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arca.live/b/lastorigin/49543871?p=1 - 시리즈 모음









호드와 타이런트. 두 존재가 격돌하려는 순간 역변이 일어났다.


수많은 사슬과 기계팔이 폭주하는 타이런트의 몸을 향해 솟아난 것이었다. 


격납고의 방어시스템이 수백개의 사슬과 팔들을 움직였다. 붙잡는다기보다 덮어버린다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무수한 족쇄들이 타이런트를 덮쳤다. 



“크으으…크와아아아악!!!!”


으드득..! 콰과광!!!



그럼에도 타이런트를 제압하지 못했다. 아무리 잘봐줘도 시간벌기에 그치지않았다.



“페더, 수송선은 아직인가?”


“적 AGS의 대응사격 때문에 접근을 못하고 있어요. 아이언메이든도 발이 묶인 상태입니다.”



칸은 알 수 있었다. 저 괴물은 해치울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설령 용의 함대가 온다해도 무리겠지.


호드와 아이언 메이든을 그리고 케시크의 등에 업힌 진짜 ‘타이런트’를 살릴 방법은 단 한가지였다. 적어도 그녀의 머리속에서 떠오른 방법은 그것 하나뿐이었다.



“내가 시간을 벌겠다. 그 사이에 전원 후퇴하도록.“


“대장 미쳤어? 저건 우리가 알던 타이런트 정도 수준의 괴물이 아니라고!”


“...어떻게든 해보겠다.”



칸의 폭탄발언에 대원들은 불같이 반발했다. 가도 같이 간다, 차라리 내가 남겠다, 다같이 저것을 쓰러트리자. 


어느 하나의 의견으로 통일하지 못하는 소란의 틈새에 어느새 낮선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제가 도움을 드려도 될까요..?”



목소리가 들린 장소에는 푸른 색의 여인이 있었다. 지상으로부터 몇십 센티미터정도 둥둥 떠있는 모습이, 더럽혀졌음에도 우아함이 느껴지는 복장이 신비롭다는 인상을 주고는 여인이었다.



“넌 뭐야?”


철컥-!



워울프는 곧바로 그녀의 머리에 권총을 들이댔다. 다른 호드의 대원들도 말만 하고 있지 않을 뿐 조금이라도 이상한 짓을 하려고하면 곧바로 죽여버리려는 기색이 만연했다.



“저는 마키나, 비스마르크의 바이오로이드에요. 그리고 저 괴물의 시선을 붙잡아둘 수 있는 존재이기도 하죠.”


“그래서 뭐? 어쩌라고?”


“거래를 하고 싶습니다. 서로 이곳에서의 탈출을 돕는 조건으로요.”



그녀의 말에 호드는 모두 칸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모두가 그녀의 판단을 기다렸다.

 


콰드득.. 콰광!!


크아아아아!!!



폭군을 묶어둔 족쇄는 이제 몇개 남지도 않았다. 망설일 시간은 없었다.



“.....받아들이겠다. 다만 워울프와 카멜이 너를 감시할거다.”


“저도 받아들이겠어요.”



그러는 사이 타이런트는 자신을 붙잡아둔 마지막 사슬을 물어뜯어 저멀리 집어던졌다. 이제 호드와 타이런트 사이에 남은 것은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타이런트의 붉은 눈동자에 눈앞의 사냥감이 비춰졌다.



“공격하지 말아주세요. 제가 처리하겠습니다.”



그 모습이 두렵지도 않은지 마키나는 타이런트의 앞으로 천천히 다가갔다. 그리고 오케스트라를 연주하듯 우아하게 손을 휘둘렀다.



“영원한 환상 속에 잠드세요.”



마키나가 기도하듯 작게 속삭였다. 그 기도에 답하듯 푸른 파장이 사방에 퍼지고 그 빛은 타이런트의 눈에 스며들었다.


타이런트는 잠시 움찔하더니 호드에게서 시선을 돌렸다.



“뭐야.. 진짜 멈춰섰네?”


“힘도 장비도 엉망인 상태라서 완벽한 환상을 만들 수는 없지만… 환상을 현실과 교묘히 섞는 정도는 가능하답니다.”



