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편 모음집   



 

 

“하르페이아.

 

사랑해요.”

 

평소와 다름없는 말투였지만 내용은 전혀 평소 같지 않았다. 리마토르의 말을 들은 하르페이아는 일순간 사고가 정지했다. 약 5초간 생각을 제대로 하지 못했던 그녀는 조금씩 생각이 돌아오자 점점 혼란에 빠졌다.

 

“교, 교, 교수님?! 대, 대체 그 말씀은...”

 

눈을 어디 둬야할지 몰라 시선이 핑핑 돌았다. 볼을 새빨갛게 물들이고 떨리는 입으로 그의 말을 되묻던 하르페이아는 대체 어떻게 반응해야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그녀를 보며 입가에 엷은 웃음을 띤 리마토르는 말을 이었다.

 

“그 말이 제게 듣고 싶었던 거죠?”

 

“ㄴ, 네...?”

 

리마토르는 책장으로 걸어가 책 한 권을 뽑아들었다. <일반 언어학 강의>라고 적힌 제목 아래에는 페르디낭 드 소쉬르라는 저자 이름이 적혀있었다. 그는 하르페이아에게 등을 돌린 채 그녀가 볼 수 있도록 책 표지를 들더니 입을 열었다.

 

소쉬르구조주의의 아버지죠. 세계의 구조가 언어의 지배를 받는다고 생각한 소쉬르언어가 철저히 우연에 따른다고 주장했습니다. 훌륭한 언어학 강의를 한 걸로 당대에 추앙받았지만, 정작 본인은 자신의 강의를 언어로 남기지 않고 오히려 학기가 끝나는 족족 강의 자료를 소각해 학위 논문 두 편을 제외하면 단 한 편의 저작도 남기지 않았죠. 이 책도 소쉬르 사후 제자들이 소쉬르의 주장이 잊힐까 우려하여 수강생들의 강의 필기와 소쉬르가 처분하지 못한 자료들을 모아 펴낸 거에요.

 

지금부터 제가 시작할 이야기도 이거랍니다. 잠시 들어볼래요?”

 

“...네.”

 

이야기가 본격적인 강의로 넘어가자 하르페이아는 몸가짐을 가다듬었다. 리마토르가 결코 허튼 이유로 말을 꺼낼 사람이 아님을 잘 알고 있었기에 그녀는 이번 강의를 통해 그가 무언가 말하려는 바가 있으리라 추측했다. 리마토르는 책장 앞에 서서 책을 펼치더니 그녀를 뒤돌아보며 강의를 시작했다.

 

“소쉬르는 스위스의 부유한 명문가에서 태어났어요. 천재로 명성이 자자했던 그는 단 14살에 인도유럽어 사이의 비교를 주제로 논문을 쓸 정도로 일찍이 언어학에 두각을 보였죠. 제네바 대학을 졸업하고 독일로 유학을 떠나 언어학을 더 깊이 연구한 뒤 프랑스 파리로 건너간 소쉬르는 그곳에서 언어학을 통해 세계를 해부하는 연구를 진행했어요. 그게 바로 구조주의의 시작이었죠.

 

구조주의인간의 삶과 세상을 조성하는 역사, 사회 등이 어떻게 생겨났는지, 그 근본적인 틀은 무엇인지 연구하는 철학의 분과랍니다. 구조주의에 따르면 인간은 주체적인 결단을 통해 삶을 구성하는 게 아니라, 의식 바깥에서 움직이는 구조에 의해 인식과 행위가 규정됩니다. 다시 말해 타자의 욕망으로 자아를 살아가는 셈이죠.

 

그럼 구조주의에서 말하는 구조는 대체 뭘로 이루어진 걸까요? 학자마다 말이 다 달랐습니다. 권력과 대중의 담론이 사회의 구조가 된다는 미셸 푸코, 문화현상에서 구조를 찾은 롤랑 바르트, 문화 인류학으로 구조를 찾으려 한 레비 스트로스, 정신분석학에서 구조주의를 연구한 자크 라캉, 이데올로기가 구조를 만든다고 말한 루이 알튀세르. 판이하게 다른 주장이지만 이들 모두 소쉬르가 만든 구조주의의 문을 열고 들어온 이들입니다. 그만큼 소쉬르의 주장이 이들에게 많은 영향을 미쳤죠. 그런 소쉬르의 주장은 뭐였을까요? 소쉬르가 본 세상의 구조는 언어였습니다.”

