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모음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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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아와 라붕이는 엠프레시스 하운드의 숙소에 도착해 함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








.....그랬을 것이다.


























그때 상위 연결체를 해치우는 쉐이드의 모습은 정말... 영화에 나오는 주인공 같았다!


나도 전방에서 함께 지원을 나갔기에 그 모습을 기억하고 있다.

그 당시의 쉐이드는 정말 대단했지.


............



엠프레시스 하운드의 숙소에서 함께 이야기 꽃을 피우고 있는 팬텀과 레이스, 그리고 쉐이드는 최근에 일어났던 치열한 전투에서의 일들에 대해 말하고 있었다.



"와... 솔직히 그렇게 실감은 안났는데, 쉐이드 너 엄청 강한가보구나?"


쉐이드의 대단한 점은 그것만이 아니다 라붕씨!

예전 인류 사회에서 쉐이드는 존재 자체가 기밀 그 자체인 비밀병기와도 같았으니까.

실제로 쉐이드는 단신으로 싱위 연결체를 암살한 적도 있다. 정말 대단하지?!



"상위 연결체 정도면 엄청 강할것 같은데, 그걸 혼자서 잡는다고...?

너, 상상 이상으로 대단한 놈이었구나..."


본 기체의 힘과 가능성은 아직 그 정도에 그치지 않습니다. 그 이상의 위험한 난이도를 자랑하는 임무 수행도 가능한 것이 본 기체입니다.


오오오...!


.............



천아는 그저 멍하니 이야기 꽃을 피우고 있는 눈앞의 4인방을 말 한마디 없이 쳐다만 보고 있었다.


응? 천아 양. 혹시 어디 몸이 안좋은가?

아까부터 아무런 이야기도 하지 않고 있다만...


혹시 약이 필요하다면 내가 대신 타올수도 있다.



"천아야 괜찮아? 팬텀 말대로 너 아까부터 아무런 말도 안하고 있는데.... 어디 안좋은데라도 있어?"



순진한 얼굴로 상태를 묻는 -찐- 트리오의 얼굴을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쳐다보던 천아는 헛웃음이 나올 뻔한것을 참고 라붕이를 노려보았다.


.....허.....



".....???"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그저 고개를 갸웃거리는 라붕이를 바라보던 천아는 방으로 오기 대략 30분 전 쯔음 있었던 일들을 떠올렸다.


































.....김라붕.



"씨발 깜짝이야..!!!!"



잘 걷다가 갑자기 소리지르는 옆의 븅신덕에 덩달아 놀란 천아는 라붕이의 정강이를 걷어찰 뻔한걸 애써 참으며 소리질렀다.


야 이 미친...! 왜 뜬금없이 소리를 질러! 븅신아!



"내가 소리지르고 싶어서 질렀냐! 뒤에서 이런 애가 뜬금없이 이름 부르면 당연히 놀라지!"



그 말을 듣고 라붕이의 뒤를 보니, 푸른 안광을 번쩍이는 쉐이드가 육중한 기체를 뽐내며 라붕이의 등 뒤에 서 있었다.


...얘는 언제 온거래...?



천아 양...?


...?



어리둥절 하고 있을때 즈음, 쉐이드의 뒤에서 팬텀과 레이스가 나란히 모습을 드러냈다.


엥? 너희가 여길 왜....


우리는 현재 지역정찰 및 수색을 종료하고 되돌아 오는길이다.



"너희 셋이서? 소속이 다를텐데 함께 나갔나보네?"


우리의 궁합은 시너지가 매우 뛰어나다 라붕씨.

그러니 함께 나가는것이 이상한건 아니다.



은근 뿌듯한 말투로 이야기하는 레이스에게 피식 웃어보이며 대답했다.



"하하 그렇긴 하겠다. 뭔가, 너희는 셋이서 은근 궁합이 좋아보이더라."


...?! 라붕씨도 그, 그렇게 생각하나?! 헤헤...



예상외의 칭찬을 듣자 기분이 급속도로 좋아진 팬텀은 히죽히죽 웃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그럼, 지금은 임무 끝나고 다 같이 돌아오는 길이겠네?"


응. 방금 막 복귀신고 끝내고 돌아가는 길이다.


이제 장비만 점검하면 오늘 일과도 끝나는군.


휴식 또한 체계적인 훈련 만큼이나 중대한 사안입니다. 언제나 컨디션을 최상의 상태로 유지하십시오.



"킥킥.. 그래그래, 너희 셋 다 고생 많았어."


........



