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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라고 하셨습니까?"

"매도해주라!!"


터무니없는 말을 뱉으며, 또 기대하는 눈빛으로 저를 바라보는 당신.

방금까지 무얼 하다가 왔는지 알고 싶지는 않지만, 당신의 차림새를 보면 모를 수가 없습니다.

단추를 채 다 잠그지도 않았고, 목덜미에는 진한 키스 마크가 새겨져 있으며, 머리카락이 헝클어져 있네요.


'어째서 이렇게 칠칠맞은 걸까요.'


그런 철없는 당신을 보며 저는 한숨을 푹 내쉽니다.


"하... 주인님. 대체 몇 번을 말씀드려야겠습니까."

"응?"

"옷을 단정히 하고 다니십시오. 머리를 빗고 다니십시오. 오르카호를 통솔하는 당신이 이런 행색으로 돌아다니셔서는 안 됩니다."

"헤헤."

"쯧."


저도 모르게 혀를 찼습니다만, 어째서 당신은 더 즐거워하는 걸까요.

이상하게도 제가 못마땅한 표정을 지으면 당신은 베시시 웃습니다.

인정하죠, 그 미소가 절 약하게 만든다는 걸.

그러나 저를 즐겁게 만들지는 않습니다.


"주인님."

"응, 바닐라."

"항상 주인님의 위치를 생각하시고 행동하십시오. 지난 3년 동안 대체 성장이라는 걸 하기는 하시는 겁니까?"
"음...."


갑자기 미소가 옅어지며 진정하시는 당신.

조금은 진지해지며 저를 보시네요.

이제야 저를 보시네요.

매도 메이드 바닐라가 아니라.

저를.


"저, 바닐라. 화났어...?"

"제가 화가 났다 한들, 주인님처럼 높으신 분이 신경이나 쓰실까요."

"아니... 음... 미안해."

"됐습니다. 이리 오시죠. 단추를 다시 채워드릴테니."


머리를 긁적이는 당신에게 제가 한 발 다가갑니다.

그리고 첫 단추부터 잘 못 꿰인 단추를 하나씩 풉니다.

그렇게 드러난 당신의 배와 가슴을 보며.....

저는 가슴 속 깊은 곳에서 사악한 감정이 꿈틀하는 것을 느낍니다.


'이 향... 앨리스 언니군요.'


그랬죠. 이번주는 배틀메이드의 주였어요.

그래서 저에게 다가와 주신 건가요?

하루가 절반 이상이 지나간 지금.

석양이 바다 위를 뒤덮고 있는 이 무렵부터 저와의 시간을 보내시려고?


"....."


주인님.

주인님은 저를 너무 우습게 보고 계시네요.

대체 이 세상 어느 여자가 이런.....


이런 식으로 다른 여자의 흔적을 고스란히 가져오는 것을 좋아할까요.


"다 됐습니다. 이제 머리를 빗어드리겠습니다."


단추를 다 끼워준 다음, 저는 빗을 꺼냅니다.

다만 키가 조금 작아서 발 뒷꿈치를 들고 머리를 빗습니다.

이런 구도를 좋아했던 적도 있었습니다.

아니, 여전히 좋아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싫습니다.


저는 이런 당신이 정말 싫습니다.


"음, 저기 바닐라..."

"움직이지 마십시오."

"음...."

"넥타이를 똑바로 하겠습니다."

"응."


앞섬과 머리, 넥타이, 그리고 여기저기 묻은 땀까지.

한 차례 정리를 하고 나니 제가 좋아하는 주인님의 모습이 보이기는 하네요. 조금이지만.


"이러니 그런대로 봐주실만은 하군요."

"하하.... 그러면 오늘-"

"그러나 지금 이대로 누군가에게 작업을 거실 생각은 아니시겠죠."

"으, 응..?"


당황하는 당신을 보아하니 뭐가 문제인지 깨닫지 못하시는 것 같군요.

뭐, 이해합니다.

당신의 몸은 하나고 대원들은 수십, 수백을 넘으니까.

시간에 쫓기는 삶을 사시는 만큼, 자잘한 부분까지는 신경을 쓰지 못하시겠죠.


"주인님. 저는 바닐라  A1입니다."

"응... 알지."

"저는 청소와 요리를 해드릴 수 있습니다."

"응...."

"그러나 최근에는 공부를 조금 더 해서, 간단하게나마 주인님을 꾸미는 방법도 배웠습니다."


제 말에 조금 표정이 밝아지시네요.

이럴 때마다 드는 생각은, 당신은 정말.....


"그럼 부탁 좀 해도 될까?"


정말 나쁜 사람입니다.


"알겠습니다, 주인님. 이쪽으로."






저는 주인님을 화장대 앞에 앉히고 꾸미기 시작합니다.

얼굴과 목에 묻은 땀과 온갖 타액을 닦고 옅게 화장을 하고.

옷을 매만진 다음에는 머리에 볼륨감을 더하며 살짝씩 왁스를 칠합니다.


