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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우... 하아... 어, 어디까지 온 거지?”

 

입을 크게 벌리고 숨을 내뱉던 미호가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뒤쫓는 고블린들은... 없는 건가?”

 

“그런 생각을 할 여유가 있다면 움직여라.”

 

툭 하고 내뱉은 바르그의 말. 가장 뒤에서 대원들과 속도를 맞춰 달리던 그녀가 핀잔을 주었다.

 

터렛의 총알을 막느라 너덜너덜해진 바르그의 대검은 당장이라도 구멍이 뚫릴 것처럼 위태로웠고, 온통 균열로 뒤덮여 있었다.

 

“지금 남을 걱정해줄 만큼 여유로운 상황이 아니다.”

 

“... 누가 모른데?”

 

“알면 행동으로 증명해라. 딴소리 하지 말고.”

 

“나도 딴소리 같은 거 하기 싫어. 가야 하는 건 아는데...”

왠지 모르게 발이 움직이지 않는다.

 

쿵. 쿵. 멀리서 들려오는 폭발음. 스각거리는 파찰음까지 섞여 들어있다.

 

“이대로... 그냥 가는 거야?”

 

“우리가 이길 수 있는 상대라 생각된다면 가서 응전해라. 아니면 퇴각해라. 간단한 이치다.”

 

“그렇게 간단한 일이었으면 이러고 있지도 않았을 거 아냐!”

 

꿱, 소리를 지른 미호 옆으로 다른 대원들이 스멀스멀 다가왔다.

 

“미, 미호. 왜 그래... 그냥 가자.”

 

“그래. 장화가 어떻게 싸우는지는 이모가 이미 보여줬잖아. 강화 시술까지 받았다면 우리 생각보단 훨씬 잘 싸울 거야. 의외로 잘 버틸 수도...”

 

“아닌 거 알잖아!”

 

미호가 불가사리의 손목을 탁 쳐내며 말했다.

 

“지금까지 했던 작전 중에 여기까지 도달했던 적은 없어. 지금이 마지막 기회일 지도 모른다고! 그런데 어떻게 그렇게 돌아가겠다는 말이 쉽게 나와?”

 

“대신 루트를 확보했잖아. 여기가 수복되기 전에 본대를 데리고 돌아오면...”

 

“그 전에 놈이 원상복구 시키면 어쩌려고!”

 

닥터의 예상도 뛰어넘은 인공지능과 그것이 통제하는 시설. 언제 어떤 일이 일어난다 해도 이상하지 않은 곳이다.

 

만약 다시 돌아왔을 때 놈이 이미 준비를 해놓았다면, 임무 성공률은 바닥을 길 것이 뻔하다.

 

미호는 병실에 누워 있을 사령관의 얼굴을 떠올린 다음, 미간을 찌푸리며 바르그를 올려다보았다.

 

“침착하게 생각하라 했지? 이게 내가 침착하게 생각한 결과야.”

 

“실패 가능성이 높은 계획이다.”

 

“안 그랬던 적이 없었어. 있었다면 여기 있는 인공지능이 우리를 얕보고 있었을 때겠지만, 이미 지나가버렸지.”

 

“후우.”

 

검자루를 쥔 손목에 힘을 주며 바르그가 미호를 노려보았다.

 

“그런 의미가 아니다.”

 

“그럼 뭔데?”

 

“간단하게 말하지.”

 

바르그가 얼굴을 찌푸렸다.

 

“간다고 해서, 도움이 되겠나?”

 

오르진 더스트를 온몸에 절이듯이 투여한 장화. 그런 장화와 대등하게 겨루고 있는 미지의 상대.

 

바이오로이드보단 괴물이란 수식어가 더 잘 어울릴 그들의 싸움에 끼어들어봤자 방해만 될 것이다.

 

그리 생각한 바르그였기에 미호의 생각에 회의적이었다.

