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모음집


39



AGS격납고에서 나온 두 사람은 말 없이 복도를 조용히 걷고 있었다.



......



사령관과 라붕이는 묵묵히 통로를 걸었다.



'...'



제대로 즐겨주었을까.

내가 오늘 너무 부담만 준 것은 아닐까.



"...라붕씨?"


"...아... 네. 사령관님."



멍하니 걷던 그를 조용히 불러보았다.



"그... 어땠어? 오늘 견학."


"..."


"라붕씨가 생각했던것 이상으로, 멋지고 신기한 로봇들이 참 많지? 나도 우리 로봇들은 봐도봐도 질리지가 않는단 말야~ 하하하!"


"아... 확실히."


"......"


"사령관님께서 말씀하신대로, 정말 진귀한 경험이었습니다. 이런 경험은 절대, 흔하게 할수 있는것이 아닐테니까요."



여전히 감정을 감추고서 무심히 말을 내뱉는 라붕이였으나, 사령관은 개의치 않고 미소지으며 대답했다.



"라붕씨."


"...네."


"아까, 걔네랑 한 약속... 잘 기억하고 있지?"


"...?!"



"약속" 이라는 단어에 저도 모르게 반응해버린 라붕이였으나, 사령관은 일부러 모른채 해주며 그 어깨에 손을 얹으며 말을 이어나갔다.



"그 녀석들도, 기대하고 있다는거아."


"기대... 말인가요? 무엇을..."


"그거야 당연히, 라붕씨와 다시 만나는것 말고 더 있겠어~?!"


"......"




나와, 만나는 것을...




"그러니까,"



사령관은 살짝 뜸을 들이다 입을 열었다.



"다음에도, 이곳에 오고싶으면 언제든지 와."


"......"


"나 뿐만이 아니라, AGS들, 그리고 기술팀 대원들도 라붕씨를 만나고 싶어하니까.

그러니, 사양하지말고 꼭 그렇게 해줬으면 해."


"사령관님..."


"......"



이제는, 이쯤에서 끊는게 좋을것같다.



"그럼, 난 이만 돌아가볼게. 밀린 일정이 있어서 말이야."


"아...! 네. 오늘 하루 정말 감사했습니다. 사령관님."


"...응. 기뻐해주니 다행이네."



예의바르게 고개숙이며 감사를 전하는 라붕이를 잠시 쳐다보던 사령관은 고개를 끄덕이며 조용히 미소지으며 먼저 자리를 비우기로 했다.



비록, 그의 얼굴에서 환한 미소를 끌어내는것은 이루지 못했으나, 그럼에도 오늘 하루는 충분히 가치가 있는 하루였다고, 사령관은 속으로 생각했다.



처음으로... 내 눈을 피하지 않고 나를 제대로 바라봐준 라붕씨를 다시 떠올리며, 다음엔 무엇을 해야할지 생각하며 자신의 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곳에서 처음으로 사귀게 된 첫번째 로봇 친구인 쉐이드를 떠올리던 라붕이는 복도의 벽에 기댄채 멍하니 허공을 쳐다보았다.


"또... 로봇이랑 이야기를 나눴네."


말로는 형용할 수 없는, 듬직한 형님과도 같으면서도 동시에 감성적 이면서도 믿음직한 모습을 보여준 알바트로스.

그리고... 상냥하게 내 손을 잡아준 알프레드.


생각지도 못한 녀석들이, 또 나에게 주었다.



"정말... 나에게 이런 일이 벌어질 거라고는, 한치도 예상하지 못했는데."


게임 내에서는 말할것도 없다.

문학글 내에서도, 개념글에서도, AGS가 두번째 인간하고 교류를 하는 문학은 제대로 본적 조차 없을뿐더러, 있다 해도 그렇게 의미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다음에 또... 보자고 했었지."


격납고를 나서기전, 알바트로스와 알프레드가 자신을 향해 해준 마지막 말.



"...언제든지, 기다리겠다니..."



언제 어느때든, 날 기다려 준다고 말했을때, 그 말을 들었을때 나도 모르게 발걸음을 멈추고 그 두 사람을 다시 쳐다보았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조금만 더... 이 녀석들이랑 있고 싶었다.


"하하하... 나 참... 어차피 갈 사람인데, 기다리겠다니."


쓸때없는 미련 생길까봐 괜히 그 때를 떠올렸나 싶기도 하지만, 그래도 싫지는 않았다.

한편으로는, 지키지도 못할 약속이 되어버릴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마음 한켠에서 죄책감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그래도, 약속은 약속이니까. 최소한, 그것만큼은 지키고 떠나자."


그 정도는 괜찮겠지.

아니, 충분히 허용 될것이다. 그 녀석들이 나에게 건네준 약속이니.


"미련남지 않도록, 마지막으로 얼굴 한번 보는것 정도라면..."


그렇게 다짐하며, 절대로 어기지 않겠다고 속으로 굳게 되새기며 발걸음을 옮겼다.










































...그래서, 화원에서 라붕이가 쓰러지자마자 바로 그... 관에다가... 눕혀서 의무대로 옮겼다고?


네! 제 방이 화원이랑 가까웠던게 천만 다행이였지 뭐에요~!


그러게요. 덕분에 라붕씨 몸에 부담이 가지않도록 신속하게 옮길수 있었겠네요!


.......



드라큐리나는 라붕이와 인사를 하기 위해 찾아갔던 그 날을 떠올려보았다.

































그갸아아아아아악!!!!!!!!!




에엥?!







타다다다다다다닷-



...???




아니... 쟤 갑자기 왜저러지...



(...스윽)





(라붕이의 침대를 관짝으로 바꿔놓는 중.)




........




(싱글)                  (벙글)




...니네 뭐하냐?


어머, 드라큐리나 양이군요!


드라큐리나 양도 라붕씨랑 인사하러 온거에요?


어... 그렇긴 한데...



도대체 어디서부터 태클을 걸어야...


너희들.. 지금 뭐하는거야? 


네? 그야... 라붕씨를 위해 만든 관을 설치하고 있죠~



...뭐?


그... 여기 라붕이 방 맞지?


네. 그런데요?


...근데, 남의 방에다가 그런건 왜 갖다놓는데?


네? 그야, 라붕씨를 위해서 만든거니까요.


밤새서 열심히 만들었답니다~~


.......



아니, 내 말은 그게 아니라...


너희들, 안 이상해?


에, 뭐가요?



....


그... 아까 나도 봤거든? 라붕이 쟤 도망가는거.


네! (해맑!)


