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아하고 맑은 두 여성의 목소리가 귓가를 간지럽혔다. 하나는 아직 여리고 높은 하이톤을 간직한 어린 목소리였고, 하나는 정갈하고 낮은 숙녀의 목소리였으나 아무튼. 이런 아리따운 여성들 사이에 서서 팔짱을 끼워지고 있으니 충분히 멋진 상황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음... 저기..."


그러나 나는 엉거주춤한 자세로 서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처지였다.


"메! 리! 크! 리! 스! 마! 스!"


답변을 재촉하는 것처럼 다시금 귓가를 찔러오는 하이톤의 목소리. 물론 들리지 않는 것은 절대로 아니었다. 만약 오리진더스트로 강화된 육체가 아니었다면, 필시 독촉을 보내오는 이 두 여인네들 사이에 끼어 내 팔은 몸통과 생이별을 겪어야 했을 것이니까.


하이톤 목소리의 주인공, 사이클롭스 프린세스는 무엇이 마음에 들지 않은 것인지 오늘은 유독 끈질기게 팔에 매달렸고, 그 반대편에 선 정갈하고 낮은 목소리의 숙녀, 블라인드 프린세스는 질 수 없다는 듯 마찬가지로 팔을 강하게 잡아당기고 있었다.


"후우~"


결국 난처함이라는 감정이 섞인 짧은 한숨이 입 밖으로 나왔다. 결국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필요한 원만한 대책이란, 적당한 농담으로 싸늘하게 가라앉은 지금의 분위기를 쇄신하는 것이란 결론에 도달했다.


"음, 둘 다 메리 클리토리스?"


순식간에 얼어붙은 공기. 나름 참신한 개그라고 생각해 던진 회심의 카드가, 이렇게 싸늘한 반응으로 되돌아오니 가슴 한 구석이 아려왔다. 지금껏 호감 섞인 따뜻한 대응만 받아온 나로써는 견디기 힘든, 차갑고 매서운 눈초리가 동시에 향했다.


분명 눈이 있을 자리에 안대가 씌어진 블라인드 프린세스조차, 만약 안대가 없었다면 벌레를 보고 있는 것처럼 싸늘한 시선을 보내왔을 것이 틀림 없으리라. 그만큼 이 두 여인에게서 돌아온 반응은 냉담 그 자체였다.


"우, 웃기지 않았나? 아하하..."

"물론, 웃기지 않았느니라... 권속이여... 되려 정말 저급한 대응이었지."

"윽..."


날카롭게 파고드는 사이클롭스 프린세스의 대답을 들으며 내가 움츠러들자, 이것이 호감을 살 기회라는 것을 파악한 블라인드 프린세스는 어색하지만 가능한 최대로 미소를 지으며 화답해왔다.


"요, 용살자여... 저, 저는 웃겼습니다..."

"전혀 웃지 않는 것 같은데."

"그럴리가요. 웃었습니다."


가슴이 저며지는 것 같은 쥐어짠 대답에 결국 시선이 내리 깔렸다. 뭐지? 저 바지에 지린 사람을 불쌍하게 보는 것 같은 시선은.


그러거나 말거나, 내가 의기소침해지자 이번엔 사이클롭스 프린세스가 블라인드 프린세스를 향해 언성을 높였다.


"야! 너 때문에 괜히 권속이 더 기가 죽었잖아! 눈 가렸다고 눈에 뵈는 게 없어?"

"뭐? 이 쪼끄만 년이! 너 말 다했냐?"

"쪼끄만 년? 이 젖탱이만 큰 년이!"


아, 둘 다 컨셉 깨졌다.


일단은 작은 체구의 사이클롭스 프린세스야 그렇다 쳐도, 적어도 성숙한 숙녀의 외양을 한 블라인드 프린세스의 대응 역시 사이클롭스 프린세스의 영역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이렇게 보면 정말 죽이 잘 맞는 것이, 역시 둘은 자매라는 것을 실감하게 만들어 주고있다.


"후~ 아무튼! 오늘 권속은 나와 크리스마스를 보낼 예정이다. 그러니 네가 양보하거라."