 

허나 그에 질세라, 미호 역시 바르그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도움이 될지 아닐지는 당신이 더 잘 알지 않겠어?”

 

장화를 지휘해본 적도 있다 하는 바이오로이드. 그런 존재인 바르그라면 자신들보단 장화에 대해 훨씬 더 잘 알 것이 뻔하다.

 

“......”

 

바르그는 미호의 얼굴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전의? 욕심? 미묘한 의욕 같은 것이 비치는 얼굴. 좋은 얼굴은 아니다. 평소에 짓는 말괄량이 같은 표정이 아니었으니까.

 

답지 않은 얼굴을 했다는 것은 익숙하지 않은 감정에 휘둘리고 있다는 뜻.

 

그런 상태로 전장에 넣어봤자 결과가 좋을 리 없단 걸 바르그는 알고 있었다. 지금 당장 퇴각하는 것이 현명한 선택.

 

“... 질문 하나만 하겠다.”

 

“마음대로 해.”

 

그럼에도 구태여 질문을 하는 것은 이들이 살아온 곳이 지금껏 쭉 그런 전장이었단 사실이었다.

 

“왜 그러는 거지?”

 

“뭐가.”

 

“네가 저 년을 죽도록 싫어한다는 건 내가 잘 안다. 나도 몽구스의 데이터 베이스에 접근했던 적도 있었으니까. 그런데 넌 지금 저걸 구하러 간다 하는군.”

 

미호가 코웃음을 치며 대답했다.

 

“내가? 아니. 난 그냥 사령관을 구하고 싶은 것뿐이야.”

 

“사령관?”

 

“그래. 사령관을 구할 가능성은 지금이 가장 클 것 같으니까. 난 우리 바보 사령관 말고는 상관 안 해.”

 

“정말이냐?”

 

묘연한 눈빛.

 

“이유야 어떻든 이건 네 어미의 원수를 살리는 거고, 네 원수를 살리는 거다. 그걸 모르진 않을 텐데?”

 

“......”

 

시답잖은 감정이 시답잖은 이유.

 

바르그가 여제에게 배운 것이 있다면, 일말의 감정에 휘둘리는 것은 말 그대로 일말일 뿐이란 것이다.

 

미호가 이러는 것이 어줍잖은 정의감에 기인한 것이라면 장화의 불의를 깨달았을 때 후회할 것이다.

 

보잘것없는 동정 때문이라면 제가 한 적선의 무의미함을 보고 후회할 것이다.

 

“... 그래서 어쩌라고.”

 

하지만 미호는 눈을 부릅뜨고 말했다.

 

“사령관을 살릴 가능성 가장 높은 게 지금 아니야? 그러면 나는 그대로 할 거야.”

 

“사령관? 그거 참 좋은 변명이군.”

 

“뭐? 변명?”

 

콰직!

 

바르그의 목덜미가 순간 붕 떠올랐다.

 

“이런 말싸움 하고 있을 시간이 없어! 나도 나름대로 생각하고 선택한 거야! 고작 죽어가는 바이오로이드 하나 살리겠단 생각 때문에 이러는 게 아니라고!”

 

“정말 그럴까?”

 

“당연하지! 저 빨간 머리 년이 싫은 건 세상 누구보다 나야! 그런데 가자고 하는 이유가 뭐겠어?”

 

미호가 부르르 떨리는 팔로 바르그를 잡아들었다. 불가사리, 드라코가 곁에서 말리려 했으나 미호의 손은 그보다 배는 빨랐다.

 

제 팔짓을 순식간에 뚫고 들어온 미호에 바르그는 짐짓 놀란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그 정도뿐. 애초에 그녀가 피하지 못할 속도도 아니었다.

 

“이유는 중요하지 않다.”

 

바르그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중요한 건 결과지.”

 

“뭐?”

 

“작전 성공을 위해선 저 년을 이용해야 하고, 그러면 넌 장화를 살려야 한다. 총알이 그 년 머리를 향할 때 그걸 요격해줘야 하고 장애물이 있으면 길을 터줘야지.”