.....쟤가, 왜 도망쳤을거라 생각하냐?


???

(어리)                 (둥절)



이것들이 진짜...


아~~


??


라붕씨는 원래 부끄러움이 많으신 성격이니까요~


아마 이곳에서의 생활이 아직 익숙하지가 않으셔서 낯을 많이 가리시는 걸거에요.

그러니까, 금방 적응하실수 있도록 저희가 도와드려야겠죠?


............



드라큐리나는 심호흡을 한번 하고서 다시 침착하게 입을 열었다.


그.... 너희는 있잖아.


네?

(^^)


.....그렇게 낯가리는 애 방에다가, 심지어 멀쩡한 침대 치워버리고 관짝을 갖다놓으면... 걔 입장에선 어떤 생각을 먼저 하겠냐?


어...네?



정말로 이해가 가질 않는다는 표정으로 드라큐리나를 바라보는 아자즈와 이터니티의 표정에 드라큐리나의 혈압 수치가 다시 한번 증가하고 있었다.


...관이라는게 어떤 용도인지는 알고 있는거지?


어머, 그야 물론이죠~ 제가 그쪽 전문인데, 그걸 모를리가요~



그걸 아는 녀석들이 이 난장판을.....


....다 알면서도 얘 방에다가 이런걸 갖다놓는거야?


그럼요!(뿌듯)


...............



드라큐리나는 이 두 바보들과 이 이상 대화를 이어나가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판단내렸다.


.....빼.......


네?












관 빼라고 이 새끼들아!!!!!!

























..........



하아아아아.....


어머, 드라큐리나 양? 갑자기 왜 그렇게 한숨을 쉬고계세요?


혹시 요즘 잠을 제대로 못주무셨나요? 

관 꺼내올까요?


아니... 난 괜찮ㅇ... 

잠깐, 왜 뜬금없이 관 타령을 하는건데!!!


피곤해 보이셔서....


피곤하면 관짝들어가냐!!!



왜 라붕이가 얘네를 보고 그렇게 오해하고 기겁하면서 도망갔는지...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라붕이의 심정이 뚜렷하게 이해가 갈것 같다.


하아.... 너희들 있잖아.


네?(^^)


..........



좋냐....


그.... 틈만나면 관짝 들이미는 그 버릇좀 어떻게 고치면 안돼겠어? 

니들은 왜 많고 많은 선물중에서 하필이면 관을 내미냐?! 진짜 누구 생매장 하고싶어서 안달난것도 아니고!!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이 녀석들의 센스는 도저히 이해할 만한것이 아니었기에 참담한 심정으로 물어보았다.


어머.... 생매장이라뇨. 평소에도 그런 흉흉한 생각만 하셨던거에요..?


드라큐리나 양은 의외로 엄청 과격하시네요...


........



진짜... 얘네는 때려도 무죄판결 받을 수 있지 않을까.


...라붕씨가, 아직 휩노스병을 극복하지 못한건 알고계시죠?


응? 어... 그야, 당연히 알지. 아직은 신체재건 준비가 덜 끝나서 그런거잖아? 근데 그게 왜?



갑자기 라붕이의 휩노스병에 대해서 이야기를 꺼내는 것에 이해가 가질 않는 드라큐리나는 의아하게 되물었다.


드라큐리나 양도 기본적인건 아시겠지만, 휩노스병의 발병과 증상, 그리고 진행 속도는 개개인 마다 매우 크나큰 차이를 보이곤 해요.


......


게다가 라붕씨는, 오래전부터 지상을 홀로 떠돌다가 겨우 이곳으로 오실수 있었던 분이에요.

그 말은 즉, 최초의 초기 증상의 발현일자를 알 수가 없다는 의미이기도 하죠.



닥터가 오르카의 모두에게 공유해준 라붕이의 신체 건강지표와 휩노스 발병 진도에 대한 자료를 다시 되내이던 이터니티는 차분하게 말을 이어나갔다.


초기라면, 저희 오르카에서 어떻게든 케어가 가능해요.

실제로, 라붕씨의 건강을 예의주시 하면서 상시 의무반이 대기하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중기 단계부터는, 예측을 할 수가 없어요.

어떤 새로운 증상이 나타날지, 얼마나 빠른 속도로 증상이 진행이 될지...

아까 말씀드린대로, 개개인마다 병의 진행도가 판이하게 차이가 나는만큼, 닥터 양과 아르망 양 조차도 섣부른 예측이 힘든 상황이니까요.


.......



이터니티는 어느새 생글거리던 미소는 접어둔채 진지한 표정으로 라붕이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저기.... 그건 어느정도 나도 전해들은게 있으니까 알고 있는 내용이기도 한데... 갑자기 그 얘기는 왜 하는거야?


....



처음 라붕이와 만난 날을 떠올리며, 이터니티는 다시 말을 이어나갔다.


이전에 저와 아자즈 양이랑 같이, 라붕씨를 처음 만나러 간 날에 대해서, 설명드린 적이 있었죠?


...응. 잠을 제대로 못자는것 같다고 너가 그랬었지?


네. 제가 간단하게나마 라붕씨의 안색을 살펴본 결과, 그건 단순한 불면증과는 차이가 있었어요.


......


평소 태연하게 행동하시는 라붕씨의 언행을 보면, 그 당시에는 아마 초기수준에 머물던 정도였을 거에요.

언제부터 라붕씨가 그런 상태였는지는 아마 본인께서도 자각을 하시기 힘들겠지만, 한가지 확실한건 차근차근 발병도가 진행되고 있다는것. 그게 저를 비롯한 오르카 의료진 분들의 결론이에요.



이전에 이터니티와 아자즈가 라붕이의 방에 방문했을때, 이터니티는 그의 안색을 천천히 살펴본 결과, 확실한 수면장애를 앓고 있었다는 것 하나만큼은 확신할 수 있었다.


저희가 왜, 라붕씨에게 관을 선물하는것에 심혈을 기울이는지, 그걸 알고 싶다고 하셨죠?


.....


정신적인 요쇼도 중요하지만, 안정적인 심리상태는 쾌적한 신체에서 우러나오는 법이에요.

아무리 정신을 강하게 붙잡아도, 몸이 버티지 못하면 그건 결국 의미없는 무리밖에 안돼니까요.



아자즈는 드라큐리나의 방에서 한창 작업중이던 관을 유심히 바라보며 말을 이어나갔다.


이 관에는, 제가 만든 신경 안정화 장치가 설치되어 있어요.


....!


휩노스병의 증상중 하나는, 자신이 제일 두려워하는 대상을 토대로 한 악몽... 제일 대표적인 증상중 하나죠.