천아는 어느덧 자신의 옆이 아닌 팬텀 일행의 가운데에서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는 라붕이의 뒷모습을 말없이 쳐다만 보았다.


그나저나, 천아 양이랑 둘이서 어딜 가던 길인거지? 둘이 약속이라도 있던거냐?



"음? 아... 별건 아니고, 천아 숙소에 놀러가던 중이었어. 예전부터 간다고는 했는데 시간때문에 못가봤거든. 그래서 지금 여유되는 때에 한번 가는거야."


아... 그러고보니, 전에 다 같이 놀때 그런 이야기를 한것같기도.


.......



라붕이의 옆에서 조용히 바라만 보던 쉐이드는 조용히 말을 걸었다.


.....김라붕.



"응?"


개인의 건강관리는 중대한 사안입니다.



".....어?"


이전에, 본 기체는 충고했을 것입니다.

작전 수행 성공률의 키포인트는 쾌적한 신체로부터 비롯된다는 것을.



"......."


오늘부로, 과격한 신체활동은 삼가하고 의무실에서 안정을 취하는것을 권장합니다. 이미 한번 응급 상황을 겪은 육체는 이전보다 훨씬 쇠약해진 상태라는것을 잊지 마십시오.



"아..."



쉐이드의 말의 의미를 이해한 라붕이는 차분하게 웃어보이며 대답했다.



"...다 알고 있겠구나. 너희들도."


.......



"우선, 이 말부터 해야겠네. 또 너희를 걱정시켜서 미안해. 하지만 지금은 괜찮아! 오히려... 이전보다 더 후련하달까. 너희가 늘 보살펴준 덕분에 지금은 정말 상태가 좋으니까.

그러니까...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돼."



최대한 이 애들의 걱정을 덜어주기 위해서 밝게 웃으며 대답해주었다.

얘네가 근심에 찌들어서 힘들어 하는건 원치 않으니까.


...그래. 그렇다면 다행이다 라붕씨.

단, 쉐이드가 말한대로 오늘 일과가 끝나면 바로 의무실로 가는걸 잊지마라. 이러니 저러니 해도, 라붕씨는 아직 건강이 우선이니까.


아프면 차라리 나를 불러라! 불러만 주면 내가 업어서 빠르게 닥터에게 바래다 줄테니까!


자신의 몸조차 챙기지 못하는 자는 발전할 수 없습니다. 이것을 명심하시길.



".....응. 새겨들을게. 고마워 얘들아."



...........



이제는 자연스럽게 웃으며 모두와 어울리는 라붕이의 모습을 뿌듯한 심정으로 바라보던 천아는 이제는 슬슬 이야기가 마무리 되어가는것을 직감하고서 입을 열려던 순간...





"아, 기왕 이렇게 만난거, 너희도 같이 놀러갈래?

어차피 놀러가는거면 다 같이 놀러가는게 더 시끌벅적하고 즐거울 테니까."



.....에.




순간 내가 잘못들었나 싶은 천아는 이 눈앞에 있는 이 븅신새끼가 뭐라고 지껄이는건지 이해하는데 살짝 시간이 걸려버렸다.


우리도 같이말인가? 뭐, 안될건 없ㅈ.....

음?



레이스는 무덤덤히 승낙하려던 찰나, 뒤에서 라붕이를 차갑게 노려보는 천아의 표정이 눈에 들어오자, 지금 이 두 사람이 무엇을 위해 엠프레시스 하운드 숙소로 가고 있던 것인지, 그리고 어떤 분위기 였는지를 무의식적으로 깨달았다.


......



"레이스?"



그런 레이스를 의아하게 바라보던 라붕이에게, 지금은 적당한 핑계로 이 자리를 비워주자고 마음먹고서 입을 열었....




그,그그그래도 되는건가 라붕씨...?!

정말 우리도 놀러가도 되는거냐?!


....에.


뭐... 모처럼 라붕씨가 제안을 해준거니까!

그럼 간만에 친구들끼리 또 한번 재밌게 노는것도 나쁘지 않겠지! 음!!


............



....조졌네.


서, 선배... 우선은 장비를 정비부터 하는것이...


자 자 후배! 지금은 정비도 중요하지만 모처럼 라붕씨가 제안해준 자리니까.

어차피 오늘 일과는 전부 마무리 지었으니, 정비 정도는 살짝 늦어도 괜찮을거다.

쉐이드도 그렇게 생각하지?


...본 기체는 최근에 새로 업데이트된 모의전을 실행해야...


응! 쉐이드도 시간 많다고 하니 지금 같이 가도 문제 없을거같다 라붕씨!!