 

만약 돌아간다면 가장 전투력이 높은 장화를 중심으로 전투가 진행될 것이 뻔한 상황. 그런 상태에서 몽구스가 해줄 수 있는 것은 그녀의 서포터뿐이다.

 

하지만 서포터란 건 몇 년을 함께 한 대원들끼리도 쉽지 않은 것. 하물며 철천지불구의 원수지간에게 바랄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

 

미호의 손이 떨렸다.

 

바르그는 그런 그녀에게 말했다.

 

“잘 들어라, 꼬마야. 복수심은 그 정도 변명거리로 사라지는 게 아니야. 평생을 지우려 해도 지독하게 따라 붙지. 그러니까 넌 가도 도울 수 없을 거다.”

 

“... 그걸 당신이 어떻게 알아?”

 

“봐왔으니까.”

 

장화.

 

그녀는 그 바이오로이드가 복수심 속에서 처절하게 망가지고 뒤틀리는 장면을 수도 없이 봐왔다.

 

“바이오로이드는 변하지 않는다. 저 년도, 나도, 너도, 절대 피할 수 없는 운명 같은 거지.”

 

“......”

 

“그러니 쓸데 없는 소리 하지 말고 여기서 나갈 생각이나 해라. 그거는 도와줄 테니.”

 

“그... 그러면 이번 작전은...”

 

“실패다. 장화 저 년이 성공하지 못한다면 말이지.”

 

옆에서 옷김을 잘근잘근 씹으며 묻는 드라코에게 바르그가 퉤 하고 뱉듯이 말했다.

 

그 독한 것이 동귀어진을 노리고 버틴다면 가능성이 0는 아니겠지만, 동우의 영리함을 생각해보면 낙관적으로 보긴 어려운 상황이다.

 

차라리 돌아가서 다음 작전을 수립하는 것이 현명할 터.

 

그때, 멀리서 저벅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고블린? 설마 아직도 살아있는 놈이 있었나?’

 

본능적으로 검을 쥐어 잡은 바르그가 일행들을 뒤로 몰고 어둠 속으로 몸을 낮췄다. 등 뒤로 길게 뻗은 검을 당장이라도 내지를 듯이 움켜 쥐었다.

 

저벅.

 

“오랜만이네. 바르그.”

 

하지만 그럴 필요가 없는 사람이란 걸 깨닫기까지 오래 걸리진 않았다.

 

“... 장화?”

 

“상황이 상황이라 길게 말하긴 어렵겠네. 짧게 말해야겠어.”

 

짧은 단발. 붉은 머리.

 

어둠 속에서 루비처럼 반짝이던 것은 분명 그녀가 아는 사람의 것이었다. 다만 느껴지는 살기는 닳고 닳아 없어져버린지 오랜 것처럼 흐릿했다.

 

분명 저건 오르카에 미리 합류했다던 그녀.

 

그녀가 말했다.

 

“애들 그만 괴롭히고 나 좀 도와줘.”

 

 

 

*

 

 

 

“... 너?”

 

“뭔 못 볼 거라도 봤어? 벌레 씹은 표정이네.”

 

손끝의 사출 장치로 와이어를 조종하고 있는 장화를 바라보며, 크로스보우를 들고 있는 장화가 입을 벌렸다.

 

거칠게 숨을 몰아쉬기 위함이었다. 예상치 못한 인물의 등장탓에 숨은 평소보다 배로 거칠어졌다.

 

“여긴 어떻게...”

 

“전에 만나고 처음인가? 되게 어색해하네. 너 원래 그런 성격 아니잖아. 좀 더 지랄 맞은 치와와처럼 굴어야 정상인데?”

 

“... 아니, 지금 그딴 소리를 할 시간이...”

 

“음, 아니다. 여기 와서 그 사람을 만났을 테니 뭔가 달라져도 달라지긴 했겠구나. 그러면 저리 벙쪄있는 것도 이해는 가지.”