 

리마토르는 하르페이아와 눈을 맞추었다. 시선에서 훈훈한 온기가 전해지는 것만 같아 하르페이아는 붉어진 볼이 좀처럼 색을 잃지 않는 자신을 책망했다. 그녀의 모습을 지그시 보던 그는 이야기를 이었다.

 

“소쉬르는 언어의 틀을 통해 생각이 표현된다는 점에서 언어가 생각을 지배한다고 생각했어요. 조지 오웰의 소설 <1984>를 보면 오세아니아를 장악한 빅 브라더는 기존의 언어를 폐지하고 신어(新語)를 만들죠. 다양한 표현이 사라지고 오직 하나의 말로만 생각을 표현하게 되자 사람들은 빅 브라더에 대항할 생각을 하지 못하게 됩니다. 왜 그랬을까요? 이 소설이 쓰인 시대와 소쉬르가 살았던 시대는 아무리 짧아도 40년의 간극이 있지만 소쉬르는 일찍이 이 질문에 답을 달았습니다.

 

인간의 모든 사유와 행위는 언어라는 틀에서 이루어지지만, 정작 언어 체계는 이성이나 감각 경험과 전혀 관계없이 조성된 구조이기 때문이죠. 이성을 강조한 르네 데카르트의 유명한 어록이 있죠.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Cogito, ergo sum)’ 이 말은 생각하고 있는 나의 상태를 언어로 표현한 겁니다. 그런데 ‘나는 생각한다’는 생각을 어떻게 이런 언어로 표현하겠다고 생각했을까요? 무엇을 ‘나’로, 무엇을 ‘생각한다’로, 무엇을 ‘고로’로 정하겠다고 사람들의 합의가 이루어지기라도 한 걸까요? 이런 생각을 떠올리고 말하는 규칙은 어떻게 탄생했을까요?

 

소쉬르는 이 질문에도 아주 단순하지만 파격적인 답을 답니다. 처음부터 전부 우연에 불과하다는 것이죠.”

 

“언어가 우연의 산물에 불과하다고요? 말도 안돼요. 그럼 훈민정음은 대체 뭐죠?”

 

하르페이아가 믿을 수 없다는 투로 반박하자 리마토르는 충분히 예상했다는 질문이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책을 펴서 한 문단을 손가락으로 그으며 대답했다.

 

“인간은 어째서 인간일까요? 개는 왜 개고, 바이오로이드는 어째서 바이오로이드죠? 제가 들고 있는 이 물건을 책이라고 부를 이유 따위는 하등 없습니다. 소쉬르와 같은 스위스 출신의 유명 문학가 페터 빅셀의 대표작 <책상은 책상이다>라는 소설을 보면 의자를 책상으로, 침대를 사진으로 부르는 등 기존에 있던 사물에 새로운 의미를 갖다 붙이죠. 지금 제가 들고 있는 이 물건을 ‘인쇄된 종이의 묶음’이라고 불러도 상관없습니다. 이 물건을 책이라고 부르자는 사회적 합의는 만인이 동의한 게 아니에요그저 많은 사람들이 쓰다 보니 그렇게 부르게 됐을 뿐이죠.

 

이게 바로 소쉬르가 말한 언어의 우연성입니다. 소쉬르는 특정 의미에 특정한 표현이 붙어야할 논리적인 이유는 단 하나도 없다고 봤어요. 전부 우연히 그런 의미에 그런 표시가 붙은 것에 불과했죠.

 

이 주장은 구체적으로 파롤(Parole)랑그(Langue)로 나뉩니다. 파롤의식계에서 소리나 글로 나타나는 발화 요소에요. 말이나 글자가 파롤에 해당하죠. 랑그언어가 작동하는 규칙이에요. 무의식계에 존재하며, 비유하자면 게임 규칙이라고 할 수 있죠. 소쉬르는 파롤은 사람마다 다 다르게 발화되지만 랑그는 전 세계 어디를 가더라도 보편적인 규칙이라고 했어요. 한국어인지, 영어인지, 프랑스어인지, 독일어인지, 라틴어인지를 모두 떠나 언어 자체가 움직이는 규칙은 변치 않는다고 보았죠. 어떤 언어든 주어, 목적어, 서술어는 필연적으로 존재하니까요.