제일 두려운 것에 대한...악몽....


그리고 그 악몽은, 단순한 꿈으로서 끝나는게 아니라 심리적, 육체적 영역에도 서서히 잠식해 나가는 질환, 단순히 질나쁜 꿈 따위로 치부해선 안될 병이에요.


즉, 잠을 자면 잘수록, 라붕씨는 그 횟수에 비례해서, "죽음"에 가까워 지고 있다는 의미에요.


...?! 주, 죽음이라니...!!


그렇기에, 보다 심혈을 기울여서 뇌파와 신경계를 안정화 시키는 파장을 발산하는 장치를 개발하고 있는거에요.

라붕씨가, 조금이라도 더 편안하게 주무실수 있도록,


아마, 라붕씨는 자각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겠지만, 라붕씨는 알게 모르게 꿈속에서 괴로워 하시고 있을 확률이 높아요.

저희는... 그걸 조금이라도 덜어드리고 싶어요.


너희들....



씁쓸한 표정으로 한창 만들던 관을 바라보는 두 사람을 쳐다보던 드라큐리나는 속으로 자신의 경솔함에 대해서 통렬한 죄책감을 느끼고 있었다.


'설마, 라붕이를 위해서 이렇게까지 열심히 노력하고 있었을 줄은...'



처음에는 그저 자신에게 하듯이 라붕이에게도 장난을 치는건가 싶어서 다시는 그러지 못하도록 따끔하게 한 소리 해주려고 했늗데...


'반성해야 하는 쪽은, 나였네... 이렇게 고생하는 애들 속마음도 모르고 혼낼 생각만 하다니...'



비록 자신은 이 두 녀석 만큼의 손재주와 능력은 없지만,.


'다음에... 토마토 쥬스랑 간식이라도 챙겨서, 라붕이 방에 찾아가보자.

제대로... 인사도 못했으니까.'



드라큐리나는 상냥하게 웃으면서 두 사람의 기운을 북돋아 주고자 하였다.


나참~~!


..?


그런 거였으면 진작에 말을 하지그랬어!

난 또, 너희가 장난치려고 그러는줄알고 괜히 놀랐잖아.


드라큐리나 양...


왜 너희가 관 모양에 그렇게 집착을 하나 싶었는데, 그런 속사정이 있었구나. 난 그런것도 모르고 너희들을....


네? 관 모양에 집착이라뇨?


.....응?



내가 뭐 잘못 말했나.


아니, 방금 너네가 그랬잖아. 라붕이의 수면 안정을 위해서 관을 만든거라면서?


......


굳이 관 모양을 고집한 이유가 그거 떄문이잖아? 라붕이 신체에 안정감을 주려는 목적으로...


아~ 아뇨?


......어?


굳이 관 모양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법은 없어요.

제일 중요한건, 물체 내부에 내장된 뇌파 안정화 기기니까요.


...그럼.... 관 모양을 고집하는건 왜.....


제가 관을 좋아하거든요~


.............


기왕 푹 주무시는거, 관 속에서 주무시는게 낫잖아요~!



이터니티는 다시 활짝 웃음꽃을 피우며 대답했다.


그.... 왜 관에서 자는게 낫다는건데..?


그야 재밌으니까요~~~!

(싱글)                  (벙글)


........



...아까 했던 말들 싹다 취소한다.




..........




..............




(^^)





...하아아아........



아무래도, 다음에 얘네가 라붕이 찾아갈때는... 

나도 꼭 옆에 붙어서 따라가야 할것 같다.






































나에게 다가오지 말란말이다아아아앗~~~!!!


거기 서!!! 이 도둑들~~~!!!



안드바리는 숨도 제대로 안쉬고 뜀박질하며 소리질렀다.


이 상습범들...!! 오늘은 절대로 그냥 못넘어가!!

잡히기만 해봐라!!!!


히이이이이익.....!!



그 어느때보다도 악에 받친 모습으로 뒤쫓아오는 분노한 안드바리의 모습에 LRL과 알비스는 순간 심장이 멎을뻔했다.


어, 어쩌지...! 안드바리가 오늘따라 더 화난것 같은데..!


너, 너무 겁먹을것 없느니라 하얀 야수여..!

짐의 뒤를 따라 오기만 하면...


잡히기만 해봐!!!


호에에엑~~~!!!



불과 3초만에 공포에 질린 LRL은 다시 정면을 주시하며 내달리기 시작했다.


으아아아~~!! 공주님..!! 이제 우리 어떡해~!!

이번에 잡히면 핵꿀밤으로는 안끝난다구...!!


그, 그러니까 내가 적당히 훔치랬잖아!!

니가 하도 욕심내서 창고에 있는 초코바 싹 다 거덜내니까 안드바리가 엄청 화났잖아!!


그거 우리 둘이서 같이 훔쳤거든요~!!!



두 꼬마는 코너 구석의 자판기 뒤편에 숨어 잠시 몸을 숨겼다.


허억...허억... 아, 아무튼! 중요한건 그게 아니야!

우선 안드바리로부터 도망쳐야해!!


숨을만한 곳이...

아...!



LRL은 눈을 번뜩이며 훌륭한 대안을 제시했다.


지금 당장 권속의 방으로 가는것이다!

권속의 등 뒤에 숨는다면, 분명 얻어맞지 않고 안전하게 넘어갈 수 있을거야!


에, 하지만...



알비스는 머뭇거리다 이내 손가락으로 잔뜩 분노한 표정으로 도둑들을 찾고있는 안드바리를 가리켰다.


사령관님 방은... 안드바리 뒤를 지나가야 하는데...


에...



그렇다. 그 어느때 보다도 분노한 안드바리로부터 제일 안전한 공간인 사령관실로 향하는 길은 안드바리의 뒤쪽 통로를 거쳐야 한다.

하지만 그랬다가는...


마주치면... 죽는다...!!



그것만큼은 안돼!! 아직 훔친 초코바도 제대로 못먹었단 말이야!!


으으으... 어떡하지...! 이대로는 들키는건 시간문제인데...



지금 이 순간에도, 보물고의 파수꾼은 주먹을 부르르 떨면서 서서히 근접해오고 있었다.


크으윽..!! 이렇게 허무하게 바스러지는가...!!



LRL은 자신들을 서서히 옥죄어오는 끝을 예감하며 이를 악물었다.


....아!



하지만 알비스는 아직 포기하지 않았다.


공주님! 아직 포기하기엔 일러!



