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나는 겁이 많은 편이였다.

어디서 뭘 어떻게하든, 늘 최고의 순간이 아닌 최악의 사태만을 상정하며 움직였다.

필사적으로 움직이며 늘 스스로가 상정한 최악의 사태만을 막아왔다.

누구는 그런 나를 보고 음흉하다고 한다.

누구는 그런 나를 보고 무섭다고 피한다.

그래서 사람을 사귀는 것을 포기했다. 그래서 화면 너머의 존재들에게 애정을 품었다. 적어도 그들은, 그녀들은 내가 계정을 지우는게 아닌 한 늘 내 곁에서 날 지켜주니깐. 

그래서... 그녀들을 사랑했다.



늦은 밤, 잠을 방해하는 잡념을 지우기 위해 나선 혼자만의 산책.

사는 세계가 바뀌었다고 습관마저 바뀌는건 아닌지 그래도 아까 침대에 누워있을 때보단 많이 나아졌다.

페로에게 오전에 이곳저곳 소개받은게 이런식으로 쓸모가 생길줄은 예상도 못한 일이지만, 그래도 이정도면 눕자마자 바로 잠들 수 있으리라.

"슬슬 들어가볼까..."

잡녑을 지운다는 목적도 달성했겠다. 이 이상 여기에 머물 이유는 없다.

돌아가서 다시 그 푹신푹신한 침대에 눕자. 그래, 가능하면 기분이 좋아질 만한 꿈을 꾸는게 좋겠지.

-돌아가자, 방으로.

그렇게 방으로 돌아갈려던 그때.

"잠깐 멈추시죠."

"에?"

누군가, 나를 멈춰세웠다. 아니, 멈출 수 밖에 없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두번째 인간."

눈 둘곳이 없을 정도로 작은 면적의 옷, 등 뒤에 있는 아름다운 날개와 헤일로 그리고 길게 늘어뜨린 아름다운 머리와 보라빛 눈동자.

멸망전 존재한 사이비 교단. 쿄헤이 교단의 상징이자 교단의 치품천사.

"저는 쿄헤이 교단의 치품천사 아자젤이라고 합니다."

아자젤이 나의 눈앞에 나타났다.

"...저야말로, 만나서 반갑습니다 아자젤님. 김라붕이라고 합니다."





-아이에에에에에!!! 아자젤? 아자젤 어째서?!

어째서 아자젤이 여기에 있는거지? 설마 내가 이단인지 아닌지 알아볼려고 접촉한건가?

아냐, 그럴거였으면 옆에 엔젤이나 사라카엘이라도 데리고왔을 것이다.

진정하자, 그래! 소수... 소수를 세는거다.

소수는 1과 자신으로만 나눌 수 있는 고독한 숫자, 나에게 용기를... 주기 개뿔, 점점 다가온다.

큰일이다. 나 여기서 죽는건가?



...아자젤은 그저 오늘의 하루 일과를 끝내기 위해 숙소를 나왔을 뿐이다.

주말간의 종교행사를 끝내고, 지친 심신을 쉬게하기 위해 그저 베로니카 몰래 주방으로가 컵라면을 먹으려 했을 뿐이였다.

그러나 아자젤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 있었다.

두번째 인간과의 조우.

비록 그가 온지 얼마 안돼긴 했지만, 알게 모르게 그의 이야기가 들려왔다.

눈이 무섭다.

흑막같다.

뭔가 뒤에서 일을 꾸미는데 도가 터있을거 같다.

이곳저곳에서 들려오는 두번째 인간은 그야말로 '수상함'이라는 개념이 인간의 형태를 갖추게 된것 같았다.

그런 두번째 인간이 지금, 자신의 눈앞에 서있다.

짙은 흑발, 가늘게 떠져있는 눈, 능글맞은 미소.

왜 그녀들이 그를 그렇게 수상하게 여기는지 조금은 알것만 같았다.

다만, 조금 특이한게 있다면...

"...저야말로, 만나서 반갑습니다 아자젤님. 김라붕이라고 합니다."

그는 보기보다 매우 신사적이였다는 것과.

"다른 천사분들은 주무시는지요."

그가 교단의 다른 천사들의 존재를 알고있었다는 것. 그리고, 그 순간 아자젤은 직감했다.

-이 남자, 위험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