 

이런 언어 규칙인 랑그는 개별 행위자의 의지로 바꿀 수 없어요. 제가 제 마음대로 파롤을 바꿔서 사용한다고 해도 랑그 규칙 속에서 벗어날 수 없어요. 제가 책을 담배라고 불러도 아무도 동조해주지 않을 테니까요. 이처럼 소쉬르는 의지와 상관없는 언어 체계가 인간의 생각과 언행을 지배한다고 보았어요. 사유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인간의 의식적 행위는 모두 무의식계에 자리 잡은 랑그에서 나온다는 말이죠.”

 

리마토르의 말을 듣던 하르페이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랑그만 작동한다면 언어를 가리키는 파롤이 어떻게 쓰이든 상관없었기에 언어가 가리키는 기표와 실제에 해당하는 기의가 우연한 결합에 불과하다는 소쉬르의 말이 이해가 되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나온 말로는 리마토르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명확히 갈피가 잡히지 않았다. 그녀는 그가 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어서 이 강의를 시작했는지 긴장하며 마른 침을 삼켰다. 그녀가 대강 이해했다고 생각한 리마토르는 자신도 마른 침을 삼킨 뒤 강의를 이었다.

 

“파롤과 랑그로 언어를 나눈 소쉬르는 파롤에 해당하는 언어 기호를 더 구체적으로 쪼갭니다. 시니피에(Signifie)시니피앙(Signifant)으로 나누었죠. 시니피앙발음기호와 같은 구체적인 언어로, 기표에 해당합니다. 시니피에대상을 떠올리는 개념과 관념인 기의에 해당하죠. 앞에서 이야기 했듯이 소쉬르는 파롤이 어떻게 쓰이든 그건 전부 우연에 해당한다고 보았습니다. 그걸 자세하게 설명한 게 시니피에와 시니피앙 이론이에요. 한 번 보죠.

 

시니피앙이 책이라는 단어를 만들었습니다. 책의 기능은 뭐죠? 정보를 종이 혹인 종이와 같은 전자화면에 구성하여 전달하는, 원시적인 형태의 종이 묶음 내지 현대적인 형태의 전자 정보죠. 그런데 굳이 그게 ‘책’이란 단어로 말할 이유가 없다고 앞에서 계속 그랬죠. 이해가 안 됐을까봐 부연설명하자면, 우리가 생각하는 책의 시니피에, 그러니까 개념은 저렇게 읽을 수 있는 정보 전달 장치입니다. 그런데 ‘책’이라는 단어가 그런 능력을 수행할 수 있나요? 책이라는 단어 하나는 그 어떤 정보 전달 장치로 기능하지 못해요. 단지 ‘책=정보 전달 장치’라는 식으로 연결되는 사고를 하니까 우리가 아무런 의미 없는 ‘책’이라는 단어 하나로 저런 의미를 구성할 수 있는 거죠. 즉, 소쉬르는 단어에는 무언가를 설명하는 본질적인 의미가 없다고 한 거에요. 이를 가리켜 소쉬르 본인은 언어는 실체가 아니다라고 말했죠.

 

그럼 시니피앙과 시니피에의 결합은 어떻게 이뤄질까요? 앞에서 계속 우연이라고 말했지만 소쉬르는 그 ‘우연’이 어떻게 작동했는지도 설명을 남겼습니다. 첫째, 상대적 관계입니다. 셜록 홈즈 시리즈를 읽다보면 유명한 말이 나오죠. ‘불가능을 제외하고 남은 것은 아무리 믿을 수 없어도 진실이다.’ 소쉬르의 주장도 이와 마찬가지에요. 책은 책상이 아니고, 의자가 아니고, 하늘이 아니니까 책이라는 시니피앙이 정보 전달 장치의 시니피에와 짝을 이룬 거죠. 둘째, 발음의 차이입니다. 책은 창도, 총도, 천도 아니에요. 그러니 책이라고 말하면 모두 책이라고 알아듣죠. 다른 단어와 명백히 구분되는 발음의 차이로 인해 사람들이 어떤 시니피앙을 말하면 다들 무슨 시니피에인지 이해하는 겁니다.”

