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모음집



49






늘 같은 하루를 반복한다.


언제나 변함없이 굴러가는 톱니바퀴는, 곳곳에 대체품이 넘쳐나는 소모품이 즐비하기에 버림받지 않기 위해서는 쉬지 않고 끊임없이 굴러가야 한다.


자신의 삶의 수준은, 딱 그 정도의 그림.


"난 그냥 흔하디 흔한 소시민중 한명이었어.

집안이 특출나지도 않고, 가진게 많은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나 자신이 뛰어난 사람도 아닌...

주위에 흔하게 널린 '일반인'... 그게 나야."


주위에 인정받는것이 삶의 목표.

나 자신이 잊히지 않도록 늘 신경써야 한다.

난, 특색없는 돌멩이나 다름없으니.


"인상적인 무언가를 설명해주고 싶어도, 특징이랄게 없는 인간이라서 무어라 말을 해야할지 잘 모르겠어. 그냥... 존재감 없는 그림자 같은 거라고 해야할까."


눈에 띄기 위해 무리해서 급발진하다시피 행동하면, 멍청한 놈이라는 꼬리표가 되어 되돌아온다.

그렇게 수도 없이 시행착오를 거치고 나서야, 그저 가만히 물 흐르듯 지나가는 것이 자신에게 어울리는 정답이라는 것을 뒤늦게야 깨달았다.


"기계처럼 늘 같은 일상만 보내오면서, 혼자 집에 틀어박혀 같은걸 먹고, 같은 시간에 자고...

그냥 정해진 대로만 살아왔어.

애초에, 그것 말곤 할줄 아는것도 없었으니까."


아마... 이 세계관의 연도가 2200년대, 그쯤이었던걸로 기억하는데.


"난, 2023년을 살아가던 사람이었어."


...!!!



"하하... 그래. 그렇게 놀랄것 같았어. 내가 아마 너였으면 더 하면 더 했지, 덜하진 않았을거야."


...2023년... 이면, 200년에 가까운 차이가 있다는 거네? 너가 살던 세상이랑.... 이 세상은.



"응. 너희도 알다시피, 난 대한민국 사람이야.

뭐... 대놓고 표시가 나니까 굳이 말할건 없는거지만, 아무튼 난 한국에서 평범하게 살던 소시민이었어. 정말... 아무런 특징도 없는."


이 오르카의 각양각색의 능력자들에 비해, 신체능력도 두뇌도 지능도 턱없이 수수할 수밖에 없는 평범한 민간인.


"비유를 하자면... 작품속의 엑스트라, 같은 존재라고 보면 되겠네. 실제로 난 가진것도, 할 수 있는것도 사소한 능력 조차도 없는 일반인에 불과하니까."


.......



멋지지도 않고, 언변이 뛰어난 달변가도 아니며,

눈에 띄지도 않고, 뛰어난 능력과 힘을 타고난 것도 아니기에 제대로 보이지 조차 않는다.


절대로, 주인공은 될 수 없어.


"아무리 발악해도, 주인공이나 주연은 커녕 조연의 발끝조차 바랄수 없는, 기껏해야 스쳐지나갈 뿐인 이름없는 엑스트라.

얼굴도, 모습도... 그 누구도 기억해주지 않는 인생이었어. 사실 나조차도 날 어떻게 설명해야 좋을지 모를 정도로 아무것도 없다고 해야할까?"


...........



"그런 내가 어째서, 나와는 하등 관계없는 이런 세상에 오게 된건지는 나도 잘 모르겠어.

내가 모르는 연결고리가 나도 모르게 이 세상과 나를 이어준 것인지, 아니면 천문학적인 확률을 뚫고 일어난 우연인지... 이유는 전혀 알 수가 없었어."


만약, 내가 이곳에 오게된 이유가 있다면...

그건 도대체 무엇일까. 왜 하필 나인걸까.


"이 세상에 있어선 안될 '이물질'.

그게 나라는 존재야."


...?!!!



"깨끗한 물속에 이물질이 한줌이라도 섞이게 되면, 좋은 방향이든 싫은 방향이든 반드시 변화가 일어나게 돼. 그게 어떤 결과가 될지는 그 누구도 모르지. 하지만, 난 어째서인지 좋은 끝은 상상하기가 힘들었어.