알비스는 자신들의 전리품인 초코바가 잔뜩 들어있는 자루를 들쳐업으며 미소지었다.


응...? 아직이라니... 갑자기 무슨....



LRL은 의아하게 알비스를 쳐다보았다.


후후후... 아직 있단 말씀~!

사령관님 방만큼 안전하고, 숨을수 있는 또 하나의 장소가 말이야!

그것도, 최근에 생겼으니 아직은 안드바리도 그정도는 예상하지 못할거야!


최근이라니... 갑자기 그게 무슨...

...아하~~~!



두 소녀는 자판기 밖으로 빼꼼히 고개를 들이밀어 안드바리의 모습을 관찰했다.


(...끄덕!)



두 소녀는 말없이 시선을 주고받으며 다음 목적지로 조용히, 슬금슬금 발걸음을 옯겼다.


최근에 새로 합류한, 두번째 인간의 방으로.











"...."


라붕이는 말없이 자신의 방에서 멍하니 앉아서 시간을 때우고 있었다.


"....이제는.... 뭐하지..."


분명히 분주하게 움지여야할 시기였지만, 그저 무심하게 시간만 죽여가며 가만히 앉아만 있을뿐, 그 무엇하나 행동으로 옮기지 않았다.


"....."


그저 아무 행동도 하지않은채, 조용히 자신의 방에 있는 의자에 앉아 멍하니 천장만 바라보던 라붕이는 시계를 바라보았다.

AGS격납고를 갔다오고 나서부터, 1시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분명, 할일이 엄청 많았던걸로 기억 하는데."


어제까지만 해도, 틈틈히 짜놓은 계획이라던가, 미리 해 놓아야 할 일이라던가... 그러한 것들로 머리속이 가득차 있었는데, 그랬음에도 불구하고 현재 자신은 아무것도 하지않은채 그저 시간만 보내고 있다.


"...그러고보니, 결국 비상탈출용 포트로 가는길은 근처에도 못가봤네."


생각해보니, 제일 원했던 목표중 하나.

오르카를 탈출할 유일한 수단인 비상탈출용 포트의 위치는 정작 알아내지도 못했다.


"이러니 뭘 하기도 애매하네... 이걸 먼저 해결해야 다음 행동을 정하던가 말던가 할텐데."


어젯밤, 슬레이프니르가 자신에게 전화를 걸어서 비상 탈출용 포트로 향하는 통로를 안내해 주겠다고 했을때에는 그저 그 이후에는 모든것이 잘 풀릴거라 생각했지만...


"뭐, 보다시피 이렇게 됬네. 이러니 딱히 뭘 하기가 애매하니까."


이런 상황이니, 애초에 뭘 하려고해도 모든게 애매한 상태다.


"......"


...알고있다.

지금 이렇게 아무것도 안하고 있는 이유는, 그거 하나뿐만이 아니라는것을.


"난... 대체 뭘 해야 하는거지."


현재 자신에게는 그다지 많은 시간이 주어진 처지가 아니라는 것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왜 이렇게 태평하게 있는지를 본인도 쉽사리 알 수가 없었다.


"...나가볼까."


물론, 내가 지금 당장 나가서 뭘 할게 있는것은 아니지만, 여기서 바보같이 시간낭비만 하는것 보다는 훨씬 낫지 않을까.


"어디로... 가볼까."


막상 나간다 치더라도 갈 곳을 정해놓은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마냥 여기 있는것 보다야 낫겠지.


"......"


굳이 이렇게 고민하지 않더라도, 언제 어느 때라도 찾아갈수 있도록 나에게 손을 내밀어준 녀석들이 있으니까. 너무 고민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음..."


그렇게 모두를 생각하며 문을 열었.....


















......










"........."









.......(씨익)....








....어....



뭐지...




"...저기...."



실례합니다아아아앗!!! / 입장하겠노라~~!!!



"..에엥..?!"



뭐라 말하기도 전에 두 꼬마가 자신의 방 안으로 쏜살같이 쳐들어오자 저도 모르게 나가려던 발걸음을 멈추고서 다시 뒷걸음질 쳐버렸다.


공주님! 어때?! 안 쫗아오지?



무언가가 잔뜩 들어있는 자루를 들쳐매고 있는 알비스는 다급한 목소리로 LRL을 향해 물어보았다.


....응! 지금도 안보이는거 보니까, 무사히 잘 따돌린것 같아!


오오오오...!!!



본인들끼리만 알아들을 수 있는 주제로 대화를 나누고 있는 두 꼬마를 쳐다보던 라붕이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



"...저기..."


응?



"......"



뭐지...



"여긴, 어쩐일로 오신건지..."


어? 그게 무슨... 앗!



알비스는 의아한 표정으로 갸웃거리다가 이내 다시 밝게 웃으며 라붕이에게 인삿말을 건넸다.


안녕 라붕씨! 그동안 잘 지냈어~?

뭔가 엄청 오랜만에 보는것 같네!



"어...네...?"



알비스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라붕이를 아랑곳 하지 않고 계속해서 말을 이어나갔다.


뭔가 엄청 오랜만에 보는것같네~!

내가 이전에 준 초코바는 맛있게 잘 먹었어? 



"초코바라니... 아...."



그러고보니 얘한테 그런걸 받은적이 있었지.



"초코바라면... 지금도 잘 가지고 있습니다.

요즘에 워낙 정신없는 일이 많다보니, 아직 제대로 먹어보진 못했지만요."



이전에 알비스를 처음 만났을 때, 알비스로부터 초코바 여러개를 한 묶음 채로 선물 받았던 것이 떠올랐다.


헤헤... 천천히 먹어도 돼. 아! 다 먹으면 나한테 바로바로 알려줘? 내가 언제든지 다시 챙겨줄테니까!



"........"


아 맞다! 그러고 보니 우리 발할라 숙소는 언제쯤 찾아올거야?

우리 언니들도 라붕씨 만나보고 싶다고 많이들 얘기하더라고~!



"...발할라... 분들께서, 그런 이야기를 하셨나요."



생각해보니, 아직 발할라는 제대로 만나본 적이 없었지.



'걔네를 아직 안만난게, 불행인지 다행인지를 알 수가 없네....'


그야 물론이지~ 그러니까, 다음에는 우리 발할라 숙소에도 꼭 놀러와야해? 알겠지? 헤헤헤...



"....네. 안그래도, 다른 분들께도 인사를 드려야하니 찾아 뵐려고는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다음에 꼭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알비스 씨."


에에이~~ 라붕씨!!



방금전까지만 하더라도 해맑게 웃던 알비스는 갑자기 서운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네?"


