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허나 걱정 마세요. 전 용살자의 곁에서 그대의 힘이 되어 적들을 주살 할 수 있답니다."


처음 얼굴을 마주하며 건넨 질문에 즉각 응답하는 블라인드 프린세스. 아무래도 현 상황이 상황인 만큼, 그녀로써도 자신의 힘을 어필하고 싶은 모양이었다. 자신에게 각인된 사명을 위하여 스스로의 눈을 희생해 눈이 멀었다는 설정 때문일까.


담담한 어조로 말하는 그녀에게서 무한한 이타심이 느껴졌다. '그저 설정일 뿐이다.' '모두 연기일 뿐이다.' 수많은 평가가 있겠지만, 적어도 눈 앞의 그녀에게서 느껴지는 분위기란 성녀 그 자체의 따스함이 실려오고 있었다.


"너무 딱딱하게 생각할 필요 없어."

"그렇지만... 용살자여..."


살며시 웃어주며 그저 형식적인 면담일 뿐임을 재차 그녀에게 강조했다. 어색하다는 듯 말끝을 흐리는 그녀를 보면, 과연 사이클롭스 프린세스의 자매기 답게 생김새는 매우 닮아 있었지만, 성격은 정 반대인 모양이었다. 나긋나긋하고 차분한 어조와 중2병 같은 대사를 하면서도 차분히 들리는 그녀의 음색은 확실히 사이클롭스 프린세스와는 미묘한 거리감이 느껴졌으니까.


'역시 농담으로 분위기를 좀 풀어야...'


"하핫! 그보다 가슴 정말 크네."

"가, 가슴..?"

"아..."


자연스럽게 풍부한 가슴에 꽂혀있던 시선 때문일까, 농담이랍시고 내뱉은 말은 성희롱의 의도가 다분한 말이었다. 그러나 무어라 해명의 말을 내뱉기도 전에 블라인드 프린세스는 얼굴을 붉히며 낮은 목소리로 타박 하듯이 잔소리를 하기 시작했다.


"용살자여, 그대도 남성이니 욕망을 품는 것은 당연해요."

"아, 그러니까..."

"괜찮습니다. 욕망에 현혹되어 타락하는 것 보다는, 욕망을 솔직하게 품고 해소하며 나아가는 것이 그대의 의무... 그리고... 그... 이, 인류의 재건... 작업을 해야 한다고 들었어요. 전, 용살자와의 아이라면... 싫지 않습니다."


오늘 처음 면담하는, 그것도 초면인 아름다운 여성에게서 2세 계획을 수긍하는 말을 듣고 있으려니 자연스레 군침이 삼켜졌다. 그리고 목울대가 울렁이는 소리가 귓가까지 울려 퍼지는 것 같은 우렁찬 반응에 블라인드 프린세스는 입가를 가리고 작게 웃기 시작했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그녀의 긴장을 풀어주고자 했던 처음의 의도대로, 드디어 그녀의 차분하고 아름다운 미소를 볼 수 있었다.


"그래도 너는 참 적극적이네, 눈으로 보지 못하는 상대에게 몸을 허락하는 것은 역시 껄끄럽지 않아?"

"용살자여, 내 사명을 완수하는 것에 육신의 눈이 필요 없었던 것처럼, 이성을 판단하는 것에 눈으로 보는 것은 중요하지 않아요."

"에이~ 그래도 이왕이면 미남이면 좋잖아."


피식 웃으며 그녀의 면담 서류에 '문제 없음' 체크를 하며 대답을 들려주자, 블라인드 프린세스는 어느새 내 곁으로 다가와 머리를 끌어안고 쓰다듬어 주면서 자비로운 음색으로 말을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용살자의 외모가 어떠하던... 저, 블라인드 프린세스에게 용살자는 당신 한 분 뿐이에요. 사랑의 힘으로 각성한 빛의 성녀로써 당신의 강대한 적에 맞서, 당신의 곁에서 이 한 목숨 모두를 불태워 당신의 나아갈 길을 밝히는 것이 제 사명이랍니다. 그러니 걱정 마세요."

"블라인드 프린세스..."


스스로에 대한 자기 평가가 지나치게 낮은 나에게, 그녀의 따뜻한 응원과 격려의 말은 코끝이 시큰거리는 감동을 주었다. 벅차오르는 감격에 젖어 블라인드 프린세스의 허리에 손을 감고 그녀의 가슴에 얼굴을 파묻으며 훈훈한 온기를 느끼고 있을 때, 그녀가 내 얼굴을 쓰다듬으며 살며시 입을 맞추었다.


"다시 한번, 분골쇄신의 각오로 당신을 돕겠어요."

"정말 고마워. 내게 큰 힘이 되어줘서."

"아, 그리고 용살자여."

"응?"


살며시 거리를 두고 환하게 웃는 그녀의 모습은 가히 성녀와도 같았다. 아마 여신이 있다면 저런 형상이지 않았을까 하는 고민이 잠시 스쳐갈 정도로, 그녀는 눈부시게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외모에 자신이 없으셔도 괜찮답니다."

"아... 뭐, 확실히."

"용살자, 그대의 뇌파는 그나마 섹시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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