어느새 시간이 훌쩍 지나가 있었다.

 

그런 장화를 바라보며, 사령관은 어느 이야기를 꺼냈다.

 

“옛날에 말이야, 난 핸드폰 게임을 엄청 좋아했어.”

 

“... 핸드폰... 게임...?”

 

“응. 그 안에 있는 캐릭터들이 너무 좋아서 어쩔 줄을 몰랐거든. 얘기할 수도, 만날 수도, 하다 못해 만질 수도 없었지만 지독하게 좋아해서 하루 종일 그 애들 생각만 하면서 살았어. 게임 캐릭터에 그렇게 마음을 쏟다니, 너무 바보 같지 않니?”

 

사령관은 어깨를 으쓱이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네 말대로 고작 ‘놀이’일 뿐이잖아. 그런 거에 마음을 쏟는 게 멍청하게 보이는 건 당연한 거지.”

 

옛 기억에 아련해진 것인지, 장화를 보는 그의 얼굴을 조금 벅차오르는 듯 보였다.

 

불편함. 어찌 보면 자조적이리라. 장화는 어째서 그가 그런 표정을 짓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 그런데 장화야.”

 

마주잡고 있던 손이 떨려왔다.

 

행여 떨어질까, 두려움에 장화가 두 손으로 쥐려 했지만 그보다 빨리 손을 뻗은 것은 사령관이었다.

 

“내가 장담하는데, 그 ‘놀이’가 아니었다면 너를 이렇게 사랑하지 못했을 거란다.”

 

“... 그게 무슨...”

 

“놀이에 마음을 쓰는 게 우스울 수 있다. 그 모습을 보고 손가락질 할 수도 있어. 하지만 어떤 관계는 놀이로부터 시작한단다. 이별한 두 남녀가, 깨어져버린 부부가, 사소한 다툼으로 멀어져버린 친구가 다시 만나게 된 것은, 전부 그런 우스움을 견디고 만들어지는 거란다. 상대에 대한 자신의 편견을 우스운 것이라 생각하지 않고선 이뤄질 수 없는 관계란다.”

 

그의 목소리는 흩날리듯 가벼웠다.

 

허나 흩날린 음성이 내려앉은 곳은 장화의 마음이었다.

 

한 잎, 한 잎씩.

 

굳은살이 짙게 박혀 있는 그녀의 가슴 어느 한 켠으로 살포시.

 

“내가 너를 사랑하는 건 그 게임 때문이었을 수 있어. 놀이 때문이었을 지도 몰라. 하지만 그 때문에 이 사랑을 가볍게 여기진 말아주렴. 사람의 삶이란 건 너무 벅차서 놀이가 아니면 시작될 수 없는 관계도 있거든.”

 

“......”

 

“그러니까 장화야. 어려운 부탁이 있단다.”

 

그는 조용히 장화의 손을 놓았다.

 

어깨 뒤로 팔을 뻗기 위해서.

 

장화는 말없이 다가오는 한 명의 온기에 압도되어 입을 다물었다.

 

“몽구스 아이들의 ‘놀이’를, 우습다 여기지 말아주렴. 그러면 그 아이들도 너의 아픔을 우습게 여기지 않을 테니.”

 

장화는 자신의 손을 멈칫거렸다.

 

-개소리.

 

그녀의 모듈이 그리 하라 지시하였다.

 

-그 개자식들의 가족 놀음을, 우리가 왜 이해해줘야 해?

 

-같은 유전자를 갖고 보란 듯이 행복해하는 것들을, 우리가 왜?

 

그녀가 수십 년을 진리처럼 받아들였던 명령이었다.

 

미워하라.

 

미워하는 것을 죽여라. 미워함으로 죽여라.

 

-이 인간을 봐. 니 목숨을 움켜 쥐고 있으면서 아닌 척 기만하는 꼴을!


비탄함으로 죽여라. 저열한 질투로 죽여라. 애통함으로 죽여라.


탄식으로. 비개함으로, 통탄함으로.

 

-니 주인을 봐도 모르겠어? 인간이란 원래 이런 족속이야! 언제 자기 메이드들을 시켜서 널 죽일지 모른다고!

 

수십 년을 그리 살았다. 살기 위해 시키는 대로 하였고, 그리하여 살아남았다.

 

증오로 사는 것.