 

자기 말이 들리지 않는 것처럼 와이어를 들고 있는 장화가 어깨를 으스거렸다.

 

홍련이 맨손으로 쥐고 있던 실들을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누에가 고치를 휘감듯 다루기 시작한 그녀의 양팔로 강철의 실들이 휘감겨 들어왔다.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장화를 향해 쇄도하던 와이어 수십 가닥이 일제히 그녀의 품으로 돌아왔다.

 

“넌 뭐냐.”

 

소름 돋게 사방을 채우는 살기.

 

홍련이 어금니를 갈며 물었다.

 

“나? 내가 누군지 몰라서 묻는 거야?”

 

“그런 식으로 빈정대는 꼴을 보니 알겠군. 그딴 어조로 말하는 인간은 엠프레시스 하운드의 장화 밖에 없지.”

 

“굳이 그걸 물어야 아는 걸 보니 당신도 감 다 죽었네. 이거 안쓰러워서 어쩌나.”

 

“네가 걱정할 일 아니다.”

 

촤륵!

 

물 흐르듯 장화에게 흘러가던 와이어가 한순간 팽팽하게 늘어졌다.

 

홍련이 쥐고 있던 손에 힘을 준 것이었다.

 

기교도, 기술도, 뭣도 없는 단순한 악력.

 

하지만 그 위력에 연결되어 있던 수십 톤의 철근 덩어리들이 휘청였다.

 

“감히 내 앞에 얼굴을 들이민 대가가 뭔지는 알겠지?”

 

두 명이나 되는 장화를 보자 분노로 일그러졌던 홍련의 얼굴은 되려 차분해졌다.

 

마치 얼굴이 그녀의 분노를 차마 담아내지 못하겠다는 것처럼.

 

그녀는 더욱 강하게 와이어를 쥐고 팔을 휘둘렀다. 있는 힘껏 움직인 어깨에 섹션 전체가 뒤흔들리는 듯했다.

 

“으읍!”

 

표면이 거칠다면 힘으로 잘라내고, 엉켜 있다면 엉킨 타래째로 끄집어낸다.

 

자신의 무기를 놓은 홍련에게선 짐승 같은 박력 외엔 아무 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제아무리 와이어에 익숙한 장화라 해도 감당할 수 있는 힘이 아니었다.

 

“이, 이건 좀 위험하겠는데?”

 

“이 미친년이 대체 뭔 정신으로 여길 와! 빨리 꺼져! 네가 이길 수 있는 상대가 아니다!”

 

어떻게든 주변 구조물에 와이어를 묶어놓아 버티던 장화도 이젠 한계에 다다랐다. 홍련의 무분별한 휘두름에 티타늄 격벽이 뜯어져 나갔고, 장화의 사출 장치에선 날 리 없는 기괴한 기계음이 토해내듯 나오고 있었다.

 

애초에 상대는 멸망 전 바이오로이드의 최고 권위자가 자신의 모든 것을 걸어 만든 무덤의 수호자.

 

상대가 될 리 만무한 싸움이었다.

 

“지금이라도 놓고 꺼져! 내가 백업 정도는 해줄 수 있으니까 너 하나 정도는 살릴 수 있을 거야!”

 

“네가? 정말로?”

 

“그럼 나보고 어쩌라고! 우리 둘 다 살릴 순 없잖아!”

 

그녀를 상대해봤기에 안다. 이건 싸움이란 개념이 성립될 수 없는 상대다.

 

힘이면 힘, 기술이면 기술, 오리진 더스트를 치사량까지 투여한 자신도 간신히 길항한 상대다. 과도한 오리진 더스트의 사용으로 몸이 한계를 넘을 걸 생각하면 앞으로 상황이 나아질 수도 없을 터.

 

무모한 싸움을 계속할 만큼 그녀는 어리석지 않았다.

