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모음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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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붕씨가 좋아할까..?"



긴장한 기색이 역력한 사령관은 라붕이에게 건네줄 그의 대원증을 만지작 거리면서 중얼거렸다.


나 참... 또 그렇게 뜸들이는거야?

뭘 망설여? 그냥 건네주면 되는거 가지고!



"그... 렇긴 한데... 하하..."


그렇게 쑥쓰러우면 차라리 내가 대신 전달해줘?



라고 말하며 동시에 라붕이의 대원증을 향해 손을 뻗는 레오나로부터 대원증을 두 손으로 감싸며 소리쳤다.



"아아아!! 아니아니!! 내가 갖다줄거야..!"


그럼 아까 밥먹을때 줬으면 됐잖아!

그때가 타이밍도 딱 좋았는데.


후훗... 설마, 사령관이 이렇게 수줍어 하는 모습을 보게 될줄이야.


동감이다. 그 어떤 여성앞에서도 평정심을 잃지 않았던 사령관이, 라붕이의 앞에서는 마치 수줍은 처녀가 되버리는게 아주 걸작이군! 하하하!



"처녀는 무슨... 그 정도로 긴장한 적은 한번도 없는데 뭘."


그렇게 부끄러워 할것 없소. 아무리 사령관이라도 처음 마주하는 동성친구라면 긴장과 설렘을 느껴도 이상한 것이 아니니까 말이오.


그나저나... 이제는 라붕씨도 문제없이 적응하고 계신것 같아 안심이에요.

처음에 여기 오신지 얼마 안됬을 때는 걱정이 한 두가지가 아니었는데.


그래도, 이제라도 즐겁게 지내고 있는것같으니 정말 다행이군.

이제 "그 부분"에 대해서는 안심해도 괜찮을것이다.


....라붕씨가 여기를 나가려고 한 것 말인가.


이미 진작에 그럴 낌새를 감지하고 곳곳에 조치를 취해두었습니다.

그러니 진짜로 나가시려고 한들 반드시 저지되었을테니, 그건 큰 문제가 아니죠.

다만... 실제로 그런 일이 벌어지는 상황 자체가 제일 걱정이었는데, 이제는 괜찮을 것입니다.



처음 오르카에 온 라붕이는 온몸의 신경이 곤두서 있는것도 모자라, 극도의 긴장상태였다.

그렇기에 오르카의 모두는 그가 극단적인 행동을 벌일것을 철저히 대비하며 모니터링 해왔으나, 이제는 괜찮을 것이라고 모두는 확신했다.


이제는 그런 걱정은 하지 않아도 괜찮다.

그 녀석은 더 이상 그런 멍청한 짓을 저지를 어리석은 남자가 아니니까.

그것보다는, 녀석의 몸상태가 더 우려되는군.

나도 닥터의 보고서를 읽어봤기에 대충은 알고 있다. 상당한 피를 흘렸다고 했지.



"......."



나을거다.



칸은 확신에 찬 표정으로 읊조렸다.


설령 불의의 사고가 벌어져도, 우리가 지키기로 하지 않았나.

그렇다면, 라붕이가 다 낫기를 기도하면서 최대한 도와야지. 건강이 회복되기를.



이제는, 걱정에 머무를 단계가 아닌 앞날에 대해 희망차게 논의할 시간이다.


그러니, 우리는 라붕이의 앞날을 위해서 보다 더 즐거운 주제로 논의 해보는게 어떨까.


하긴, 그것도 그렇지. 그럼... 슬슬 논의해볼까?


그렇군. 이제는 준비해도 괜찮을 타이밍이니까.





.............















뭐 시키지?





각자 눈을 번뜩이며 의견을 내뱉었다.


으으음... 고민이군. 라붕이에겐 어떤 일이 어울릴까.


애매하면 우리쪽으로 넘겨!

군수 보급계열로 편성해서 탄약이랑 미사일 재고관리나 시키게.

화약 1g이라도 틀리기만 해봐. 그 순간 영혼까지 탈탈 털어먹어 줄테니까!


음... 둠브링어의 폭격 자산들은 이제 막 일을 시작한 라붕이가 맡기에는 부담이 크지 않을까 싶은데.