"무슨 소리, 용살자께선 그대의 빈약한 신체에는 흥미 없답니다."


'빈약한 신체' 라는 말에 사이클롭스 프린세스가 미소를 띈 그 상태로 굳어버렸다. 겨우 이걸로 인신공격을 할 정도란 말인가? 라는 의구심이 머릿속에서 울려 퍼졌고, 진심으로 이 두 녀석에게 묻고 싶을 지경이었다. 둘 다, 그저 나한테 인사하러 온 거 아니었어? 무엇보다 난 빈약한 신체에도 충분히 발기가 가능한 정상적인 취향을 지닌 사내였지만, 지금 이것을 입 밖으로 꺼낸다면 필시 괴로운 사태가 터질 것이라 염려되어 그러지는 않았다.


으지직! 


결국 두 여인에게 우악스럽게 잡아 당겨지고 있는 팔뚝에서 옷감이 찢어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사실상 살려 만 달라 호소하는 것 같은 옷의 절규에, 나는 그 둘에게 어찌 대응을 해야 하나 고뇌하며 머리를 굴렸으나, 먼저 대응을 한 것은 어느새 정신을 차린 사이클롭스 프린세스였다.


"권속의 옷이 찢어지겠구나. 내가 수선해 주도록 하지."

"어? 어..."


자연스럽게 사이클롭스의 손에 붙들려 끌려가는 내 신체가, 이번엔 반대쪽에서 힘을 주기 시작한 블라인드에 의해 막혔다.


"아닙니다, 방금은 제가 힘을 줘서 옷이 손상된 것이니 제가 수선하는 것이 옳겠지요."

"눈도 안 보이는 주제에 무슨!"

"마음의 눈이라는 게 있지요."


결국 돌고 돌아서 원점이다. 도대체 가볍게 시작된 크리스마스 인사가, 왜 이런 진흙탕 싸움으로 번진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적어도 하나는 확실했다. 사령관으로써 내가 지금 이 사태를 중재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른 누구도 아니고, 오직 사령관만이 할 수 있는 일이기도 했고.


무엇보다 이대로 분쟁을 해결하지 못하고 옷이 최후를 맞이하면 그건 그것대로 곤란했다. 마침 요의가 슬슬 몰려오는 참이니 화장실을 구실로 삼아 도망가면 해결 될 일이라 생각했으니, 더는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미안, 난 일단 화장실을..."

"앗, 권속..!"

"용살자...!"

"으앗!"


으지직!


"꺄악~"


하지만 둘 다 옷을 놓을 타이밍을 가늠하지 못한 것인지, 아니면 보내주기 싫다는 약간의 어리광이 섞인 것인지, 아무튼 둘 다 옷을 끝까지 놓지 않았으며 결국 반쯤은 너덜너덜 해졌던 상의가 마지막 단말마를 남기고는 최후를 맞이했다. 그리고 그 관성에 힘입어 나는 앞으로 쏠려 경사가 진 복도로 몸이 붕 떠올라 날아갔고, 복도를 지나가던 다른 인원을 덮치고 말았다.


"아야야... 사, 사령관 님... 어?"

"으... 괜찮아? 안드바리?"


다행히 날아온 나를 몸으로 받아낸 안드바리는 크게 다친 곳은 없어 보였지만, 어째서인지 그녀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시선을 따라 시선을 내리고 나서야, 나는 바지만 입은 상태로 안드바리를 덮친 상황이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위험해! 이건 위험해!'


본능적인 경고음이 머릿속에 울려 퍼지며 필사적으로 변명을 쥐어 짜려고 할 때, 반대편에서 이 광경을 목도한 알비스가 큰 소리로 소리치며 레오나를 찾기 시작했다.


"레, 레오나 대장님!! 사, 사령관이! 사령관이 안드바리를!!!"

"머, 멈춰! 안돼!!!"


그리고 복도의 끝에서, 싸늘한 미소를 짓고 있는 북방의 암사자가 나에게 어금니를 드러냈다.


"좆 됐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