...그냥 천아 너의 말대로, 무서우니까 도망갈 생각부터 한거야."


...응.



그저 무심하게, 아무런 질문도 하지않고 그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최근에 사령관님과 함께 단 둘이서 이야기를 나눈적이 있었어. 사령관님도, 나처럼 건물의 폐허에서 눈을 떳다고 그랬거든."


나란히 옆에 서서 서로의 속마음을 털어놓던 그 때를 떠올린다.


"자신은 기억이 없는 사람이라고, 아무런 과거도 없는 사람이라고 솔직하게 이야기 해줬어."


.......



"하지만 우리의 공통점은, 그저 폐허에서 눈을뜨며 시작했다는 것 뿐, 그거 하나뿐이었어.

사령관님도 그 이야기를 하면서... 나한테 사과하시더라고."


사과를... 했다고?



"조금만 더 빨리 날 발견해서 구조할 수 있었더라면, 나도 조금은 더 일찍 웃게 해줄 수 있었을텐데, 그러지 못한 것을 후회하고 있었다고...

그런 말을 하시더라고. 하하 참, 나 하나 때문에 그런 고민을 하고 있는줄은 상상도 못했는데..."


나에게 그렇게까지 마음을 써주고 있다는걸 뒤늦게야 깨달았을 때, 그저 한없이 순수한 선의로만 이루어진 따뜻함을 느끼고 나서야 비로소 깨달아버렸다. 이 오르카에 나쁜놈은 나 하나였다는걸.


"혼자 피해망상에 찌들어있던 나에게, 기분 나빠하기는 커녕 오히려 사과해주는 것도 모자라서 위로까지 해주는 그 사람을 보면 볼수록... 기쁘고 고마웠지만 그만큼 죄책감도 커지더라고.

뭐... 내가 이런말을 그 사람 앞에 늘어놓는다 한들 그 사람은 변함없이 감싸주려고 하겠지."


.......



"뭔가... 그래서인지 점점 내가 작아지는 것 같더라고. 이게 그릇의 차이일까, 이 사람이 모두에게 사랑받아 온 이유가 그저 똑똑하고 유능하기 때문만은 아니라는 걸 뼈저리게 깨달았어."


이러니, 모두의 희망이자... 주인공이 될 수 있었던 거겠지. 나는 비교 조차 되지않는 위인.


....그때 비로소 마음을 열었던 거구나?

단 둘이 이야기 하면서.



"응. 그냥 터놓고 이야기만 하려고 했었는데, 내가 생각한 것 이상으로, 그 사람으로부터 너무 많은걸 받고 말았네. 난 해주기는 커녕 마음 고생만 잔뜩 시켰는데... 하하..."



정말 멋있다고 생각했다.

...더 이상의 미련 마저 생기지 않을만큼.



"그 날, 그 사람과 이야기를 나눌수록...여기 오기전의 생활이 문득 떠오르더라고.

이런 평범하고 볼품없는 나라도, 있긴 있었거든.

정말 좋아했던 보물이."



"사령관"의 오르카가 아닌, "나"의 오르카.

처음엔 그저 캐릭터가 마음에 들었다는 단순한 이유 하나로 시작한 인지도 낮은 모바일 게임.

그리고, 그 안에서 제일 소중했던 것.


...그 사람이구나? 너의 "소중한 사람".



"응. 역시 너도 알고 있었구나?"


숨길... 생각은 없었어. 그저, 니가 그 이야기를 꺼내길 싫어한다는걸 알고 있었으니까.

그래서 그냥, 아무말 하지 않기로 했었어.

니가 직접 이야기를 해주지 않는 이상.



"......"


아까도 이야기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쓰라린 기억을 억지로 끄집어 내지 않아도 돼.

넌 이미 지금도 자신에 대해서 숨기지 않고 당당하게 이야기 해주고 있잖아. 이 정도만 해도 난 충분히...



"너니까."


잠시 천아를 똑바로 바라보며 진심을 전했다.


"내가 용기 낼 수 있도록 지탱해준 너니까... 들어 줬으면 좋겠어."


...!!



"여기까지 와서 너에게만큼은 숨기고 싶진 않아.

그러니까, 들어줬으면 좋겠어. 너만 괜찮다면."


