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편 모음집     




 

 

“예상 밖의 사건이야. 해결이 쉽지 않겠어.”

 

사령관실로 찾아와 보고를 전하는 리앤의 표정에는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져있었다. 미소녀 천재 탐정이라 자부하며 어지간한 사건에는 눈 하나 꿈쩍하지 않는 그녀가 스스로 난항을 예견하자 사령관도 사안의 심각성을 다시금 실감했다.

 

“너무 비관적으로 보지 마. 불가능을 제외하고 남은 것은 아무리 믿을 수 없어도 진실이니까. 소거법으로 답을 찾으면 되지.”

 

“그래, 여태까지 해온 것처럼 그렇게 되면 참 좋겠어.”

 

사령관은 그녀를 북돋아주며 커피를 내밀었다. 커피잔을 받아 그윽하게 향을 맡은 리앤은 아직 커피는 입에 대지 않았지만 이미 입 안 가득 퍼진 쓴맛을 느끼며 답했다.

 

“리앤 네가 예상 밖이라는 수식까지 붙여가며 말하는 것도 이해해. 다른 사람도 아닌 칸이 리마토르를 납치하다니, 3류 찌라시보다도 못한 이야기잖아.”

 

“그러니까 말이야. 리마토르 교수가 불륜을 저질렀다는 찌라시를 봤을 때도 가짜일 거라고 생각했고, 신고를 받았을 때도 허위신고라고 생각했어. 도무지 진짜일 리가 없으니까.”

 

“그렇지만 어쩌겠어. 불가능을 지우고 남은 답이 가장 불가능해보이지만, 그게 유일한 답이니 진실로 받아들여야지.”

 

커피잔을 입에 댔다가 뗀 사령관은 처음에 했던 말을 다시 끌고 왔다. 그의 입가에 묻은 커피를 검지로 닦아 자신의 입으로 가져간 리앤은 웃으면서 전에 본 영상을 화두로 꺼냈다.

 

“분명 이런 사이였지. 리마토르 교수와 칸 대장이 슈크림을 닦아주면서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영상이 엄청난 인기를 탔었잖아.”

 

“탈론 허브 접속자가 폭증해서 유미가 나한테 서버 증설을 해달라고 요청을 몇 번이나 했어. 그만큼 둘의 사이는 오르카호 내에서 뜨겁게 타오르는 순애였지.”

 

한때 오르카호에서 그 영상을 안 보면 간첩이라는 말까지 돌 정도로 인기가 높았고, 실제로 그 영상을 프로파간다에 넣자 펙스 측 귀순자가 한 트럭이나 나왔기에 사령관과 리앤 모두 둘의 관계는 의심하지 않았다. 리앤은 커피를 홀짝이며 의심하지 않았던 전제에 물음표를 달았다.

 

“맞아, 왓슨. 둘이 그렇게 사랑하는 사이였다는 점이 이 사건의 시작부터 문제가 돼. 

 

대체 왜, 무슨 문제가 있었기에 납치라는 극단적인 사태까지 벌어졌을까?”

 

“현장에 기절한 하르페이아가 있었다면서. 지금쯤이면 의식이 돌아왔을 텐데 조사 안했어?”

 

“했지. 아주 상세하게 진술을 해줘서 더 문제야. 찌라시 사건 이후로 자신이 리마토르 교수를 사랑하게 되었다고 믿었는데 알고 보니 그건 착각이었고, 오히려 자신이 사랑이라 생각하고 벌인 행동 때문에 단단히 화가 난 칸 대장이 자신을 폭행하고 리마토르 교수를 데리고 갔대. 그 후로는 자신도 모르고. 이게 대체 말이 돼?”

 

사령관은 조용히 고개를 주억거렸다. 상식적으로 절대 납득이 되지 않는 이야기라는 건 누가 들어도 아주 자명했다. 하다못해 지나가던 토모나 스틸 드라코에게 이 이야기를 들려주고 실화라고 해도 거짓말하지 말라고 했을 정도였다. 그러나 핍진성이 결여된 이 이야기는 믿을 수 없는 이야기가 대체로 그렇듯, 거짓보다 더 거짓 같은 진실이었다.