마키나의 환상 속에서 타이런트는 호드의 머리 위로 격납고의 파편이 쏟아지는 것을 보았다. 그녀들이 분명 죽었으리라 생각한 폭군은 다음 사냥감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크와아아아아악!!!”



타이런트는 아이언메이든과 교전하던 AGS를 향해 포효했다. 그 요란한 선전포고에 AGS군대는 눈앞의 아이언메이든이 보이지도 않는듯 총구를 돌렸다.



“최고 위험 요소 발견. 모든 AGS는 화력을 집중하라.”



아이언 메이든을 완전히 무시하며 타이런트를 향해 돌격하는 AGS의 군단, 단신으로 그것들을 향해 돌격하는 타이런트. 양측의 힘이 충돌하기 직전 호드와 아이언 메이든은 전선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수송선! 밧줄을 내려라!!”


“아이언메이든! 갑주도 무기도 전부 버려! 이 꼴로는 수송선에 못올라탄다!” 



군대와 괴수의 싸움을 뒤로 하고 호드와 아이언 메이든 그리고 마키나는 수송선이 내려준 밧줄을 붙잡았다. 


하늘을 향해 급격하게 상승하는 수송선에서 칸은 땅을 내려다보았다.



“...완전히 괴물이군.”



수십대의 기간테스가 타이런트의 돌진 앞에 볼링핀처럼 넘어지고 날아간다. 수백개의 포탄이 하늘을 가르는가 하면 수십개의 미사일이 AGS를 파괴하기도 했다.



“내말이, 아군일때는 엄청 든든했던 애가 적이 되니까… 정말 최악이네.”


“아군이 적이 된것은 아니다. 워울프.”



칸은 여전히 기절한 채로 케시크의 등에 업혀있는 여자를 가리켰다.



“타이런트는 여기에 있다.”





***





“세이렌 부함장, 고장난 함선들의 긴급수리는 완료되었소?”


“네 함장님, 이제 다시 이동할 수 있습니다.”


“좋소. 전 함대, 오르카가 있는 곳으로 복귀하라.” 



용이 호령하자 수많은 군함들이 그에 따라 일제히 기동을 시작했다. 대원들의 안전한 출격을 위해 유인책이 된 항공모함의 파손으로 조금 합류가 늦어졌으나 큰 문제는 아니었다.


적 함대는 용의 기만작전에 걸려 완벽히 어긋난 방향으로 이동하고 있었으니 시간적 여유는 충분했다.



“저… 함장님, 해저에서 강렬한 에너지가 감지되었습니다. 지금 자료를 전송하겠습니다.”


“원인은 파악했소? 해저화산인가?”


“본대에 분석을 부탁드렸습니다. 곧 결과가….?! 함장님! 해저 에너지 감지 위치에서 FAN파가 감지되었습니다! 함대의 이동방향과 겹치고 있습니다!”


“전 함대 정지!”



멈춰선 군함 위에서 용은 수평선을 바라봤다. 바다는 고요했으나 용은 본능적 공포가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분명 그곳에는 별의 아이가 있었다.



“항로를 재설정한다.”



용은 패널을 펼쳐 다시 항로를 설정했다. 이런 상황을 대비해 미리 준비해둔 플랜 B의 항로가 함대에 재입력되자 전 함대가 뱃머리를 돌렸다.


하지만 뱃머리를 돌린지 5분도 되지 않아 또다시 경보가 울렸다.



“함장님! 항로에서 FAN파가 감지되었습니다!”


“...다음 항로로 재설정하겠소.”



하지만 세번째 항로에서도 FAN파가 감지 되었다. 4번째 5번째 항로도 마찬가지였다. 



“함장님, 이제… 이제 어쩌죠?”


“오르카에게 연락을 보내두시오. 이동시간이 3배로 늘어났으니 최대한 멀리까지 후퇴하라고.”


“네, 알겠습니다.”



호위함이 없는 오르카,  별의 아이의 등장으로 합류가 늦어진 용의 함대 그리고 적진 한복판이라는 요소까지. 이는 도저히 우연이라 치부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설마….’



