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게 씹듯이 내뱉은 바르그의 말에 천아와 장화의 표정이 싸늘하게 가라앉았다. 


같은 부대끼리 친하게 지내보라며 '쓸데없는 배려'를 발휘해 자리를 주선한 사령관이 아니었다면 필시 같은 자리에 모이지도 않았을 것이지만, 그럼에도 이 자리에 앉아있는 것은 그만큼 셋 다 사령관의 말을 거부할 수 없었다는 뜻. 그러나 바르그는 장화와 천아의 저 메이드 의상인지 뭔지 정체를 알 수 없는 정신나간 노출도의 의상에 자연스레 비난의 말이 나오고 만 것이다.


"뭐? 이 새끼가... 너 말 다했어?"

"야, 야! 참아! 너 그러다 핫팩에게 또 혼난다?"

"윽..."


순식간에 와이어와 폭탄을 꺼낼 기세의 장화를 가볍게 만류하며 천아가 살며시 바르그의 앞에 당당히 나서며 시선을 내리 깔았다. 혐오의 눈초리로 그런 암캐와 같은 복장을 입고도 엠프레시스 하운드의 정신을 지킬 수 있겠느냐 연설하는 바르그의 모습을 바라보던 천아는, 가볍게 비웃음을 흘리며 바르그의 머리를 쓰다듬기 시작했다.


"푸훗! 그러는 너도... 그런 옷, 핫팩이 좋아하니까 입었잖아?"

"뭐? 이, 이건..."


당황한 듯 얼굴을 붉히며 말을 잇지 못하는 바르그를 바라보며 천아는 기회를 포착했다는 듯 맹공을 이어나갔다.


바르그는 잠시 잊은 것처럼 보였으나, 엄연히 그녀의 의상도 '정상'과는 거리가 멀었기에, 천아의 비웃는 듯한 미소가 진해지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리라. 그 누구보다 규율과 명예 같은, 낡았다면 낡은 고리타분한 바르그에게 이보다 좋은 공격 거리가 또 있을까. 함께 지내온 세월 동안 담 쌓고 남처럼 지내왔어도 일단은 같은 부대원이었기에 천아는 바르그를 조련하는것에 익숙했다.


"어머, 헐~ 등도 다 트여있고! 이거 봐! 치마는 또 왜 이렇게 짧아?"

"어, 어쩔 수 없었다! 무녀 스승께서 이런 의상을 주셨으니까..."

"뭐어~? 그건 우리도 마찬가지라서~"


천아와 바르그의 유치한 말싸움에 결국 진절머리가 난 것인지, 장화는 가볍게 한숨을 내뱉고는 둘에게서 거리를 두며 팔짱을 끼고 사태를 주시했다. 처음 바르그의 도발에 욱해서 진심으로 공격하려 했지만, 이러니 저러니 해도 이제부터 같은 한솥밥을 먹게 된 사이 아니던가.


그저 지금의 이 유치한 말장난이 끝나길 바랄 뿐이다.


"그, 그러는 너야말로! 추위에 약한 주제에 다 벗고 있잖아!"

"야! 핫팩이 이런 걸 좋아한다고 그러는데 그럼 안돼? 너도 핫팩이 좋아한다고 그러니까 냉큼 입은 거잖아!"


'하아~ 병신들.'


평소라면 자신이 이성을 잃고 천아는 자신을 말렸어야 당연한 구도에서, 지금은 천아가 바르그와 이마에 핏대를 세우며 말다툼을 벌이는 중이었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차라리 서로의 피가 튀기고 살점이 난무하는 전투보다야, 이런 평화롭고 유치한 애들 장난이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뭐... 그 녀석이... 우리끼리 싸우면 싫어하니까...'


사령관의 생각을 하며 자연스럽게 미소를 짓는 장화를 향해 어느새 다가온 것인지 천아와 바르그가 다가와 자신들의 무장을 챙기기 시작했다. 방금 전까지 서로 찢어 죽일 기세로 으르렁 거리던 두 암캐는, 어느덧 사냥개의 눈빛으로 돌아와 있었다.


"뭐야? 서로 연장들고 싸우려고? 그럼 곤란한데..."

"뭐? 야 이년아! 우리가 왜 서로에게 연장질을 하냐? 어째서 결론이 그래?"


무슨 헛소리를 하느냐는 듯한 천아와 한심하다는 듯 한숨을 내쉬고는 자신의 애검 두자루를 챙기는 바르그. 장화는 작금의 상황이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 사령관의 명령도 없이, 무장을 챙겨 나갈 이유가 뭐가 있단 말인가.


"야! 그게 아니면 무장을 왜 해? 사령관이 명령이라도 했어?"

"결국 복장으로 주인님을 유혹하는 것은 우리 엠프레시스 하운드에게 명예롭지 못하다는 결론이 나왔다."

"그래서?"

"그래서 지금부터 주인님께 감히 반기를 든 델타를 쳐죽이러 갈 작정이었지. 그것으로 우리의 충심을 증명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면 이런 야.. 야한... 아무튼! 부적절한 복장으로 주인님을 유혹하려 했다는 오해를 불식 시킬 수 있겠지."


장화의 질문에 대답한 것은 바르그였지만 장화의 머릿속은 온통 물음표로 가득 차버렸다. 옷이 야하다. 그러니 발정난 암캐 같다. 라는 지극히 단순한 상호 비판 뿐이던 애들의 말다툼에서, 어찌 저런 결론을 냈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어찌 됐든 사령관의 명령 없이 행동하는 것에 망설임을 느낀 장화가 주춤하는 모습을 보이자 이번에는 천아가 장화에게 슬며시 속삭였다.


"야! 잘 생각해봐... 우리가 델타 그년의 모가지를 따오면, 핫팩이 얼마나 좋아하겠어?"

"그건... 그, 그 녀석이... 웃어줄까?"

"웃어만 주겠냐? 이 븅신아~ 아마 당장 결혼하자고 날부터 잡으러 갈걸?"

"겨, 결혼... 에헤헤... 내가... 쥬인님과..."


'장화는 핫팩의 이야기만 나오면 눈이 돌아간다' 라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전투력은 충분한 녀석이니 함께 가서 나쁠 것은 없을 것이라 판단한 천아. 천아는 무장을 장화에게 던져주며 사냥개의 이빨을 드러냈다.


"뭐해? 두고 간다?"

"같이 가! 기다려!"


둘의 대화를 얌전히 들으며 칼을 다듬던 바르그는 다시금 모인, 옛 사냥개들의 모습에 코끝이 시큰거림을 느꼈다. 주인님의 명령을 받아 주인님의 적들을 처치한다. 사냥개의 DNA가 본능에 새겨진 그녀에게는 정말 그리운 두근거림이었다.


"준비는 됐나? 그럼 갈까."

"아, 잠깐만! 바르그! 가기 전에 궁금한 게 있는데."

"뭐지? 시간이 없으니 짧게 부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