 

여기까지 말한 리마토르는 잠시 입을 닫았다. 다시금 하르페이아를 그윽한 눈길로 천천히 훑은 리마토르는 말하고자 했던 바를 꺼내들었다.

 

“소쉬르는 철학사에 아주 큰 획을 그었어요. 근대 이후 인간의 이성이 곧 세계를 통제한다는 관념을 넘어, 세계 구조가 인간을 역으로 옭아맨다는 새로운 관념을 제시한 거죠. 특히 그 대상이 언어라는 점에서 소쉬르의 구조는 더 뜨겁게 다가옵니다. 우리의 삶을 가득 채우고 있는 필수적인 대상인 언어가 주체의 사유를 위한 도구가 아니라, 주체의 판단과 행위를 통제하는 무의식적 구조라니. 우리가 언어를 사용하는 걸까요, 언어가 우리를 사용하는 걸까요?

 

제가 처음에 하르페이아에게 꺼냈던 말이 이거에요. 어제 하르페이아는 제게 찾아와서 사랑받고 싶다고 말했죠. 과연 사랑으로 표현되는 감정이 하르페이아가 자의적으로 가진 걸까요, 아니면 소쉬르가 말한 대로 무의식적인 구조에 사랑이라는 표현을 말하게 된 걸까요?”

 

리마토르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알아차린 하르페이아는 숨이 멎는 듯했다. 그녀가 그에게 말했던 사랑이라는 감정이 진실한 것이 아니라 구조적으로 조작되었다는 질문은 그녀의 사랑을 뿌리부터 부정했기 때문이었다. 그의 말에 하르페이아는 발끈하며 솟아오르는 감정을 참지 않고 표현했다. 꽤나 이례적인 일이었다.

 

“교수님, 말씀이 지나치시네요. 제가 교수님께 느끼는 연정이 전부 거짓이라는 주장은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제가 언제 그 감정이 다 거짓이라고 했나요?”

 

리마토르는 평소와 같은 말투로 그녀의 말을 받아쳤다. 일견 능글맞아 보이는 태도였지만 하르페이아는 리마토르가 평소와는 결이 많이 다름을 알 수 있었다. 리마토르의 눈에는 언어로 명확히 표현할 수 없는 의지가 살아 번들거리고 있었다.

 

“소쉬르의 주장을 따르면 하르페이아의 감정은 더더욱 거짓이 아니죠. 진실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게 무슨 말이에요?”

 

“인간의 감정은 호르몬이 작용한 결과입니다. 제가 의학자가 아니라서 정확히 알지는 못하지만, 적어도 세로토닌이 작용하면 상쾌한 감정을 느낄 수 있다는 정도는 알죠. 인위적으로 세로토닌을 주사해도 투약자는 상쾌한 감정을 느낄 겁니다. 그럼 이 사람의 감정은 거짓된 건가요?

 

그렇지 않아요. 세로토닌이 자체적으로 분비된 건지, 외부에서 주사된 건지의 차이를 빼면 동일한 감정이죠. 제가 하르페이아에게 말하고 싶은 것도 이와 동일해요. 하르페이아가 제게 느끼는 감정이 사랑이라면, 그건 진실이에요. 다만 그 감정이 오로지 하르페이아의 내면에서 부여되었는지 아니면 언어 구조 속에서 그 감정에 ‘사랑’이라는 기표를 부여했는지 묻고 싶은 거죠.

 

하르페이아, 그 감정의 기의에 ‘사랑’이라는 기표를 부여할 필연적인 근거가 있나요?”

 

정곡을 찌르는 리마토르의 말에 하르페이아는 답을 하지 못했다. 여태까지 들은 소쉬르의 주장대로라면 그녀 자신이 느낀 감정과 ‘사랑’이라 명명한 것 사이에는 그 어떤 상관관계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리마토르의 말을 즉각 반박하지는 못했지만 하르페이아는 그래도 머리를 굴려 자신의 주장을 구성했다.

