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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올해도 다 끝나가는군."


칸은 달력을 보고 있었다.

달력에는 25일이라는 숫자에 빨간 동그라미가 쳐져 있었다.

사방에 탈론의 섹스감시카메라가 설치되어 있어 일부로 무슨 날인지는 메모하지 않았다.


'올해도 무사히 끝났는가.'


매년 이맘 때가 되면 그녀는 그녀 자신만의 슬픔을 정산한다.

누가 곁을 떠났고 누가 남았는지.

그들 한 명 한 명의 번호와 특징을 기억하며, 앞으로도 기억하기 위해서였다.


오르카호에서 이 순간을 맞이하는 것은 세 번째.

벌써 3년 째 기억해야할 것들에 새로운 이름이 새겨지지 않았다.

기적이라고 할 수 있었다.


칸은 옅게 웃으면서 동그라미가 처진 날짜를 매만졌다.





"아아, 그건 저쪽으로 가지고 가주세요!"

"B사이즈 트리는 어디에 있나요? 왜 아직도 소식이 없죠!?"

"거대한 별을 못 봤느냐? 짐이 만든 특별한 크리스마스 장식품인데...."


모두가 부산하게 움직이는 날이었다.

크리스마스 이브.

자정부터 시작될 크리스마스 축제의 준비가 한창이었다.


물론 칸도 부대원들과 함께 호드 부대 꾸미기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나무를 옮기고 장식품을 만들고, 이어서 호드 부대 숙소를 꾸미고.

모두가 연말을 장식하기 위한 크리스마스 준비로 바빴다.


"자, 이제 담배 모양의 별을 트리에 올리면...!"


워울프가 스카라비아와 함께 만든 담배 모형을 트리 위에 올린다.


"떽! 별을 올려야지 뭐 하는 거야!"

"별 맞잖아. 담배별."

"그게 어딜 봐서 별이야!"

"별이라고 이름 붙이면 별이지 뭘."


카멜과 워울프가 실랑이를 벌이는 사이, 탈론페더가 음흉하게 웃으며 트리로 다가간다.


"우히히히히"


그녀가 올린 것은 감시카메라였다.

카메라 위에 작은 별이 달려 있었다.


"탈론페더! 너도 마찬가지야. 그거 당장 내려!"

"히잉."

"히잉은 개뿔."


카멜이 카메라를 낚아채 내리고 자신이 만든 것을 올린다.

그건 호드 부대의 마크였다.


"역시, 우리 부대의 상징은 이거지."

"쳇."

"치트키를 쓰시다니 너무하시네요."

"치트키라니! 당연한 거잖아!"

"아아, 부대 숙소에도 카메라 달고 싶었는데!! 아~ 도찰하고 싶다-!"

"돌겠네, 진짜로."


카멜이 골머리를 앓는 동안 칸은 구석에서 조용히 웃으며 지켜보고 있었다.


"다들 들떴네."


칸의 옆에는 샐러맨더가 있었다.


"너는 신나지 않은가?"

"왜 안 신나겠어. 크리스마스 시즌이야말로 돈 벌기 가장 좋은 날이라구."

"하하하."


대놓고 도박장을 벌이겠다는 말에도 칸은 웃었다.


"...대장. 괜찮아?"

"물론이다."

"평소처럼 태클을 걸지 않는데."

"내가 언제 너희 하는 일에 태클을 걸었다고 그러지?"

"흐음.... 그도 그런가?"


샐러맨더가 특유의 눈감은 미소를 지었다.


"솔직히 뭐가 그리 대단한 날인지는 잘 모르겠어."

"무슨 말이지?"

"크리스마스 말이야. 예수가 탄생한 날이라는데, 우리랑은 관련 없는 거잖아?"

"음."

"하지만 모두들 이때를 기다렸다며 바쁘게 준비해. 물론 우리도 마찬가지고. 그리고 대장은...."


샐러맨더가 실눈을 살짝 뜨며 칸을 흘겨봤다.


"항상 준비가 끝나면 사라지곤 하지."

"내가 없으면 섭섭한가?"


칸은 여유롭게 대꾸했다.


"조금은 그렇지 않겠어? 다들 열심히 준비했으니까."