............




셋 모두 시간이 넘쳐난다는 결론을 낸 팬텀은 눈을 반짝이며 제안을 승낙했다.


...저.... 아무리 그래도 지금 라붕씨는 선약이 잡혀있는 상황이니까 역시 다음ㅇ...


오지 그래?



하지만 들려온것은 의외의 대답이었다.


처, 천아 양...?


팬텀 걔 말대로, 다 같이 시끌벅적한게 더 재밌는건 사실이니까.

어차피 너희 시간 많다면서? 그럼 상관없지 않아?


.......



평소와 같은 표정으로 무덤덤하게 찬성하는 천아를 레이스는 말없이 바라보았다.


..천ㅇ...


여기서 얼마 안남았어, 갈거면 빨리가자.



그렇게 말하는 천아는 넷을 지나쳐 한걸음 더 빨리 발걸음을 재촉했다.



"자, 잠깐만 천아야..! 같이 가ㅈ..."


얼마 안 남았으니까 빨리 따라오기나 해.

괜히 시간 끌 필요 없잖아.



"어, 응..."



.......



짧게 응수한 천아는 옆자리에서 나란히 걸어온 아까와는 달리, 뒤돌아 보지않고 혼자서 앞서 걸어나갔다.


































"야야 쉐이드! 그럼 나도 그거 보여주면 안돼?!

그 뭐냐... 팬텀처럼 너도 은신할수 있다면서!"


함 내에서는, 은신이 금지되어 있습니다.



"아~~ 그러지말고! 딱 한번만, 딱 3초정도면 충분하니까, 응?!"


쉐이드, 모처럼이니 한번 정도는 어떤가 싶은데.

듣기로는, 라붕씨는 로봇 마니아라고 들었다.

그러니 쉐이드의 특기인 위장 은신을 보여주면 엄청 기뻐할거다.


...........


아... 참고로 나도 지금 바로 은신은 가능하다.

나도 언제든지 보여줄 준비는 되있다.

...그냥 그렇다고.


.....한번만 입니다.



그 말을 끝으로 쉐이드의 검은 몸체가 반투명한 빛을 띄는것을 시작으로 점점 자연스럽게 사라지기 시작했다.


오오오오....!!





........



천아는 네 명의 찐친들이 수다떠는 모습을 무심하게 바라보며 오렌지 주스를 홀짝이고 있었다.


.......



레이스는 그런 천아를 티나지 않게 염려하며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와... 이걸 눈 앞에서 보니까 진짜, 아직도 실감이 안나네..."


헤헤... 그렇지? 늘 봐오던 모습이지만, 내가 봐도 쉐이드는 정말 대단하다!



마치 자기 일처럼 뿌듯해하는 팬텀과 어린아이처럼 눈을 빛내며 쉐이드의 몸체를 만지작거리는 라붕이를 천아는 말없이 바라보았다.


........





....김라붕.



쉐이드는 조용히 그런 라붕이를 불렀다.



"응?"



쉐이드의 매끈한 바디를 몹시 쓰다듬던 라붕이는 자신을 부르는 쉐이드의 말에 잠시 손을 멈췄다.


본 기체는 장난감이 아닙니다. 그러한 취급은 권장하지 않습니다.



"에이~! 뭐 어때! 닳는것도 아니고, 니 몸 만질때마다 시원하고 부드러운게... 은근 촉감이 중독성 있어서 계속 만지게 된다니까?"


....그래도 권장하지는 않습니다.



"나 참... 쪼잔하네..."



서운하다는 표정으로 마구 쓰다듬던 손을 땐 라붕이는 툴툴거리며 중얼거렸다.


....에휴...



그런 라붕이를 천아는 너털웃음을 지으며 바라보았다.



"응? 천아야 왜 그래?"



갑자기 피식거리며 자신을 바라보던 천아를 향해 의아한 듯 물었다.


아주 그냥... 끼리끼리 잘 논다.



"...엥?"


새끼... 애도 아니고 그렇게 로봇이 좋냐?

날아다니는 로봇 보면 아주 그냥 펄쩍 뛰겠네.



실실 웃으며 이마를 쿡쿡 찌르는 천아의 모습에 살짝 당황한 라붕이는 무안한듯 물었다.



"가, 갑자기 안하던 짓을 하네... 너 뭔일 있냐?"


왜, 뭐 불만이라도 있냐?


........


...보기 좋아서 그래.



느끼는 그대로를 넌지시 내뱉었다.


다른 애들이랑 재밌게 놀고, 자연스럽게 웃고,

장난도 치고... 예전에 너라면 전부 상상하기 힘든것들 뿐이잖아.