하지만 우리 캐노니어는 재원이 비교적 단순하니까 말이야. 우선 내가 먼저 가르치도록 하지.


마침 우리 실키에게 병참 관리인원이 부족하다고 건의를 받은 참이다.

여기에 있는 모두 이미 알고는 있겠지만,

라붕씨는 특유의 성향이나 스타일로 볼때 우리 스틸라인과 무척 궁합이 좋으니까말이야.

그리고, 우리 소대원들이 라붕씨와 같이 일해보고 싶다고 강력히 요청하더군.

그러므로 우선은 스틸라인에서 담당하겠다.


어머? 누구 맘대로 신입을 빼가?

오르카 전체 물자의 총괄을 어디서 담당하는지 벌써 잊은거야?

우리 발할라의 안드바리가 하고 있잖아.

너희 말대로 자원 관리쪽을 먼저 배우게 한다면 당연히 우리가 맡는게 먼저인거 아닌가?

즉, 순서를 따진다면 우리가 먼저 담당하는게 옳다고 봐야겠지.


꼭 군수쪽을 먼저 시작할 필요는 없다고 봐요.

먼저 행정쪽을 익혀두면 향후에 더 넓은 범위의 업무를 익힐때 분명 큰 도움이 될테니까요.


맞습니다. 게다가 신체 재건을 끝낸 직후에 벌써부터 활발하게 움직이는건 다소 지양하고 경과 관찰도 필요한 만큼, 처음은 강도가 낮은 업무를 배정해 드리는것이 맞다고 봅니다.


아예 그냥 주인님 옆에 붙여놓고 견학도 시켜드리면서 배울수 있도록 해드리는것도 좋을것 같네요. 이제는 두 분도 친해지셨으니까요!


저기요!! 라붕이 오빠는 이미 나랑 박사과정 진행하기로 결정났거든요?!

라붕이 오빠 몸 다 나으면 시킬 과제랑, 논문이랑, 레포트랑, 숙제랑... 암튼 내가 시킬게 얼마나 많은데!

그러므로, 라붕이 오빠는 내 연구동에서 교육 시키겠다!!!


아... 하하...닥터의 박사과정... 

라붕이 걔, 또 오르카 나가려고 하지 않을까...


업무도 좋지만, 라붕이가 만드는 제 2대 프로젝트 오르카도 보고싶지 않아?!

그러니까, 우선은 프로듀서의 첫 걸음을 떼는 법부터 가르치자구~!


언제한번 지휘 모의전 한번 시켜볼까? 결과가 은근 궁금한데.


음... 그것도 나쁘지는 않소만, 라붕씨는 일반인이니 전략/전술과 관련된 분야는 역시 후순위로 미뤄 놓고 우선은 쉬운것부터 접할 수 있도록 하는것이 좋겠소.

첫 술에 배부를 수는 없는 법이니 말이오.



각자 먼저 채가기 위해서 의견을 굽히지 않고 평행선만 달리기 시작하자 결국 마지못한 사령관은 임시방편을 내세웠다.


"자자, 모두 진정하고.

우선 모두의 의견은 잘 알겠어. 그러니 라붕씨가 건강해지고 본격적으로 활동할 시기가 되면, 본인의 의사를 먼저 물어보고 그에 맞는 업무를 부여하는 걸로.

지금은 이렇게 결론 내릴까 하는데, 어때?"


뭐... 현재로서는 라붕이의 건강상태 호전이 최우선 과제니까 말이야.

그리고 나도 사령관의 의견에 찬성이다.

역시 본인이 하고싶은 일을 하게 해주는게 맞겠지.


음... 확실히, 이걸 우리가 억제로 강제하기 보다는 본인의 의사도 반영하는게 옳겠지.


그나저나, 라붕이는 지금 어디에 있지? 방에서 혼자 있는건가?


안그래도 저랑 펜리르가 같이 찾아가 봤는데, 부재중 이시더라구요.

아마 다른곳에 계신것 같은데, 어디 계신지는 저도 잘...


그래? 혹시 다른 사람이랑 있으려나?


....아까 레이스 말로는 본인들이랑 같이 놀았던 모양이야.


레이스? 아... 팬텀, 레이스, 쉐이드, 이 셋을 말하는 건가.