 

그러니 그녀가 내릴 수 있는 가장 지혜로운 선택은 퇴각이었다.

 

“이상하네. 내가 아는 장화라면 이렇게 위험한 상황에 그런 말을 하진 않을 텐데 말이야.”

 

허나 그녀의 앞에서 괴물을 막아 세우고 있던 장화는 태연하게 말했다.

 

“진짜 위험했으면 그럴 시간에 도망갔겠지. 안 그래?”

 

“그래, 그러니까 닥치고 도망이나 가라고!”

 

휘릭! 장화가 허공의 와이어를 붙잡고 강하게 끌어당겼다. 당장이라도 끊어질 듯 팽팽한 와이어가 순간 낚여 채이자 양쪽의 균형이 깨졌다.

 

피빅! 픽!

 

들고 있던 크로스보우로 홍련의 오른 무릎에 빙결 엠플을 쏘아 맞힌 장화가 왼손에 와이어를 감싸며 입술을 짓씹었다.

 

“아직이라면 내가 싸울 수 있다. 아직이라면... 크흡!”

 

그 말과 동시에 손등을 잘라낼 기세로 옥죄여 오는 와이어. 은색의 강철 가닥이 그녀의 건틀릿을 뚫고 하얀 피부 위를 으직거렸다.

 

실 끝으로 시선을 돌리자 보이는 건 차가운 시선으로 와이어를 잡아 당기는 홍련. 화살 몇 방 정도로 저 홍련을 막을 수는 없었다.

 

‘씨발, 무슨 저런 년이...!’

 

“가식 떨지 마라, 짐승 같은 것아. 내 아이를 죽인 네 년이 그래봤자 같잖은 위선에 불과해!”

 

콰드드드득!

 

“으읍...!”

 

빠직!

 

손뼈가 부러졌다. 시퍼렇다 못해 검은 멍이 그녀의 왼쪽 손등을 가득 채우기 시작했다.

 

내장이 찢어지는 고통도, 갈비뼈가 허파를 뚫는 흉통에도 익숙한 그녀였지만 흘러나오는 신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뼈 전체가 조각나 근육을 찌르는 탓이었다.

 

하지만 그보다 심각한 것이 오리진 더스트의 부작용이었다.

 

‘왜... 왜 벌써...’

 

두근.

 

두근.

 

느려지는 심박수. 허나 얼마 안가 미친 듯이 뛰기 시작한다.

 

혈류가 멈춘 듯 몸이 차가워졌다가 이내 용암처럼 뜨거워진다. 과도한 오리진 더스트가 온몸의 순환을 엉망으로 만든 것이다.

 

“야, 지금 괜찮...”

 

“닥치고 꺼져!!”

 

장화는 가늘어지는 의식을 어떻게든 붙잡으며 외쳤다.

 

“아니, 너 혼자서 어떻게 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

 

“그럼 니가 오면 어떻게 할 수 있는 상대야?!”

 

그럴 리가 없다.

 

상대는 라비아타와도 비견될 상대.

 

고작 장화 둘로 어찌할 수 없다.

 

“아닌 거 알잖아! 여기 있으면 둘 다 개죽음이야! 너라도 가서 오르카에 상황을 알려야지!”

 

“아직 해보지도 않은 싸움을 벌써 포기해? 너답지 않게 왜...”

 

“그만 쫑알쫑알거려!”

 

참다 못한 장화가 자신의 왼손을 빼내며 소리쳤다.

 

“그래! 장화답지 않겠지! 그래서 뭐 어쩌라고! 그 사람 안 살릴 거야? 너도 알거 아냐! 오르카는 그 사람 없이는 못 돌아가!”

 

“......”

 

“그러니까 돌아가서 그 뭣같은 고집은 꺾고 오르카 본대를 데리고 오라고 해! 그러면 저 홍련도 얼마 못 버틸 거야! 아무리 등신 같은 너라도 이 정도는 기억하고 갈 수 있잖아?”