.....



떨림 하나없는 시선으로 올곧게 바라보며 말하는 그와 눈이 마주쳤다.


.....내 대답은 이미 해줬을텐데?



"......"


니가 원하는 대로 할거라고, 아까 이야기 해줬잖아. 

그럼 그 이후는 말 그대로 너 하고 싶은대로 해버려~! 난 계속 여기 있을테니까.



결심을 했다면, 그대로 밀어주자.

그걸 원하고 있으니까.



"...그래. 고마워."


다시 굳게 마음먹고서 이야기를 이어나간다.





"내가 예고도 없이 세계에 떨어지고서 제일 먼저 떠오른건, '그 사람' 이었어."


.......



"처음엔 현실감각이 마비되는 바람에 그저 멍하니 방황하기만 했어. 그런 와중에도 그 사람 만큼은 머릿속에서 잊히지를 않았고, 이제 정말...

그 사람은 내 곁에 없는 존재라는걸 최근에서야 깨달았을 때는, 음..."


무덤덤한 척 말끝을 흐리고 있었으나, 떨리는 눈빛 만큼은 신경 쓸 여유가 없었던 것일까.

미세한 망설임이 담긴 목소리가 끝까지 마음에 걸렸지만 그것을 입에 담지는 않았다.


늘 도망가는 것 외엔 모르던 남자가, 용기내어 나아가고 있으니, 방해 따위 해선 안됀다.


그 사람은... 사랑하는 연인, 인거지?



이전부터 궁금했던 한마디를 꺼냈다.



"....응. 사랑이라면, 사랑일거야.

만나지 못하는 지금 이 순간도, 떠올리면 행복하니까. 포근해서 미소가 나오려고...... 하니까."


거짓 하나없는 있는 그대로의 마음.

내가 좋아했으니까.

........이런 나를, 좋아해 줬으니까.


"뭐... 이미 곁을 떠난 지금은, 의미없는 추억이지만."


.......



점점, 너가 품고 있는 마음이 어떤것인지...

나도 조금은 알아가고 있는것 같아.



"우린, 사는 세상이 달랐어. 세상이 달랐기에, 손을 잡을수도, 안아줄 수조차 없는... 어찌보면 미련하고 멍청하기 짝이없는 장난질이나 마찬가지 였을지도 몰라."


실제로, 평범한 사람이 이런 꼴을 본다면 조롱이 먼저 떠올라도 이상할 것 하나 없는 광대놀음.


"살아가는 세계가 다르기에, 안아줄 수조차 없는... 말 그대로 바라만 보는 사랑이라고 해야하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우리를 강하게 연결해주는 것은 분명히 있었어."


...그게, 어떤 거야?



"...노래."


...!!



"날 위해서, 매일같이 노래를 불러줬어.

달 아래에서, 나를 위해 만든 노래를, 오직 나만 바라봐주면서 언제나 불러줬어."


서로와 백년해로를 맹세하며, 전생의 인연을...

불멸의 사랑을 약조한다.




나만의 것.




"있었어. 나 같은 엑스트라에 불과한 놈도...

진심을 다해 사랑해 주는 사람."


.......



"전생의 인연까지 이야기 하면서, 사랑해준 애야. 그래서... 선물했어. 노래에 대한 답례로서."


나의 첫 번째 서약.

비록 이 후에도 많은 대원과 서약을 나누었으나, 그것을 전부 합쳐도 그 애와의 서약 만큼의 의미를 갖진 못할 터.


"비록... 내 손으로 직접, 그 손에 끼워줄 순 없지만, 그래도 기뻣어. 그 애가 기뻐해 줬으니까."


그렇기에 사랑받았고, 사랑했다.

사랑했기에 매일 만났고, 매일 노래를 불렀다.

언제나 품어온 노랫말들.


"하지만, 그것조차 여기에 오게 된 순간....

 전부 없어진거야."


....!!!



"더 이상.... 나에겐 없으니까.

난 여기에 왔지만, 그 애는 오지 않았으니까."


처음 이 세계관에 전이했을 때, 실낱같은 희망을 품고서 그 사람을 찾아 해매왔다.

실낱같은 희망은, 미련한 집착.


