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닐라양. 그래도 말투는 최대한 고쳐보려고 노력해보세요. 어쩔 수 없다고 그냥 놔버리면 결국 사령관님께 상처를 주게 됩니다. 사령관님께서 좋게 넘어가시더라도 알게 모르게 서운해하실 수도 있어요."



오르카 안 카페 호라이즌에서 바닐라는 누군가로부터 자신의 말투에 대한 지적을 듣고 있었다. 



물론 그녀도 알고 있다. 마음 속으로는 다른 자매들처럼 '좋아합니다', '사랑합니다' 라고 말하고 싶지만 정작 입으로 나오는 것들은 죄다 상대를 흉보고 비꼬는 단어들.



다행히 저항군의 사령관은 그릇이 넓어서 그녀의 특성을 이해했고 아량으로 받아들였다. 



하지만 그런 사령관도 결국은 사람이기에 가끔 지쳤을 때 바닐라의 폭언 아닌 폭언은 그의 감정을 할퀴곤 했다. 물론 사령관은 티내지 않지만.



그리고 최근 바닐라가 자신의 말투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는 이유가 따로 있는데 바로 그녀에게 말투에 대해 지적한 인물이 다름아닌 자신과 같은 바닐라 개체였기 때문이다.



정확히는 두번째 인간과 함께 온 '헤이즐리' 라는 이름을 갖고 있는 바닐라.



헤이즐리는 바닐라 개체라는 정체성이 무색하게 굉장히 붙임성 있는 성격과 항상 보여지는 미소, 그리고 입에서 솜사탕이 나온다고 해도 믿을 정도의 배려섞인 고운 말을 하는 자매였다.



"한번 긍정적으로 고민해보세요. 당신도 저와 같은 개체. 제가 변했듯이 바닐라양도 충분히 바뀔 수 있어요.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불러줘요. 아셨죠?"



헤이즐리는 부드러운 미소와 함께 바닐라의 손을 잡아주며 용기를 불어넣어줬다.



[띠링링]



헤이즐리의 휴대폰에 짧은 신호음이 울렸다.



"아? 남편 메세지네? 아아 벌써 시간이...!! 바닐라양, 먼저 가볼께요. 남편이랑 만나서 업무처리 도와줄 게 있거든요. 아무튼 바닐라양도 화이팅이에요~"



헤이즐리는 그렇게 바닐라로부터 점점 멀어졌다. 그녀가 남편을 만나러 가면서 언뜻 대화가 들리는 듯 했다.



"여보 저 지금 가요. 응응. 아니에요 저랑 같이 할꺼니까 저 올때까지 쉬고 있어요 알았죠? 응~. 응? 끝나고 소완씨네 식당에서 티본스테이크 먹자구요? 나 오늘 그거 땡기는거 어떻게 알았데요~? 훗훗. 울남편이 주는 뇌물이니까 더 열심히 도와줘야겠네~~"



"후......."

테이블에 홀로 남겨진 바닐라는 긴 한숨과 고민이 가득한 얼굴로 깊은 생각에 잠겼다.

그녀는 헤이즐리와 두번째 인간이 발견되었을 때를 회상했다.





<<6개월 전>>



"오르카. 호드의 칸이다. 알려준 위치에 정말로 지하시설이 있었고 내부를 수색한 결과 한개의 냉동튜브를 발견했다. 튜브 안쪽에는........ 인간 한명, 바이오로이드 바닐라 모델 한기가 있다. 둘 다 생명반응은 양호하다. 즉각 지원을 요청한다. 이상."



정찰 중 지하시설을 발견해 호드에게 시설 탐색임무를 내렸던 사령관과 지휘부는 칸의 핵폭탄같은 무전보고를 듣고 잠시 패닉에 빠지다 이내 사령관의 결정으로 구조팀을 파견했다. 



구조팀이 현장에 도착하니 칸의 말대로 동면캡슐안에 인간과 바닐라가 함께 잠들어있었다. 그런데 그 모습은 마치 연인이 삶의 마지막을 함께 하듯 서로 껴안은채 잠든 모습이었다.



"이 두 사람...... 연인사이인것 같군......"



주변을 계속 조사하던 칸은 한쪽에 놓여진 탁상에 저 두사람이 함께 찍은 사진을 발견했다. 데이트 중에 찍은 것 같은 사진, 카페에서 서로를 찍어준 것 같은 사진, 그리고 웨딩사진.... 사진 속의 두 인물은 항상 행복한 웃음을 띄고 있었다. 이 사진들과 캡슐 안의 모습이 한결같음을 깨달은 칸은 어렵지 않게 두 사람이 연인내지 부부사이임을 알아차린 것이다. 그런데 어째서 이 두사람이 이곳에 동면중인 것이엇을까.



이윽고 사령관의 지시로 동면캡슐이 열리기 시작했다. 

모두들 긴장하며 두 사람이 깨어나길 기다리는 때 먼저 눈을 뜬 쪽은 바닐라였다.



"으...으..."



바닐라는 아직 덜 깨어났는지 가벼운 신음소리와 함께 몸을 움직이려고 애쓰고 있었다.



"괜찮으신가요 바닐라양? 제 말 알아들으실 수 있나요?"



구조팀으로 함께 온 드리아드가 메딕킷을 들고와 바닐라의 체온과 맥박을 재면서 말을 걸어왔다.



"여기가.... 당신들은...."



"안심하세요. 저희는 인류 저항군이에요."



"제...남편은...."



"남편? 아아... 옆에 인간님 말씀이시군요. 걱정 마세요. 곧 깨어나실꺼에요. 인간님이셔서 깨는데 시간이 좀 더 걸리거든요."



바닐라는 그 말을 듣곤 천천히 남편이라고 하는 인간 옆으로 돌아누웠다. 그리고 그녀가 그에게 하는 말과 행동은 현장에 있던 저항군 자매들과 그 모습을 실시간중계로 보고 있던 사령관과 지휘부를 깜짝 놀라게 만들었다.



"여보... 일어나요... 인류저항군이래요... 내 말 들려요?"



"........."



"내 사랑, 늦잠 그만자고 눈 좀 떠봐요. 응?"



[쪽.]



잠을 깨우는 달콤한 목소리로 말하는 것도 모자라 남편이 계속 안깨어나자 그의 이마와 볼에 키스까지 하는 바닐라를 본 오르카는 상당한 위화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그 중에서 가장 당황한 인물은 다름아닌 사령관 옆에서 수발을 들고 있던 오르카의 바닐라였다. 

지휘부의 모두가 화면 너머의 바닐라와 사령관 옆에 있는 바닐라를 번갈아보면서 오묘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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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 진중하게 쓰는건 아니고 담백하게 써보는 글이다.

이렇게 단편으로 끝내도 되고 반응 좋으면 더 써볼 수도 있도록 마무리를 저렇게 끝내봤어.

필력은 좋지 못해서 글을 써놓고도 '이걸 올려야 하나 말아야 하나' 한참 고민한건 비밀. 

그래도 읽어줬다면 정말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