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비스 이 녀석...보급품 받아오랬더니 또 어디에서 농땡이 피고있는거야?"


칼리아흐 베라는 두 팔을 걷어올린채 두리번거리며 주변을 돌아다니고있었다

이런식으로 보급심부름보냈더니 초코만 낼름 챙겨서 숨어버리는것도 한두번이 아니다

어느덧 서로가 이런 숨바꼭질에 도가 틀대로 터버리게 되자 알비스는 점점 더 은밀하고 기상천외한 비밀장소를 찾아 숨어들어가있곤했다

금쪽같은 휴식시간에 이런 피로하기 짝이없는 햄스터찾기나 다름없는짓으로 시간낭비하고있다니

이번에야 말로 찾아내면 아주 단단히 혼내주리라라고 박박 벼르며 눈에 불을키고 찾고있었다


그러나 의외로 알비스는 훤한 복도 모퉁이에 웅크려있었다

너무나도 눈에 확 띄는 은폐

베라는 그대로 뛰어가 알비스의 뒷덜미를 붙잡았다


"알비스! 왜 이렇게 시간이 오래걸리는거죠? 보급품은 어쨌어요!"


알비스는 대답이없었다

단지 무서운거라도 본듯 창백한 표정을 지으며 울먹거리려고 하고있을뿐이었다

언제나 혼내도 잠시만 시무룩해지곤 금방 초코를 오물거리며 활기차고 순박한 소녀로 돌아가는 알비스였다

그런 알비스가 어째서 이런 표정을 짓고 있는건지 베라는 한순간 이해할 수 없었다

베라는 알비스를 뒤로 물리곤 그 애가 보고있던 모퉁이 너머를 흘깃 보았다


모퉁이 너머에는 상자 몇개가 쌓여있는 보급고와 그리고 그 문 앞을 지키는 발할라소속의 작은 소녀 안드바리가 서있었고,

그 앞에 3명의 인간병사님들이 위압적인 분위기를 풍기며 소녀를 내려보며 서있었다

그 작은 체구로 건장한 체구의 남자 셋과 맞서고있다니 얼마나 용기있는가

하지만 멀리서도 자세히 들여다볼수있었던 베라는 이미 살짝 붉어진 부어오른 왼뺨과 조금씩 떨리고있는 안드바리의 눈동자를 목격할수있었다


"야 이 쬐끄만 새끼야 너 제식번호 뭐야"


...C-33 안드바리입니다


"그래 안드바리. 안드바리야. 이 인간님이 마지막으로 최대한 존중을 담아서 부탁해볼게? 거기 보급상자중 3개정도 좀 넘겨줄수 있겠니?"


"이..이 보급은...1주일뒤 시행할 북방작전에서 꼭 필요한 물자라고 레오나님께ㅅ-"


말을 마치기도 전에 짜악-!하는 거친 소리가 복도에 울렸다

한번을 끝나지 않는 연속적인 파열음

짜악-! 짜악-! 짜악-!

안드바리의 작은 몸은 견디지 못하고 결국 옆으로 털썩 쓰려졌다


"아나 씨발 바이오로이드새끼가 인간이 줘라하면 주는거지 뭘 믿고 존나 버티나?"


"이건- 이건 우리가 직접 상부에 요청해서 받아온 물자에요...올린 보고서에서 요구한것의 7할도 못받았어요 절대로...꺄악-!"


인간병사님들중 제일 주도적인 남자가 안드바리앞에 수구려 앉더니 그 애의 머리카락을 꽉 틀어쥐어 들었다

안드바리의 눈에 고인 눈물이 결국 넘쳐서 부은 뺨을타고 흘러내렸다


"야 야 얘야. 생각해봤을때 너희 바이오로이드가 더 소중하냐 아니면 우리 인간님들의 목숨이 더 소중하냐?"


"..."


"대답안해?"


"이...인간님이 더 소중합니다"


남자가 손을 치켜들자 쥐어짜듯이 안드바리가 대답한다


"그렇지? 니가 생각해도 그렇지? 우리가 네년들이 이기적이게 구는 바람에 보급이 없어서 쫄쫄 굶다 전멸해버리면 그건 어마어마한 참사겠지?"


"..."


"그래서 우리도 예의상 이렇게 염치를 무릅쓰고 동의를 구한다음에 가져가려는거잖아? 그럼 알아서 예하고 머리숙이면 되는거야 알겠어?"


남자에 손에 틀어잡힌 안드바리의 머리가 마치 사죄의 절을하듯 바닥으로 꾹 눌려 내려간다

뒤에 서있는 인간병사님들은 그 광경을 보며 비웃듯이 낄낄거린다


"하...하지만..."


그러나 소녀의 아집은 구부러질뿐 도저히 꺾이지 않았다

그럴수밖에, 안드바리가 세상에 난 목적은 보급을 관리하고 그 보급이 허투루 새어나가는걸 막기 위해서이니까, 그렇게 만들어진 소녀이니까


"이 물자만큼은 안돼요...절대 안돼요...! 이건 작전을 위한 정말 최소한의 보급품이에요...죄송해요...죄송해요..."


머리채를 쥐어든 남자가 깊은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는 내려치듯 안드바리의 머릴 내동댕이쳤다

짧은 비명과 함께 비틀비틀 상체를 일으키는 안드바리, 이마가 찣어지기라도 한건지 한줄기 피가 흘러내렸다


"아아- 그렇다면 우리도 인정사정없다! 버릇없는 물건은 두들겨패서 고쳐줘야지 그렇지?!"


