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쓴거모음


방과 후, 시라유리는 얘기했던것처럼 미호를 데리고 왔다.


"후훗, 미호양? 선생님과의 데이트를 고대한다고 하지 않으셨나요?"


"그러긴 했지만...회장이랑 같이 하는건 생각하지 못했으니까."


싱글벙글 웃는 시라유리와 다르게, 미호는 그리 탐탁치않은듯 했다.


"으...쌤이 인기남인건 이해하는데 왜 회장까지 같이 가는거야..."


"어머, 싫으신가요? 그럼 저와 선생님 단 둘이서 데이트하면 되겠네요♡"


"그건 안돼!"


그렇게 되어서, 두 소녀와 함께 데이트를 하기로 했고...


지금, 나는 침대에 누워있으며 시라유리와 미호, 두 소녀가 내 양옆에 함께 누워있는 상태가 되었다.


어쩌다 이렇게 흘러간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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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분 전.


두 사람이 고른 데이트 장소는 미호네 집으로 정해졌고, 둘의 의견에 나는 평소처럼 미호네 집으로 차를 몰았다.


"...왜 여기서 하는거야? 다른 장소도 많은데 하필 미호네 집?"


평소 과외할때와 다를게 없는 구도로, 우리 세 사람은 미호의 방에서 마주보고 앉아있었다.


"어머, 저는 바깥에서 소문이 나면 곤란해서요."


얘는 이미지 관리가 있으니까 이해가 갔다.


"...근데 너는?"


"왜, 왜요? 쌤 맨날 우리집 와서 공부만 가르치고 가니까...그래서..."


"그래서? 미호양, 말을 할때는 끝까지 해야죠. 그래야 상대방이 의도를 알아듣는답니다?"


미호가 말 끝을 흐리자, 시라유리는 위치를 슬쩍 옮겨 내 뒤로 간 뒤 어깨에 손을 얹었다.


"선생님께서는 마음을 읽는 분이 아니니까...말로 설명해야죠?"


시라유리의 말에 자극당한 미호는 곧바로 두 눈을 질끈감고 소리쳤다.


"그냥 쌤이랑 매일 방에서 공부하는 대신 다른거 해보고싶었어요! 데이트 기분같은거!"


시라유리가 슬쩍슬쩍 도발하면서 미호의 적극성을 이끌어내고 있다.


마음같아서는 내가 이끌고 싶지만...아무래도 학생한테 먼저 손을 대는건 조금 그랬는데 다행히 시라유리가 이런 부분에서 눈치빠르게 잘 도와주고 있다.


"그럼 미호양이 생각하는 데이트 기분은 어떤건가요?"


"에, 그게...그러니까...가, 같이 침대에 눕는거?"


미호는 당황한 나머지 냅다 침대발언을 뱉었다.


"어머나, 어머나. 대담하시네요?"


"그, 그그그 그런건 아니야! 그런건 안할거고! 그냥..일단...지금은...같이 누워만 있는걸로...안될까요?"


당당하게 구애하겠다는 선언할때의 패기는 어디로간거지? 아니, 어쩌면 일선을 넘을 각오까지는 못한걸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미호는 나랑 그저 함께 누워있기만 하는거로 진행이 되어버렸다.


"어머, 그럼 저는 선생님의 팔베개를 베고 눕고싶네요."


"나, 나도!"


그렇게 두 소녀에게 팔베개를 해주고 누운지 10분째.


"......."


팔이 저리다. 미리 생각해두고 해준게 아니라서 자세를 바꾸기에도 늦었다.


"....미호양."


"왜요?"


"이런걸로도 괜찮은건가요? 대담하게 나가지 못하면...언젠가, 뺏길지도 모르는데?"


"나는 리앤언니처럼 가슴이 크지도 않고, 회장처럼 만능의 학생도 아니고, 또 쌤 주위에 있는 다른 여자들보다 못할지도 모르지만...그렇다고 서두를 생각은 없어. 나만의 방식대로 공략할거야."


"어머, 당돌하네요. 그럼 제가 더 앞서나가도 된다는 뜻일까요?"


두 소녀는 서로를 노려보며 미소짓고 있었다.


참 어딘가의 청춘물이라던가 연애물에서 주인공을 두고 히로인 자리를 다투는 상황에서 보이는 그런 훈훈한 모습이었지만...


"...같은 연적을 두고 서로 선의의 경쟁을 하겠다고 다짐하는 모습이 참 보기 좋은데, 당사자 앞에서 그러는건 좀 아니지 않아?"


내 앞에서 대놓고 그런 소리하는건 좀 아닌데?


"이제와서 뭘 그러시나요?"