"......."


그런데 지금은, 아무렇지도 않게 모두와 섞여들어서 즐겁게 잘 지내잖아.

그냥, 그렇게 잘 지내는게 그게 보기 좋다고.

그것 뿐이야.



"...?!"



그저 무심하게 있는 그대로를 이야기 해주는 천아의 한마디에 저도 모르게 굳어버리고 말았다.



"아.... 하긴, 예전엔 적응하느라 이렇게 편하게 지내는건 좀 힘들긴 했지... 하하..."


겨우 그걸로 끝이겠냐?!

몸도 허약한 새끼가 적응도 못해, 여기 나갈라고 개수작이나 부려, 성격은 존나 답답해...

거기다 눈치는 드럽게 없어서 사람 빡치게 하고, 넌 발전이라는게 없냐?!



"아, 그... 그건 미안하다니까..."


........


....어휴!!



"......."


그래. 지금은 이렇게 잘 지내니까, 이번 한번은 용서해줄게.

단... 너 또 밖에 나간다느니 뭐니 그 지랄 했다간 그때는 진짜 내가 줘 패버릴줄 알아라? 알겠냐?



"....넵."


.....그래. 알면 됐어.




..........





레이스는 지금이 타이밍이라 여기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선배. 우리는 이제 슬슬 일어나자. 우리도 일과 마무리 해야지.


에, 아직 시간 많이 있는데...


라붕씨도 의무실로 짐 옮길 준비 해야하고, 우리도 장비 맡겨야지.

쉐이드도, 기체 정비 받을 시간이다.



토라진 선배를 차분하게 달래며 천천히 일으켜세웠다.


우으으... 뭔가, 많이 아쉽다.


언제든지 놀러 올수 있으니 너무 서운해 하지 않아도 된다.

그러니 지금은 일어서자 선배.


규칙적인 생활을 추구하십시오 팬텀.


...하긴, 언제든 볼수 있으니까.

그럼 라붕씨, 우리는 먼저 일어나보겠다.

천아 양도, 오늘 정말 고마웠다!



그렇게 아쉬움을 달래며 세 명은 자리에서 일어나 입구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라붕씨, 언제 한번 병문안 가겠다. 그러니 그때까지 몸조리 잘하는거 잊지마라.


다음에 간식 잔뜩 싸들고 갈테니 다음에도 또 놀자 라붕씨!


언제나 건강관리를 최우선으로 여기십시오 김라붕.



"응. 너희들도 고생많았어. 다음에 보자."



차분히 웃으면서 친구들을 배웅해준 라붕이는 모두가 떠난것을 확인하고 난 뒤, 조용히 방으로 돌아와 다시 자리에 앉았다.



"휴... 시간 금방 지나가네."



시계를 보니 어느덧 오전시간이 벌써 끝나가는 것이 보였다.


새끼... 너 요즘 인기 많다?

예전엔 완전 쭈구리가 따로 없었는데, 지금은 뭐... 여자들이랑 같이 노는데 도가 텄구만 텄어.



이전 모습을 떠올린 천아는 키득거리며 떠들기 시작했다.



"쭈구리는 무슨... 아무리 그래도 그 정도 까지는 아니었지."


아닌데? 너 처음 여기왔을때 진짜 가관이었다니까? 영상 찍어놓은거 보여줘?



"과장을 해도 무슨 그렇ㄱ.... 잠깐, 영상? 무슨 영상을..."


너 여기 처음왔을때 니 방에서 지휘관들이랑 같이 인사한거 기억안나?

그거 호드에 있는 애들이 오르카 전체에 하루만에 뿌렸잖아~

그때 진짜 하루종일 쪼갰는데ㅋㅋㅋㅋ

목소리가 화통 삶아먹은게 무슨 성악 하다 온줄 알았다니까~?!



그날 우연히 마주쳤던 탈론 페더의 광기에 절여진 눈동자가 떠오른 라붕이는 이마를 탁 치며 그때 카메라를 부숴버리지 않은것을 후회했다.



"하아아아... 페더 얘는 진짜..."


기억났냐? 그때 대부분 생중계로 다 지켜보고 있었을걸?

나도 그때 너 처음 봤으니까.



"그때는.... 그 뭐랄까.... 역시 초면이니까 예의바르게 행동하는게 옳다고 생각해서...."


예의 차린답시고 하는 행동이 만나자마자 하늘이 찢어져라 소리지르고 경례부터 하냐 븅신아~?

