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그렇겠지?"


갑작스러운 추궁의 어조.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명백히 살기 비슷한 무언가가 살결을 따갑게 찔러왔다. 허나, 지금까지 겪어온 세월이 얼마던가. 겨우 이 정도의 압박감에 굴복한다면 그것은 사령관으로서 실격인 것이다. 이럴 때일수록 더 정신줄을 꽉 붙들어야 실수가 적은 법이지.


"아무래도 인간은 나 혼자기도 하고, 거기에 남자니까..."


필사적으로 내 머릿속에서 돌아가는 시뮬레이션과 상관 없이, 바르그는 그저 얌전히 술을 따르며 말을 이어나갈 뿐이었다.


"뭐... 주인님의 위엄을 생각하면, 당연한 일이겠지요."

"하핫, 위엄이라니..."


애시당초 스스로가 위엄이 있었나 생각해보면, '전혀 아니올시다' 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나마 워커홀릭 기질 덕분에 일거리에 파묻혀 지내서 그렇지 일조차 없는 날에는 신속하게 폐기물 변태 아저씨가 되고는 했으니까.


그래도 굳이 높은 평가를 내려주는 바르그에게 반박할 필요는 느끼지 못했기에 그녀의 말을 끊지는 않았다.


"하지만 주인님께 걸맞지 않은 자들이 함부로 나서는 것은 탐탁지 않군요."

"응? 걸맞지 않은 자들?"


우드득 거리는 소리가 들려올 정도로 술잔을 강하게 움켜쥔 바르그의 모습에 절로 군침이 삼켜졌다. 아무래도 누군가가 마음에 들지 않은 모양인데, 같은 아군끼리 사이좋게 지내길 바라는 나로써는 영 좋지 못한 상황이기도 했으니 서둘러 그녀를 달래기 시작했다.


"뭐 우리 대원들은 각자 개성이 강하니까... 나로서는 그 개성들을 존중해주고 싶다고 할까..."

"주인님께서... 그러시다면..."

"그보다 걸맞지 않은 자들이 누군데 그래?"

"부끄럽고 창피한 일이지만... 저희 엠프레시스 하운드의 녀석들이..."


장화와 천아가 그리고 그녀가 속한 엠프레시스 하운드의 이름이 그녀의 입에서 나오자 내심 당황스러웠지만, 딱히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그녀들은 소속감이란 눈을 씻고 찾아보기 힘든 점조직이었고, 자연스레 개인 플레이가 주를 이루었으니, 규율과 명예 같은 다소 고리타분한 성정을 지닌 바르그로서는 자유분방한 장화와 천아의 성향이 마음에 들지 않을 것이란 결론에 도달했다.


"이번에도 주인님께 천아, 그 녀석이 핫팩이라고 부르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 뿐입니까? 최근에는 정도가 심해져, 주인님의 업무 시간에 찾아가 귀찮게 구는 시간도 늘었다고 들었고요. 그리고 장화는... 까칠한 성격이지만 주인님께 집착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지난번에 주인님께서 하사하신 물건의 정리를 했다는 이유로 저에게 무기를 겨누더군요."

"하핫... 그, 그래도 결국 바르그가 잘 중재했지? 그러면 된 것 아닐까?"

 "역시 주인님께선 그 녀석들에게 너무 무르십니다! 주인님께선 주인으로서의 위엄을 보이셔야 합니다!"


강하게 식탁을 치며 어느새 훈계 모드로 돌입한 바르그의 모습에 그저 식은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경청하는 수밖에 없었다. 이후 봇물이 터진 듯 쏟아지는 잔소리들을 열심히 경청하며 고개를 끄덕이긴 했으나, 이어지는 내용들을 잘 듣고 보니 결국 단순한 결론에 도달할 뿐이었다.


'이거... 질투 아니야?' 평소 '엄격, 근엄, 진지' 저 세 단어가 옷을 걸치고 돌아다닌다 생각될 정도로 딱딱한 바르그가, 결국 자신보다 같은 부대원인 아이들에게 내 시선과 시간을 빼앗겨서 스트레스가 쌓인 모양이었다.


눈 앞에서 열을 올리며 설교하는 바르그였지만, 계속해서 결론은 '주인님께선 그러니 저런 녀석들 보다 저를 가까이 두셔야 합니다.' 로 귀결되고 있을 뿐이었으니까. 이건 뭐 빼도박도 못하는 질투 그 자체였다.


"푸훕!"

"주인님?"


결국 참치 못한 웃음이 입 밖으로 삐죽 튀어나갔다. 스스로를 용맹한 늑대 정도로 여기는 바르그였지만, 이렇게 보면 꽤 귀여운 강아지 아니던가. 어디보자... 그래, 품종은 포메라니안! 귀여운 외모를 지닌 주제에 톡톡 튀는 성격을 지닌, 매력적인 강아지. 이게 바르그의 정체성이란 결론에 도달했다.


"아! 미안, 미안... 바르그가 질투한다고 생각하니 너무 귀여워서... 푸하핫!"

"지, 질투라니요! 질투하는 거... 아닙니다..."


더는 붉어질 여지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바르그의 얼굴이 붉게 달아오르고, 그녀의 언제나 도도한 표정을 띄던 표정은 심각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의외의 구석에서 순진한 면모가 있는 그녀이기 때문일까, 이렇게 콕콕 찔러보면 당황하는 모습이 심히 귀엽게 느껴졌다.


'천아, 네 말이 맞다. 바르그도 이렇게 보니 정말 귀여운 구석이 많아.'


언젠가 천아와 장화에게 바르그에 대한 평가를 부탁하니 그녀들이 망설임 없이 내렸던 그 평가. '도도한 척 하지만, 결국은 애정에 목 마른 귀여운 강아지 그 자체.' 의외로 사람 보는 눈이 매우 정확한 그녀들에게 속으로 엄지 손가락을 치켜세우며 바르그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그래도 내 생각에 천아와 장화가 너를 아주 좋아한다고 생각해."

"그, 그럴 리가 없습니다... 분명, 저를 귀찮아 할..."

"아니, 내 말이 맞을 걸? 내기 해도 좋아."


강하게 확신하는 내 모습에 결국 바르그는 기세가 한 풀 꺾였는지 짧게 한숨을 내뱉으며 애꿎은 술을 빠른 속도로 들이키기 시작했다. 창피한 마음에 부정하고는 싶었지만, 아무래도 그녀도 그녀의 동료들이 그녀에게 품는 진심을 알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나도 바르그를 아주 좋아해... 내가 약속했지? 난 너를 혼자 두지 않을 거야. 이 세상의 끝까지."

"주인님..."

"난 아직 까지 너희들과 나눈 약속들을 어긴 적 없으니, 믿어줬으면 좋겠어."

"물론 믿습니다. 그 누구보다, 그 무엇보다... 주인님께서 저희를 믿어주시는 것처럼, 저희 역시 주인님을 믿으니까요."


솔직한 그녀의 대답에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서로의 손가락에서 아름다운 빛을 뿌리는 반지처럼, 그녀의 미소 역시 밝게 빛나고 있었다.


"솔직히... 신하로서의 나인가, 여자로서의 나인가... 주인님께 반지를 받고 갈피를 잡지 못했지만... 그래도 이제 아무래도 상관 없게 됐습니다. 어느 쪽이든 주인님을 위한다는 마음은 언제나 똑같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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