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편 모음집    


 

“뭐? 리마토르가 납치되었다고?”

 

“네, 납치범은 칸 대장입니다.”

 

리리스의 보고를 받은 사령관은 머리를 탁 짚었다.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져 리마토르를 찬찬히 살피려고 한 그의 계획이 번번이 무산되는 상황이 또 벌어지자 사령관은 도저히 하늘이 자신을 돕지 않는다는 생각에 어금니를 악물었다.

 

“지금 당장 공식 루트로 정보 풀어. 리마토르의 신병 확보를 최우선으로 둬야해.”

 

“주인님, 리마토르 교수를 이번 기회에 제거하는 건 어떨까요?”

 

“좋은 선택지가 아니야. 명분 없이 리마토르를 제거했다가는 역풍을 맞을 수밖에 없어. 리마토르를 적극적으로 지지하지는 않더라도 호감을 갖고 있는 인원은 많아.”

 

“그런 해충들은 싹 밀어버리면 되죠. 주인님의 안보가 곧 오르카의 안보인데, 저는 경호실장으로서 그런 안보 위협은 좌시할 수 없답니다.”

 

사령관이 자신의 제안을 거절하자 리리스는 노란 눈에서 생기를 지우며 평소와 같지만 심지가 굳은 목소리로 말했다. 사령관은 그녀의 눈에 담긴 존재는 오직 사령관 한 명뿐임을 잘 알려주는 말을 무디지만 견고하게 뒤집었다.

 

“리리스, 거시적인 안목에서 접근해. 네가 옆에서 지켜야하는 건 나 한 명일지라도, 앞에서 지켜야 하는 건 오르카호 전체야. 절대 나만 바라보다가 일을 그르치지 마.”

 

“...알겠어요.”

 

사령관의 지적이 마음에 안 들었던 리리스는 입을 삐죽 내밀었다. 하지만 사령관이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를 쓰다듬어주자 리리스는 언제 그랬냐는 듯 금방 고양이 같은 미소를 띠었다.

 

“다녀올게요.”

 

“잘 다녀와.”

 

리리스는 사령관의 쓰다듬을 받자마자 바로 벽을 차고 환풍구로 뛰어올라갔다. 한두 번 덜컹이는 소리가 난 걸 빼고 금세 작은 소리 하나도 없이 기척을 감춘 리리스의 솜씨에 사령관은 감탄하며 상황 파악을 위해 머리를 굴렸다.

 

‘칸이 리마토르를 납치했다고?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아. 조금 있으면 시티가드가 사건을 보고할 테니 사건의 표면을 만질 수는 있겠지만, 아무리 봐도 왜 납치했는지 납득할만한 동기가 안 보여. 분명 칸과 리마토르는 교제하고 있는 사이였고, 오르카호 내에서 몇 번이고 입방아에 오를 정도로 뜨거운 사이였지.

 

내가 리리스에게 지시해서 진행되었던 불륜 공작 이후에도 둘 사이에 어떤 분란이 생겼다는 보고는 받지 못했어. 둘 사이의 관계에 이상이 없었다고 판단했는데, 그 이후에 납치라는 극단적인 사건이 벌어질 정도로 관계가 치달았다면 어떤 식으로든 안에서 갈등이 생기기는 했나보네.

 

칸이 리마토르랑 교제함으로써 호드가 통째로 포섭되었다는 최악의 가정까지 해야 했는데, 오히려 이 일로 둘 사이의 관계를 끊어놓는 계기가 만들어질지도 모르겠군. 칸이 리마토르를 납치한 구체적인 이유는 모르지만 납치의 특성상 상대를 구류해야 자신에게 큰 이득이 생기니, 아마 리마토르를 잡아놓으려고 이 일을 벌인 가능성이 있어. 이렇게 되면 사랑의 균형이 깨졌다는 게 증명되니 리마토르가 칸을 피하면서 자연스레 둘은 멀어지겠지. 그러면 호드도 리마토르에게서 떨어져 나갈 거고.

 

이렇게 되면 나한테 더 유리해져. 칸이 직접 찾아와서 항의한 건도 그렇고 호드의 반발이 우려되어 신중해져야 했었는데, 우군이 사라진 리마토르를 찔러보는 건 여론 통제만 잘하면 손쉬운 일이지.’