"쌤, 이렇게 된거 데이트 느낌 팍팍 내게 커플 음식이나..."


미호가 한발짝 더 진도를 나가려한 그 때.


똑똑.


"실례합니다."


"...뚱아?"


뚱이라는 별명을 가진, 미호네 자매인 별이가 들어왔다.


언제부터 집에 있었던거지?


"너 어제 빌려간 내 책...어, 어?"


뭔가를 돌려받으려 온듯한 별이는 나와 미호, 그리고 시라유리가 나란히 누워있는 침대를 보고서 당황했다.


"그...저...실례했습니다!"


쾅.


그녀는 바로 문을 닫고 나갔고, 우리 세 사람은 놀란데다 당황하기까지 했기에 그 자리에 굳어있었다.


"아아, 집 데이트에는 낭만이 있지만 세 사람만의 시간이 방해받는다는 이런 단점도 있네요. 아쉬워라."


우리중에서는 시라유리가 가장 먼저 일어났고, 그녀는 부드럽게 몸을 일으키면서도 여유로운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으, 뚱이를 까먹고 있었네. 금요일이라서 어디서 놀고 올줄 알았는데. 아니면 오늘 일찍 집에 온건가?"


갑작스러운 자매의 난입에 미호는 난감한 기색을 보이며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미호양? 다음번 데이트에는 적당히 주위가 가려진 장소를 따로 찾아봐야할것 같네요."


"네...그래야겠죠. 어떻게 얘기해야하지...?"


우리 세 사람은 방금전의 흔적들을 전부 지운 뒤, 아무 일도 없었다는듯이 바닥에 앉았다.


"그러게요, 뭐라고 변명해야할까요? 저는 아예 관계를 만들어도 좋은데."


또 저런 소리를...잠깐, 근데 우리 뭐 이상한짓은 안하지 않았나? 그냥 침대에 누워만 있었는데.


...아닌가? 이상한짓 맞나? 요즘 이런저런 상식이 파괴되고 있어서 잘 모르겠다.


"그런데, 변명이 딱히 필요한가요? 미호양이 선생님을 좋아한다는건 가까운 지인들 중 모르는 사람이 없을것같은데."


시라유리의 말에, 나와 미호는 순간 그럴듯하다고 생각했다.


"아니, 그걸 알아도 내가 받아주는 그림이 좀 이상한데."


"뭐...아무튼, 미호양의 자매분께서도 그리 이상하게 여기진 않으실거란거죠. 물론 선생님을 보는 시선이 따가워지긴 하겠지만...선생님에게서 거리를 두는 여성이 하나라도 늘어난다면 저한테는 좋은 이야기라. 후후후."


그렇게 미호와 시라유리가 함께한 집 데이트?를 끝낸 뒤, 나는 시라유리를 태우고 집으로 향했다.


"그럼, 데이트도 끝났으니 제로랑 카엔이 어디로 갔는지 얘기해줄래? 가족 관련이라고만 들었는데."


"데이트가 원활하게 흘러가지는 않았지만...어쨌든 거래는 거래니까 말씀드리죠. 두 분의 모친에게 호출이 있었다고 하더군요. 저희도 생사를 모르고 있었는데..."


모친의 호출?


"모친?"


"네, 둘의 힘을 합친것 이상으로 강하다는 전설적인 쿠노이치입니다. 그녀 덕분에 과거 저희 일족도 급격히 세를 불릴 수 있었고요."


"내가 알기로, 카엔이랑 제로는 가족이 없다고 들었는데."


본인들이 모르는데, 사칭하는 가짜 아니야?


"그러나 살아있었죠. 제로양과 카엔양이 그 호출에 응한걸 보면 진짜일테고. 그렇지만, 어째서 죽은거로 위장한걸까요? 으음, 그녀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있는 저희도 자세한 정보가 없으니 잘 모르겠네요."


밀접한 관계를 맺고있었다고는 하지만, 시라유리도 자세히 아는게 없는것같았다.


"뭐,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수 밖에 없나? 친모라면 위험할 일도 없을것같고."


"글쎄요...쿠노이치인만큼 위험할수도 있을것같은데요."


시라유리가 불길한 소리를 하긴 했지만, 나는 별 문제 없을거라 믿고 집으로 돌아갔다.


그렇게 집에 돌아갔는데...


"미안하지만, 나가줘."


집주인 할아버지가 나보고 나가란다.


"...예?"


"나가달라고. 방 빼라는 말이야."


이게 대체 무슨 소리인걸까.


"아니, 갑작스럽게 말하시면..."


"저거 집 문, 망가진거 맞지? 다시 붙이긴 했지만 문틀쪽에 뗐다가 붙인 흔적이 보여."