 

그녀의 삶이 증명해온 진리였다.

 

“......”

 

하지만.

 

“...내가 이해해주면.”

 

품이 따뜻했다.

 

“그 애들이 나를 이해해줄까...?”

 

품이 지독하게도 따스하여, 싸락눈이 내리던 날의 기억을 녹였다.

 

크리스마스 트리가 하얗게 덮이던 날의 아픈 기억을. 44명의 피로도 녹지 않았던 그 날의 눈을.

 

그녀가 한평생 진리라 여겼던 삶의 방식에, 자그마한 균열을 남겼다.

 

“시간이 조금 걸릴 수도 있겠지. 하지만 그때까지 내가 네 곁에 있을 거란다.”

 

“......”

 

“그거로 충분하다 생각해주면 안 되겠니?”

 

실로 뻔뻔한 생각이다.

 

참으로 오만하고 광오한 믿음이다.

 

자신의 존재가 수십 년간 켜켜히 쌓여 올린 증오를 살풀이할 만큼 고결하다 믿는 것인가.

 

제 몸 하나 간수 하지 못한 인간이 그리 말하니, 장화는 피식 웃음이 나왔다.

 

그러는 동시에, 눈물이 흘렀다.

 

그의 말이 맞았던 탓이었다. 그 존재 하나만으로 충분했던 탓이었다.

 

그럼에도 자신은, 기꺼이 자신을 안아주고 있는 사람의 몸에 차마 더러운 손을 겹칠 수 없던 까닭이었다.

 

이토록 아름답고 따스한 온기 위에 제 팔을, 차갑게 식은 피로 얼룩진 팔을 올릴 수 없던 까닭이었다.

 

두근.

 

미약한 맥박.

 

“... 쿨럭.”

 

그가 가볍게 기침을 뱉었다. 제아무리 뛰어난 약이라도 이런 잔기침까지 전부 치료해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헌데 그 작은 기침의 떨림이 왜 그리도 힘들었던 것인지.

 

톡.

 

그녀는 조심스럽게 자신의 가장 작은 손가락을 그의 등 위로 올렸다.

 

그것만이라도 허락해주길 바랬던 마음이었다.

 

“... 힘든 부탁이란 걸 안다. 난 인간이고, 인간이 부탁을 한다는 게 기만처럼 보일 수도 있어.”

 

하지만 사령관은 성큼, 그녀의 손을 들어 자신의 심장에 가져다 대었다.

 

“그러니 내 목숨을 너에게 맡기마.”

 

“... 뭐?”

 

“이번 임무, 네가 원하는 대로 하렴. 이대로 오르카 호를 나가도 좋고, 나를 죽여서 홍련을 괴롭혀도 좋다. 포기하고 싶으면 포기하고, 도망치고 싶다면 도망가라. 원하는 물자는 챙기고 싶은 만큼 챙겨서 가라.”

 

두근.

 

"그저."


두근.

 

"네가 하고 싶은대로 하거라."


피로 얼룩진 손이었기에 장화는 알 수 있었다.

 

‘...약하다.’

 

실로 미약한 인간이다.

 

지금 이렇게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게 이상할 만큼 심각한 상태. 숨을 뱉는 것은 분명 살아있는 사람의 것이었지만 그의 맥박은 되려 죽은 인간에 가까웠다. 그녀가 죽인 인간들과 비슷했다.

 

“당신... 당신 뭐야.”

 

“......”

 

“대체 왜 이런 상태로...!”

 

“이래야 공평하니까.”

 

장화는 망연해진 사령관의 눈을 바라보았다.

 

조금 흐릿한 초점. 그 멍한 망막 위로 자신의 상이 맺혀 있었다.

 

“지금껏 인간이 네 목을 쥐고 있었으니, 너도 한 번쯤은 인간의 목을 잡아야 하지 않겠니.”

 

그제야 장화는 이해할 수 있었다.

 

그가 자신을 이곳으로 데리고 온 이유도, 구태여 자신에게 그를 살릴 데이터 코드를 가지고 오란 임무를 맡긴 것도, 그가 잠수정을 이끌고 직접 바다까지 내려온 것도.

 

인간인 그가 바이오로이드인 그녀를 만난 것도.

 

자신이 아프다는 사실을, 그녀가 가장 잘 활용할 수 있을 때 고백한 것도.