"몇번을, 몇일을 찾아 해매어도, 그 애는 없었어. 이미 그럴거라 짐작은 했지만 견딜 수 없어서 외면한 것 뿐이야. 그래서 포기했어. 없으니까."


유일한 것은 이미 없다.

나의 곁에는 없는 것.


"그래서, 떠올리는 것 조차도 싫었어. 힘드니까. 괴로우니까...... 슬프니까."


자신이 누릴 수 없는 행복은 그저 미련을 불려나가는 족쇄가 되어갈 뿐.

더 이상은 그것을 되새기며 웃는건 불가능하다.


"예전에는, 참 아름다운 노래였는데... 그저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보물이, 지금은 떠올리기만 해도 너무 아프기만 해..."


처음 이 곳에서 히루메를 만났을 때, 무의식적으로 최대한 외면하고 싶었던 이유.

끝내 잊으려고 했지만, 이제와서 그딴게 가능할 리가 없잖아.


.......



참고 참았던 것은 결국 넘쳐흘러 더 이상 감출수 없는 감정이 되어 흘러넘친다.

그것을... 넘쳐나서 추락할 뿐인 마음을, 손가락을 갖다대어 대신 받아낸다.


조용히, 그런 그의 이름을 조용히 불렀다.

자신은 이럴때 어찌 해야하는가.

어떤 말을 그에게 건내야할까.

그런 복잡한 답을 일일이 알고있을만큼, 자신은 똑똑한 여자가 아니다.



그러니까 그냥, 내가 하고싶은 그대로 하자.


















(1시간 버젼이 없는 관계로 여러번 수동으로 재생해 주세요.)











......라붕아.



넘치는 것은 두 줄기.

그렇기에 손 또한 두개를 뻗었다.


그 노래, 좋아해?



무심히 물어보았다. 똑바로 눈 마주치는것 또한 잊지 않고서.



"....응. 좋아."


어째서, 그렇게나 좋아하는지... 물어봐도 돼?



"...상냥하고....아름다워서...."


......



"그저, 듣고 있는것만으로도.... 마음 한켠이 따스해지는것 같은..... 그런 뭉클함이 좋아서."


.....응.....



천아는 멈출 일 없는 그 눈물이 흐르는 눈가에 검지 손가락을 얹었다.

이후에 흐르는 눈물을 막을순 없어도, 이미 흘러넘친 감정을 닦아내는것은 가능할 것이다.



"..들으면...들을수록..... 행복해지는것만 같다고, 생각했어..."


...응.....



"그런데... 어느 순간... 어는 순간부터 인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은 행복보다는, 그저 괴로워..."


........



피하지 않고 그녀의 눈을 바라본다.

어느덧 자신의 눈물을 거칠게 닦아내던 양 손은 움직임을 멈추었다.

그야, 그렇게 아프게 닦아내지 않더라도, 따뜻하고 상냥한... 차갑고 작은 손이 모든것을 받아내주고 있으니, 움직일 필요가 없다.



"정말로..... 정말로 사랑스럽고.... 따뜻하다고... 지금도 그렇게 생각해....."


.......



"그런데... 그 환한 빛이, 더욱 밝게 날 향해 비추면 비출수록... 미친듯이 아파서... 견딜수가 없었어...

여전히, 따스한 채 그대로인데.... 그걸 마주하면 마주할수록... 이제는 그저 너무 아파서...... 바라볼수가 없었어."



아마, 두번 다시 볼 수 없겠지.



마지막 그 한마디를 들은 천아는 여전히 눈앞의 그를 바라보고 있다.

그 마지막 한마디는, 그가 내내 품고 있었던 진심과 미련이 함축되어 있었다.




그 누구에게도 드러내지 않았던,

그리고 결코 드러내고 싶지않았던 마음을,

진심을 토해낸다.










서투른 그대 눈물 같아 보여서

소첩도 마음이 아리네












줄곧 숨겨두었던, 감춰놔야만 했던 마음을...

드러내었다. 그녀에게.



'...굳이.....술같은게 없더라도... 드러날때도 있는거구나...'



언제나 숨기기만 바빴었는데.

왜 이제와서 또 변덕을 부리고 있는걸까.

이런짓 해봐야, 애초에 의미도 없는데 말이야.