 

오르카호의 수장인 자신과 일개 학자인 리마토르. 사령관은 극명한 전력의 차를 어떻게 이용해야할지 잘 알고 있었다. 리마토르의 과거를 기록한 닥터의 보고서를 읽은 이래 그는 리마토르를 향한 의심을 풀지 않았다. 리마토르의 선한 모습이 얼마든지 가장일 수 있고, 거짓된 모습에 안심한 자신이 긴장을 풀고 느슨해질 때 정변이 일어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었다. 리마토르의 위험성을 두고 몇 번이나 시뮬레이션을 돌려 결과를 본 적도 있었기에 사령관은 더더욱 이 문제를 신중히 대처해야만 했다.

 

“내가 죽는 한이 있더라도 난 내 뒤에 있는 모두를 지켜야만 해. 그게 내가 사령관을 하는 이유니까.”

 

사령관이라는 자신의 직함 석자에 달린 수많은 목숨의 무게를 느끼며 그는 지휘패드를 들었다. 현장에 도착한 시티가드가 리앤을 필두로 수사를 시작했다는 보고가 올라와 있었다.

 




 

“사랑해.”

 

“저도요.”

 

“사랑해.”

 

“....”

 

“대답 안 해?”

 

“아니에요. 잠깐 칸 얼굴 보느라 그랬어요.”

 

대답이 돌아오지 않은 것만으로 목소리의 온도를 확 낮추어 묻는 칸에게 적당히 둘러대면서 리마토르는 주변을 빠르게 살폈다. 오른팔이 부러진 시점에서 칸을 대화로 설득하기에는 이미 너무 먼 길을 왔다고 판단한 그는 현 상황에서 탈출한 뒤, 천천히 칸과 거리를 두고 다시 대화를 시도해야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칸이 그 예측을 하지 못한 것도 아니었기에 그녀는 리마토르를 죽부인처럼 끌어안고 누운 채 사랑한다는 문답을 반복했다. 여기서 실패했다가는 왼팔로 끝나지 않을 거라 생각하며 리마토르는 긴장의 끈을 조였다.

 

“보면 볼수록 매력적이에요. 제가 어떻게 이런 사람과 사귀고 있을까 궁금할 정도니까요.”

 

“치, 그런 아부 떨어도 소용없어.”

 

입은 아니라고 하면서도 그녀의 볼은 은은히 물들어 있었다. 리마토르의 어깨에 얼굴을 대고 비비던 칸은 그를 안은 팔에 힘을 주며 말했다.

 

“역시 베개는 팔베개지. 다른 사람도 아니고 정말 가까운 사람만 벨 수 있으니까. 게다가 이제 당신은 왼팔 밖에 못 쓸테니까 나만 당신의 팔을 벨 수 있어.

 

정말 좋아해, 당신이란 사람을 만나서 정말 행복해. 우리 앞으로도, 계속, 영원히 이렇게 안고 있자.”

 

“그래요. 저도 오른팔로 안아주고 싶어요.”

 

“우으... 팔 부러뜨린 건 미안해... 당신이 떠날까봐 그랬어...”

 

기능을 상실한 오른팔을 옆에 내려놓은 그가 뼈 있는 말을 던지자 칸은 의기소침해지더니 그의 품에 얼굴을 묻었다. 리마토르는 언제 냉혹했냐는 듯 유순해져서 쌕쌕 숨을 내쉬는 그녀를 만감이 교차하는 눈길로 바라보았다. 지금은 순둥이가 된 그녀를 안아주고 싶지만 한 팔은 부러져서, 다른 한 팔은 칸이 끌어안고 있어서 가만히 있는 게 그가 할 수 있는 일의 전부였다. 아까보다 많이 순해진 칸의 모습에서 리마토르는 어쩌면 실마리가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는 재빨리 칸의 심리를 분석하고자 머리를 굴렸다.

 

‘아까는 강압적으로 나오더니 지금은 강아지마냥 순해져있어. 대체 뭐 때문에 이런 거지?

 

생각해봐. 아까나 지금이나 칸이 움직이는 행동의 기저 원인은 사랑으로 동일해. 그렇지만 드러나는 양상이 공격적인 방법과 의존에 가까운 방법으로 달라. 같은 사랑임에도 드러나는 모습이 달라진 이유는 대체 뭐지? 칸이 했던 말을 되짚어 보자. 당신은 오로지 나만의 것이야, 당신을 뺏기고 싶지 않아, 당신이 나를 떠나는 게 두려워. 