너무 그렇게까지 딱딱하게 굴 필요 없다니깐!

예전에도 내가 말했잖아~ 편하게 알비스라고 불러줘.



분명, 이전에 처음 만났을때 했던 말을 이번에도 똑같이 건네주는 알비스를 바라보던 라붕이는 어색하게 웃어보이며 그것에 수긍했다.



"아... 그건... 그렇네. 이전에 그렇게 말했었지.

알았어. 그럼 모처럼이니까. 그렇게 할게 하하..."


.......





후후후....



...?



의기양양한 웃음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을 향해 고개를 돌려보았다.


드디어.... 짐을 알현하게 되었구나....



.......



LRL은 슬그머니 침대위에 올라가 미리 준비해놓은 명대사를 읊기 시작했다.


후후후! 만나서 반갑도다. 나의 "두번째" 권속이여! 드디어 기나긴 시간이 지난 끝에서야, 짐을 만나게 되었구나~!

짐의 이름은, 사이클롭스 프린세스! 죽음의 굴레를 이겨내고 현세에 강림한 고귀한 혈통이니라!



"...어...."




라붕이는 조용히 머릿속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러고보니... 여긴 어린애들도 있었지.'


다시 떠올려보니 이곳 오르카에는, 이 두 꼬마 외에도 많은 아이들이 있었다는것을 잊고 있었다.


'LRL.... 알비스.... 친숙한 조합이네.'


실제 인게임에서도, 이 둘은 유독 사이가 좋았던 것을 떠올렸다. 특히 이벤트 시나리오에서 이 둘은 항상 붙어다닐 정도로 친한 사이니까.


'...나 만나러 여기까지 온건가...'


예상치 못한 만남이지만, 어찌되었든간에 날 보러 와준거니까.





"반가워."


....!



"나 만나러 여기까지 와준거구나? 원래라면 내가 찾아가서 인사하고 싶었는데. 너희가 먼저 와줬구나."


......



"만나서 반가워. 나에 대해선... 뭐, 이미 다 알고 있는것 같으니까 대충 건너뛴다 치고, 너희들에 대해서는 어느정도 이야기를 들었거든. 그래서 한번 만나보고 싶었는데, 너희가 먼저 와줬네. 하하하..."


....라붕씨.....



두 아이는 평범하게 인사를 받아주는 라붕이를 멍하니 쳐다보았다.



"아무튼, 이렇게 찾아와줘서 정말 고마워. 혹시 내가 도와줄만한 일이 있으면 말해줘. 내가 도울수 있는 일이면 나도 도울테니까. 알겠지?"


...!!!



그 마지막 말이 끝나자, 아이들은 그 어느때보다도 환히 웃으며 화답해주었다.


응!! 약속한거야~?! 잊으면 안돼! 알겠지? 헤헤..


후후훗... 역시 짐의 눈은 틀리지 않았느니라.

역시 나의 두번째 권속! 훌륭한 마음가짐이로구나~!


히히, 그럼 이제 우리 여기 자주 놀러와도 되는거지?



"음..? 어... 그래. 딱히 상관없어. 나도 심심할때 너희가 찾아와 주면 오히려 좋을것 같으니까."



으음~ 그래? 그럼 다음에는 우리 자매들 데리고 다 같이 놀러오면 딱이겠네?


그렇네요. 다음에 날짜 한번 잡아 놓을게요.



"아, 그것도 좋겠네. 다같이 모여서 인사도 하면 딱 맞을........."













....?!!!



갑작스러운 등장에 라붕이는 그만 얼어붙고 말았다.



"ㄷ, 대대대대대장...님...?!!!"


응? 왜 불러?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이야기에 끼어들어서 하나도 부자연스러움을 느끼지 못했다.

왜 니가 여기 있냐..!!


아, 레오나 언니~!



그 와중에 그런건 신경쓰지않고 활짝 웃으며 레오나의 품에 뛰어들어 안기고 있는 알비스는 밝게 미소지으며 말했다.


헤헤! 나 라붕이랑 오늘 친해졌어! 대단하지?!


오늘은 짐의 두번째 권속, 라붕이와 주종의 맹약을 맺은 날이니라~~!


어머나~ 만난지 얼마 되지도 않은거 같은데, 금세 친해진거야? 역시 우리 꼬마들 친화력은 알아줘야 한다니까~



알비스를 쓰다듬으며 뿌듯하게 미소짓는 레오나는 아이들을 바라보던 시선의 방향을 라붕이로 향하기 시작했다.



"...!"


간만에 보네? 요즘 잘 지내고 있어?



"아... 그럼요! 여러분들 덕에 잘 지내고 있죠..! 하하하..."



갑작스런 레오나와 발키리의 등장 덕분에 눈에 띄게 당황한 라붕이는 최대한 자연스럽게 행동하려고 애썼다.


그러고보니, 저와 이번에 만나는건 이번이 처음이시죠?



발키리는 예의바르게 자신을 소개하기 시작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라붕씨. 저는 시스터즈 오브 발할라의 저격수를 맡고있는 발키리 입니다.

레오나 대장님의 부관도 겸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자주 보게 되겠네요. 앞으로 잘 부탁드려요 라붕씨.



...어.. 그...


아 그리고, 앞으로 곤란한 일이나 힘든일이 생기면, 꼭 말씀해주세요.

언제든지 도와드릴테니까요.



상냥한 목소리로 소개를 마친 발키리는 미소지으며 말했다.



"아... 네. 발키리씨. 정말 감사합니다. 저야말로 잘 부탁... 드립니다."



나름 그에 맞춰서 인사로 화답한 라붕이는 레오나를 슬쩍 쳐다보았다.



"......"


왜?



"..! 네?!"


뭘 그렇게 빤히 쳐다보고 그래? 뭐 할말이라도 있어?



할말이라니... 니들이 온거잖아...



"아, 아닙니다. 그냥... 어쩐일로 찾아오셨나 싶어서..."



갑자기 얘네가 왜 나한테 찾아온걸까...


그냥 심심해서 와본거지 뭐.

왜. 우린 오면 안돼?



"아뇨아뇨아뇨...! 그럴리가요! 그냥... 많이 바쁘실텐데 여기까지 찾아오신거니까, 무언가 중요한 일이 있으신가 해서..."


아뇨, 그냥 대장님 말대로 안부차원에서 찾아온겁니다. 잘 지내시나 궁금해서 찾아온거니까요.



"아... 그렇군요..."



그냥 얼굴보러 온게 전부라는건가...



'깜짝 놀랐네...'



