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장에 맞지 않게 흉부가 부푼 흰 소녀는 두 팔을 하늘 위로 뻗고 있었다. 기지개를 켜는 게 아니다. 벌을 받는 중이었다. 죄목은 보급품 탈취. 혼내는 이는 앞의 소녀보다 10cm는 작지만 똑 부러지는 인상의 소녀.

 

“히잉. 안드바리는 구두쇠. 맨날 나만 가지고 그래.”

“알비스 언니. 아니, 알비스 일병. 오르카 호는 전 세계 바다를 이동해요. 인류는 멸망했고 본래 인류가 다스리던 터전은 철충이 불법점거. 종종 저희 같은 저항군이 있습니다만 우호적일 거란 보장은 없죠. 따라서 오르카의 보급은 원활하지 않아요.”

 

안드바리는 상자의 내용물과 태블릿의 재고를 확인하고선 분출하기로 한 초콜릿 바의 수량이 맞지 않음을 확인하고 한숨을 뱉었다.




부족한 건 초콜릿뿐 아녔다.

 

“발할라 자매단의 막내가 아닌 행정보급관으로서 질문합니다. 나만 가지고 그래란 말은 다시 말해 다른 사람도 보급품을 빼돌렸다. 알비스 일병은 그 장면을 목격하고도 묵인했다. 제 말이 틀렸나요?”

 

구구절절 옳은 말이었다. 잡아떼려면 뗄 수 있는 뻔한 유도신문이지만 알비스는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트릴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발할라의 막내는 빈틈이 없고 착실하지만 바로 위의 언니는 허술 그 자체였다.

 

행실은 허술해도 알비스에겐 자매를 지키는 방패로서 자긍심이 있다. 설령 고문이 동반한다 해도 님프의 이름을 실토할 수는 없었다.

 

“님프 언니죠?”

“어떻게 알았지?!”

 

모름지기 행정보급관이란 병사의 머리 위에서 노는 존재.

 

“어떻게 알았냐는 표정이네요. 간단한 추론입니다. 님프 언니가 가져간 건 에너지바죠? 언니도 참. 그건 식사 대용이지 간식이 아닌데. 그러니까 한 치수 큰 전투복을 찾지.”

 

배 둘레 햄이 증식한 결과, 허리의 벨트가 숨이 막힐 정도로 죄는 모양이었다.

안드바리는 소실된 나머지 품목을 확인하고 알비스와 님프를 용의 선상에서 제외했다. 행보관으로서 항상 품위 유지할 의무가 있는 그로서는 입에 담기도 부끄러운 물품, 콘돔. 알비스는 그걸 사용하기에 어렸고 소녀 감성인 남프는 불어난 체중을 신경 쓰고 있었으니 쓸 일 없음.

 

소거법으로 범인은 레오나. 혹은 발키리나 베라, 샌드걸. 넷 중에 한 사람.

 

“설마설마했던 레오나 대장까지.”

 

답을 도출하기까진 몇 초 걸리지 않았다.

 

철혈의 레오나란 양반이 절차를 무시하고 보급품에 손을 댈 줄이야. 안드바리는 좌절했다. 성실한 베라와 샌드걸은 애초에 빼돌릴 생각을 안 할 터. 발키리는 직접 찾아와 콘돔을 당겨서 받을 수 있느냐고 물었으므로 제외.

 

골이 아팠다.

 

“당신이 이번에 복원됐다는 발할라의 막내? 듣던 대로 엄~청 빈약한 몸이네!”

 

자매단 내부의 일만으로도 고생인데 불청객이 찾아왔다.

 

테티스는 새 바이오로이드가 자신보다 작다는 소문을 듣고 단숨에 날아왔다. 타 부대를 방문할 때 빈손으로 가는 건 예의가 아니라며 동료들이 챙겨준 엘븐 밀크를 지참한 채.

 

불행하게도 안드바리에겐 대사부터 선물까지 전부 도발로 보였다. 레오나 대장이 엘븐 포레스트 메이커가 추천한 버터밀크 다이어트로 살을 빼긴커녕 반대로 살이 쪘으므로.

 

또 하나, 무엇보다 엘븐밀크를 마셔도 가슴은 커지지 않았다. 재생산된 날부터 지금까지 매일 헛된 희망을 품고 자신의 몸으로 임상실험한 결과였다.

 

“나보다 10cm는 작은데 보급관이라니 초 웃겨. 우리 난쟁이, 보급품은 나를 수 있겠어?”

 

테티스 나름대로 진심 어린 걱정이었다. 말투는 태어날 때부터 저런 걸 어떡하겠는가.

 

“한 손으로 사격하느라 중심 잃고 허우적대는 분한테 들을 소리는 아니네요.”

 

물론 안드바리에겐 인내심 테스트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녔다. 그리고 보급관의 인내심은 오래가지 않는다. 예외는 없다.

 

“난쟁이는 가슴이 빈약한 만큼 마음도 좁은가 봐?”

 

테티스도 인내심의 끈을 놓았다.

그러나 이곳은 호라이즌이 아니라 발할라 부대의 창고였다.

 

“알비스 일병. 아니, 알비스 언니. 오늘 일은 이만 용서할게요. 아니, 제 부탁을 들어준다면 보답으로 넉넉한 초콜릿을 약속하겠습니다.”

“명 받들겠습니다, 행보관님! 알비스는 뭐하면 될까요?”

“테티스님도 저 만만치 않게 마음이 좁네요. 넓은 마음이 뭔지 경험할 필요가 있어 보여요.”

 

가라, 알비스. 누르기! 안드바리의 검지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알비스가 토끼처럼 뛰어올랐다. 테티스는 자신을 향해 날아드는 알비스에 당황했다.

 

“잠깐 폭력 반대! 사령관한테 이를, 헤붓!”

 

테티스는 가슴이란 이름의 폭력에 얼굴을 맞고 땅으로 추락했다. 안드바리는 승리의 미소를 지으며 당당히 가슴을 피고 손을 올렸으나 기쁨은 오래가지 않았다.

 

손에 닿는 감촉이 다른 자매들처럼 크기는 산봉우리처럼 높고 감촉은 푸딩처럼 몰캉몰캉하지 않았다. 광활한 평야처럼 평평할 뿐이었다.

 

아니, 평야가 아니라 황무지다. 바이오로이드로 태어난 이상 성장할 가능성은 한없이 0에 수렴했기에.

 

승자 없는 참혹한 현장이었다.

 

“우리 부대 실키는 쭈쭈 짱 큰데.”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고 자다 깬 이프리트가 아무에게도 들리지 않게끔 중얼거렸다.




어쩌면 참전하지 않은 그가 창고 속 소란의 진정한 승자가 아닐까?



후기

안드바리가 다른 애들이랑 케미 잘 맞을 것 같아서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