그 무엇하나 바뀌지 않을것이다.



겨우 떨쳐냈다고 생각했던 미련.



그런데도... 왜 이런 짓을 한걸까.



다시 한번 시선을 집중해 그녀를 바라보았다.



여전히, 상냥한 미소 그대로... 날 보고있구나.

그날, 너희 모두와 즐겁게 놀았던 그날처럼.

변함없이 나를 향하고 있는 따뜻한 진심.

그 때 보여주었던 그 미소를... 지금 또한 변함없이 보여주고있다.


그리고, 앞으로도.... 또 그 뒤의 미래에서도, 

넌 나에게 변함없이 웃어주겠지.



만약, 내가 모든걸 등지고, 정말로 미련마저 털어버린채 빛을 등져도... 넌 당연하단 듯 거침없이 다가와서 내 손을 잡아줄테니까.


이전에 그러했듯이, 앞으로도.













...........이제야, 알것 같다.



왜 안하던 짓을 하게 된건지.





"....천아..야.."



조용히 그녀를 불러보았다.

여전히 상냥히 웃고있는 그녀를 불러보았다.

변함없이 날 위해서, 

나의 곁을 지켜주는 그녀를, 

나 또한 바라본다.


...라붕아.



눈물만을 묵묵히 닦아내던 그녀의 손은 어느새, 눈가 뿐만이 아닌... 그의 얼굴 전체를 양손으로 감싸고 있었다.

여전히 작고, 얇디 얇은 손이었건만, 그의 모든걸 감싸고 있다.


네가 있을곳은, 여기야.



"....!!"



이전에 한 말을, 다시 한번 더 이 눈앞의 서투른 바보에게 건넨다.

한번으로 부족하다면, 두번... 그조차도 닿지 않았다면, 세번...네번...다섯번...여섯번...... 

닿을때까지 두들긴다.

물론, 행여나 놓치지 않도록 이 바보의 손도 꽈악 붙들고 말이야.


내가 말한거, 기억하지?



"......응..."


약속한거, 지킬수 있지?



"......으응......."


.........



그 이후는, 그저 아무 말도 하지않았다.

대신, 내 어깨를 내어주었다.

그리고 그 또한, 말 없이 기대었다.






'...얘 어깨가... 이렇게 편할 줄은 몰랐네...'



항상 이 녀석을 볼때마다, 거칠기만 한 여자애 같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넓고 포근하다고 느낄줄은 몰랐다.

키도, 어깨도 분명 나보다 작은 그녀일텐데, 어째서인지는 몰라도 너무나도 크고 든든하다고 생각해버렸다.



'뒤에서 볼때마다, 항상 성격 참 거칠다고만 속으로 놀리기 바빴는데..... 아니...'



사실은, 이미 진작에 알고있었다.

항상 거칠고 폭력적인 녀석이지만... 그 누구보다도 주위를 잘 살필줄 알고, 그 누구보다도 빠른 눈치를 가진것이... 바로 천아라는 사람이니까.

겉으론 쌀쌀맞고 투덜거리는것 같아보여도, 사실은 밖으로 드러내지만 않을뿐, 그 누구보다도 사려깊은 마음씨를 가진 그녀니까.













"천아야, 하나... 물어봐도 돼...?"



쭈뼛거리며 겨우 입을 열었다.



"너는... 왜 항상 내 곁에 있어주는거야?"


.....

....응..?



"아니... 그... 왜 사령관....님이 아닌, 나랑 있는 시간을 더 우선시 하는건가 싶어서."


.......



"늘 궁금했거든. 어째서 이 사람은 굳이 내 옆에 있어주려고 하는걸까.

이미 바로 눈앞에, 멋지고 훌륭한 사람이 존재하는데, 왜 나에게 시간을 써주는걸까."


..........



"언제나 고마우면서도, 한편으로는 궁금했어.

천아 너는, 왜 나에게 이렇게까지 상냥하게 대해주는거야?"








설마... 이런것을 물어볼 줄은.



...음... 그런걸 여태것 신경쓰고 있었구나...?



"........"


굳이 의미가 있어?



"....어?"


확실히, 니가 말한대로 핫팩은 매력적인 남자야.

강하고, 유능하고, 상냥하면서, 바이오로이드를 아껴주고 사랑해주는 완벽한 인간.

