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념이 가득 담긴 깊은 한숨을 짧게 내뱉으며 잠시 망설이던 사이클롭스 프린세스는, 그녀 답지 않은 머뭇거리는 어투로 먼저 말을 건넸다. 평소라면 좀 더 당당한 자세로 '권속이여! 그대에게 하명할 것이 있노라!' 라고 했을 것인데, 오늘은 왠지 축 처진 그녀의 음성이 마음에 걸려왔다.


"그대와... 상담하고 싶은 것이 있는데..."


우물쭈물 거리는 몸짓과, 금방 이라도 눈물을 터트릴 것 같이 흔들리는 눈동자. 무언가 심각한 문제라도 발생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서둘러 그녀의 요청에 응대했다.


"응, 괜찮아! 나로 괜찮다면... 근데 전문 상담 인력이 있는데 그쪽이 괜찮지 않겠어?"

"그, 그게... 사실 그대가 아니라면 할 수 없는 이야기라서..."

"뭐? 내가 아니면... 할 수 없어?"


뜻 밖의 말에 긴장감이 몰려왔지만, 받아들이기로 한 이상 솔직하게 응대하는 것이 정성일 터. 이제 죽이 되나 밥이 되나 응대하는 수 말고는 없었다. 그런 나름대로의 각오를 다지며 심호흡을 짧게 내뱉고, 진조의 공주 앞에 장난스럽게 예의를 차리며 경직된 분위기를 조금이나마 환기 시켰다.


"그대의 권속에게 얼마든지 하명 하시지요, 진조의 공주이시여."

"푸훗..! 고마워, 아니... 고맙다, 권속이여!"


그녀의 손등에 살며시 입을 맞추며 너스레를 떤 것이 주효했을까. 드디어 웃는 낯으로 돌아온 진조의 공주는 평소의 당당한 태도로 돌아와 있었다. 언제나 보여주는 저 당당한 모습을 마음에 품게 된 것이기에, 그녀의 저 환한 미소와 자신감을 지켜주는 것은 그녀의 권속으로써 응당 해내야 할 의무.


그렇기에 그녀 역시 나에게 찾아와 상담을 요청하는 것이리라.


"여기, 항상 즐기시던 초코라떼 입니다."

"어머, 센스있네."


우아한 손짓으로 내밀어진 머그잔을 받아 든 사이클롭스 프린세스는 자연스럽게 응대 용 소파에 몸을 뉘우며 다리를 꼬고 앉았다. 그러고는 은은한 미소를 지으며 머그잔에서 올라오는 달콤함이 가득 섞인 냄새를 즐기고, 유려한 손놀림으로 살며시 초코라떼를 저으며 입을 열었다.


"권속이여, 그대는 짐이 이렇게 불쑥 찾아오는 것이 귀찮고 싫지 않느냐?"

"아니, 오히려 좋은데."

"뭣..."


생각지도 못한 즉답이 나왔기에 말문이 막힌 듯 보이는 프린세스였지만, 그럼에도 거짓을 말하는 것은 아니었다. 좋아하는 대상과 단 둘의 시간을 보내는 것에 싫어할 남성이 있느냐고 생각해 보면, 역시 그렇지 않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하물며 이렇게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행위는, 둘의 감정을 공유하고 마음을 나누는 행위라는 나름의 확신이 있었기에 밤중에 몸을 섞는 것에 뒤지지 않을 정도로 좋아하는, 일종의 '취미'였다. 무엇보다 대화를 통해 서로에게 몰랐던 점을 알아갈 수 있다는 사실은 더욱 큰 즐거움이 되어 주기도 했으니까 말이다.


'과연... 권속은 마음이 넓구나...' 라며 작게 중얼거리는 프린세스를 보며, 이번엔 나로부터 그녀를 향해 질문을 던졌다.


"왜 내가 귀찮아 할 것이라 생각했어?"

"그, 그건... 궈, 권속의 취향이..."

"내 취향?"

"그... 권속의 취향이... 키가 크고... 가, 가슴이... 큰... 그런 여자일 것이라 생각해서..."


얼굴을 잔뜩 붉힌 프린세스가 결국 창피함을 이겨내지 못하고 초코라떼를 향해 고개를 처박았다. 그리고 그것을 기점으로 뿜어져 나오려 하는 웃음을, 나는 허벅지를 꼬집으며 초인적인 인내력을 발휘해 집어 삼켰다. 난데없이 내 취향에 대한 그녀의 고찰이 웃기긴 했으나, 왜 그녀가 저런 결론에 도달했는지는 조금만 생각해 보면 알 수 있었다.


'블라인드 프린세스가 신경 쓰였던 모양이네.'


그렇다. 이번에 오르카 호를 향해 신호를 보내온 블라인드 프린세스가 신경이 쓰여 저런 질문을 해 온 것이겠지. 대략적인 프로필을 봤을 때, 확실히 블라인드 프린세스는 사이클롭스 프린세스와 전혀 상반되는 스타일 이었다.


'일단 키가 크지.'


그러나 애석하게도 사이클롭스 프린세스의 신장은... 155cm라는 평범한 사이즈다.


'그리고 가슴은... 너무 잔인하군.'


나이트 앤젤이 들었다면 필시 분노의 철권이 내리 꽂힐 결론이지만, 아쉽게도 블라인드 프린세스의 가슴 사이즈는 '나이트 앤젤 보다 조금 더 큰 가슴'인 사이클롭스 프린세스의 가슴 사이즈를 아득히 초월하는 사이즈 였다.


'....미안하다, 그건 닥터도 불가능하다고 그러더라.'


이 장소에 없는 'N모씨' 에게 애도의 마음을 품으며, 나는 다시금 침울해진 사이클롭스 프린세스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걱정 마, 누가 뭐래도 우리가 선혈의 맹세를 맺은 사실은 영원히 변치 않을 것이니."

"읏...! 무드 없어!"

"하핫! 앞으로 누가 오더라도 우리의 맹세는 변치 않을 거야."


말이 좋아 선혈의 맹세였지, 프린세스와 보낸 첫날 밤의 기억은 그녀에겐 아름답기만 한 기억이 아닌 모양이다. 지나치게 흐트러져 쾌락을 탐했다는 사실에 한동안 말만 나와도 당황할 정도였으니, 이 이상 옛날의 추억을 논하는 것은 그만 두어야 할 타이밍일지도 모른다.


"직설적으로 말해서, 내 취향은 블라인드 프린세스 보다는... 음 구태여 말하자면 너와 같은 스타일이니까."

"....그거 칭찬하는 것이냐?"

"물론!"

"하아~ 그렇게 확답을 하다니... 뭐, 권속을 의심하는 행위는... 역시 모두를 이끌 짐이 보일 태도는 아니겠지."


내심 어쩔 수 없다는 듯 말하는 그녀였지만, 그녀의 표정에선 숨기지 못할 기쁨의 감정이 넘실거리며 미소의 형태로 발현되고 있었다.


"그럼, 권속이여! 짐의 고민을 멋지게 해결해 주었으니 짐이 포상을 내리겠노라! 혹, 원하는 것이 있느냐?"


다시금 도도하고 고귀한, 진조의 공주로써 자신감을 회복한 그녀에게 나 역시 선물을 건네주었다.


"이런, 오늘은 나도 진조의 공주님께 선물이 있었는데... 영차, 자 이거!"

"이, 이건..."















"312 가야지."


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