 

흠... 불안과 독점욕이 보여. 순서를 따지면 불안에서 독점욕이 유래되었겠지. 내가 칸을 떠날 거라는 두려움이 있으니까 나를 붙잡고 싶을 테고, 나를 오직 칸만이 소유하고 싶은 감정이 들었다고 보는 게 타당해. 하르페이아를 기절할 정도로 폭행한 것도 불안-소유욕-분노라는 감정 변화가 있어서 그랬겠지. 내 생각이 맞다면 지금 칸이 유해진 것도 설명이 돼. 내가 자신의 통제에 들어오니까 근원에 있는 불안감이 어느 정도 해소가 되면서 감정이 안정된 거야.

 

좋아. 결과적으로는 나한테 잘 된 일이야. 칸의 마음을 살살 달래서 빈틈을 만들어보자. 여기서 다른 사람을 거론했다가는 다리나 목까지 부러질지도 모르니 철저히 칸에게만 초점을 맞추는 거야. 칸이 이렇게 된 데는 칸에게 충분한 신뢰를 주지 못한 내 책임도 있으니까 내가 반드시 칸의 마음을 잡아줘야 해.’

 

해야 할 일을 알자 번잡했던 생각이 모두 물러갔다. 리마토르는 자신의 목덜미 단추를 풀어헤치고 자신의 체취를 맡는 칸에게 보내는 시선의 온도를 높였다. 꼬리가 있었으면 분명 신나게 좌우로 흔들었을 것 같은 인상을 받으며 그는 그녀가 안고 있던 자신의 왼팔을 그녀의 품에서 뺐다. 그가 자신의 품에서 손을 빼자 순한 칸은 온데간데없고 팔을 부러뜨렸던 냉혹한 늑대가 자신의 반려를 빼앗긴 복수자의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왜 빼.”

 

“안아주려고요.”

 

물음표 대신 마침표로 끝난, 의문문의 탈을 쓴 명령문이 그를 향해 날카로운 날을 겨누었지만 리마토르는 왼팔로 그녀를 둘러 안으며 그녀의 말을 무디게 만들었다. 눈빛은 꺾였지만 칸이 여전히 불만족스러운 티를 내자 그는 팔을 올려 그녀를 마주볼 수 있도록 그녀의 몸을 올렸다.

 

자신의 위에 엎드린 칸과 시선이 교차하자 그는 말없이 물끄러미 그녀의 눈을 바라봤다. 칸은 무슨 말을 하고 싶었는지 입을 열려고 했지만, 그의 그윽한 시선을 느끼자 입을 닫았다. 한참이나 서로의 눈동자를 캔버스 삼아 자신의 모습을 담고, 자신의 모습 위에 서로의 얼굴을 덧칠한 그와 그녀는 무언가 이어지는 감정이 있음을 말없이도 알 수 있었다.

 

“칸.”

 

“왜 그래?”

 

칸의 말투는 마침표 위에 곡선을 하나 덧붙였다. 의문문으로 이름을 바꾼 명령문은 그녀가 듣고 싶은 말이 있음을 알려주었다. 리마토르는 그녀가 듣고 싶은 말을 해주기 위해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문을 열었다.

 

“사랑해요.”

 

“...나도.”

 

리마토르는 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치열한 전선의 최일선에 서는 일상을 보내면서도 비단결처럼 부드러운 갈색 머리카락이 손가락 사이사이로 흘러내려 그의 손을 감쌌다. 그의 손길이 기분이 좋았는지 칸은 볼을 붉히며 그의 품에 얼굴을 묻었다.

 

“이대로 계속 있고 싶다면 그래도 돼요. 중요한 건 칸의 마음이니까요.”

 

“....”

 

칸은 답하지 않았다. 그녀의 몸 사이로 전해지는 온기가 점점 따뜻해지는 걸 느끼자 리마토르는 칸이 어떤 감정 상태인지 어렵잖게 유추할 수 있었다. 그대로 한참동안 있던 칸은 그에게 질문을 내밀었다.

 

“정말 계속 이렇게 안아줄 거야?”

 

“물론이죠.”

 

“나한테만?”

 

“네.”

 

“....”

 

리마토르는 거침없이 답했다. 조금도 고민을 할 만한 내용이 아니었기에 그는 단 몇 초도 망설이지 않았다. 그와 반대로 칸은 다시 입을 닫았다.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던 그녀는 그와 눈을 맞추며 잘 벼려진 질문을 꺼내 들이밀었다.

 

“그럼 하르페이아한테는 왜 사랑한다고 한 거야?”

 

순간 소름이 리마토르의 온 몸을 덮쳤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서늘한 감각이 핥고 지나간 자리가 빳빳하게 서자 그는 입만큼은 녹이기 위해 감각을 집중했다. 다행히 혀는 소름이 돋지 않았기에 그는 바로 해명했다.