걔네 은근 잘 어울리는 조합이란 말이야.


그만큼 서로 특히 친한것 같더군.

요즘은 부쩍 그 넷이서 어울리는 시간이 늘어난것 같으니까.


"그럼, 지금은 팬텀이랑 쉐이드랑 같이 있으려나?"


......글쎄. 같이 놀다 헤어진 뒤로는 레이스도 잘 모르는 모양이야.

딱히 상관없지 않겠어? 작정하고 찾으려면 cctv로 언제든지 찾으면 되니까.

그러니 굳이 어딨는지 따질 필요는 없겠지.


"음... 그렇긴 하네. 아 맞다 닥터! 오늘부터 라붕씨는 의무실에 입실하기로 했었지?"


응. 역시 최근에 쓰러지면서 피를 많이 흘렸으니까. 그러니까 내가 근처에서 집중마크 할 생각이야. 신체 재건이 끝나기 전까지는 의무실에서 지내게 할 생각이니까 당분간은 그렇게들 알고 있으면 될것 같아.


신체 재건 준비는... 현재 어느 정도 진행되었지?


설계는 진작에 끝났고, 제조도 70%는 넘겼어. 아마 머지않아 신체재건 준비를 마무리 지을수 있을것같아.

이제는, 라붕이 오빠도 건강해져야지.


...현재 녀석의 진행도는, 어느 정도야?


일단, 중기는 확실히 넘어섰어.

다행이도 아직은 정체기에 돌입한 상태라 별다른 변수가 없다면 아직까지는 괜찮을거야.

하지만... 방심은 금물이니까.

그런 의미에서 입원 시키는거고.


"......"


그러니까, 오빠도 그렇고 언니들도 마찬가지야.

너무 그렇게 걱정할 필요는 없어! 이 천재 미소녀 여동생이 책임지고 라붕이 오빠를 지킬테니까!


"...응. 고마워 닥터. 정말 든든하구나?"


헤헤헷...



기특한 여동생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진심이 담긴 칭찬을 건네자 닥터는 얼굴을 붉히며 부끄러워 하기 시작했다.



"......"



사령관은 그에게 건네줄 대원증을 꽈악 쥐며 속으로 읊조렸다.


'라붕씨... 조금만 더 버텨줘. 이제 곧 당신을 편하게 해줄 수 있으니까.

그러니까... 다 나으면, 이전보다 더 자주 이야기 하자. 자주 대화하고 함께 지내면서, 더욱 서로에 대해서 알아가자.'


굳게 결심한 사령관은 아직까지 별다른 진척이 없는 AGS 수색대의 마지막 보고를 떠올리며 주먹을 움켜쥐었다.



아직, 희망은 있다고 굳게 믿으며.



































...둘이 뭐하냐?




...?!!!

"...?!!!"



갑작스럽게 들려온 목소리의 방향을 보니, 이미 임무를 마치고 복귀한 장화와 바르그가 두 사람을 쳐다보고 있었다.


아, 아... 너희 왔구나...?!

아이 참..! 왔으면 왔다고 말을 하지 그랬어!


그래서 지금 말하고 있잖아. 아니, 그것보다...



장화는 천아의 옆에 나란히 앉아있던 라붕이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


뭐야. 너도 있었냐? 용케도 우리 숙소 위치를 알아냈네?



"아.. 내가 알아낸건 아니고... 천아가 알려줬어. 어차피 한번 오기로 했...기도 하고. 하하하..."



최대한 자연스럽게 웃으며 어색한 분위기를 깨뜨리기위해 발악하기 시작한 라붕이는 복귀한 둘에게도 인사를 건냈다.



"그나저나... 간만에 보는것 같네? 그동안 잘 지냈어?"


확실히, 몇일만에 다시 보는군. 우리야 늘 똑같다.

그런것보다...



바르그는 진지한 얼굴로 라붕이의 안색을 살펴보았다.


최근에 복도에서 쓰러졌다고 들었는데, 너야말로 몸은 괜찮은거냐?



"응. 다행이 도중에 다른사람이 발견해줘서 신속하게 조치 받았거든. 그러니까 지금은 이제 멀쩡하지."


에휴... 가지가지 한다.