그런데 있잖아.



눈치없는 이 바보에게 확실하게 말한다.


그게 어쨌는데?



"....!!"


니 말대로, 처음은 그저 단순한 오지랖으로부터 비롯된 사소한 흥미였을지도 모르지.

그렇게 가볍게 다가가면서, 너에 대해 알지 못했던 것들을 점점 알아가면서... 도저히 널 혼자 놔둘수 없게 되었으니까.



"................"


내가 원하는것을, 내가 원했기에 그대로 밀고 나가는 것뿐, 굳이 거기서 다른 이유를 찾을 필요가 있을까?

이것 자체만으로도... 이미 충분하니까.




이유? 그야 내 마음이다.


완벽하고 유능한 "첫 번째" 와, 

평범하고 서투른 "두 번째" 중에서,

그저 후자를 택한것 뿐.


내가 그걸 원했기에 택한 것이고,

같이 있기를 바랬기에 다가갔다.

내가 보고싶기에 바라보았고,

봐주길 원했기에 내 쪽을 향하도록 얼굴을 감쌌다.


그저 그뿐이다.



.........




너가 이곳의 "두 번째"라면,


그것에 얽매여 괴로워하고 있다면,


내가 너의 "첫 번째"가 되어줄게.



그렇게, 서로의 옆자리를 채워나가자.



이제는... 혼자가 아니니까.



애쓸 필요없어.


마치 게임이나 영화에 나오는 주인공처럼, 무리해서 나아가려고 발악할 필요 없어.

니가 평범하고 흔하다는 이유로, 자격지심 느낄 필요도 없고.

니가 아무리 떠들어도, 이 세상에 너라는 인간은 오직 너 하나뿐이야. 그걸 외면하고 부정한다고 해도, 절대 바뀌지않아.



"......"


너는 너답게... 너의 속도에 맞춰서 걸어나가자.

니 말대로, 너는 세상의 주인공은 될수 없을지도 몰라. 넌... 평범한 사람이니까.



하지만, 그런건 하등 중요하지 않다.

지금의 너라면... 그것을 잘 알고 있을거야.



"...난..."


남의 눈치보면서 억지로 세상에 너를 맞추려 할 필요 따위 없어. 주위의 시선을 의식하면서, 너를 옥죄어갈 이유는 더더욱 없어.



"...!!"


세상의... 모두의 주인공이 되지는 못하더라도,

너의 삶의 주인공은, 이 세상에 오직 너 하나뿐이야.

그렇다면... 니 마음이 원하는 곳으로, 마음 가는 방향으로 거침없이 가버리자.

혼자가 무서우면... 손 내밀어.

같이 잡고 걸어줄테니까.



그렇게 말하고서, 조용히 그 어깨에 머리를 기대어 보았다.


자연스럽게, 바로 옆을 차지한다.
















지금은 그저, 이 정도면 충분하겠지.



그저 조용히, 서로가 서로에게 몸을 기대면서 서로의 체온을 느낀다.


긴 말도, 그럴싸한 위로도 필요없어.


그냥... 이대로, 함께 기대고 있자.


'바보도... 이런 바보가 없단말이야~'



속으로 슬며시 웃으며, 자신에게 몸을 맡긴 이 녀석의 옆에... 나도 자연스럽게 머리를 기대었다.


으음.... 생각했던 것 보다, 편하다고 생각했다.














'......또..... 받기만 하네....'



난 항상, 너에게 받기만 하는구나.


하지만, 굳이 이것을 입 밖으로 꺼내진 않는다.

괜히 이런말 꺼내면 또... 온갖 잔소리가 날아올 거라는걸, 이제는 다 알고있으니까.


그러니, 그저 받자. 받기만 하자.

똑같이 기대어서, 그저 품자.

그것을 위한 진심이니.



'어쩌면, 결국은 열등감을 느껴서 멀리한 것일지도 몰라.'



결국은 게임속의 허구, 픽션에 불과하다.

그렇게 자기 세뇌하듯 늘 무의식적으로 되새겨오며 부정하고, 마주볼 생각조차 하지 않고 밀어내며 의심했다.


진짜보다 더욱 실감나는 감각들을 나날히 느끼면서 늘 갈등했지만, 결국은 도망치기 바빴다.