 

“이해와 신뢰는 다른 문제지. 리앤 네가 벌어질 수 없는 일이라고는 해도 유일한 목격자인 하르페이아의 진술은 신뢰할 수밖에 없어. 그렇지 않고서는 수사를 아예 원점에서 시작해야 하잖아. 이런 문제가 아니어도 하르페이아의 성격을 생각하면 진술의 신뢰성은 높아. 그러니 믿어보지 그래?”

 

사령관은 자신의 의견을 정리해 그녀에게 내밀었다. 딱 정론만을 이야기한 그의 주장을 물리칠 이유는 없었기에 리앤은 그의 주장을 말없이 수용했다. 하르페이아의 진술을 곱씹던 리앤은 문득 사령관에게 질문을 꺼냈다.

 

“왓슨, 사랑이란 대체 뭘까?”

 

“음?”

 

“사랑이 뭐길래, 저렇게 사랑하던 사이에서 믿지 못하고 납치까지 저지르는 사이가 되고만 걸까.”

 

리앤의 표정에는 착잡함이 배어있었다. 사건의 실마리가 될 중요한 질문이었지만 그녀는 한 명의 형사로서가 아닌, 한 명의 사랑꾼으로서 답을 찾고 있었다. 그녀의 속내를 파악한 사령관은 괜찮은 답을 해주기 위해 말을 고르다가 문득 칸의 모습에서 리리스를 겹쳐보았다.

 

‘생각해보면 리리스나 칸이나 다를 바가 없군. 사랑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으니까. 그런 면에서 사랑은 폭력이나 다를 바 없기도 하네.’

 

사랑을 위한 폭력. 자신이 원하는 모습을 얻기 위해 상대방을 망가뜨리는 과정을 ‘사랑’으로 포장할 수 있는가. 사령관은 긴 호흡을 골랐다.

 

“사랑이 뭔지는 나도 잘 모르겠어. 그렇지만 굳이 꼽자면 극독이라 할 수 있겠지. 중독되면 헤어 나올 수 없고, 심하면 자신을 망가뜨리니까. 거기에 타인까지 건드리면서 스스로 아무 문제없다고 합리화할 테니 독 중에서도 가장 심한 극독이지.”

 

호흡 끝에 사령관은 자신의 생각을 제시했다. 그의 의견을 들은 리앤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말을 입안에서 여러 번 굴렸다.

 

“극독이라... 일리가 있네.”

 

“받아들일만한 답이라니 다행이구만.”

 

“충분히 좋은 답이야, 왓슨. 이 말 대로면 당장 서둘러야겠네. 리마토르 교수가 칸 대장의 사랑에 중독되어 죽기 전에 살려야 해.”

 

“그래, 지원은 얼마든지 해줄 테니 빠른 수사 부탁해.”

 

리앤이 손을 흔들며 방을 나서자 사령관은 환풍구를 곁눈질로 슬쩍 쳐다보았다. 환풍구 틈새 사이로 비치는 노란 눈동자는 방문객이 나가자 몸을 드러냈다.

 

“리리스, 리마토르는 찾았어?”

 

“네. 안드바리가 관리하는 창고 천장을 지나는 파이프 사이에 빈 공간이 있는데, 그 곳에 방을 만든 걸로 추정돼요.”

 

“근거는? 확실하게 있지?”

 

“오르카호 밖으로 나간 흔적은 없으니 칸 대장과 리마토르는 선내에 있을 거에요. 오르카호에 아무리 방이 많다고 해도 들킬 가능성이 높은 곳을 사용할 가능성은 0에 수렴하므로 환풍구 전체를 돌아다니면서 통상적이지 않은 공간에 몸을 숨길 가능성에 더 무게를 두었죠.