다급히 적 함대의 경로를 확인한 용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그것들은 어느새 기만작전에 동원된 함선들과는 크게 어긋난 방향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기만작전에 걸려든게 아니라… 처음부터 오르카를 포위하기 위해서?”



용은 직감할 수 있었다. 펙스와 별의 아이, 둘의 연관성은 제쳐두더라도 이 상황은 적이 염두에 두고 움직인 것이 분명했다.



“전 함대 최고 속력으로! 최대한 빨리 오르카호로 복귀해야한다!”



호령하는 용의 목소리에 미약한 공포가 담겼다.





***




눈 사이로 빛이 새어들어온다. 조금씩 정신을 일깨우고 오감을 돌려준다. 


온갖 약품의 냄새가 머리를 각성시켰다. 온 몸의 촉감이 돌아오자 내 손에 무언가 있다는 사실을 눈치챌 수 있었다.



"….LRL?"



침대에 누운 내 손을 잡고 LRL은 침대에 엎드려 자고 있었다. 잠에 덜 깬 머리가 그 모습을 본 순간 빠르게 회전을 시작했다.



'예언…!'



날 구하는데 성공하고나면 오르카의 모두가, LRL을 제외한 오르카의 모두를 죽일거라는 별의 아이의 예언이 지금도 생생히 들리는 듯 했다.


아직 주변이 조용한걸 보니 놈의 작전이 시작되지는 않은듯 했다. 하지만 머지않아 별의 아이가 움직일거다. 



“허억…허억…”



놈의 눈과 목소리가 떠오르자 본능적인 공포가 몸을 휘감았다. 어느새 손은 발작하듯 떨리고 있었다.



“으응…타이..런트..?”


“으헥..?! LR…”



그 아이의 이름을 부르려는 순간 전에 부르던 호칭이 떠올랐다.



“... 후우, 주인님, 오래간만에 뵙습니다.”



몸이 바뀌어서 그런지 힘이 없어서 그런지 내 말투와 목소리에 전과 같은 위엄은 없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LRL에게는 충분해보였다.



“타이런트..타이런트 맞지…?”


“네, 맞습니다.”


“흐윽… 보고 싶었어… 흐아아앙!! 나쁜 사람때문에 몸도 이상해지고 다쳤다고 해서 엄청 걱정했단 말이야!! 히끕..!”



컨셉도 잊어버렸는지 평범한 아이의 말투로 말하는 LRL, 그 작은 몸이 떨릴 정도로 울고 있었다. 



“죄송합니다.”



LRL의 우는 모습을 보자 나도 눈물을 쏟아낼 정도로 슬펐다. 소리지르며 주변의 모든걸 집어던지고 싶을 정도로 화도 났다. 


그렇지만 애 앞에서 그런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는 않았다. 이미 상처입은 흉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데 행동도 추하고 싶지는 않았다. 오래간만의 재회다. 조금이라도 더 이 순간을 깊이하고 싶다. 



그러나 세상은 차가웠다.



쾅!!!


어디선가 들려온 폭음과 함께 선체가 크게 흔들렸다. LRL이 넘어지지 않도록 양팔로 끌어안으며 버티고 있자 경고방송이 들려왔다.



[비상, 함내 시설이 공격당했습니다. 산소 급격 고갈, 긴급 부양합니다.]



그 순간이다. 별의 아이가 예견한 그 순간이다.



“장화와… 천아…”



날 납치할 바이오로이드는 이 둘이었다. 별의 아이가 조력해줬다면 오르카에 침투해 시설을 파괴하는 것 정도는 문제도 아니겠지.



“타이런트…? 왜 그래?”


“나쁜 사람들이 온것 같습니다. 주인이시여 이곳은 위험하니 안전한 곳으로 가시죠. 에이미나 다른 분들이 계시는 곳이 좋겠습니다.”


“타이런트는…? 같이 가는거지?”


“저는…”



놈들이 노리는건 나다. 지금 가장 위험한 곳이 있다면 내 옆일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전처럼 내가 지켜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내 몸은 더이상 합금으로 만들어진 전쟁병기가 아니다. 온갖 부상을 입은 환자 바이오로이드의 몸이다. 