닥터가 저지른 짓이지만, 그걸 설명해봐야 안믿어줄거다.


"........"


"그리고, 상태 확인하려고 열어보니까 안에 무슨 칼자국도 나있던데...나는 그런 위험한 사람 세입자로 못둬."


쿠노이치 자매가 한 짓이지만, 역시 설명해봐야 안믿겠지.


"아, 그래도 집안까지 다 살펴보지는 않았으니 불법이라고 신고할 생각하지마. 집주인이라서 문 고장난거 수리한거니까."


법적으로 뭔가 해볼 건덕지도 없다. 그리고, 내가 저걸 해명할수가 없으니 그럴 생각도 없다.


"심지어...여자 소리가 들린다고 항의가 엄청나게 많아. 그것도 매일 다른 소리가 들린다고."


집주인 할아버지는 그렇게 말하며 내 옆에 서있는 페로를 쳐다봤고, 페로는 묵묵히 내 옆에 서있을 뿐이었다.


...다른건 억울할 부분이라도 있는데 이 부분은 내 선택의 결과라서 어떻게 말할수가 없다.


"문 부숴진건 수리비 청구 안할거고, 보증금이랑 월세도 돌려줄테니 내일부터 나가줘."


"아니, 내일부터 나가라고요? 집은 언제 구하고요?"


불법이잖아! 폭거잖아!


"고소 안하고 돈도 그대로 돌려주는데 그정도는 감안해야지. 안그러면, 신고라도 할까?"


...신고는 어쩔 수 없지. 집안을 뒤지면 제로나 카엔의 물건이 들키게 될거고, 익스프레스가 두고간 용품들도 들킬거고...아마 부모님한테도 연락이 가겠지.


"네, 알겠습니다."


나는 집주인 할아버지한테 알겠다고 대답한 뒤, 페로와 함께 집으로 들어왔다.


"어쩌지...?"


"사전고지 없는 퇴거지시는 불법이니, 나가실 필요 없습니다."


"아니, 나가줄거야."


"예?"


일단 오늘 안에 거처를 정해야한다.


아니, 그 이전에 집에 있는 짐을 정리해야한다.


"짐이 문제인데...옮기는건 둘째치고 보관할 장소가 없단 말이야."


물품보관함같은데 넣을 수 있는 규모가 아니니까 창고는 집이든 넓은 공간이 하나쯤 필요하다.


"컴패니언의 사무소를 정리하지 않았다면 보관이 가능했을텐데...도움이 되어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아니, 이건 내가 어떻게든 해야지."


지금 가진 돈이 없으니까 창고를 임대하는건 힘들다.


애초에 빌린다고 결정하자마자 바로 빌릴 수 있는것도 아니고.


"그나마 다행인건 침대를 빼면 부피를 줄일 수 있다는 점이려나."


침대를 비롯한 각종 필수 가전제품은 옵션으로 들어있었으니 이불이랑 토퍼, 책상과 컴퓨터, 행어, 옷가지, 그리고 쿠노이치자매들의 물건들만 빼면 된다.


...침대를 빼도 좀 많은데?


"...사장님한테 부탁해볼까? 상자로 정리해서 가게 창고에 쌓아두면 가능할것같은데."


"장소섭외를 직접 하실건가요? 그렇다면 일단 자매들을 불러서 짐 정리를 돕게 하겠습니다."


역시 일처리를 똑부러지게 하는 좋은 경호원이다.


"아, 그렇게 해주면 고맙지."


지금 시간이면 사장님은 몰라도 키르케 누나는 있으니까 창고에 공간정도는 확보해둘 수 있을지도.


"그럼 나는 잠깐 바에 다녀올게."


"동행하겠습니다."


"괜찮...아니, 지금 정리해봐야 거기서 거기겠지."


짐이 적기는 해도, 페로 혼자서 옮길 수 있는 양에는 한계가 있을테니 나중에 다같이 모여서 하는게 나을거같다.


바에 가보니, 뜻밖에도 사장님도 유미도 있었다.


"뭐, 뭐야? 왜 이렇게 일찍 왔어?"


"으헤헤, 철남이다~잘 지내쒀?"


...정장차림이 아닌걸 봐서 옷을 갈아입었거나, 오늘이 휴일인 모양이었다.


아니지, 금요일이구나. 휴일은 아니겠지.


"뭐야, 너 왜 여기서 그런차림으로 술먹고있어? 휴가냈어?"


"그 히스테리 마녀가 출장갔거든. 그래서 칼퇴했지~"


아아, 금요일 칼퇴라니. 굉장하네.


"그보다, 너 왜 이렇게 빨리 왔어?"