"그런 것 치고는 아무도 날 찾으러 다니지 않던데."

"꼭 찾아다녀주기를 바랐던 것처럼 말하네."


그 말에 칸은 웃었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난다.


"안타깝게도 크리스마스의 유례와 본래 의미는 많이 퇴색됐다."

"그렇지."

"그러나 누군가에게는, 그런 껍데기뿐인 축하의 날이라도 절실히 필요해지는 법이지. 특히나 부활과 연관되는 날이라면 더더욱."


칸은 웃음기를 머금은 채로 말했다.

때마침 그녀의 머릿속에도 담배연기를 후 불며 말하는 워울프가 떠올랐다.


-내 소원은 이거야. 크리스마스 이브에. 내가 좋아하는 영화배우랑, 별이 발사되는 서부 총극을 한 편 찍는 거지.


다시 현실로 돌아와 그녀가 샐러맨더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일년에 한 번 뿐인 행사다. 마음껏 마시고, 마음껏 먹고, 마음껏 스트레스를 풀어라."

"흐음...."

"그러기 위해 존재하는 날이니까."


얼마 안 있어 축제가 시작됐다.






"메리 크리스마스!!"


시계가 자정으로 변하는 순간.

오르카호 선원들이 일제히 폭죽을 터트리며 자신의 숙소를 더럽혔다.

사령관이 없는 자리였으나 모두들 딱히 신경 쓰지 않았다.

사령관도 모니터를 통해 이 장면을 보고 있었으며, 앞으로 24시간 동안 선내를 순회하며 한 차례씩 모두를 찾아갈 예정이었기 때문이다.


"사사, 사사사, 사령관님 메리 크리스마스에요!!"

"응, 팬텀도 메리 크리스마스."


사령관이 그녀를 와락 껴안으며 뺨에 키스했다.

팬텀은 흐물흐물 녹아 무너지다가 투명해지며 사라졌다.


"하하... 모두 행복한 하루가 되기를 바라."


사령관은 오르카호의 선회를 시작했다.

그가 맨 처음으로 향한 곳은 호드 부대였다.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었기 때문이다.


"저기, 모두들?"

"어머 사령관님~~~"

"요녀셕. 누나가 보고 싶었구나? 가장 먼저 달려온 걸 보니."

"음. 모두 메리 크리스마스. 그런데 칸은?"


그의 질문에 모두가 어깨를 으쓱였다.


"사라졌지. 언제나처럼."

"....그래, 알았어."

"대장님을 찾으러 가실 건가요?"

"아니."


사령관은 즉각 대답했다.


"그건 나중으로 미루고, 우선 진탕 마셔볼까?"

"자자~ 그럼 카드부터 뽑으라구."


샐러맨더가 다가와 카드 다발을 내밀었다.


"조커를 뽑는 사람이 마시는 거야. 좋지?"

"....좋아."


사령관은 긴장하는 미소를 지으며 카드를 선택했다.

당연히 조커였다.








"한 잔 받아라."


칸은 앞에 있는 잔에 술을 따른다.

그녀가 있는 곳은 좁고 허름한, 그리고 구석에 있는 복도의 끝이었다.

술잔의 앞에는 군번줄과 각 개체의 번호가 적힌 코팅된 종이들이 놓여 있었다.


"나도 한 잔 하지."


칸이 술을 쭉 들이켰다.


아까 샐러맨더와 얘기를 할 때 떠올랐던 워울프의 목소리가 다시 재생된다.


-별이 발사되는 총싸움! 재밌어 보이지 않아?

-....


칸은 대답하지 않았었다.

묵묵히 들었다.


-그냥 총으로 쏴 죽이는 것도 아니야! 별을 상대방의 머리 꼭대기에 안착시켜야 한다고! 그렇게 상대를 크리스마스 트리로 만드는 거지. 아하하하!


당시에 칸은 피식 웃으며 넘겼다.

그러나 후회한다.

그 이상의 호응을 해줬어야 했다고.

그것은 그 워울프의 유언이 됐기 때문이었다.


-크리스마스라.... 나는 도박장을 열고 싶은 걸? 모두가 취했을 때 도박장을 열면 떼돈을 벌 수 있을 테니까.