다른사람도 아니고, 레오나랑 발키리가 튀어나와서 얼마나 놀랐는지...


......



레오나는 그런 라붕이를 향해 무덤덤하게 입을 열었다.


요즘 어때?



"...네?"


잘 지내고 있어? 몸은 좀 어때. 불편하다거나 아픈건 없어? 너 이전에 쓰러졌잖아. 그 이후로 얼마 안됐으니까... 요즘은 지낼만해?



진지한 표정으로 안부를 묻는 레오나의 말에, 라붕이는 차분하게 대답했다.



"아... 네. 그 이후로는 딱히 이렇다 할 증상같은건 없습니다. 딱히 아픈곳도 없구요."


...그래. 그렇다면 다행이네.



......



그 말을 끝으로 잠시 어색한 정적이 흘렀다.



'...뭔 말을 해야하지...'



꼬마들과의 만남도 그렇지만, 레오나와 발키리와의 만남은 더욱 더 예상 외의 일이었던지라, 어떤 행동을 해야할지 알 수가 없었다.



'...레오나는, 여기 처음 왔을때 인사한 이후 처음만나네...'



설마, 그것도 내 방에서 만나게 될줄은...






......







"...저기...."


...?!



의외로 먼저 입을 열고 말을 꺼내는 라붕이의 모습에 전원 눈을 크게 뜨고서 라붕이를 바라보았다.



"....잘 지내시죠?"


....어?



"아아아...! 다른게 아니고... 첫날에 만나뵌뒤로 이제야 처음 보는거니까요. 그래서... 그냥 여쭤본거에요. 잘... 지내셨나."



본인이 생각해도 너무 뜬금없는 얘기인지라 막상 내뱉고나니 짧은 후회감이 느껴졌다.



'얘네랑은... 뭔 얘기를 해야하지...'



레오나도 그렇고, 발키리도 그렇고... 얘네는 날 어떻게 보는지를 알수가 없으니까.



'갑자기 잘 지내냐니... 내가 봐도 부자연스럽네...'



괜히 이상하게 보이지만 않으면 좋겠는ㄷ...


후후훗.



"...!"


물론, 저희는 잘 지내고 있습니다. 라붕씨도 잘 지내고 계시나요? 요즘 한창 적응하고 계신걸로 아는데 불편한건 없으신가요?



상냥하게 웃으며 차분한 어조로 대답하는 발키리의 한마디에 라붕이는 살짝 당황하며 서둘러 대답했다.



"아... 네. 저야 뭐... 워낙에 많은분들께서 챙겨주시다보니, 잘 지내고 있습니다. 불편한것도 딱히 없구요."



발키리의 말에 그저 생각나는대로 대답했다.

그냥... 사실대로, 진짜로 많이 받았으니.


...그렇군요. 정말 다행입니다.



"......"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레오나도 슬며시 입을 열었다.


잘 지내고 있는것 같아서 다행이네.

실제로, 처음 왔을때 보다도 얼굴색이 훨씬 좋아졌으니까.



"그...런가요? 하하..."



처음이라...



'...은근 시간이 흐르긴 흘렀네.'



여기 온지 얼마 안된게 사실이지만, 막상 체감만 따지면 시간이 상당히 많이 흐른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이제는 좀 적응해나가는것 같아서 안심이 되네.

나 참, 처음에 너 쓰러졌다고 들었을 때 얼마나 놀랐는지...



"......"


그래도, 요즘은 웃는 횟수도 많이 늘어난 것 같고, 다른 대원들과도 서서히 친해지는거 보니까 처음에 비하면 참 많이 발전했단 말이야.

안 그래? 호들갑쟁이 씨?



눈웃음 지으며 라붕이를 향해 차분하게 이야기를 늘어놓는 레오나를 라붕이는 묵묵히 쳐다보았다.



"...많은, 도움을 받았거든요."


......



"그냥... 뭐라 설명드리기 애매한 이야기지만, 갈피를 잡지 못하고 마냥 헤메이고 있을때 많은 사람들이 도와줬으니까요. 그래서인지... 한편으로는 죄책감도 느끼고 있었습니다."


죄책감...이라니, 왜 그런 감정을...



......



왜냐니, 그야...



"고마우면서도, 미안했으니까요."


.......



"알게모르게, 제가 상처준적이 있었거든요.

그것도... 한두명이 아닌, 많은 사람들에게."


라붕씨...



"저에게 끝도 없이 다가와 줬던 사람들을, 마냥 밀어내면서 외면해왔거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말 많이 받아온 주제에, 전 준게 없으니까요."


......



"항상, 사과하고 싶었어요. 고맙고 감사한 마음 이전에, 늘 마음 한켠에서는 미안한 마음부터 올라왔으니까.

하지만 그걸 입밖으로는 도저히 꺼낼수 없었어요. 그야... 그런 말을 하면 할수록 저에게 더 웃어주는 사람들이니까요."



언제나 고맙다고 진심으로 인사하고 싶었지만, 어째서인지 그 때가 오면 약속이라도 한것마냥 말문이 막혀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타이밍을 놓쳐서인지, 어색해지는게 싫어서인지, 아무튼 항상 기회를 놓쳤다.



"그냥... 지금은 형식적인 말 한마디보다는, 이전에 외면하고 멀리해 왔던 것 이상으로 저도 다가가고 싶었어요. 그렇게 마음먹어 놓고서 그런 짓을 하면... 괜히 눈치 없는 놈 소리 들을까봐 그랬는지도 모르겠네요. 하하하..."



너희를 싫어했던 내가 이제와서 너희들이 건네주는 마음을 받을 자격이 있을까. 라는 생각을 언제나 품어왔다.

모두의 얼굴을 볼때마다, 언제나 느꼈던 것.



"뭐, 사실 다 허울좋은 핑계고, 사실은 그냥 그럴 면목이 없어서 망설인 걸지도 모르겠네요.

이제와서... 사과같은걸 한다니, 그냥 염치없다고 느껴서 머뭇거린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니까요."



왜 갑자기 내가 이런 이야기를, 그것도 레오나에게 하는지는 모르겠다. 그냥... 나도 모르게 입에서 흘러나왔다.


...딱히 상관없지 않겠어?



"...?"



모든 진심을 전해들은 레오나는 차분하게 자신의 감상을 들려주었다.


그거면 충분하지 않아? 뭘 그렇게 요령없이 끙끙 앓고있어? 딱히 고민할 것도 없어보이는데.



"대장님...?"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발키리도 마찬가지로 본인이 느끼는바를 이야기했다.