 

“사랑한다고 한 게 아니에요. 하르페이아에게 소쉬르 구조주의를 설명해주려고 처음 예시를 든 것뿐에요.”

 

“...많고 많은 예시 중에 왜 하필 예시가 사랑이야?”

 

“하르페이아가 저한테 느끼는 감정이 사랑이라고 해서 그랬어요. 그 감정이 사랑이 아니라고 반박해야 다시는 같은 일이 재발하지 않으니까요.”

 

칸은 그의 말을 듣더니 입을 꾹 다물었다. 그녀가 무슨 말을 하려다가 삼킨 것처럼 보이자 더욱 정확히 말해야 살 수 있다는 그의 경각심도 경보를 울렸다. 리마토르는 칸이 어떤 말을 꺼내기 전에 급히 말을 이었다.

 

“하르페이아의 감정이 사랑이 아니라는 걸 증명하기 위해서라도 에시가 사랑일 수밖에 없었어요. 절대 다른 마음을 먹은 게 아니에요.”

 

“그럼.”

 

칸은 두 글자로 답했다. 문장 간 호응이 매끄럽지는 않았지만 그녀가 자신의 말을 들어준 것 같자 리마토르는 속으로 성공을 외쳤다. 그러나 칸은 그의 생각을 산산조각 내며 입을 열었다. 입술에서 흘러내린 한 줄기 피가 턱을 따라 그의 셔츠 위에 방울방울 떨어지자 그는 사태가 심상치 않음을 직감했다. 칸은 두 글자로 끝낸 것 같았던 대답에 살을 붙여 그의 예상을 현실로 만들었다.

 

“그럼 왜 안아준 건데? 사랑한다는 게 한낱 예시에 지나지 않으면 그걸로 설명하고 끝나면 되잖아. 왜 하르페이아를 안아준 거야? 말해봐. 어서 말해보라고.”

 

칸의 눈은 어둠으로 가득 차 초점을 잡지 못하고 부들부들 떨렸다. 끝을 모르고 들어가는 그녀의 눈동자는 그의 사랑을 갈구하며 지금 그가 어떤 대답이라도 내놓길 바랐다. 리마토르가 그녀의 기세에 압도되어 말을 꺼내지 못하자 그녀는 바닥난 인내심을 어떻게든 끌고 왔다는 걸 알 수 있는 목소리로 그에게 최후 통첩을 날렸다.

 

“대답해. 왜 하르페이아를 안아줬냐고.”

 

“그것도 하르페이아의 생각을 돌리기 위해서였어요. 제 설명을 듣고 갑자기 울음을 터뜨리길래 마지막으로 쐐기를 박기 위해서-”

 

리마토르는 상황을 자세히 설명해가면서 칸을 납득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칸은 고개를 푹 숙이며 파르르 떨릴 정도로 주먹을 꽉 쥐었다. 자신이 무슨 말을 하더라도 그녀에게 신뢰를 얻을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리마토르는 자신이 이 상황을, 칸의 마음을 지나치게 얕봤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거짓말쟁이... 나만 사랑해준다는 것도 전부 다, 처음부터 열까지 거짓말이었어...”

 

“아니에요! 칸! 저는-”

 

“닥쳐!”

 

칸은 그의 손바닥으로 그의 입을 틀어막았다. 광대뼈가 으스러져라 힘을 주는 그녀의 팔이 엄청난 고통을 그에게 갖다 주었기에 리마토르는 다급히 고개를 좌우로 저으며 상황을 설명하려고 했다. 한 사람의 마음을 분석이라는 이름 아래 마음대로 판단하고 방향을 틀려고 했던 자신의 과오를 통렬히 체감하며 리마토르는 칸의 팔을 떼어내려고 했다. 그가 자신의 팔을 밀어내려고 시도하자 칸은 절망이 흘러넘쳐 완전히 침수된 자아를 말에 담았다.

 

“당신이 그랬지. 행복해질 용기를 가져보라고 말이야. 전장이 아니라 당신의 옆자리에서 행복을 꿈꾸었고, 총소리가 아니라 당신과의 대화 소리로 행복을 맛보려고 했어. 내 행복은 당신으로 시작해서 당신으로 구체화되는 거야.

 

그런데 왜 당신이 나를 떠나려고 해? 행복해질 용기를 주고 나서는 왜 떠나 버리냐고. 나는 이렇게 당신을 사랑해서 심장이 고장난 것처럼 빨리 뛰고, 하루 종일 당신 생각에 가득 찬 하루를 보내는데 왜 당신은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품에 안는 거야.”