그러는 동안 당신은 눈을 감고 조용히 허밍하며 노래를 흥얼거립니다.

이런 편안한 시간을 저는 좋아합니다.

기계적이고, 헌신적인. 그리고 충실한 감정을 느낄 수 있기에.


그러나 오늘은 어쩐지 계속 당신의 얼굴에, 그리고 키스 마크가 남은 목덜미에.

그리고 방금까지 잔뜩 부풀렸을 어떤 방망이가 숨은 바지 안에 자꾸 시선이 갑니다.


"아야!"

"이런, 아프셨나요?"

"조, 조금..."

"지워지지가 않아서요."


저는 솜을 빡빡 문지릅니다.

당신은 장난을 섞여 비명을 지르고, 그런 다소 과한 반응이 저의 마음을 살짝 풀어주었습니다.


"아, 웃었다."

"...."

"아악! 잘못했어요!"


뭐, 이래봤자 키스 마크가 지워질 일은 없겠지요.

저도 알고 있습니다.

이건 다음 순번인 대원이 보란 듯이 새겨 놓은 거니까.


'정말 지독하시네요, 언니.'


원체 그런 성격이니 그걸 가지고 뭐라고 하지는 않겠습니다.

다만, 무신경하게 그걸 보이고 있는 당신에게는 조금 화가 납니다.


"화가 조금은 풀렸어?"

"...."


저는 대답하지 않고 목덜미에 분을 바릅니다.

낙인처럼 찍혀 버린 키스 마크를 보기 싫어서요.


"미안해. 그런 곳에 생겼는 줄 몰랐어. 여기 와서 거울을 보고야 알았어."

"주인님."

"응."

"주인님은 제 기분이 민감하게 반응하며 저의 눈치를 보곤 하시죠."

"하하...."


당신이 손을 들어 머리를 긁적이려고 하는 찰나, 제가 그 손을 지긋이 째려봅니다.

그러자 손은 다시 아래로 내려갑니다.

네, 그래야죠.

감히 제가 방금 막 관리를 끝낸 머리를 헝클어트리려 하면 안 되지요.


"그런 개 같은 성격이 저로 하여금 당신을 함부로 대하지 못하게 만듭니다."

"개 같다니..... 칭찬이지...?"

"말 그대로의 의미입니다. 개 같아요. 개처럼 주변 사람의 감정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태세를 전환하니까."

"하하...."


오해가 생겼을까요?

딱히 상관 없습니다.

저는 그 이상의 아픔을 얻었으니까.


"주인님은 항상 저에게 매도를 원하십니다."

"응....."

"그러나 저는 주인님을 매도한 적이 없습니다."

"....."

"그럼에도 주인님은 계속 도전하시지요. 그게 친근감의 표시라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가끔은 어울려주잖아?"

"......가끔은."


저는 주인님의 어깨를 꽉 쥐려다가 말았습니다.

하고 싶은 얘기는 그게 아니었으니까요.


"그러나 대부분, 저는 주인님을 매도하지 않고, 매도하고 싶다고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응. 알아."

"알고 계신다면 됐습니다."


저는 화장품을 정리합니다.

이것으로 화장이 끝났습니다.

다만, 아직 제 마음은 풀리지 않았습니다.


"그럼 주인님? 다시 한 번 여쭙겠습니다."


제가 가장 어려워하는 것은 언제나 같습니다.

저의 마음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서투른 것을 할 때면 눈매가 날카로워지고 신경이 곤두서기에, 오해를 사고는 합니다.

저에게 매도하는 여자라는 이미지가 생긴 것도 그 탓이겠지요.

그래서 저도 많이 고민했습니다.


어떻게 해야 조금 더 부드럽게 마음을 전할 수 있을까.

이게 제가 찾아낸 해답입니다.


저는 돌아서서 당신을 마주봅니다.

하지만 정면으로 마주하면 또다시 습관처럼 미간이 좁혀질 것 같네요.,

그래서 화장대에 기대어 서서 살짝 얼굴을 옆으로 돌립니다.

부끄러움에 얼굴이 화끈거리지만 꾹 참고 계속 말합니다.


".....아까 그 모습으로 저에게 작업을 거실 생각은 아니셨겠죠."


저는 당신이 싫습니다.

다른 여자와 사랑을 나눈 모습 그대로, 아무런 죄책감 없이 미소를 보이는 그 모습이.

저에게 주어진 시간은 하루가 채 되지 않는데, 저에게만 집중하지 않고 다른 여자의 채취를 풍기는 당신의 무신경함이.


"지금 모습은 어때?"


당신이 일어나서 저에게 묻습니다.


"정말 짓궂은 질문이네요."


주인님. 저는 당신이 좋습니다.

화장하는 법을 몰라서 조금 서툴러도.

계속 앉아 있어서 불편하게 만들거나 짓궂은 마음에 조금 아프게 해도.

저의 취향대로 당신을 꾸밀 수 있게 해주는 그 마음씨가요.


"대답은 이미 정해져 있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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