그냥 인정할건 인정해 새꺄~ 여기 애들 나 포함해서 이미 알거 다 아는데 뭘 굳이 숨기냐~



그렇게 말하며 허리를 쿡쿡 찌르는 천아와 실없는 이야기를 나누며 시간을 보내니, 어느덧 점심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아, 그러고보니 너 오늘부터 의무실로 옮기면 당분간 거기서만 지내는거야?



"음... 아마 그렇지 않을까. 난 잘 모르지만 닥터가 말하는거 보면 아마 한동안은 거기서 지낼거 같은데."


흐음....그래?



잠시 침묵하던 천아는 불현듯 이전에 엔젤이 말해주었던 라붕이의 비밀이 머릿속에 떠오르기 시작했다.


....라붕아.



"응?"



이 바보가 괜히 부담느끼지 않도록, 최대한 주의하면서 자연스럽게 말문을 터보았다.


넌, 밖에서 어떻게 살아왔어?



"어..? 밖...이라니, 갑자기 그건 왜..."


그냥, 너 여기 오기 전에는 밖에서 방랑하듯이 살아왔다면서, 

예전부터 궁금했거든. 옆에 아무도 없이, 겨우 혼자서 어떻게 살아왔는지...



물론, 라붕이가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것을 기피한다는 것을 천아 또한 알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어째서인지 속마음은 그에 대해서 점점 더 알아가고 싶다고 느꼈다.



"음..... 그렇게 재미있는 이야기는 아닌데... 정말 그런게 궁금해?"


.....응. 궁금해.



"........"


너, 아직은 아무한테도 그 이야기 한적 없는걸로 아는데, 맞아?



"그렇...지? 애초에 말할 기회... 같은것도 없기도 했고, 남한테 들려줄만큼 영양가 있는 이야기도 아니니까."


그럼, 나한테 먼저 들려줄수 있어?



무의식적으로 살짝 거리를 좁히며 물어본다.


니가 니 입으로 말해주는거니까, 비밀은 보장할게.

....물론, 니가 원치 않는다면 강요할순 없는거지만....



"그... 재미없는 이야기밖에 없어서 듣는 내내 엄청 지루할텐데 그래도 괜찮아?"


꼭 재미있으려고 묻는것도 아니니까 부담 가질필요 없어~ 

편하게 말해도 돼.



"음.... 그럼 어디서 시작하는게 좋으려나...."



라붕이는 오르카에 오기 전의 발자취를 더듬으며 어떻게 시작해야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시작할수 있을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내가 밖에서 꽤 오랫동안 살아왔다는건 기억하지?"


응... 기억하지. 니 방에서 다 같이 술먹을때 얘기 했잖아.



다 같이 라붕이의 방에서 파티를 벌이면서 놀던 때, 지나가듯이 무덤덤하게 말했지만 그 말을 하던 때 표정에서 묻어나오던 씁쓸함을 기억하고 있다.


그러니 잊을리가 없잖아.



"오래 된것 같다고는 느껴온게 사실이지만, 사실 내가 얼마나 방황하고 다녔는지까지는 나도 아는게 없어.

왜냐하면 밖에선 날짜나 시간을 제대로 알수가 없다보니 시간감각이 둔해진다고 해야하나? 아무튼 그런 점 때문에 내가 얼마나 세상을 떠돌아 다녔는지는 나도 몰라."



아마 처음 이 세계관에 떨어졌을때 있던 장소가 시내의 폐허였던가.


마치 1-1 지역의 "시작점(프롤로그)"과 같은.



"말 그대로... 가진거라곤 내 몸뚬이 하나밖에 없었거든, 눈앞에는 죄다 망가진 폐허뿐이지, 제대로된 먹을거는 커녕 마실 물도 찾기 힘들지, 

게다가 너희 말대로 밖은 위험한 철충들이 우글우글 거리니까."


........



"어찌보면, 그 놈들과 마주치지 않고서 너희를 만날 수 있던건 말 그대로 천운이라고 봐야겠지.

물자야 뭐... 지하시설이나 경찰서 같은 공공 시설을 뒤지다 보면 말 그대로 죽지 않을 만큼은 건져낼 순 있더라고... 하하..."



생각해보면, 인간을 집요하게 찾아내어 죽이는 철충 놈들과 단 한번도 직접적으로 마주치지 않고 여기까지 살아남은게 용할 지경이다.


철충을 직접 눈으로 본 경험은 있어? 그래도 밖에 있다보면 한번쯤은 볼 법도 했을텐데.