-나! 나는 터트리고 싶어! 크리스마스를 화려하게!!

-나는 자고 싶어.... 귀찮아...

-나는 음, 크리스마스라? 역시 멋진 남자랑 함께..

-이 전쟁 통에 남자가 어디 있다고. 멋진 언니는 어때? 함께 끈적하게 놀아볼까?

-여자끼리 무슨... 나도 잠이나 자야겠다....

-저는 여러분들이 개판치는 걸 고스란히 찍어두고 싶어요!!


당시 대원들은 크리스마스를 주제로 떠들며 자신이 소박한 꿈을 얘기했다.

그 꿈은 영영 이룰 수 없게 되었다.


"올해도 어김없이 크리스마스 이브부터 준비를 시작했다."


칸은 대화를 시작한다.

군번줄들을 내려다보며 상상 속의 대원들에게 말한다.


"워울프는 담배 모양의 별을 만들었다. 사실 담배 모형이 정확하지만, 본인이 별이라고 주장했지."


그 목소리에는 아무런 대답도 없었다.

그러나 칸은 개의치 않았다.


"탈론 페더는 숙소를 도촬할 카메라를 트리 위에 올리려고 했다."


카멜은 호드 부대의 마크를.

스카라비아는 물담배 연기로 별을 만들었고,

케시크는 별 모양의 속옷을 만들며 사령관을 유혹하려고 했다.


"참, 케시크에 대해서도 설명을 해야겠군. 그녀는 이번에 합류한 새로운 대원이다. 그녀가 누군지는....."


칸은 쓴웃음을 지었다.


"너희가 더 잘 알겠지."


그렇게 말하며 칸은 술을 한 잔 더 마셨다.

그 무렵부터였다.

옆에서 기웃기웃하는 시선들이 느껴졌다.


".....올해의 이야기는 여기까지다. 생중계하며 너희들에게 말해주고 싶지만, 안타깝게도 그럴 성격이 못 되는군."


칸은 다시 한 번 그녀들에게 잔을 바치며 마무리를 짓는다.


"허나, 이것만은 알아다오. 우리는 용맹했고, 전사다웠다."


그녀들의 삶은 어느 누구보다 아름다운 삶이었다.

비록 고통스러웠을지라도 웃음이 있었고, 생기가 있었으니까.


"너희가 있었기에 지금의 우리가 있을 수 있었다."


칸은 자리에서 일어난다.

이 자리는 1년 내내 이 상태로 유지됐다.

관리하는 사람은 호드의 모든 대원들이다.

그녀들이 매일매일 번갈아가며 이곳에 찾아와 청소하고 넋을 기렸다.


"더 이상은 누구도 너희 곁으로 보내지 않겠다. 조금 쓸쓸할지라도, 너희 역시 그곳이 더 복잡해지는 걸 원치 않을 테니. 그럼 이만 가보도록 하겠다. 내년에 다시 똑같은 소식을 전할 수 있도록 하지."


똑같은 부대원과 똑같은 내용을 전하는 것이야말로 호재였다.

아무도 희생되지 않았다는 것이었으니까.


그것이 크리스마스에 비는 칸의 바람이었다.


"칸 대장~"

"카안~~"


그녀가 일어나 복도를 빠져나가자 기웃거리던 시선들이 정체를 드러냈다.


"사령관. 메리 크리스마스다."

"뭐, 뭐라고? 클리토리스?"

"아하하하핳! 미안, 사령관이 많이 취했어!"


사령관은 이미 고주망태가 되어 있었다.

하지만 칸은 기분 나쁘지 않았다.


기분이 나쁠 수가 없었다.


더는 과거가 반복되지 않았으니까.

오르카호에 합류한 다음부터 그녀의 삶은 변하고 있었다.

조금 더 시끌벅적하고, 조금 더 천박하게.

그리고 세상의 어떤 곳보다 안전하게.


그녀의 삶이 변하고 있었다.


저 남자로 인해.


"메리 크리스마스다, 사령관. 메리 크리스마스야."


만약 정말로 예수가 재탄생했다면 누군가는 눈물을 흘렸을 거다.

뺨을 타고 흐르는 그것은 바로 기쁨의 눈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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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맞이대회] 부대원들의 연말 정산 단편 모음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