 

그 결과 창고 위 공간에서 갑자기 측정되는 소음 데시벨이 올라가는 걸 확인했어요. 그 파이프는 산소공급용 파이프라 바람 소리가 아닐까 싶어 미세한 소리까지 수집해서 분석한 결과, 칸 대장의 목소리가 검출되었어요.”

 

“그럼 확실하군. 아무도 모르게 시티가드에 정보 넘겨.”

 

“알겠어요, 주인님.”

 

리리스는 사령관에게 살짝 고개를 숙이고는 다시 환풍구로 몸을 감췄다. 사령관은 리리스가 사라진 자리에 머물던 눈길을 돌리려다가 생각을 바꾸어 잠시 그대로 두었다. 그녀의 온기가 사라지도록 시선을 치우지 않은 그는 조용히 했던 말을 뇌까렸다.

 

“사랑은 극독이지.”

 

 


 

“흐읏, 헉....”

 

살과 살이 맞대는 소리. 거칠게 흘리는 교성. 터질 것 같은 가쁜 숨소리. 야릇한 체액의 냄새. 좁은 공간은 두 사람의 흔적으로 빈틈없이 가득 찼다. 칸은 멈추지 않고 그의 몸 위에서 춤을 추었다. 위 아래로 반복되는 폴 댄스는 그녀의 쾌락이자 안식이었다. 자신이 사랑하는 이에게 자신을 각인시키고 있다는 과정의 끝없는 반복은 채워지지 않은 그녀의 불안을 철철 넘치고도 계속 채우고 있었다.

 

“따뜻해...”

 

칸은 발갛게 상기된 표정으로 혼잣말을 허공에 날렸다. 떨리던 몸이 이제는 떨리지 않았다. 자신의 안팎을 넘나들고 채워지는 연인의 온기가 그토록 따스한지 처음 알았다. 충족감을 느끼며 칸은 자세를 고쳐 자신의 아래에 있는 리마토르의 가슴팍에 손을 얹고 엎드렸다.

 

“하... 이렇게 둘만 있으니까 정말 좋다. 당신이랑 처음 보냈던 첫날 밤이 떠올라. 그때 입은 란제리를 당신이 좋아했잖아. 오늘도 입고 왔으면 더 잔뜩 사랑해 줬으려나?”

 

칸은 대답이 없는 그의 목덜미를 살짝 깨물었다. 통증에 잠시 몸이 멈췄지만 그것도 잠시, 리마토르의 몸은 다시 떨리고 있었다. 초점이 풀려 어디를 보는지 알 수 없는 그의 눈 아래에 위치한 입에서 침이 줄줄 흘러 시트를 적시자 칸은 활짝 함박웃음을 지었다.

 

“하아... 좋아. 당신이 보고 있는 쾌락이 오롯이 나로 채워진다는 사실이 너무 좋아. 정신을 차렸을 때면 옆에 내가 있을 거고, 후폭풍으로 제정신을 차리기 힘들 때도 내가 있을 거야. 당신의 모든 순간에 내가 있다는 사실, 이게 운명 아니면 뭐겠어?”

 

칸은 미친 듯이 웃었다. 어쩌면 이미 미쳐버린 자신이 미친 듯이 웃는다는 표현이 부자연스럽게 느껴졌지만 그녀는 이 순간이 행복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오싹하게 자신의 몸을 타고 오르는 전율을 만끽하며 그녀는 시간을 묶어놓길 바랐다. 시간을 묶어놓을 수 없지만 흔적은 새길 수 있다는 사실을 떠올린 칸은 허리춤에 묶어놓고 다니는 칼을 꺼내 자신의 몸에 새기기를 시작했다. 날카로운 칼끝이 살결을 찢는 통증은 이 또한 사랑이라고 생각하자 간지러운 쾌락이 되었다.

 

“짠, 이거 봐. 당신이랑 나랑 영원히 묶여있다는 사실을 알기 위해 내 몸에 흔적을 남겼어. 정말 멋지지 않아?”

