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저에게는 사령관 님이 묵는 방까지 있을 경호원들을 따돌릴 루트가 있고, 당신에게는 마지막 문을 손쉽게 돌파할 수단이 있으니... 괜찮지 않을까요?"


시라유리의 대꾸에 사이클롭스 프린세스의 눈매가 날카롭게 빛났다. 확실히 그녀에게도 손해인 제안은 아니었지만, 협상에서 가장 중요한 자세는 자신의 패를 숨기고 상대방의 양보를 이끌어내 유리한 고지를 점하는 것이었으니, 사이클롭스 프린세스는 다소 오만한 태도를 견지하며 시라유리를 쏘아보았다.


"흥! 아쉬운 쪽은 내가 아니라, 그대인 것 같은데."

"어머, 아쉬운 쪽이라니... 전 어디까지나 '저의 편의'를 위해 동맹을 제안했을 뿐, 제 능력이라면 시간이 지체될 뿐이지 불가능하지는 않아요."


확실히 시라유리의 능력이라면 침투하는 것에 시간이 지체될 뿐, 불가능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물며 그녀는 이미 사령관이 자는 방에 침투한 전과도 있지 않던가. 사이클롭스 프린세스의 머릿속이 복잡한 계산을 하기 시작했다.


어떻게 협상을 이끌어야 하는 것일까. 이대로 흘러간다면 그저 이용만 당할 것이다. 그러나 사이클롭스 프린세스의 고뇌를 잠잖게 지켜봐 줄 이유가 없는 시라유리는 서둘러 말을 이어 나갔다.


"그럼... 협상은 결렬..."

"아니, 받아들이겠다. 그대와 짐과의 동맹."

"후훗... 잘 생각하셨어요."

"그래도 짐은.. 순번까지 양보하기 힘들다."


기껏 침입한 다음 순번을 시라유리에게 빼앗겨 시간이 지체된다면, 결국 자신이 즐길 시간만 줄어들 것이란 생각에 사이클롭스 프린세스는 살며시 시라유리의 눈치를 보며 대꾸했지만 시라유리의 대답은 싸늘했다.


"제가 선, 당신이 후. 이것에 대한 협상은 더는 없어요."

"크윽...!"

"후훗... 그럼 시간이 지체되기 전에 출발하죠."


사령관의 침실로 향하는 시라유리의 표정이 언제 그랬냐는 듯 온화하게 변해 있었다. 그런 시라유리의 표정을 오묘한 감정을 섞어 바라보던 사이클롭스 프린세스는 괜히 이용만 당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결국 그녀에게 처음부터 불리한 도박판이었던 것이다.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는 지금의 침투 과정으로 보아, 혼자서도 문을 여는 것에 시간이 걸릴 뿐, 가능하다는 시라유리의 말은 틀림 없을 것이다.


'쳇, 이래서야 짐이 꼼짝 없이 이용만 당하겠구나.'


오만한 성격의 그녀에게는 참기 힘든 굴욕적인 결과. 그러나 확실히 수많은 경호원들을 지금까지 단 한번도 마주치지 않았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시라유리와 동맹을 맺지 않았다면 조용하고 그림자 같은 침투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유능하긴 하구나.'


"뭘 그렇게 구경만 하시죠?"

"응?"


어느새 우뚝 선 시라유리가 뒤를 돌아보며 사이클롭스 프린세스에게 눈짓을 하기 시작했다. 평소, 진조의 공주로써 다른 동료들을 하대하던 그녀에게는 굴욕적인 처사였지만, 미래의 달콤한 과실을 얻기 위해 고개를 숙일 줄 아는 것 또한 군주의 덕목. 그녀는 시라유리가 조용히 가리키는 문의 도어락 앞에 서 온 신경을 눈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잠시 주변 감시를 부탁하마. 짐의 권능은 밝게 빛나는 편이라서."

"그 정도야."


어깨를 으쓱이며 시라유리가 주변을 감시하기 시작하자, 붉은 섬광이 사이클롭스 프린세스의 눈에서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훗, 짐의 힘 앞에 이런 문 따위..."

"감탄할 시간이 어디에 있나요? 방금 소리 때문에 사령관 님이 깨신 모양이니 서두르죠."


끝까지 쌀쌀맞은 시라유리의 태도에 사이클롭스 프린세스의 표정이 구겨졌지만, 서둘러 시라유리를 따라 사령관의 방 안으로 따라 들어가기 시작했다. 시라유리의 말 그대로 여기서 가뜩이나 부족한 시간을 지체해봐야 손해인 것이다.


"기, 기다려! 같이 가자고!"


과연 방 안으로 들어오니 사령관의 표정은 아직 멍하게 벙쪄 있었고, 시라유리는 어느새 그의 위에 올라타 입맛을 다시며 그의 귓가에 고혹적인 언사들을 쏟아내고 있었다. 눈 앞에 먹음직스러운 먹이감을 눈 앞에 둔 시라유리는 이제 그녀의 동맹 따위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 모양이었다.


철저한 무시와 냉대. 그러나 사이클롭스 프린세스, 그녀에게 시라유리의 반응은 오히려 고마운 쪽이었다. 누군가를 기습하기에 방심하고 있는 사냥감 만큼 편한 상대가 또 있을까. 차라리 잘 된 것이리라.


"시, 시라유리? 갑자기 무슨 일이야?"

"어머, 사령관 님... 후훗... 걱정 마세요. 아주 잠시... 아주 조금만 당신을 맛볼 거니까..."


이미 옷의 지퍼를 내리며 사령관을 더듬는 것에 정신이 팔린 시라유리의 뒤로, 사이클롭스 프린세스가 접근하기 시작했다.


"당신은 조금만 기다리시죠. 아까 협상했듯, 순번에 변화는 없으니까요."

"시라유리, 그대는 알고 있느냐?"

"지금 상황에 무슨 소리를 하시는 거죠?"


사이클롭스 프린세스의 행동에 짜증이 난 것인지 시라유리의 언성이 살며시 높아지기 시작했지만, 사이클롭스 프린세스는 상쾌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어 나갔다. 물론, 소품으로 들고 다니던 검인지 몽둥이인지를 들어 올리며.


"지금 네가 덮치고 있는 짐의 권속이 짐에게 그런 말을 했었느니라."

"네?"

"급한 볼일을 보러 화장실을 갈 때와, 볼일을 보고 나올 때의 마음은 다른 법이라고."

"...?!"



"원래 첩보계가 그런 것이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