 

꽉 묶인 와이어에서 손을 빼느라 손가락 뼈까지 금이 갔다. 다섯 개의 손가락 전부가 보라색으로 물들었다.

 

“내가 시간 벌 테니까 빨리! 꺼지라고!”

 

그렇게 말하며 장화를 집중했다.

 

‘살린다.’

 

숨을 몰아 쉰다.

 

‘저 년만큼은 살려서 보낸다.’

 

크게.

 

들숨.

 

작게.

 

날숨.

 

‘그래야, 그래야 오르카가 이길 수 있어.’

 

호흡은 몸 속에 남기는 것이 많을수록 좋다. 산소를 많이 머금고 있을수록 회복이 빨라진다.

 

장화는 그녀가 배운대로 숨 쉬기 시작했다. 근처에 널브러져 있는 홍련의 옷가닥을 찢어 망토처럼 등에 휘둘러 맸다.

 

그러다 문득.

 

‘...... 나.’

 

습관처럼 머리를 굴렸다.

 

‘살아나갈 수 있을까?’

 

습관처럼 그녀의 생존 가능성을 점쳐보았다.

 

‘... 아마 못 살겠지.’

 

그렇게 점쳐본 결과는 0.

 

0은 아니었으나 0에 한없이 가까운 숫자였기에 그녀는 그냥 0이라고 생각했다.

 

살면서 단 한 번도 산출해본 적 없던 숫자.

 

그녀의 계획은 언제나 그 숫자를 올리기 위한 과정의 연장이었다. 그랬기에 그녀는 언제나 절반 이상의 생존 확률을 확정해야 움직여왔다.

 

‘... 하.’

 

그래서 그 숫자가 0이었을 때에 느낄 수 있는 감정도 느껴본 적이 없었다.

 

“야.”

 

그래도 그녀를 보내는 이유.

 

“......”

 

“... 나 하나만 물어보자.”

 

“뭐.”

 

“... 드라코. 그 애. 사령관 많이 좋아하냐?”

 

“당연히 많이 좋아하지.”

 

“... 그럼 됐어.”

 

그 애들이 좋아하는 사람을 살릴 수 있을 테니까.

 

그녀는 자신이 하는 행동을 희생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그 단어가 담고 있는 어떤 숭고한 의미라도 자신에겐 어울리지 않으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 대신 집중한 것은 자신의 생존 확률.

 

0이라는 숫자.

 

‘... 하하.’

 

숨이 턱, 막히는 기분.

 

손끝이 부르르 떨리고 눈동자가 녹아내리는 듯한 느낌.

 

목구멍에 ‘아’라는 한탄이 돌멩이처럼 막혀있는 감각.

 

‘하하하...’

 

그녀는 기어코 장화를 돌려 보냈다. 장화답지 않게 몇 번 질척이기도 했으나 결국 그녀를 반대편으로 보내는데 성공했다.

 

‘하하하하하.’

 

기어코 돌아가는 그녀의 발자국 소리를 들으며 ‘아’라는 말을 토해냈다.

 

구멍을 막고 있던 돌덩이가 쑥 빠지자 그 안에 캐캐묵어 있던 것들도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이렇게 죽는구나.’

 

처음에는 후회.

 

‘죽는 게 이렇게 아픈 거구나.’

 

그 다음은 절망.

 

고통.

 

공포.

 

그러기에 다시 후회.

 

절망. 고통. 공포.

 

자신이 숨겨왔던 것들이 얼마나 나약하고 역한 것인지,

 

그것은 여느 생수통에 잔뜩 쌓인 모래알갱이처럼 별볼일 없는 것이었으나 절망스러운 것이었다.

 

드넓은 사막 한 가운데에 있는 생수통. 그 속에 담긴 모래알.

 

그만큼 의미 없고, 의미 없기에 공포였다.

 

그런데 왜였을까?

 

“하하하하하!”

 

장화는 웃었다.

 

“... 웃어? 네가 감히?”

