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핫, LRL 그 녀석은 너희들의 광팬이니까."


아무래도 LRL에게 맡긴 것이 정답인 모양이다. 서류를 정리하면서도 구석에 서있는 그녀의 수다를 들어주고 있노라면, 일하는 시간이 지루하지도 않거니와 무엇보다도 최근 합류하여 어떤 생활을 하고 있는지, 혹 불편한 점은 없는지 같은 사소하지만 중요한 것들을 파악할 수 있었다. 그리고 얼핏 서류 틈 사이로 보이는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면, 온후한 모성이 섞인, 그러나 한편으로는 천진난만한 모습들 까지 볼 수 있었기에 눈요기도 충분히 되는 장점도 있고.


"아무래도 오르카 호가 군용이라서... 네가 적응하기 어렵지 않을 까 걱정했거든."


군사작전에 특화된 잠수함에 눈이 불편한 그녀를 위한 배려가 있을 리 만무했다. 효율 만을 최우선으로 여기는 군용 설비에, 경직적인 상명하복의 군대 안에서 외부에서 새로 흘러 들어온 인원들이 불편함을 호소하는 경우는 종종 있었으니, 근거 없는 걱정도 아닐 것이다.


그때 LRL이 마침 드래곤 슬레이어 시리즈의 광팬이었으니, 블라인드 프린세스의 적응을 돕는 도우미로서 적합한 인선이라 할 수 있겠지.


"LRL도 착한 아이니까. 너무 쾌활한 면이 있어서 걱정이긴 했지만..."

"후훗, 용살자의 말대로 쾌활하고... 밝은 아이였어요. 오랜 세월을 홀로 지내왔다는 소리를 들어서 걱정도 했지만... 정말 밝은 모습이었죠."


입과 코를 제외한 눈을 안대로 가렸기에 그녀의 표정을 완벽하게 읽을 수 없었지만, 그럼에도 그녀가 충분히 LRL을 염려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캐치 할 수 있었다. 다행히 그녀 역시 아이들을 좋아하는 온화한 성격임이 한몫 단단히 했다. 어린 아이들을 대상으로 했던 작품의 주연으로서 쌓은 관록이 그런 곳에서 의외의 효율을 발휘하는 것일까?


"그래도 저번에는 저와 같이 먹자며 참치캔을 들고 왔는데, 언니를 챙기는 마음이 너무 기특하고... 또 같이 먹는 다는 사실이 기뻐서, 그만 두 캔이나..."


그때 블라인드 프린세스의 입에서 흘러 들을 수 없는 내용의 증언이 쏟아져 나왔다. 최근 오르카는 연달아 시행된 대규모의 작전으로 창고 봉쇄령이 내려진 참이다. 당연하게도 계획 입안과 시행 및 감독 담당자는 안드바리였고, 나 역시 그 계획을 군말 않고 결재 한 뒤 따르는 중이다.


'초코바를 훔치다 적발된 알비스가 안드바리에게 끌려갈 때의 그 모습은... 가히 사형수와 같았으니까...'


세상에 그렇게 무서운 광경이 또 있을까. 너무도 큰 공포에 질리면 피부가 하얗게 질려버린다는 소리를 들어봤는데, 실제 알비스는 하얗게 변하다 못해 평소 입고 다니는 설상복이 어둡게 보일 정도로 공포에 질려 끌려갔다. 레오나 역시 고개를 가로 저으며 구원을 포기할 정도였기에, 더욱 기억에 남는 아련하고 무서운 추억이리라.


아무튼, 그런 와중에 LRL이 참치캔을 들고 왔으며, 심지어는 두 개나 같이 먹었다는 블라인드 프린세스의 증언. 이건 변명의 여지가 없었다.


"그 참치... 매우 높은 확률로 장물이야..."

"네? 자, 장물이라니요?"

"최근 오르카 호는 연속된 작전으로 창고 봉쇄령이 내려졌거든... 그런데 지급된 적 없는 참치캔을 들고 왔다는 건..."

"저는 그런 줄도 모르고... 어, 어쩌죠?"


당황한 듯 말끝을 흐리는 그녀를 보니 자연스레 장난기가 동하기 시작했다. 관심이 가는 이성에게 짓궂은 장난을 치는 것은 사내로 태어난 생물의 본능이라 하던가. 마침 서로 친해지고 싶은 와중이었으니, 이보다 좋은 자기 합리화를 할 구실도 없을 것이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니 이제 망설일 것도 없이 그것을 시행하는 것 뿐. 나는 목소리를 낮게 깔고는, 당황해 하는 그녀의 곁에 앉으며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요, 용살자..?"

"쉿! 몰라서 그랬다지만, 엄연히 절도를 했으니까 말이지... 이거 어떤 벌을 줘야 할까~?"

"으읏..! 버, 벌이라니..."


한번 불이 붙으니, 변태 아저씨가 된 것 마냥 술술 성희롱적인 발언이며 행동이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어디 까지나 장난이 구색이었지만, 이것이 숨기지 못할 천성이라는 것일까. 그러나 그런 생각마저도 그녀의 풍부한 가슴에 손이 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꺄앗! 용살자! 거, 거긴 가슴...! 흐읏!"

"어허! 죄인은 벌을 받으라."

"죄인이라니..."


억울한 듯 짧게 탄식한 그녀였지만, 결국 칼자루는 내가 쥐고 있었으니 이대로 반항하는 그녀에게 조금은 더 짓궂은 장난을...


"이건... 그렇군요. 이것도 다 인류를 재건하기 위해서..."

"어?"

"어쩔 수 없네요... 비록 '어쩔 수 없이 당하는 처벌' 이지만... 전, 인류의 재건을 위해서 라면..."

"어어?"


본래 여기서는 싫어하며 수줍어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정상 아닌가? 왜 그녀는 적극적으로 궤변을 늘어놓기 시작하는 것일까? 여러 의문들이 머릿속에 가득 떠올랐으나, 결국 그 생각은 길게 이어가지 못했다. 어느새 압도적인 힘으로 그녀가 내 위로 올라타 옷을 벗기기 시작했으니까.


"아, 아니야! 난 그저 장난으로..! 겨, 결코 그런 뜻이 아니...!"

"쉿..."


어느새 붉어진 얼굴로 수줍어하던 숙녀의 얼굴은 없어지고, 완벽히 포식자의 얼굴로 변한 블라인드 프린세스가 내 입을 가볍게 한 손가락으로 틀어 막고는 말을 이어나갔다.


"그런 뜻이 아니라니요... 후훗..."

"그러니까 그게..!"

"그 뜻이 맞아요. 방금 제가 그렇게 정했거든요."


언제 소환된 것인지 그녀의 무지막지한 대검이 내 옆에 꽂혔다. 그리고 매혹적인 붉은 입술 사이로, 그녀의 혀가 낼름 삐져 나오며 채액을 바르기 시작했다. 마치, 먹잇감을 눈 앞에 둔 뱀과 같이. 어느새 피식자에서 포식자로 돌변한 그녀가 환희의 미소를 짓는 것을 마지막으로 내 의식은 끊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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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년 이거 아스널 못지 않은 년이었노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