 

전부 다 인간과 바이오로이드가 아닌, 사람과 사람으로서 이야기하기 위해서였음을.

 

오르카 호의 모두가 그녀의 목숨을 탐하고 있었을 때, 홀로 자신에게 제 목숨을 건네주기 위해서였음을.

 

「나는 너희에게 했듯, 이 아이에게 필요한 걸 줄 거다.」

 

그리하여 그가 자신에게 주려고 했던 것.

 

“장화야.”

 

“...왜...”

 

“장화야.”

 

“...이런 거 필요 없었다고...”

 

“... 장화야.”

 

“......”

 

한 명의 아픈 사람이, 아파왔던 사람에게 주고 싶었던 것은,

 

“이제 아무도 너를 옭아매지 못할 거란다.”

 

자유였다.

 

그녀가 살면서 단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개념.

 

여제의 사냥개로 살면서 일생을 포기하는 법만 배워온 것.

 

그 말을 끝으로 사령관의 의식은 흐려졌다.

 

“... 사령관...?”

 

“......”

 

“사령관...! 사령관!”

 

“......”

 

“왜... 왜 그런 거야!”

 

그녀는 흔들리는 사령관의 몸을 부축하기 위해 손을 뻗었다.

 

“난 안 그래도 잘 살아왔어! 그런데 왜 자기 마음대로...!”

 

멋대로 다시 잠에 빠지려는 그를 마주하며, 그녀는 큰 소리로 외쳤다.

 

“여... 여기! 여기 아무도 없어요?! 닥터! 아니, 연구소에 있는 누구든! 거기 창문 뒤에 누구 없어요?!!”

 

하지만 그마저도 쉽지 않았다. 평생을 목줄을 쓰고 살아온 그녀였기에 늘 옥죄여 있던 목은 소리 치는 법을 잊어버렸다.

 

쓰러지는 이를 부축하는 법도 몰랐다. 사람에 몸에 닿으려 할 때마다 손가락은 저도 모르게 손톱을 바짝 세웠고, 팔의 근육은 경직된 것처럼 얼어붙었다.

 

“아무도... 아무도 없냐고!!”

 

하지만, 그녀는 소리 높여 외쳤다. 목소리가 갈라질 때까지 요령 없는 힘을 다해 고함을 쳤다.

 

그를 살리고 싶어 그녀가 선택한 자유였다.

 

식은땀이 흐르는 한이 있더라도 그를 엎고 그녀의 방문을 두들겼다.

 

죽게 내버려두고 싶지 않아 그녀가 택한 길이었다.

 

쾅! 쾅! 쾅!

 

“제발! 제발 아무라도 좋으니까!”

 

장화는 미친 듯이 내리쳤다. 그 소리를 듣고 찾아온 간호사들이 사령관을 데리고 가기 전까지, 그녀는 쉬어버린 목소리로 외쳤다.

 

언제 쓰러졌는지, 쓰러지기 전에 심박수가 어느 정도였는지, 기면 증상이었는지 아닌지,

 

그녀가 지금껏 사람을 죽이며 쌓아온 경험을 토대로, 그가 얼마나 죽음에 가까이 있는지를 간호사들에게 전달했다. 부디 하나라도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 왜.’

 

그가 사라지고 시설 내에는 긴급 방송이 울렸다. 긴급 환자가 발생했으니 의료 대원들은 즉시 모이라는 얘기였다.

 

그럼에도 그 환자가 사령관이라는 얘기는 끝끝내 말하지 않았다. 

 

아마 그것도, ‘가족’을 놀래키지 않게 하기 위한 그의 선택이었으리라.

 

장화는 말없이 사령관이 있던 자리로 돌아왔다. 그녀의 침대에 따뜻한 이불이 있었지만, 그녀는 그가 앉아 있었던 자리에 쭈구려 앉았다.

 

다리를 가슴께로 모으고 최대한 조용히.

 

눈앞엔 그녀가 던진 유리컵의 조각이 널브러져 있었다. 그 안에 담겨 있던 붉은 꽃잎이 바닥에 쓰레기처럼 놓여 있었다.

 

‘... 미안해요.’

 

작게 속삭였다.

 

하지만 들을 수 있는 사람은, 이미 가버린 뒤였다.

 

‘미안해요... 미안해... 미안해요...’