“저는… 병실에 있어야죠. 환자니까요.”


“그럼 나도 여기 있을래.”



LRL이 내 옷자락을 강하게 붙잡았다.



“주인님… 저랑 있으면 위험합니다. 안전한 곳으로 가계셔야..”


“그럼 타이런트는? 위험한 곳에 있겠다는 거야?”


“저는…그… 강하잖아요? 네, 강하니까 괜찮아요. 몸은 이렇게 변했지만 힘은 멀쩡하거든요?”


“거짓말”



LRL이 나를 노려보며 말했다. 아니 내 손을 보며 말했다.


내 손에는 손톱이 뽑혀나간 자국이 여전히 남아있었다.



“이건… 그러니까…”


“…다쳤잖아. 다 봤어. 케시크 언니가 업고올때 다 봤다고… 이제 강하지도 않잖아…”



LRL은 말을 더하지 않았다. 울음을 참기위해 애쓰느라 입을 열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미안해… LRL.”



나는 LRL을 안았다. 이 세상에 오고서 처음으로 내가 직접 안아볼 수 있는 체온이었다.



“미안해…내가 미안해…”



최대한 짧게 말을 끝냈다. 길어지면 내 스스로가 풀 수 없었을 테니까. 안고있던 손을 서서히 풀며 뒤로 물러나자 LRL의 눈물이 흐르는 얼굴이 보였다. 



“에이미, 거기 있지?”


“...네”



폭음이 들리고선 곧장 이곳으로 달려왔는지 에이미의 이마에는 땀이 흐르고 있었다.


그녀라면 LRL을 잘 다독여줄 수 있을거다.



“부탁해. 나한테서 최대한 멀리 떨어져야해. 그래야 LRL이 안전해.”



에이미는 질문을 하지 않았다. 그저 방에 들어와 곧장 LRL을 안아들었다. 갑작스러운 변화에 놀란 LRL은 아무런 반항도 하지못했다. 대신 내가 점점 멀어지는걸 눈치 챈 순간 울음을 터트렸다.



등 뒤에서 들려오는 울음소리가 그 어떤 고문보다 아팠다.




***





어디든 좋다. 어디로든 가야한다.



“허억…허억… 약해빠졌네 이 몸…”



뛰기 시작한지 30초도 지나지 않았는데 머리가 띵하다. 허파는 산소를 갈구하며 미친듯이 숨을 들이켰다.



“놈들이 찾지 못할 곳이…”



격납고, 식당, 대원들의 방, 사령관실. 떠오르는 장소는 많았지만 하나같이 부적합했다. 



“도망친다해도… 이 상황이면…”



막막함에 다리가 굳었다. 내가 안전할 수 있는 장소가 떠오르지 않는다. 목표가 없으니 움직일 수도 없었다.



“뭐야? 더 안뛸거야?” 



익숙한 앙칼진 목소리가 위에서 들려왔다. 장화였다. 환풍구에 매달려있는 장화가 사납게 미소지으며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런 망할..!”


“어허 어딜 도망가려고?”



내가 방향을 돌리기도 전에 장화는 송골매처럼 나를 덮치고 목을 붙잡아 졸랐다.



“커..커흡..”



장화는 괴물같은 악력으로 내 멱살을 잡고 들어올렸다. 팔을 밀어보려했지만 나와 장화의 힘에는 거목과 강아지풀 수준의 차이가 있었다.



“스읍.. 여기는 눈이 많을것 같은데.”



잠시 고민하는 듯하던 그녀는 이내 나를 옆에 있는 방으로 집어던졌다.



쾅!!


“커헉…!”



집어던져진 곳은 처음보는 방 안이었다. 불이 꺼져있는지 어두컴컴해서 코앞에 있는것이 아니라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바닥에는 단단한 철판이나 기계부품이 놓여있었다. 그 위로 떨어진 내 몸은 당연하게도 부서지고 찢어졌다.



“끄아아악!!”


“다리가 박살났네. 뭐, 나는 편하고 좋지만.”