그저 그렇게, 라붕씨가 생각해주는것 만으로도 다른 분들 입장에선 이미 충분한 보답이 될거라고 생각해요.



"......"


그 말이 맞아. 그리고, 굳이 미안할 필요가 뭐가 있어? 그럼 그 이상으로 니가 앞으로 서서히 보답해나가면 될 일이잖아?

어차피, 시간은 많으니까.



"시간...인가요."



다른 녀석들도 그렇게 말해줬지. 시간은 많으니 천천히, 함께 해나가자고.


그래. 시간은 많으니까. 쓸때없이 조급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는 의미야.

너 어차피 여기서 평생 살거잖아? 근데 뭘 그렇게 다급하게 굴어? 답답하게시리.



"...?!"



내가... 여기서 함께...?



"...저는..."


라붕씨.



발키리도 마지막으로 한마디 더 덧붙이기로 했다.


다 알고 계실거라 생각합니다.



"......"


이미, 당신 곁에는 수 많은 사람들이 라붕씨를 바라보고 있다는걸요. 더 이상은... 당신이 혼자가 되는걸 용납하지 않는 동료들이 옆에 있다는걸요.



"발키리 씨..."


그러니까, 이미 그것을 다 알고 계실 라붕씨니까, 이 이상의 이야기는 무의미 하겠죠.

그렇다면 이제... 라붕씨가 해나가야 할 일은 명확하겠죠?



발키리는 이 정도면 충분할 것이라고, 전부 전해졌으리라 확신하며 미소로 마무리 지었다.


대충 얄아들었으면 이제는 어깨좀 피지 그래?

사내가 되어가지고 허구언날 인상만 구겨서야 제 몫을 할 수야 있겠어? 니가 나중에 해야할 일이 얼마나 많은지 알고는 있는거지?


저희 대장님이랑 일 하시려면 각오 단단히 하셔야 할거에요. 워낙 가차 없으신 분이니까요.


어머? 얘좀 봐?? 누가 보면 내가 얘 달달 볶으려는줄 알겠다?


실제로 맞지않나요? 사령관 각하랑 만나신지 얼마 안됐을 때에도 엄청 갈구셨다고 들었거든요.


...?! 그, 그건..! 어디까지나 사령관을 보다 훌륭한 남자로 성장시키기 위한 일환으로...


네 네~ 그야 잘 알죠. 레오나 대장님 사려깊으신게 하루 이틀은 아니니까요.


나 참... 너 어째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능구렁이가 되어가는 것 같다?


후훗... 그럴리가요.



화기애애하게 나름의 덕담을 주고받는 두 사람을, 라붕이는 묵묵히 쳐다보았다.



아..! 맞다!!



가만히 경청하고 있던 알비스는 무언가 생각이 난듯 벌떡 일어서서 등에 지고있던 자루를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알비스?"



재빠르게 자루를 뒤적거리던 알비스는 초코바 뭉치를 한보따리 꺼내어 라붕이에게 내밀었다.


자! 라붕아! 이건 오늘 너 주려고 준비한 선물!

특히 맛있는것만 골라담은거니까, 맛있게 먹어!



"......"



이전부터 신경쓰였던 그 자루 안에는, 나에게 주려고 구해온 초코바들이 들어있었다.


이전보다 3배는 더 많은, 초코바 묶음.



"...날 주려고... 갖고온 거구나."


물론이지~! 



자신이 제일 좋아하는것을, 하나도 아끼지 않고서 전부 나에게 건네주었다.



"......"



그저 말없이 받았다. 행여나 하나라도 떨어뜨릴까봐 조심스럽게, 천천히.



"아직... 이전에 받은것도 못먹었는데, 또 이렇게 잔뜩 받아버렸네..."


초코바는 많으면 많을수록 행복해지는 법이야.

아까도 말했지만, 다 떨어지면 바로바로 나한테 말해주기야?

언제든지 다시 구해다 줄테니까~!



"......"



무어라 말을 해줘야 하는데, 굳어버린것 마냥 입이 열리지를 않는다.




...아니다. 지금은 잠시 다물고 있자.

어린애 앞이니까. 참아야지.



그렇다면 이제... 짐의 차례로군...



그 모습을 바라보던 LRL도 자신이 준비한 것을 꺼내어 라붕이에게 들이밀었다.



"...이건..."


후후후..! 놀라지 말거라 라붕이여...

이 참치캔은 그저 널리고 널린 참치캔과는 차원이 다르다!

이것은 무려, 김치찌개용 참치캔이라는 것이다!

평범한 참치캔과는 풍미 자체가 다르다 이말이니라!! 감사히 받들도록 하거라!



테이프로 촘촘하게 묶음포장하여 내밀어준 참치캔 묶음도 마찬가지로 조심스럽게 받아내었다.


고마워할것 없느니라. 이것은 나와 라붕이의 계약의 상징. 즉, 새로운 주종관계의 증표이니! 한입 한입 음미하면서 즐기도록~!



"참치캔...이구나."



애써 입을 열어서 다음 해야할 말을 꺼내보았다.

최대한의 진심을 담아, 또렷하게.



"......고마워. 맛있게 잘 먹을게."


헤헤헤...


......



그 모습을 미소지으며 바라보던 레오나도 입을 열었다.


이번에도 선물 잔뜩 받았네~? 이렇게 인기가 많으니 부러워서 어떡하나~?


후훗... 당분간 간식 걱정은 없으시겠어요.



"...그러게요. 당분간은, 모자라진 않겠네요."



가만히 받은 선물들을 조용히 바라만 보는 라붕이를, 모두 조용히 웃으며 바라보았다.



'나원 참... 잘만 웃는구만 뭐.'



진작에 좀 이래줬으면 참 좋았을텐데.

정말 피곤한 녀석이다.



"이번에도... 받기만 했네요."


원래 그런거야.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받았다면, 그것을 잊지않고 보답하는 것. 그게 관계 라는거니까.



"......"


정말로 고맙다면, 넌 그 이상으로 보답하면 될 일이야. 그리고 그것을 어떤 방식으로 해나갈지는, 지금의 너라면 충분히 알고있을 테니까.


물론, 막힐때가 온다면 언제든 찾아와주세요.

얼마든지 도와드릴 테니까.



"...네. 알고 있어요. 이제, 제가 뭘 해야 할지는 명확하니까요."























아 맞다.



레오나는 잊고 있었던것을 떠올리며 뒤돌아 보며 소리쳤다.


이제 나와도 돼~~



"...?"



뭐지. 누구한테 얘기하는....





.....허어어어억...!!!