 

깨진 유리컵이 치가 떨리게 부끄러웠다. 그녀가 그에게 한 짓을 떠올리니 온몸이 얼어붙는 듯했다.

 

아는 것이라곤 아무 것도 없는데. 이제 고작해야 텅 빈 책장에 한 권의 책을 꽂아넣었을 뿐인데.

 

앞으로 그에 대해 얼마나 더 알 수 있을까, 몇 권의 책을 더 읽을 수 있을까,

 

가슴이 답답했다.

 

그와 같은 감정을 수도 없이 반복했지만, 이 감정은 명확하게 아픔이었다. 푸근함도, 따스함도 없는 싸늘한 흉통이었다.

 

그렇게 조용히 흐느끼고 있던 찰나에,

 

‘... 메모...?’

 

그녀의 눈에 작은 종잇조각이 들어왔다.

 

이곳에서 밖으로 탈출하는 법이 적혀 있는 메모. 하지만 그녀에게 중요한 건 그런 것이 아니었다.

 

그 아래에 적혀 있는 문구 하나.

 

[혹시 내가 멋대로 잠들어버렸을 때, 만에 하나라도 네가 궁금한 게 있다면 내가 가지고 온 책을 읽어봐.]

 

그 문구 하나가 그녀의 눈을 사로잡았다.

 

[재미있을 거야.]

 

장화는 서둘러 그가 가지고 왔던 물건들을 살폈다. 커피포트와 차가 들어 있는 티백, 물컵. 다행히 유리컵을 던진 방향은 반대편이었기에 물건이 상하는 일은 없었다.

 

책이라.

 

그녀는 몇 번이고 주변을 살폈다. 하지만 책과 비슷한 것은 없었다. 혹시 패널 같은 걸 놓고 갔을까 하여 다시 한번 주변을 보았지만, 그런 텍스트 정보가 담겨 있을 만한 물건은 없었다.

 

‘... 어?’

 

그때, 장화의 눈에 한 종이 뭉치가 들어왔다. 제대로 된 가죽 커버도 없었고, 책갈피가 달려 있지도 않아 책이라 생각하지 못했던 종이들이.

 

사락. 사락.

 

장화는 조심스럽게 주변을 치우고 종이 뭉치를 들어올렸다. 내용이 어찌나 많았던지, 들려오는 것이 꽤나 묵직했다.

 

맨 앞장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무제」

 

제목 없음.

 

‘......’

 

이렇게 자기 마음속을 휘몰아쳐 놓고 남겨놓은 것이 제목 한 줄도 없는 소설 한 권이라.

 

장화는 말없이 첫 장을 넘겼다. 다음 장에는 몇 가지 글 줄기들이 적혀 있었고, 책을 엮은 사람들이 자신의 소감을 남기는 평범한 표지가 펼쳐졌다.

 

다만 그 소감을 남긴 사람이 인간이 아니라 바이오로이드라는 게 특이한 점이었다.

 

그렇게 긴 글을 묵묵히 읽어가던 그때, 맨 아래쪽에 작게 적혀 있는 것이 보였다.

 

‘... 하.’

 

하필 그게 보였던 이유는 별 게 아니었다. 감동적인 문구가 적혀 있는 것도 아니었고, 그저 조금 유치한, 그녀 말대로 이상한 것이 쓰여져 있었던 탓이다.

 

장화는 다음 장으로 책을 넘겼다. 얇은 종잇장을 손가락으로 넘겼다.

 

사락.

 

부드럽게 넘어가는 소리. 종이의 마찰음.

 

“하하... 하...”

 

대단한 이유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저 이 이상한 사람이 써놓은 글에 웃겨서,

 

그렇게 자신을 웃게 만들어준 것이 기뻐서,

 

그게 또 슬퍼서.

 

그저 그래서였다.

 

“... 바보 같은 사람.”

 

그 말대로, 별다른 이유가 있던 것은 아니었다. 그도 그럴 것이 거기에 쓰여있는 것이라고 해봐야 고작,

 

 










「가제假題」

 

「ㅈ간 사령관 몸으로 환생한 라붕이」

 

 

 

이게 다였으니까.

 

 

 

*

 

 


외전에서 가장 쓰고 싶었던 장면 top2 중 하나 썼다


다음화: https://arca.live/b/lastorigin/64555184?p=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