 

“소쉬르의 말에서 필연적인 근거를 찾을 수 있죠. 제가 느끼는 이 감정은 혐오도, 증오도, 열패감도 아니에요. 맞지 않는 답을 제외하고 남은 선지에 동그라미를 친 결과가 사랑이죠.”

 

“글쎄요, 그 말을 달리 말하면 하르페이아가 느끼는 감정이 부정적인 감정이 아니라는 보장 밖에 안 되죠. 사랑, 이 경우에는 남녀 간의 에로스에 해당하는 감정은 그 기원이 아주 다양해요. 의존, 동경, 존경, 애증. 아주 다양한 형태에서 에로스를 끌어낼 수 있습니다. 하르페이아가 제게 느끼는 감정도 이런 에로스의 기원 중 하나가 아닌가요?”

 

이번에도 리마토르의 주장은 깔끔했다. 하르페이아도 오랜 독서로 다져진 논리력에 기초해 철학을 전문적으로 공부한 베테랑이었지만, 험난한 멸망 직전의 대학원 생활을 헤치고 박사 학위를 받은 교수의 기량에는 여전히 미치지 못했다. 그녀가 답을 하지 못하자 리마토르는 자신이 우세를 점했다고 판단했다. 여태까지 이어진 사랑의 줄다리기 사이에서 자신이 가고자 한 길을 택한 그는 확실히 끝을 내기 위해 하르페이아의 심리를 빠르게 분석했다.

 

‘하르페이아가 내게 느끼는 감정은 사랑. 하지만 이 감정을 내가 받을 수는 없어. 하르페이아에게는 미안하지만 내가 이 감정에 대해 명백히 선을 그으면서도 어제처럼 하르페이아가 감정에 휘둘리지 않게 막는 설명을 제시 해야겠지.

 

한 번 생각해보자. 하르페이아가 그 감정을 사랑이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뭘까? 실용주의를 설명했던 날에 내게 한 고백을 보면 사령관을 향한 감정을 투영하고 있다고 볼 수도 있고, 자신을 이해해주는 이가 있다는 호감을 연정으로 받아들인 걸 수도 있지. 그렇지만 어느 쪽이든 사랑으로 볼 수 있어.

 

그럼 하르페이아가 갑자기 감정에 휘둘리게 된 이유는 뭐지? 그래, 찌라시 사건이 기점이었지. 그때 스프리건의 왜곡 보도에 자신이 출연해서 날 엄청난 쓰레기로 만든 걸 여전히 부담으로 받아들이고 있을 거야. 절대 하르페이아가 의도한 결과는 아니겠지만 자신의 행동이 사랑으로 명명한 감정의 대상인 나를 공격하는 결과로 이어졌다는 사실은 스스로 책임감을 느끼기 충분했겠지. 사령관이 발신자를 나로 위장해서 보냈던 아우로라의 케이크가 죄책감을 증폭하는 역할을 했을 거야.

 

이러면 답이 보여. 하르페이아는 자신의 죄책감을 덮고 싶어 내 사랑을 갈구한 거야. 사랑의 대상일지도, 아니면 그저 동경에 불과할지도 모르겠지만 어쨌든 호감을 품은 대상인 나를 자신의 손으로 공격하게 된 상황을 심하게 자책했겠지. 상황이 그러니 내가 자신을 밀어낼 거라고 판단할 가능성은 충분했고, 이는 곧 자신이 사랑을 품은 대상이 멀어지는 결과를 초래하기에 하르페이아는 어떤 수를 둬서라도 막고 싶었을 거야. 그 시점에서 ‘사랑받고 싶다’는 목적이 만들어져서 어제처럼 하르페이아가 감정에 휘둘리게 만들었겠지.

 

그럼 내가 할 일은 하나. 하르페이아의 감정이 사랑이라는 걸 부정하지 않고 하르페이아의 상처를 치료해줘야 해. 여기서 핵심은 나는 하르페이아를 밀어낼 생각이 추호도 없으며, 하르페이아가 내게 갖는 감정이 사랑이지만 그건 에로스와 결이 다른 감정이라고 하는 거지. 후자는 한 번 흔들어놓았으니 전자만 말하면 돼.’