"직접 본건 아니고, 거리에 널부러진 잔해들을 여러번 본 적은 있어. 만약 직접 만났다면... 아마 난 그때 끝장나고 없었겠지.

나 혼자선... 그런 것들로부터 살아남을 힘은 없으니까."


................



"뭐... 아무튼 그 정도야. 그냥 살기 위해서 폐허와 시설들을 뒤적거리고, 굶어죽지 않기위해 최대한 아껴먹고, 비가 오면 이때다 싶어서 빗물 받아놓고...

그냥 그런식으로 아무런 의미도 없이 연명 하기만 해왔을 뿐, 여기서 더 재미있게 말해주고 싶어도 말해줄 만한게 없네. 하하하....."



무안하게 웃으며 머리를 긁적이는 라붕이를 향해서 천아는 넌지시 입을 열었다.


.....뭐, 예상은 했지만, 말 그대로 개고생이란 개고생은 다 하고 살았구나?



"........"


다행이네.



"응? 어떤게?"


그야 안 다치고 여기까지 올수 있었던거 말고 더 있냐?

어휴.... 인간 혼자서 밖을 그렇게 싸돌아 다니고도 살아 있는게 기적아님 뭐냐?! 그나마 이렇게라도 늦게나마 만나서 다행이지, 만약 조금이라도 늦었으면 지금도 살아있으리란 보장은 할 수 없으니까.



"하긴... 듣고보니 그 말이 맞네. 너희 아니었으면 난 진작에 죽었겠지?"


당사자 입으로 그렇게 말하니까 은근 소름돋는거 알아...?



"뭐, 상관없지 않을까. 지금은 너희랑 이렇게 있으니까. 


....이제는 무서울 것도 없고."


........







잠시간의 침묵이 이어진 후, 천아는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럼 있잖아.




"응?"



.....너.... 멸망 전에는..... 어떤 삶을 살았어?



"............."



잠시 아무 말없이 시선만을 마주쳤다.



"...어땠을것 같아?"


응?



"너희가 보기에.... 천아 너가 봤을때, 난 어떤 사람이었을것 같아?"


...난...



"하긴, 바이오로이드는 그렇다 치더라도, 나에 대한 것들은 많이들 궁금하겠구나.


...난 인간이고, 그 중에서도 나는 '두번째' 니까."


.......



쓸쓸한 표정으로 테이블만 바라보는 라붕이에게 천아는 조용히 달래듯 입을 열었다.


...그렇게 괴로우면 억지로 말 하지 않아도돼.



"......"


굳이 니가 아픈기억 떠올리게 하면서까지 억지로 듣고싶은 마음은 없으니까.

이야기 하고싶지 않으면, 그냥 거기서 멈춰도 돼.



의아한듯 불안한 목소리로 천아에게 되물었다.



"....괜찮겠어?"


응? 뭐가?



슬며시 고개를 들어 눈을 마주쳤다.



"내가... 사실은 엄청 나쁜 사람일 수도 있잖아."


.......



"사실은, 그걸 숨기기 위해서 이야기 하길 꺼리는 것일수도 있는데, 그럼에도 이 이상 묻지 않는거야? 내가 너희 바이오로이드를 도구 이하의 소모품으로 다루던, 그러한 부류일수도 있는거잖아.

그걸 감추기 위해 연기하는 걸 수도 있는데, 그럼에도 더 이상 묻지 않는거야?"


.......



미세하게 떨리는 라붕이의 손끝이 눈에 들어온 뒤로, 그것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그럼 묻겠는데.



아니, 떼고 싶지 않았다.


넌, 나쁜 사람이야?



"...?!!"



직설적인 짧은 질문에 그만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말해봐. 너, 나쁜 놈이야?



"......."


너에 대한것을 정의하고, 표현할 수 있는건,

이 세상에 오직 너 하나뿐이야.



"천아야... 난..."


왜 그렇게 남의 눈치를 보고 살아?



"...?!!"


넌 왜 항상 그렇게... 주위의 시선으로부터 지레 겁부터 먹는거야? 어째서 그렇게 시작 전부터 끝을 단정짓고서 늘 안좋은 결과만 생각하는데?



"......."


니가 뭘 말하든 주위 사람들은 절대 들어주지도, 믿어주지도 않을거다... 이런 뜻이야?

그걸 니가 어떻게 알아?! 니가 뭔데 그렇게 단정짓냐고!



"...."


왜 내가... 널 그렇게 볼거라 생각하는데?!

...내가 너의 과거를 알자마자 너의 자리를 없애버릴것 같았어?!



"...! 처, 천아야..! 난 그냥..."