 

칸은 리마토르의 손을 들어 자신의 허벅지에 새긴 문구를 매만졌다. 아직 그치지 않은 피가 그의 손가락 끝을 따라 그의 몸에 묻어나자 그녀는 부끄러움을 숨기지 못했다.

 

“당신도 오늘 흔적을 남기고 싶구나. 그치만 내 피는 안 돼. 당신은 당신 피로 써야 유효한 서약이 되니까. 커플문신을 남기면 이제 다른 사람들도 모두 우리를 사랑하는 사이로 볼 거야. 하르페이아 같은 오물이 묻어도 닦아내려고 하겠지.”

 

혼잣말을 멈추지 않으며 그녀는 칼을 고쳐 쥐었다. 그의 옆구리에 자신의 필체로 글씨를 새긴다는 사실이 주는 기쁨은 그녀의 뇌를 녹이고 있었다. 감당 불가능한 쾌락에 사실 분간이 되지 않았지만 그녀는 깔끔하게 칼을 놀려 표식을 남겼다. 자신의 몸에 새겨진 글자와 같은 글자를 쓴 칸은 행복하다는 말로 다 담을 수 없는 극한의 유희에 그의 옆에 몸을 뉘이고 있는 힘껏 그를 끌어안았다.

 

“이제 완벽해. 당신은 나한테서 도망칠 수 없어. 죽음이 우리를 갈라놓는다고 해도 절대 놓치지 않을 거야. 당신은 내 거니까, 아무한테도 주지 않을 거야.”

 

칸은 약 기운에 취해 정신을 못 차리는 리마토르의 귀에 대고 연신 자신의 사랑을 속삭였다. 칼이 그의 옆구리를 지나간 흔적을 따라 손가락을 움직이며, 그녀는 그 글자가 담은 의미가 지금의 자신과 그만을 위해 준비된 명언이라고 생각했다.

 

“Carpe Diem. 이 순간을 즐겨라.”

 

칸은 몸을 일으켜 다시 그의 위에 앉았다. 그의 얼굴 위에 자리를 잡고 그의 숨결을 느끼며 칸은 그가 살아있는 모든 순간에 자신만이 그의 숨결을 안을 수 있으리라는 성취감과 정복감이 섞인 기묘한 감정에 도취되었다. 그의 숨결을 충분히 느낀 그녀는 몸을 아래로 내렸다. 그의 흔적을 남겨주는 물건으로 자신의 안에 그림을 그릴 생각에 칸은 심장 박동이 점점 빨라지는 걸 느꼈다.

 

그녀의 심장 박동에 맞추어 아래에서 파고드는 소음도 점차 커져갔다. 마침내 그녀가 그의 사랑을 탐하기 시작한 순간, 그녀의 욕망을 끊을 빛이 어둠을 뚫고 들어왔다.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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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편이면 얀데레 에피소드가 끝. 지난 편에서 절정을 찍었으니 이번 편은 조금 순하게 쓰려고 했는데 더 매운 맛으로 진행된 것 같네. 맵다고 해도 칸에게는 좋은 일로 가득하겠지만, 그런 낙원도 드디어 다음편에서 마침표를 맞을 거야. 추가로 '카르페 디엠'은 '오늘을 즐겨라'라는 뜻으로 주로 해석되는데, 찾아보니 '이 순간을 즐겨라'라는 뉘앙스가 강하다고 하길래 이번 편에서는 그 뉘앙스를 따랐어.


사족으로, 연초에 시작한 소설이 연말을 맞았으니 드는 생각인데 그동안 소설을 구상하면서 폐기한 아이디어가 여럿 있어. 연말 정산 같은 느낌으로 폐기한 아이디어나, 아니면 보고 싶은 IF 상황을 댓글로 달아주면 써서 외전으로 올리고 싶은데 어떻게 생각할지 궁금하네. 혹시라도 의견 있으면 보내주길 부탁할게.


부족한 글 읽어줘서 고맙다. 다들 좋은 일 가득한 하루 보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