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회귀하게 되면 너희들은 나를 기억하지 못할 거야.”


꽤 당연한 말이었다. 나를 기억했다면 너희들이 이렇게 나에게 웃어줄 리가 없었을 테니까. 수없이 많이 실패해온 나를 용서할 수 없었을 테니까. 있는 것이라고는 지쳐 쓰러져도 새로 달려갈 나에게 모든 것을 전해줄 수 있다는 것이 전부였다.


“그러겠지. 그대만이 모든 것을 알고 다시 시작하는 격일 테니.”


너는 쓸데없는 나를 보면서도 이렇게 밝게 웃고 있었다. 웃는 모습 옆에 나를 비추어보니 비참해지기만 할 뿐이었다. 그런데도 내가 지금까지 눈물을 참아온 이유는, 내 처량한 모습으로 네가 마음 아파하지 않기를 바라서였다. 나 같은 것 때문에 슬퍼하지 않기를 바라서였다.


“내 모습을 눈에 담아놓고, 내 모든 것을 기억하려 할지라도 나를 기억할 수는 없을 거야. 너를 비롯한 수많은 이들이 나와 처음으로 만나게 될 테니까.”


“그러겠지. 그 모든 것은 그대의 마음속에만 들어있을 거다.”


모두를 위해서라면 나의 작은 바람을 버려야만 했다. 다음번의 나라면 이런 실수를 하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나에게 항상 친절했던 네가 마음 아파하는 모습을 내 손으로 고르기로 했다.


“그러니까 제발… 무가치한 나를,”


나의 말은 이어지지 못했다. 나를 바라보고 있던 그녀가 내 입을 입술로 틀어막았기 때문이다. 혀가 얽히고설키며 서로의 숨결이 하나로 얽혀든다. 그녀의 눈에서 흐른 눈물이 내 볼을 타고 흘러내린다. 길었던 키스가 끝나고 너는 두 팔로 나를 세차게 끌어안는다.


“그럼 그대가 나를 기억하면 되는 거다.”


거친 숨을 몰아쉬느라 열린 입에선 아무 말도 나오지 못했다. 못생겨진다면서 한 번도 눈물을 보인 적 없는 너였다. 그런 네 눈물이 내 어깨를 타고 흘러내리고 있었다.


"…뭐?“


“나는 그대가 웃는 모습이 정말로 좋다. 항상 우울한 얼굴로 시간을 보내는 그대의 얼굴에 미소가 맺힐 때면, 아무것도 모르는 소녀가 된 것처럼 가슴이 두근거리게 된다. 그대의 미소를 보고 있을 때면 다른 이들에게 넘겨주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


너는 저번처럼 나에게 고백하고 있었다. 그리고 나를 지켜보며 알아 왔던 점을 하나하나 말했다. 그녀는 나도 모를 것 같은 것들을 말하며 웃고 있었다. 너의 그 모습은 반짝이는 보석처럼 아름다웠다. 네가 웃는 모습을 더럽혀진 내가 감히 바라봐도 될까 싶었다.


“이번엔 분명 내가 먼저 그대에게 고백했었지. 그렇다면 다음번에는 그대가 나에게 고백하는 거다. 내 어디가 예쁜지, 내가 뭘 좋아하는지, 그리고 그대가 왜 나를 사랑하는지… 내가 그대에게 고백했던 것처럼 그대가 나에게 돌려줘야만 한다.”


너의 미소는 처음으로 만났던 그때와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 밝게 웃는 너는 내 손을 끌어 가슴에 올려다 놓고는 하던 말을 이어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내 가슴을 만지면 어떻게 좋은지, 내 엉덩이를 만지면 무슨 느낌이 드는지, 그대의 물건을 내 안에 넣고 어디를 자극하면 내가 행복을 느끼는지… 정말로 사랑할 나와 혀를 섞어가며 그대의 사랑을 하나도 빠짐없이 내게 고백해라.”


이 순간까지도 너는 참으로 너다웠다. 울적한 내 모습을 보고 웃음을 찾아주려 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네 덕분에 작은 미소를 입에 띄울 수 있었다.


“그리고 내게 말해라. 나는 그대가 웃는 모습을 좋아할 것이라고.”



 “…하?”


꿈을 꾼 느낌이다. 그것도 아주 행복한 꿈을. 감히 수없이 많은 실패를 저지른 내가 누리기엔 너무 행복한 꿈을. 그러나 그 꿈은 자격 없는 내게 너무나도 달콤한 것이었다. 무심코 그 꿈에 안겨 깨지 않아도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버릴 정도로.


“각하?”


“어?”


나를 깨운 것은 듣기에는 무뚝뚝한 목소리. 그러나 오랫동안 목소리의 주인을 알아 온 나는 그 안에 걱정이 담겨있음을 안다. 일견 차가운 듯 보이지만 따뜻한 마음을 지녔다는 것을 안다. 내가 오랫동안 지켜본 발키리는 그런 여인이었다.


‘잠깐, 뭐가 이상한데.’


“발키리?”


길고 곱게 자란 검은 머리카락. 오드아이. 익숙한 복장까지. 눈앞에 서 있는 여인은 내가 알고 있던 발키리가 맞다. 그녀의 정체를 확인한 나는 숨이 막히는 것 같았다.


“네, 각하. 부관 임무를 받은 발키리입니다. 안색이 좋지 않으신데, 오늘 하루는 휴식을 취하시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발키리, 네가… 어떻게 살아있는 거지?”


막히려는 숨을 참고 겨우 입을 열었다. 그 순간 머리를 스쳐 지나가는 수많은 기억. 발키리를 제외한 다른 이들의 얼굴은 죄다 지워진 기억이었다. 그리고 그 기억의 끝에는 항상 죽은 발키리가 있었다. 살아있는 그녀를 보고 위화감을 느꼈던 이유가 바로 이것이었다.


이해하지 못할 상황이 머리를 헤집어놓은 탓일까, 뭔가 먹지도 않은 속이 꽉 막힌 듯 답답했다. 올라오는 구역감을 참지 못하고 그대로 내뱉어버렸다. 손에 잔뜩 묻은 것은 거무죽죽한 색의 피. 내 손에만 묻었으면 좋았을 텐데, 소년의 손으로는 토혈한 피를 막을 수 없었다. 흩뿌려진 피는 새하얀 옷과 서류가 올려진 책상을 더럽혔다.


“각하?!”


피를 한 움큼 쏟아버린 탓에 몸에 힘이 쫙 빠졌다. 곧 쓰러질 사람처럼 눈이 점차 감겨왔다. 발키리가 놀라서 내지른 비명을 끝으로 내 의식은 점차 희미해졌다.




사령관이 후회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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