지금도 이렇게 니 앞에 있잖아!!



"...!!"


니 옆에... 계속 있잖아..!

그런데도 날... 아직도 그렇게 못 믿겠어...?



".........."



줄곧 닫아두었던, 새어나오지 않도록 닫아둔 무언가가 꿈틀거리기 시작한다.



"...무서웠어."



무의식적으로 고백한다.



"내가 아무리 열변을 토하듯이 소리쳐도, 닿지 않을거라고 생각했어."



품어왔던 괴로움을, 속마음을 토해낸다.



"그 누구도, 날 믿어주지 않을거라고 생각했어.

그래서 무서웠고, 도망가려고 했어.

그야.... 난 "두 번째"니까..."



떨리던 손을 꽈악 쥐어 말아보았다.



"너희에 대한건, 어느 정도는 알고있었어.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또 다른 생명, 또 하나의 인류... 그런 너희들이, 인간의 억압속에서 고통받으며 살아왔다는걸 알아."


.........



"하지만... 사령관님은, 다르지.

너희를 사랑해주고, 아껴주는것도 모자라서,

유능하고 멋있기까지 하니까."


.........



"그에 비해, 난 특출나지도 않고 별 다른 능력도 없어. 똑똑한것도 아니고... 무언가에 재능도 없는데다, 무엇보다도 과거를 알수 없는 '인간' 이니까... 그래서 내 자리가 없을 거라고 생각했어."



고개숙여 무덤덤히 중얼거렸다.

일부러 천아의 얼굴은 보지 않았다.

...지금은 볼 용기가 나질 않으니까.



처음에... 그런 너희를 보고서, 바로 떠올랐어.

내 자리같은건... 이 곳엔 없을거라ㄱ...


....!!!!



말보다 먼저 손이 나갔다.






(짜악!!!!)






".........."



힘것 휘두른 손바닥이 그 아래만 보던 얼굴을 있는 힘껏 후려쳤다.



"천아...야..."


너...



"........"


여태것 보여준 모습중에서, 

지금 그 모습이 제일 최악이야.



"...!!!!"


니 말은, 두 번째인 넌 평범하니 행복할 자격따윈 없고, 오직 유능하고, 강하고, 멋있는 첫 번째만이 웃으며 살아갈 수 있다...

이딴 소리잖아!!!



"......"


대체 왜 그딴 결론이 나오는건데?!

왜 두 번째는 니 말대로 그렇게 찌그려져 있다시피 살아가야 하는건데?!



"처, 천아야..."


첫 번째는 강하고 멋지고 유능하니까 모두에게 떠받들여지면서 살고,

두 번째인 넌 평범하고 흔하니까 외면당하고 잊혀지고...

이딴게 말이 돼?! 넌 왜 항상 이런 좆같은 생각만 하고 살아?! 넌 행복할 자격도 없냐? 웃고 살 권리도 없어?! 니가 그 정도로 못났냐고?!!



".........."



여태것 품어왔던, 쏟아내고 싶었던 것들을 한번에 눈 앞의 멍청이의 면전에다가 드러냈다.


너... 우리를 아직도 그런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는거야..?



"아, 아니야 천아야..! 난 진짜로...!"


근데 왜 그런 얘기를 하는데.



".........."


니 말대로, 이제는 정말로 우릴 믿고 있다면, 그런 고민같은거 더 이상 할 필요 없잖아.



".........미안해."



면목없다는 듯 눈을 마주치지 못한 채 그저 사과만 건넬뿐, 그 이상은 할 수 없었다.



"...이제 너희를 진지하게 믿는다는 건 진심이야.

이걸 가지고 아직까지 너희에게... 거짓말을 할 생각은 없어. 맹세할게."


.......



"그냥...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을 뿐이니까.

하지만 지금은 주위에 날 도와주고 감싸주는 사람들로 가득하다는걸 이제는 나도 알아.

너도, 다른 애들도, 지휘관님들도... 

사령관...님도 좋아해. 거짓말 같은게 아냐."


....라붕아...



"그런데, 천아 네 말대로 아직 두려움을 완전히 떨쳐낸건 아니었나봐. 막상 내 과거를 너희에게 들려줬을 때, 너희가 그 순간에도 정말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줄까, 과연 나를 믿어줄까... 라는 생각이 나도 모르게 떠올라 버렸거든."



별하늘 아래에서 상냥한 위로를 건네주면서 나의 마음을 구원해준 사령관을 떠올렸다.

내가 어떤 인간이든 관계없이, 절대로 포기하지 않겠다고 말해준 목소리가 잊혀지지 않는다.