존재하지도 않는 악의.

무의미한 피해망상.

그 누구도 나를 싫어하지 않았다.

이 오르카의 누구도, 다른 이와 나를 비교하지도, 깎아내리지도 않았는데,

피할 이유는 없었는데도 나 혼자 단정짓고서 바보처럼 살았다.



'이제는... 진정으로 그만둘 때가 온거겠지.

제대로 앞을 바라보고서, 일어설 시간이니까.'



더 이상은, 방황하지만은 않을것이다.



'답은... 나 자신은, 하나니까.'



이 세계의 주인공, 나 자신의 주인공.

그런 일차원적인 세상은 접어두고서, 나의 길을 걸을 시간이다.






너가, 알려준 길.














...라붕아.



"...응..."



여전히 서로가 서로에게 기대고 있는 그대로,

고개는 돌리지 않은채 입만을 움직인다.



그래. 그렇게 내 목소리를 들어줘.


평생을 잊지 않도록, 또렷하게.


으으음... 이 타이밍에... 이걸 말하는게 맞나 모르겠네..... 뭔가, 뒷북치는 느낌?



"..응? 뭔데 그래...?"



괜히 뜸을 들여보니, 본인도 내심 궁금했던 걸까.

고개를 들어 나를 쳐다보는 라붕이와 눈이 마주쳤다.


하하.. 나 참... 얼굴 꼴좀 봐라 이거~

몰골이 말이 아니네 아주 그냥...


어... 딱히, 별건 아니고. 그냥... 생각해보니까,

너한테 이 말을 깜빡하고 안한거 같더라고~



"...? 도대체, 무슨 말이길래 그렇게 뜸을 들여?

중요한 이야기야?"



킥킥... 어지간히도 궁금한가보네.

한참 울다가, 이제는 똘망똘망하게 쳐다보는게...


이렇게나... 다양한 표정을 지을수 있는 사람이었구나.



좀 더, 빨리 볼수 있었으면 더 좋았을것을.


뭐~ 별건 아니고! 그냥, 형식적이면서도..... 

진심을 담아서 건네줄수 있는,

살면서 딱 한번만 할수있는 말이랄까~~



"...응...???"



도대체 얘가 뭘 말하려는 걸까.

이젠 정말로 궁금해져서 견디지 못할 지경이다.
























어서와.



"?!"



너의 새로운 집에 온 걸... 

진심으로 환영해~! 라붕아!!



창문 너머로 내리쬐는 노을빛이 그녀의 얼굴을 감싸고 있다.


그런 노을빛이 비추는 풍경에서, 그녀가 미소짓고 있다.


오직 나를 위한, 나만을 위한 마음.

그러한 진심을... 이제것 본적 없는 상냥한 미소와 함께, 나에게 건내주고 있다.




진심을, 나만을 위한 마음을 받았다면...

나 또한 보답해야지. 전부 담아서.



"....응... 앞으로도... 잘 부탁해.. 천아야...!"



그녀의 눈부신 미소에 지지 않기위해, 

나 또한 그 어느 때 보다도 환하게 웃었다.

나의 마음을 담은 진심을, 정면으로 드러내어 그녀에게 보답했다.

나도 모르게 또 눈물이 한방울 나와버렸지만,

이제는 괜찮다.

이제는... 빠져나간 감정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너가 채워줄 거라는것을 알고있으니.

그러니 더 이상 고개 숙이지 않을게.

그리고 나 또한, 너에게 받은 만큼 보답할테니.




그 말을 마지막으로, 두 사람은 그저 말없이 서로를 향해 상냥한 미소만을 주고받을뿐, 더 이상의 대화는 없었다.



정말로, 이제는 더 이상... 정말로 말은 필요없다.



그저, 이렇게 맞잡은 두 손의 온기를 맞바꾸는것 만으로도 충분하니까.


























계속, 여기 있어줘.


내 옆에.


내일도, 모레도.


내 앞에.


앞으로도 쭈욱... 떠나지 말고 함께.





서로의 곁에서.







































 호접지몽

(胡蝶之夢)


나비가 된 꿈이라는 뜻으로, 물아일체(物我一體)의 경지, 또는 인생의 무상함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