장화는 뒷주머니에서 주사기를 꺼내들었다.



“가만히 있어… 금방 편하게 해줄…?!”


콰드득!!!


“에?”



암흑 속에서 튀어나온 손이 장화의 주사기를 낚아채 박살내었다. 이내 3개의 손이 추가로 튀어나와 장화의 몸을 붙잡았다. 


장화를 붙잡은 그것이 천천히 내 앞으로 다가왔다. 온몸이 검은색인 AGS였다



“로버트…?”


“타이런트, 왜 병실에서 나온거지. 위급상황일수록 안전한 곳에서 대기해야 하는것도 모르나?”



4개의 팔로 장화의 사지를 붙잡은 그가 한심하다는 투로 말했다.



“우선 침입자부터 제거한 다음 이유를 묻도록 하겠다. 타이런트 자네는…”


카가각!!


“크읏…!”



장화를 잡고있던 로버트의 팔에 3개의 단검이 날아와 박혔다. 정확히 관절부분을 노린 공격이었다.


“야이 병신년아! 니가 붙잡히면 어쩌자는 거야?”



갑작스러운 공격에 로버트가 인질을 집어던지고 뒤로 물러나며 장화는 그의 속박에서 겨우 벗어날 수 있었다.



“케헥.. 콜록! 콜록!”


“어휴 등신, 고작 저놈 상대로 진거야? 척봐도 전투용 AGS도 아니구만.”


“입 다물어…!” 



두 여자가 티격태격하는 사이 로버트는 박살난 자신의 팔을 조금 움직여봤다. 삐거덕거리는게 금방이라도 박살날 것 같았다. 


고작 3개의 단도로 총탄도 버티는 자신의 팔을 파괴했다. 그 사실만으로 로버트는 자신의 승산이 얼마나 절망적인 수준인지 눈치챌 수 있었다.



“…파손 확인, 타이런트 나는 저놈들을 이길 수 없다. 하지만 방법은 있다.”


“말해봐.”


“너의 등에 달린 선, AGS와 너의 몸을 연결하는데 쓸 수 있다. 내가 시간을 버는 사이 방구석으로 가라. 너의 재활에 사용하기 위해 만들어 둔 몸이 있다.”



로버트는 남은 3개의 팔로 큼지막한 엔진을 집어들며 작은 목소리로 덧붙였다.



“전에 쓰던 몸하고 구조는 대강 비슷하다.”



말을 마치고는 그는 곧장 엔진을 집어던졌다. 그것으로도 모자랐는지 공구, 철판, 고물까지 그는 손에 잡히는 것을 모조리 침입자 2인조에게 집어던지기 시작했다.



와장창!! 쨍그랑!


“악!! 이 좃같은 새끼가!”


“욕할 시간있으면 저새끼 팔 하나라도 더 잘라! 병신아!”



뒤에서 들려오는 욕지거리를 애써 무시하며 로버트가 말한 방 구석으로 향했다. 멀지는 않았지만 부러진 다리로는 뛰기는 커녕 걸을 수도 없었기에 팔로 몸을 끌며 나아가야 했다.


거리는 4~5m정도였지만 세계최고의 약골인 나에게는 완전군장 행군보다 힘든 일이었다.



“허억… 허억… 시발, 멀미가…”



땀이 비오듯 쏟아질때 즈음 로버트가 말한 무언가에 도착했다. 다만 방도 어둡고 검은 천이 그것의 몸을 대부분 가리고 있어 어떤 생김새를 했는지는 제대로 볼 수 없었다.


하지만 내 등에 달린 선을 꽂을 장소는 명확히 보였다.



“내 등에… 선이 분명 여기쯤,”


“야.. 어디보냐?”


“?! 커흑!!”



얼굴에 느껴지는 강렬한 통증과 함께 나는 땅을 몇번이고 굴렀다. 흐릿해진 시야로 장화가 보였다.



“ㅈ같은 로봇새끼 존나 구질구질하게 구네”



장화 뒤에서는 천아가 로버트를 향해 발길질을 했다. 로버트는 눈에 불은 들어와 있었지만 팔과 다리가 전부 잘려나갔거나 움직이지 않는 상태였다. 