................




레오나의 시선쪽으로 똑같이 고개를 돌리니, 그 곳에는 칠흑같이 가라앉은 어두운 눈빛으로 이곳을 바라보는 안드바리가 서 있었다.


아...아아아안드바리...?!!


왜... 여기에....!!!


......



그 어느때 보다도 서리를 내뿜으며 천천히 다가오는 모습에 두 꼬마는 본능적으로 뒷걸음질 치기 시작했다.


...여기 있었군요......


아, 안드바리...! 내 말좀 들어봐...! 이건말이야!!


평소의 배는 훔치셨던데, 아주 작정을 했더라구요...? 저는 무슨 도적 영화라도 찍는줄 알았다니까요~~


이건... 그러니까... 어디까지나 새로운 맹약을 맺기위한 의식을 준비하기 위해서....!


또 이런짓을 벌이면,


...?!!!


더 이상의 자비는 없을거라고... 경고했었죠?


부, 부디... 해명할 기회를....!!!


(덜덜덜덜덜덜)



그 어느때 보대도 공포에 몸부림치던 두 꼬마들은 자신들에게 닥쳐올 운명을 직감하고 있었다.


















...당장 따라나와아아아아앗!!!!!!!!




히이이이익.....!!!



그렇게 두 꼬마 아이들의 귀를 꼬집으며 유유히 방을 나서는 안드바리는 창고쪽으로 둘을 끌고 가기 시작했다.


아야야야야~~!!! 내 귀!! 내 귀가~~!


자, 잠깐만 안드바리..! 우선 진정하고 이야기를...


진정은 무슨 얼어죽을!! 이전에 제가 경고했죠?!

또 걸리면 그때는 정말 가만 안둘거라고!!


그, 그치만...


아 그리고, 훔친 초코바랑 참치캔 만큼 두 사람은 당분간 국물도 없을줄 알아요.


호에에에엑~~~!!!





그렇게 두 꼬마들은 훔친 전리품의 대가를 치루기 위해서 안드바리에게 끌려가고 말았다.



"......"



라붕이는 아이들이 지나간 통로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뮌가... 괜히 미안해지네. 나 때문에 무리하느라 저렇게 된거니까.'



나중에 안드바리에게 직접 찾아가서 나도 사과해야...


김라붕.



멍하니 있던 라붕이를 레오나는 조용히 불러보았다.



"어... 네?"


아까 했던 약속, 잊으면 안돼는거 알지?



"약속 말인가요? 무슨... 아."



옆에 있던 발키리도 웃으면서 거들어주었다.


다음에 저희 숙소에 한번 와주셨으면 좋겠어요.

그때는 저희가 간식과 차라도 대접해드릴 테니까, 다 같이 인사도 나누고 시간도 보내고 싶거든요. 허락해 주실거죠?


허락이 왜 필요해? 그냥 오라면 오는거지.

설마 이 타이밍에 눈치없이 우물쭈물대는 모자란 남자는 아니겠지?



먼저 다가와 내밀어 주는 그녀들의 말 한마디 한마디를, 하나도 놓치지 않고 새겨들으며 그에 걸맞는 대답으로 보답했다.



"...그럴리가요. 꼭 갈게요. 무슨 일이 있어도 반드시 갈테니까, 그 때는... 잘 부탁드릴게요."


후훗.



만족스러운 답변을 들은 레오나는 미소지으며 자신들도 슬슬 자리를 떠날 준비를 시작했다.


결정났네. 다음에 애들 보내서 데리러 갈테니까, 늦지말고 와.

지각하면, 알고 있겠지? 나 그런거 봐주는 성격 아니다?


대장님이랑 한 약속 어기면 그때는 진짜 손에 총알 박힐지도 모르니까 잊으시면 안돼요?


아니 얘는 참... 나를 무슨 깡패로 몰아가네?!


후후훗...



서로 화기애애하게 이야기꽃을 피우며 자신들의 자리로 돌아가는 뒷모습을 라붕이는 멍하니 쳐다보았다.



















"나 참..."



그렇게 다시 고요가 찾아온 복도에서, 라붕이는 모두가 떠나간 길을 말없이 쳐다보고 있었다.



"맛있게 먹으라니..."



나에게 잔뜩 안겨준 선물들을 품에 꼬옥 껴안은 채로 중얼거렸다.



"...이렇게 아까운걸, 어떻게 함부로 다 먹겠어.

아까워서 그렇게는 못할걸."



.......



"그래도, 모처럼이니까 하나 정돈 지금 먹어도 되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초코바 한개를 집어 비닐을 벗겨 한입 베어물었다.



".....맛있네."



그저 평범한 초코바에 불과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태것 먹었던 초코바중에서 최고로 달콤하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많으니까... 다음에 같이 나눠먹는게 좋으려나."



나 하나 챙겨주려고 무리하는 바람에 졸지에 초코바 금지령이 내려진것 같으니 말이야.



"..응, 그러자. 다음에 발할라 숙소에 놀러갈 때... 다 같이 나눠먹자. LRL도 데리고 가서 함께."



꼭 찾아가기로 약속했으니까, 

그 때 놀러가면, 모두랑 다 같이 나눠먹자.

그렇게 다짐하며 천천히 그 맛을 음미했다.




그 무엇보다 달콤하고, 따뜻했다.


































다행이에요... 라붕씨.



이걸로 조금은, 그의 마음도 따스해졌을까.


...확신해요. 지금 당신의 마음은, 그 어느때 보다도 따스하니까요.



이제야 그의 마음에도, 조금씩이나마 깃들어 가기 시작했다.


그런식으로 조금씩, 채워나가면 되는거에요.

그렇게 나아가다 보면, 당신도 진심으로...



닿을수 있겠죠. 비로소 모두의, 서로의 진심에.


...저도 노력해야 겠네요. 당신도 나아가고 있으니까요,



이제는, 나도 그에게 다가가야 한다.

언제까지고 뒤에서만 바라만 볼수는 없을 터.


다음에는, 저희와도 인사를 나누며 시간을 보낼수 있도록 준비할게요! 그때는... 반드시 못다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친해질수 있기를.



그렇게 되내이며, 엔젤은 발걸음을 옮겼다.

그와 만날 날을 준비하기 위해서.





















김치찌개용 참치캔이라니... 희귀템이구나!!








재밌게 보셨으면 개추랑 댓글좀 주십쇼..!


































..........






모두, 준비 다 된거지?


응, 모든게... 완벽해.


그럼 가자. 움직일 시간이야.


...그래.














싱싱할 때, 손질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