 

생각을 마친 그는 하르페이아와 시선을 맞추었다. 자신이 한 말에 반발심을 느껴 눈 꼬리를 삼각형으로 만들고 자신을 바라보는 하르페이아에게 그는 부드러운 눈빛으로 답했다. 조금이나마 그녀의 반발심을 누그려뜨려야 자신의 이야기가 명확히 전달될 터였기에 그는 그녀의 심리적 장벽을 조절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고 다음 발화 순서를 조정했다. 상황에 맞추어 길을 팠으니 남은 건 실천뿐. 리마토르는 망설임 없이 말문을 열었다.

 

“하르페이아. 제가 궁극적으로 말하고 싶은 건 그 감정이 사랑이 아니라는 게 아니에요. 그 감정이 사랑인지 아닌지를 떠나서 보자는 거죠.”

 

“...그건 또 무슨 말이에요. 방금 전까지 제 사랑이 에로스가 아니라고 주장하시더니, 이제 와서는 그걸 뛰어넘어라?”

 

하르페이아는 대번에 불쾌감을 드러냈다. 리마토르는 그녀의 분노를 유연하게 받아내며 바로 다음 수를 두었다.

 

“감정이라는 기의에 어떤 기표를 붙이게 되었는지는 미시적인 수준이고, 제가 이야기하려는 핵심은 그런 구조의 유래입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구조주의 이야기를 꺼낼 이유가 없죠.

 

하르페이아. 하르페이아가 어떤 감정을 갖든, 저는 결코 하르페이아를 내치지 않을 거에요.”

 

리마토르는 눈가에서 부드러움을 지웠다. 빈자리에 강인함을 채워 넣은 그는 흔들림 없는 눈빛으로 하르페이아를 바라보며 어조에 강세를 넣었다. 그 수가 제대로 효과를 발할지는 그 자신도 알지 못했지만, 하르페이아는 그의 말에 가장 중요한 감정이 흔들렸다.

 

“갑자기 그런 말씀은 왜-”

 

“가장 중요한 거니까요. 제게 사랑받고 싶다는 말, 그건 사실 제가 하르페이아를 내치지 않겠다는 확인을 받고 싶어서 그랬던 거겠죠. 실용주의 이야기를 했던 날, 하르페이아는 제게 말했죠. 사령관님과 제 사이에서 누구에게 정확한 사랑을 가졌는지 모르겠고, 이렇게 고민하는 자신은 이기적인 년이라고요.

 

여기서 알 수 있었죠. 하르페이아의 사랑 아래에는 두려움이 깔려있다는 사실을요. 사령관님께도, 제게도 닿지 못하는 어중간한 사랑은 양측 모두에게서 거부당하겠죠. 그 점이 두려워서 그 날 제게 고백을 했지만 저는 하르페이아의 마음을 밀어냈었죠. 아마 그때 하르페이아는 대강 감정 정리를 했겠지만, 스프리건이 벌인 찌라시 사건 때 연루되면서 제게 부채의식을 가졌을 거에요. 이 부채의식은 제가 하르페이아를 내칠 거라는 불안감을 만들었고, 그렇지 않겠다는 인정을 받고 싶게 하르페이아를 부추겼을 거에요. 그래서 하르페이아는 구조 속에서 불안이라는 기의에 사랑이라는 기표를 결합하고 제게 사랑받고 싶다는 말을 했겠죠.

 

사랑이라는 기표 때문에 칸도, 하르페이아도 모두 상처받았죠. 저는 두 사람 다 다치지 않기를 바라기에 이 문제를 오늘 하르페이아에게 거론한 거에요. 그리고 지금, 그 감정에 제가 확실히 답을 해줄게요.

 

저는 하르페이아를 미워하지도, 버리지도 않을 거에요. 절대로, 반드시, 무슨 일이 있더라도.”

 

리마토르는 하르페이아의 눈을 보며 또박또박 말했다. 아까보다 거리를 좁혀 그녀의 얼굴이 그의 시야를 가득 메울 정도로 가까운 거리에서 그는 자신이 하고픈 말을 가감 없이 그녀에게 전달했다. 그의 말에 하르페이아는 여태까지 잡아온 갈피가 산산이 흩어지는 걸 느꼈다. 여지껏 자신이 사랑이라고 말했지만 사실은 리마토르에게 입을 맞춘 날 작별을 고했던 감정을, 그 감정을 대신해 자신을 흔든 구조가 된 감정이 모두 명백해졌다. 