“후우, 로봇친구도 박살났고 니 몸도 박살났는데 이제 가야지?”



장화가 내 목을 잡아들었다. 그리고 다시 한번 주사기를 꺼내들었다.



“머.. 멈춰라!!”



그떄 방의 입구에서 너무 작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LRL…?”



분명 에이미와 같이 있어야할 아이가 내 눈앞에 서있었다. 둘이 흩어진건가? 아니면 에이미한테 무슨 일이라도 생긴건가?


아니 그것보다 LRL이 위험하다.



“시발 방해꾼이 뭐이리 많아…”


“지.. 짐의 권속을 위협하는 자는..”


“꼬맹아, 언니들 일하는 거 안보여?”



천아가 LRL의 목을 붙잡았다.



“뭐 애는 봐주는 줄 알았어?”



싸늘한 목소리를 내며 천아는 품에서 나이프를 꺼내 LRL의 목에 들이대었다.



“싸..”


“뭐라고 씨부리는…”


“싸이클롭스 이터널 빔!!!”



LRL이 안대를 벗었다. 그 순간 LRL의 눈은 강렬한 빛을 천아의 눈을 향해 쏟아내었다.



“꺄아아악!! 내 눈! 이 씨발 년이!!”



등대로 사용되는 빛을 지근거리에서 정통으로 맞은 천아는 고통에 몸부림치며 바닥을 굴렀다.



“하, 등신새끼. 애한테 지냐? 비켜 내가 할테니까.”



장화는 내 멱살을 잡던 손을 풀고 LRL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갔다. 장화가 손을 몇번 휘두르자 LRL은 보이지 않는 실에 묶여 쓰러졌다. 빛을 내던 LRL의 눈은 와이어에 스쳤는지 피가 솟구치며 꺼져버렸다.



“꺄악!! 흐윽…아파…! ”



장화는 손을 들었다. 와이어가 팽팽해지며 단단한 칼처럼 움직였다. 그에 따라 LRL의 몸에서 피가 흘렀다.



"잘가라 꼬맹이"



장화는 와이어를 힘껏 잡아당겼다.



'...?'



헐렁하다. 분명 팽팽하게 당긴 와이어가 축 늘어져 땅에 늘어져있었다. 게다가 와이어에 조각났어야 할 조그만 바이오로이드도 멀쩡했다.


그 사실에 위화감을 느낀 순간 무언가 그녀의 뒤에서 움직였다.



“또 어떤 새끼야!!”



장화의 와이어가 잽싸게 허공을 갈랐다. 그리고 두동강 세동강이 나며 흩어졌다. 



“누..누구야.”



그 순간 장화는 처음으로 공포를 느꼈다. 알 수 없는 무언가가 자신을 향해 다가오고 있다. 보이지도 느껴지지도 않았지만 분명 무언가 그곳에 있었다.


장화는 뒤로 크게 물러섰다. 그와 동시에 품에서 가루가 담긴 병을 던졌다. 병이 깨지며 은폐한 적을 드러내는 효과가 있는 가루가 공기 중으로 퍼져나갔다.



“크르르르르….”



그제서야 무언가가 모습을 드러냈다. 마치 두발로 선 도마뱀을 본뜬 AGS와 같은 모습이었다. 2m는 되는 꼬리, 날카로운 3개의 손톱이 달린 두개의 팔, 갈고리 발톱이 달린 두개의 다리까지.


만약 장화가 공룡에 대한 지식이 얕게나마 남아있었다면 그것이 랩터처럼 생겼다고 말했을 것이다.



“이건 또… 뭐하는 괴물새끼야…”



그 괴물이 바닥에 쓰러진 바이오로이드에게 다가갔다.



“LRL…. 미안해.”


“아파… 타이런트… 아파…”


“금방 수복실로 데려다줄게.”



랩터가 시선을 돌리자 LRL에게서 장화에게로 두개의 붉은 안광이 옮겨갔다.  그 안광에서는 천개의 태양과 같은 분노가 타오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