...절대로 잊지 않을것이다.



"천아 네 말이 맞아."


...!!



"역시... 겉으로는 너희와 함께 하는 것처럼 보였어도, 아직은 여전히 너희를 멀리하고 있는 걸지도 몰라. 그렇지 않고서야... 그런 헛소리를 하지는 않을테니까."


이번에도, 상처만 입혔네.


".....미안해."


...너...



어느새 조용히 눈물을 흘리면서 조용히 사과만을 반복하는 라붕이를 천아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한채 그저 바라만 보았다.


멍청한 새끼... 또 울고 있네....


........



조용히 손을 뻗어 흘러내리는 눈물을 받아내어 닦아주었다.


...김라붕.



"........"


아이 씨... 누나가 부르면 대답을 해 븅신아..!



"우웁...!!"



양쪽 뺨을 양손으로 쥐어잡고 강제로 고개를 들어올렸다.


...울지마.



"아니... 난 그..."


울지 말라고.



"......."


내가 예전에도 말했지, 넌 잘못한거 없다고.



그럼, 다시 한번 제대로 전하자.


잘못한 것도 없는 새끼가, 뭘 그렇게 서럽게 질질 짜고있냐? 내말 틀렸냐?



조금 부족했다면, 모자랐던 것 이상으로.


나랑 한 약속... 기억하지?



"......."


제대로 앞만 보기로 한거...

지금은 이제 너도 잘 알잖아. 겁먹지 않고 제대로 마주보고 사는게, 제일 행복하다는거.



"....응... 알고 있어."


네가 알려준 거니까.


우리랑...


...........


"나"랑 있을때 만큼은, 그런짓 안하겠다고...

다시 한번 약속해.

그럼... 아까 일 전부, 용서해 줄게. 어때?



차분한 목소리로 진정시키며 물었다.



"......진짜?"


그럼 내가 이런걸로 구라치겠냐 븅신아~!

왜, 싫어? 싫음 걍 말던가....



"아..!! 아냐아냐!!! 좋아!! 그렇게 할게..!"



행여나 기회 놓칠까봐 재빨리 승낙하는 모습이 우스꽝스러우면서도 은근 귀엽다고 속으로 생각하면서 꿀밤을 한대 먹였다.



"아얏...!"


새끼.... 남자가 툭하면 질질 짜긴ㅋ



양 볼을 쥐고있던 손으로 살짝 세게 꼬집고서 천천히 놓아주었다.

이제는... 울지 않으니까.



"...천아야."


응?



"만약...."



용기내어 천아에게 말해보았다.



"..내 이야기... 지금 말한다면 들어줄수 있어...?"


...!



금세 놀란듯한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다시 차분히 웃으며 입을 열었다.


...내가 아까도 말했지만, 괜히 날 의식해서 말하고 싶지 않은걸 억지로 말할 필요는 없어.

그냥, 지금까지 말해준 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천아야."



단호한 마음으로 천아의 말을 가로막았다.



"들어줬으면 좋겠어."


.......



"나같은 놈도 끝까지 믿어준 너니까, 설령 너가 이상하게 생각할 지라도... 그냥 들어 줬으면 좋겠어."



아까까지 진동하던 라붕이의 손을 바라보니, 이제는 아까와 같은 떨림이 느껴지지 않았다.


....난 니가 원하는 대로 할거야.



"......."


억지로 말하고 싶지 않다면 그냥 묻어도 좋고,

니가 말해주고 싶다면, 끝까지 들어줄게. 진지하게.



"...상당히 부자연스러운 이야기가 될수도 있는데, 괜찮겠어? 믿기 힘든 부분도 있을지도 모르는데..."


니가 니 얘기하는데 그럼 니가 옳은거지, 내가 그런걸로 의심하겠냐~?

괜찮으니까 걱정말어. 그런걸로 이상하게 볼 생각 없으니까.



여전히 웃고 있는 그대로였지만, 진지하게 바라봐 주고 있다는걸 알기에 결심은 더욱 확고해졌다.



"...조금 긴 이야기가 될테니까, 시간을 끌어도 이해 해주길 바랄게."


...응.



















"난... 이 시대의 사람이 아니야.

그보다 훨씬 이전의, 아니... 이쪽이 아닌 다른 세상의 인간이야."



나를 믿어주는 천아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이곳에서 난생 처음으로 자신에 대해 이야기한다.

























힘내라 라붕아! 너에겐 적 따윈 없고, 오르카 모두가 동료니까!!







재밌게 보셨으면 개추랑 댓글좀 주십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