 

“하, 하하하하!”

 

웃을 상황이 아니었다. 헌데 자신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감정적이고 멍청한 행동. 자신보다 강한 상대를 도발할 가능성이 농후한 짓을 그녀는 감히 저지르고 있었다.

 

“하하하... 하...”

 

그렇게 얼마나 있었을까, 멍청한 웃음은 한밤처럼 멎었다.

 

“만약에 말이야.”

 

덜렁거리는 왼손.

 

“내가 미안하다고 말로 하면 들어줄 거야?”

 

장화는 떨리는 입술로 답이 뻔한 질문을 외웠다.

 

홍련은 와이어를 당기며 담백하게 말했다.

 

“아니.”

 

“역시 그러겠지?”

 

그제야 그녀의 웃음이 명확해졌다.

 

“그럼 이렇게라도 해야겠네.”

 

어린 조카들에게 뭐라도 해줄 수 있게 되었다는 것.

 

그 아이들이 좋아하는 사람을 위해 제 목숨을 던질 수 있게 된 것.

 

자신을 구해준 그 사람을 위해 앞으로 몇 십초라도 살 수 있게 된 것.

 

후회, 공포, 그런 보잘것없는 것들을 토해내고 나니 비로소 보이기 시작한다.

 

“미안해.”

 

“이제 와서 네 말 따위는...”

 

“미안해.”

 

장화는 무기를 들며 말했다.

 

“미안해.”

 

한 손에는 홍련의 무기를, 다른 손에는 자신의 무기를 든채, 답이 돌아오지 않는 용서를 구했다.

 

“미안해.”

 

하지만 이전처럼 공허하다 느껴지지 않았다.

 

“그러니까 용서해줘.”

 

지금 한 순간 만큼은 자신이 아닌 남을 위해 살고 있었으니까.

 

멈춰가는 심장 속에서 장화는 활을 들고 천장을 쏘았다. 간신히 매달려 있던 콘크리트 더미가 홍련을 덮쳤다.

 

와직!

 

솜사탕처럼 손쉽게 잔해를 부수고 일어난 홍련은, 바로 이어지는 장화의 연격을 보았다. 오리진 더스트로 극에 달한 반사신경 덕분에 간신히 허리를 비틀어 피할 수 있었으나 장화의 와이어는 그녀의 뺨에 작은 상흔을 냈다.

 

처음에는 닿을 수도 없는 그녀였으나, 고작해야 합을 주고 받는 것에 불과했으나,

 

이제야 닿기 시작한다.

 

‘까짓것 죽으면 죽지 뭐.’

 

이젠 죽음이 두렵지 않으니까.

 

‘복수도 했고, 내가 바보짓 했던 것도 알았고, 바보 같이 착한 인간도 만났고. 하고 싶은 건 다 했잖아.’

 

더 빠르게.

 

더 정밀하게.

 

눈에서 피눈물이 흐를 지언정 적을 놓치지 않는다. 자신의 가족을 죽일 적을 끝끝내 쫓으며 활을 겨눴다.

 

‘그러니까... 그러니까...’

 

빠직.

 

어깨 뼈가 빠진다.

 

심장의 인공 혈관이 삐걱인다.

 

근섬유가 찢어지고, 홍채가 흐려진다.

 

‘후회할... 필요 없어.’

 

삶의 마지막에 가서야 자기가 멍청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용서 받지 못할 죄를 저질렀음을 알았다.

 

그래도 이렇게나마 용서를 구할 방법을 찾았으니 그걸로 만족했다.

 

‘이렇게 죽자.’

 

그렇게 삶을 단념하려고 했을 때.

 

“... 이번 한 번만이야.”

 

피빅-

 

“멍청한 이모.”

 

익숙한 저격음이 그녀의 귓등을 스쳤다.

 

 

 

*

 



 

소설 쓰다가 죽을 뻔했다고 하면 믿을 사람이 얼마나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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