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진흥왕이 고구려와 싸우고 백제 통수를 쳐서 한강 유역 땅을 차지한 후 영토 선포를 위해 세워진 진흥왕 순수비


이후 사람들에게 잊혔다가 조선 후기에 들어서 진흥왕비라는 사실이 겨우 알려졌고, 나중에 추사 김정희가 비문 해석에 성공하자 감격을 금치 못하고 자기 이름과 술친구 이름을 비석 옆에 나란히 새겨두었다.


심지어 두 번 다녀가서 두 번 새겼다.


낙서도 위인이 하면 가치가 생긴다.


(사실 그냥 낙서가 아니라 비문 해설을 새겨놓은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