다 죽어가는 놈이 여기 나갈라고 쌩쇼를 하질 않나, 실제로 피 질질 흘리며 쓰러지질 않나...

너 용케도 그런 꼴로 나갈 생각을 다 했더라?


만약 실제로 그런 상태로 나갔다면, 넌 필시 그 자리에서 죽었을 거다. 이 무모한 놈.



"....응. 이번에도 민폐끼쳐서 미안해."


사과를 원해서 이런 말을 한게 아니다.

그저, 앞으로는 이런 멍청한 짓을 할 생각을 하지 말라는 뜻이다.

지금의 넌 이 말을 이해하겠지.



"...넵..."


......


근데, 최근에 피 쏟은 놈 치고는 멀쩡해 보인다?

이렇게 싸돌아 다니는거 보니 사실 이미 다 나은거 아냐?



"음... 확실히 최근까진 몸이 이상하긴 했는데, 그레도 지금은 멀쩡한 느낌이긴 하네."



자세히 생각해보니까 불과 하루 이틀밖에 안걸린 것 같은데도 몸의 컨디션은 상당히 쾌적했다.


그러고 보니, 둘이 함께 있던걸로 아는데, 둘이서 이야기라도 나누고 있던건가?

뭔가... 매우 진지한 이야기를 나누던 도중인것 같던데.


...?!

"...?!"



또 다시 그 이야기를 꺼낸 바르그 때문에 순간 당황할 뻔했지만 다행이도 천아가 능숙하게 받아내주었다.


아... 딱히 얘만 있던것도 아냐~!

얘 말고도 아까 팬텀이랑 레이스랑 쉐이드도 왔다갔거든. 그리고 걔네 나간지 얼마 되지도 않았어!



"...그...렇지? 나도 안그래도 의무실로 짐 빼러갈 시간 다 되가지고 슬슬 일어나려고도 했고."


뭐야. 의무실로 짐 옮기는게 오늘이었냐?


입원이라... 그럼 당분간 거기서 지내겠군.



"그렇지 않을까? 닥터가 한동안은 거기서 지내라고 말해줬거든."


그런가. 그렇다면 이후에 종종 들르겠다. 그러니 거기서도 몸 관리 잘하도록 해라.


제발 거기선 멍청한 짓좀 하지말고 살아라 좀.

하여간, 이 새끼 주변은 조용할 날이 없단 말야.


자자~ 몸 아픈 애한테 너무 닥달하지 말어~

그러고보니, 너 짐 옮길거 많냐? 양 많으면 같이 들어줄 수 있는데.



"어... 짐이 몇개인가 있긴한데, 카트 비슷한거 빌려다가 실어서 나르면 한번에 끝날거 같아."


....그래.



확실히, 오늘은 이쯤 마무리 지을 타이밍이 온것 같기도 하니까.


그럼, 얘네랑 자주 얼굴 보러 갈게.

그리고 얘네 말대로 몸좀 잘 챙겨 븅신아~!

남자새끼가 허약한 것도 정도것 해야지. 너 나중에는 입김 한번에 날아갈 기세다?



"입김은 무슨... 그건 너무 나갔다 야."


아 그러니까 잘 좀 관리하라고!

...천천히 들어가. 뭔 일 있으면 부르고.

너도 갖고 있지? 오르카 폰.



"폰..? 어... 이전에 받은거 방에 있긴 하지."


혹시 모르니까 그것도 잘 챙겨둬.

심심하면 톡이나 하던가 해. 칼답 해줄테니까.



".....응. 고마워. 천아야."


...그래. 또 보자.


.......




그렇게 각자 셋과 간단하게 인사를 주고받고서 엠프레시스 하운드의 숙소에서 나와 복도로 발걸음을 옮겼다.















"입원이라..."


설마 여기서 입원같은걸 할줄은 몰랐는데.


"대충 짐 다 옮기고, 닥터한테 가서 간단한 검사 다시 받고, 그리고..."


우선 미리 정리해놓은 짐들을 한데 모으고, 실키에게 빌린 카트에다가 실어서 나중에 갈때 옮기면서...


"....."


몸이 다 나으면, 다음엔 뭘 하게 되려나.


"언제 한번, 그것에 대해서도 모두랑 상담 한번 해봐야겠네."