"아, 그게 말이죠 사실..."


나는 사장님의 물음에 곧바로 답해줬고, 이 자리에 있던 모두가 내 집에 대한 사정을 들었다.


"그거 불법 아니야? 신고해버려!"


그걸 못하니까 여기서 상담하는거란다.


"그보다, 대체 어쩌다가 문을 날려먹은거야?"


"......."


"...사정은 알겠어. 그럼 그동안 내가 갖고 있는 매물중 하나에 들어와서 살래? 전세집이 비는데."


그냥 창고만 빌리러 온건데, 사장님은 흔쾌히 집을 내주겠다고 하셨다.


"그래도 돼요?"


...잠깐, 생각해보니까 여자소리의 근원인 첫 타자는 사장님인거잖아? 그 책임이 있다고 생각하시는건가?


"그래, 아파트니까 문제도 없...아."


휴대폰을 꺼내 뭔가를 살펴보던 사장님의 표정이 굳었다.


"아?"


"전세 기간이 남아있네. 1주정도."


전셋집이 아직 비어있지 않은 모양이었다.


1주일정도 있어야한다고? 아니지, 1주일 정도면 모텔같은데에서 지내도 되는거잖아.


"1주일이면 문제 없을거같네요. 그냥 모텔같은데 가도 될거같고..."


"혹시 괜찮으면 그동안 내..."


사장님이 뭔가를 말하려던 그 때, 유미가 내 손목을 붙들었다.


덥썩.


"으헤, 그럼 너어어...내가 살던 고시원에에..잠깐 들어가서 살래애? 빈 방 많은데에..."


"고시원? 나쁘지 않네. 싸게 해결될것같고."


그보다 그 잠깐 사이에 애가 만취했네?


"...키르케 누나, 양주 섞었어요?"


"얘가 주문했어. 나보고 뭐라 하지마. 그보다 잠깐 살거면 고시원이 나은 선택이지."


키르케누나도 고시원에 찬성했고, 나도 그리 나쁘지 않다고 판단했다.


"잠깐, 고시원이면 좁을텐데? 짐도 있잖아."


하지만 사장님은 고시원에 반대했다.


"짐정도야...쓰아장뉘미, 맡아줄 수우..있겠죠."


"........"


사장님은 갑자기 매서운 눈을 하며 침묵했지만, 이내 표정을 푸셨다.


"그래, 원룸정도크기면...얼마 안되겠지. 내 집에 보관해도 문제는 없을거고."


"이야, 역시 부자 사장님이셔~나도 월세쟁이라 돕긴 힘든데."


"아무튼, 고시원이라...괜찮을까? 야, 유미야. 정신 좀 차려봐."


고시원에 살던 경험이 있는 유미에게 물어보려고 했지만, 지금 유미는 대답해줄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으음...으에으으..."


이미 뻗었나.


"내가 대신 답해줄게. 일단 거리는 여기랑 가까우니까 출근걱정은 안해도 돼."


아니...내가 걱정하는건 그쪽이 아니라 나랑 같이 사는 애들 얘기였는데. 대놓고 얘기하기는 좀 그렇겠지.


"면적은 어느정도에요?"


"평범한 고시원보다 조금 넓은 정도. 근데 공간이 필요하면 그 고시원에 빈 방 많으니까 방 두개 써도 되잖아? 일주일만 있을거니까 돈이 그렇게 많이 필요하진 않을거 아니야?"


방 두개, 그것도 붙어 있는 방이면 제로나 카엔이 바로 달려올 수 있겠지.


뭐 두 사람이면 고시원 방에 숨는것도 가능할것 같지만, 아무래도 내가 불편하다.


"그건 보고 생각해볼게요. 근데 그 고시원 이름이 뭐에요? 그건 보고 찾아가야지."


"이름이 아마...포레스트 고시원이었나...?"


포레스트...숲?


"숲 고시원?"


"나도 몰라, 뭐 특별한 의미가 있어서 이름을 붙이겠어?"


하긴, 뭐 큰 의미는 없겠지. 숲에 있는것처럼 상쾌하게 공부 잘 하라는걸지도.


"그럼 잠깐 다녀와볼까...?"


"나도 갈게. 너 거기 어딘지 모르잖아."


"나도 갈거야. 거지꼴이면 그냥 다른데로 안내해줄게."


"동행하겠습니다."


그렇게 나는 바의 식구들과 함께 앞으로 일주일간 임시숙소가 될지도 모르는 포레스트 고시원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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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화에 계속...


이걸 마지막으로 올해에는 더이상 글 안쓸거임. 이건 사나이로서의 약속. 절대 꺾이지 않는 약속임. ㄹㅇ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