 

“.....”

 

눈물 한 줄기가 그녀의 감정을 가르고 내려갔다. 불안을 덮기 위해 붙여진 사랑의 이름이 두 동강나며 그녀가 사랑이라 믿은 감정 때문에 피해를 본 이들이 떠올랐다. 그 사람 중 한 명이 자신이 한때 사랑을, 여전히 동경을 갖고 있으며 바로 지금 그녀의 눈앞에 있다는 사실이 그녀에게 유예된 속죄를 부여했다.

 

“흐끕.... ㄱ, 교, 교수님... ㅈ, 죄... 죄송해요....!”

 

눈물이 흘렀다. 어쩌면 자신의 이기심이 그를 막고 있었다는 생각이 사실로 밝혀지자 그녀는 자신이 저지른 이기심의 죄를 직시하고 그에게 눈물을 터뜨렸다. 말하지 않아도 그녀가 지금 어떤 기분일지 이해한 리마토르는 그녀의 어깨를 토닥여주며 위로했다.

 

“괜찮아요. 이제 알았으니까.”

 

“교수, 님... 흐그윽....”

 

리마토르는 하르페이아를 토닥이는 손에 힘을 더했다. 그녀의 떨림이 멎을 때까지 그는 한참동안 그녀를 토닥였다. 더 이상 하르페이아도, 칸도 상처받지 않기를 바란 자신의 뜻이 이루어졌다는 생각에 그는 더욱 감정의 구조에 빠진 하르페이아를 위로하는 데 힘을 쏟았다.

 

“괜찮아요.”

 

꼬였던 고르디우스의 매듭은 마침내 길을 찾아 줄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묵혀있던 문제 하나를 해결한 그는 하르페이아에게 위로의 말을 건네려했다. 그 순간, 풀린 매듭 뒤에 감추어져있던 또 다른 매듭이 모습을 드러냈다. 더욱 단단하고 복잡해서 훨씬 풀기 어려운 매듭은 극지의 빙하보다도 차디찬 목소리로 리마토르에게 문제를 냈다.

 


“둘이 지금 뭐하는 거야.”

 


자신을 부르는 아주 익숙한 미성에 리마토르는 섬뜩함을 느끼며 바로 몸을 돌렸다. 사랑의 줄다리기에서 그가 손을 들어주고자 한 하르페이아의 상대방이 그를 찾아왔다는 사실은 하등 문제될 것이 없었다. 하지만 리마토르는 상황이 만든 구조가 사실을 지배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고, 안타깝게도 지금 그가 처한 상황도 예외는 아니었다.

 

“당신, 대답해.”

 

칸은 아까보다 더 냉랭한 목소리로 그를 바라보며 답을 요구했다. 그녀의 눈동자가 공허하다 못해 블랙홀처럼 자신의 존재를 집어삼키려 한다는 인상을 받은 리마토르는 일순간 말문이 막혀 제대로 답하지 못했다. 그런 그의 모습이 마음에 안 들었는지, 아니면 참고 있던 그녀의 역린을 건드린 건지 칸은 연구실을 폭파시키고도 남을 목소리로 그에게 소리를 질렀다.

 




“대체 왜 둘이 껴안고 있는 거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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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전에 예고했던 구조주의 언어 철학자 소쉬르가 나왔네. 볼드체에 알록달록한 글자, 1만자가 넘는 분량을 보니 이제야 초심을 되찾은 거 같아.

사실 66편부터 나온 하르페이아의 감정이 불안정하다는 건 76편에서 한 번 더 복선으로 언급되었지. 그걸 회수했는데 자연스럽게 되었나 평을 주길 부탁할게.


자... 이제 하르페이아의 감정이 해결되었으니 다음 편부터는 칸의 감정을 해결해봐야지. 미리 예고하자면, 다음 편에서 리마토르가 납치당할 예정이야. 극단으로 치닫는 사랑의 감정을 리마토르가 해결할 수 있을까? 얀데레가 된 칸 묘사를 상세히 해보고 싶은데 잘 되려나 모르겠네.



모두 부족한 글 읽어줘서 고맙다. 날씨가 추워지는 데 이어 눈까지 오니 다들 건강 조심하길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