"아- 안돼 잠깐-!"


베라가 튀어나오려는 순간 누군가가 어깨를 붙잡았다

돌아보자 그 곳엔 찬란하고 부드러운 백금발과는 대조되는 소름돋게 차가운 눈빛을 하고있는 레오나 대장님이 서있었다


"거기, 무슨 일이죠?"


"응? 아아 그 대장이라는 년이 납시었네"


병사들은 여전히 삐딱한 자세로 이죽거리고있었지만 적어도 손에 들고있던 안드바리의 멱살을 놓을정도로의 제지는 되었다

아무리 인간이 바이오로이드의 상위존재라지만 그들이라도 감히 병의 신분으로 별을달고있는 바이오로이드 앞에서 아주 막나갈수는 없는것이었다


"댁의 보급관꼬맹이가 시건방진 소릴하길래 잠시 친히 교육의 시간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보급을 요청했는데 자꾸 지들사정을 들먹이면서 거부하더라고요"


"북방작전에서 당신들의 부대는 후방 도서지역에서 대기하고 있는것으로 압니다. 보급선과도 가깝고 전투와도 거리가있어 보급의 부족은 없을것이라 사료됩니다만?"


"뭐 당신네들은 좆빠지게 뒹구는동안 우린 꿀이라도 빤다고 말하고싶은겁니까? 별 씨발 이젠 바이오로이드한테도 무시당하네"


병사들이 위압적으로 레오나님을 둘러쌌다

레오나님의 체형은 키 172cm로 꽤 훤칠한 편이었지만 그렇다해도 워낙 거구의 남자 셋하게 둘러싸이면 그 위압감에 압도당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레오나님은 눈 하나 깜짝 안하고 숨을 고른뒤 입을 열었다


"해당 작전에서 당신의 부대 바로 앞에 배치될 부대가 어디인지 아십니까?"


"뭐요?"


"바로 우리 시스터즈 오브 발할라의 제 4번 부대가 배치될 예정입니다"


"그런데요?"


"우리의 역할은 최전선 요충지인 23번언덕을 수호함과 동시에 적의 진로에 매복하고있다가 급습해서 진격을 저지하는 역할을 담당했지요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아무리 적어도 3주간은 원활하게 공급할수있는 식량과 탄약이 필요합니다

그렇지못하면 우리는 보급부족으로 언덕을 빼앗기고 말것이고 매복지로 도달할수있는 가장 빠르고 안전한길을 잃게될것이며, 적의 진격을 저지할수가 없게됩니다"


"아 그래서 어떻다는건데?"


레오나님이 한발짝 앞서나가며 매서운 눈으로 그들을 노려본다


"아직도 그 머리가 안돌아가시나? 우리가 뚫리면 그 적이 그대로 들어올 곳이 당신네들이 지키는 구역이고, 그렇게 되면 뒤지는건 곧 당신들이야 이 머저리들아."


보통 바이오로이드따위가 감히 인간님에게 이렇게 거칠게 말하는경우는 드물다

예상보다 강력한 말이 귀에 박히자 당황이라도 한건지 인간병사님들은 주춤거리고있었다

하지만 곧 제일 주도적이던 남자가 얼굴이 일그러지더니 레오나의 뺨을 그대로 후려갈겼다


"이...이게 어디서 기어오르고있어! 바이오로이드년이!"


하지만 레오나님도 절대로 물러서지 않는다

곧바로 자세를 고치고 꼿꼿이 서서 그들에게 맞선다


"여유물자 받고 돼지처럼 파티나 즐기다가 그게 마지막 만찬이 되고싶은게 아니라면 돌아가세요! 우린 단 한 상자도 양보 못하니까!"


마치 냉전과도같은 살벌한 시간

초시계가 몇번 또각거리고 난뒤일까, 인간병사님들이 재수없다는 표정으로 레오나님이 제복에 퉤하고 침을 뱉더니 궁시렁거리며 떠났다

어느정도 그들이 멀리 떨어지자 레오나님은 그때까지 바닥에 쓰러져있던 안드바리를 부축해 일으켰다


"레오나님! 괜찮으세요?"


쭉 지켜보던 베라와 알비스도 그곳으로 뛰어간다


"아, 아무렴 괜찮지. 고작 뺨한대 맞았다고 내 지휘모듈이 부러지거나 하진 않아. 그보다..."


"레..레오나님..."


"안드바리? 괜찮아?"


"죄송해요 레오나님...저 때문에...우으-"


안드바리가 레오나님의 품속에 얼굴을 뭍고 엉엉 울기시작했다

비록 처음부터 설계된 몸이지만 그렇다고 그녀의 성격이 딱히 완성된 어른같은건 아니다

그 어린 아이에게 그 폭력적인 상황과, 자신때문에 그녀의 대장이 맞고있는걸 지켜보고있다는것이 얼마나 괴로웠을까


"괜찮아...괜찮아..."


레오나님은 그녀의 등을 토닥여주며 작은 목소리로 소근소근 위로해줬다


"너는 너의 임무를 다했어. 아주 대견한 일이야. 정말 잘해줬어."


엉엉 우는 안드바리의 울부짖음과 그런 그녀를 끌어안아 달래주는 레오나님의 속삭임

서로의 한을 품어주는 둘의 모습은 마치 모녀의 그것과도 같은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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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망전 좆간세상에 보급관이 바이오로이드면 왠지 존나 개차반 취급받았을거같아서 써봄


근데 필력이 딸리니까 글쓰면 뒷심이 안나서 힘들다

글 재능있는 사람들 넘모 부럽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