 

분노의 압력을 참지 못하고 찢어진 그녀의 입술에서 흐르는 피는 그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먼저 수놓아진 그녀의 피가 적갈색으로 굳어가자 그녀의 감정도 분노에서 다른 결을 보였다. 칸은 리마토르를 바라보며 입꼬리를 올렸다. 기괴하게 늘어난 미소에 담긴 감정이 리마토르를 친친 감아 그녀에게서 떨어질 수 없게 끌어당겼다.

 

“이제 다 필요 없어. 당신을 가질 수 있다면 세상 모두를 버려도 좋아. 당신이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면 사랑하게 만들 거야. 내가 없으면 살 수 없는 몸으로 만들 거야. 그게 사랑이니까.”

 

“읍읍!”

 

칸이 자제력을 잃을 것 같자 리마토르는 제발 그녀가 선을 넘지 않기를 애원했다. 하지만 그의 애타는 외침은 그녀의 손바닥을 넘지 못했다. 칸은 주머니에서 조그만 병을 꺼내더니 병 안의 액체를 남김없이 입에 털어 넣었다. 그러고는 그의 입을 막고 있던 손바닥을 떼고 자신의 입을 겹쳤다. 머금고 있던 액체가 입에서 입으로 그녀에게서 그에게 전해졌다. 리마토르는 반항했지만 칸은 저항을 일체 용납하지 않았다. 자신의 혀로 그의 혀를 휘감아 누른 그녀는 그가 한 방울도 남기지 않고 액체를 다 마셨다고 판단하자 야릇한 미소를 걸고 그에게 말했다.

 

“키스마크보다 훨씬 더 강력한 증거를 만들어줄게. 당신은 내 거고, 나는 당신 거라는 아주 자명한 증거가 있으면 더 이상 하르페이아 같은 해충이 달라 붙지 못하겠지.

 

당신도 오직 나만을 보게 될 거야. 그러니까 이성은 잊고 나를 안아줘. 최음제로도 충분하겠지만, 오늘은 당신의 이성을 버리고 철저히 감정에 목말라하면 돼.”

 

“잠깐만요, 방금 그거-”

 

“쉿. 아직 안 끝났어.”

 

칸은 탁한 눈동자로 그의 입을 누르며 그가 누운 곳 위로 손을 가져갔다. 그곳에서 나온 물건이 분간이 갈 정도로 빛을 받자 리마토르는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느낌을 받았다. 칸은 그가 과하게 저항하는 걸 알아차렸다는 신호로 간주하며 속삭였다.

 

“괜찮아. 당신이 동면 전에 해본 경험이 있으니까 잘 알 거 아니야. 매스 암페타민이 있으면 엄청난 쾌락이 몰려올 건데, 그 모든 쾌락을 나로 채워주겠어. 그러면 당신은 절대 날 벗어나지 못할 거야. 영원히.”

 

“그만! 그만해요! 그것만은 절대ㄹ- 끄아악!”

 

“선택권 준다고 한 적 없어.”

 

과거의 굴레에서 벗어나 간신히 찾은 현재의 평화를 악살박살내버릴 수도 있는 물건을 칸이 꺼내자 리마토르는 거칠게 저항했다. 칸은 부러진 그의 오른팔을 악력으로 움켜쥐어 그의 반항을 봉쇄하며 입으로 주사마개를 뽑았다.

 

“지금은 이래도 이거 한 방이면 나한테 고마워할 거야. 당신이라는 존재를 나한테, 나라는 존재를 당신한테 영원히 새기는 거니까.”

 

“끄으흐... 안 돼요, 칸. 제발 그것만은...!”

 

리마토르가 애처롭게 빌다시피했으나 칸은 싱긋 웃는 걸로 화답했다. 그의 정맥에 주사를 놓고 매스 암페타민 결정을 끌어올린 피로 녹이면서 칸은 그에게 선언했다.

 



“이제 영원히 서로를 잊을 수 없게 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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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이번 에피소드도 절정으로 치달았네. 앞으로 2편 정도면 얀데레 에피소드도 끝이 날 거야. 미리 예고를 하자면, 이번 에피소드를 통해 리마토르와 주요 등장인물들의 관계가 싹 재정립될 거야. 이 에피소드가 차후 전개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하나의 변곡점이 될 예정이야.


오늘도 부족한 글 읽어줘서 고맙다. 2022년도 다 가는데 다들 따뜻한 연말 보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