나도 언제까지고 놀고 먹을 순 없으니까.


"그럼... 슬슬 짐옮기고 검사나 받으러..."



(똑똑)



"음?"


한창 짐정리를 하던 찰나, 밖에서 문을 노크하는 소리가 들렸다.

지금 시간에 올 사람이 있던가?
































아...



"......"



문을 열어보니 그 곳에는 펜리르가 쭈뼛거리면서 애매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펜리르 씨."


........



잠시간의 짧은 침묵 이후, 먼저 그것을 깨뜨린 것은 라붕이였다.



"...우선 들어오실래요? 이렇게 이야기하긴 좀 그러니까요."


어? 어... 그럴까.



펜리르가 앉을 의자를 내어주고서 냉장고 안에 있던 과일 주스를 2개 꺼낸뒤 하나를 펜리르에게 건네주며 자신도 맞은편 자리에 앉았다.



..........



문을 열고 난 직후 마주쳤을 때의 어색한 기류는 여전히 남아 있었지만, 이대로 아무 말도 안할 생각은 없었기에 먼저 용기내어 대답을 건넸다.



"그... 엄청 오랜만에 뵙는것 같네요."


그러게. 그렇게 시간이 많이 흐른건 아닐텐데, 뭔가 간만에 보는 느낌이네.

그동안 잘 지냈어? 몸은 많이 나아졌고?



"네. 저야 뭐, 늘 건강하죠. 항상 주위에서 챙겨주시니까요."


...그래.




...........




"저기... 펜리르 씨?"


응?



다른 사람도 아니고 펜리르가 개인적으로 혼자서 찾아온 이유가 특히 궁금했던 라붕이는 이제 슬슬 본론에 들어가기 시작했다.



"이 시간에... 어쩐 일이실까요?"



어느정도 이곳의 생활에 적응은 했다고 생각하지만, 펜리르와는 이전의 있었던 일도 있기에 아직은 어색한 분위기를 전부 지워낼 순 없었다.


...그냥 한번 와봤어.



"......."


요즘 못봤잖아? 그래서 잘 지내나 구경도 할겸 와본거지.

쓰러졌다길래 걱정 많이했는데, 얼굴색 보니까 딱히 걱정 안해도 되겠네.



안심된다는 듯한 표정으로 찾아온 이유를 간단하게 설명한 펜리르는 미소지으며 대답했다.



"아, 죄송했습니다. 저 하나 때문에 여럿 피곤하게 해드려서..."


왜 그걸 니가 미안해하냐?!

아픈게 니 잘못도 아니고, 어쩔 수 없는 일이었잖아! 자꾸 잘못한것도 없으면서 사과할거야?!



"......."


뭐... 니가 최근에 하려고 했었던 정신나간 행동은 욕먹어도 싸긴 하지.



"알고...계셨나ㅇ..."


아이 씨...! 그럼 당연히 알지 모를것 같았냐?!



더 이상의 답답함을 참을 수 없었던 펜리르는 언성을 높이고 말았다.


계획도 없고, 대책도 없고, 그렇다고 뭔가 믿는 구석이 있는것도 아니면서, 오늘 내일 사경을 해메는 주제에 잘도 나가려고 했더라?!



"......."


아무리 적응하는게 힘들었다고 해도 말이야, 그럼 더욱 잘 해볼 생각부터 하는게 순서 아냐?!

대체 어떤 생각을 거쳐야 나간다는 결론이 먼저 나오는건데?! 주위에 너 걱정하는 사람들은 생각도 안해?!



"....펜리르 씨..."


너... 친해진 사람들이 생긴 이후에도 나가려는 행동 하나만큼은 변함 없더라?

그럼 왜 그렇게 웃고 떠드는건데? 어차피 싹 다 무시하고 갖다버릴 거였으면서.



"........."


우리가 그렇게도 싫었냐?! 니 눈에는 우리가 그렇게 위험하고 몹쓸 새끼들로 보였어?!

나가서 죽는게 낫겠다 싶을 정도로 우리가 싫었냐고!!



그 어느때보다 격정적인 모습으로, 이전에 복도에서 화냈던 것 이상으로 크게 언성을 높이며 쏘아붙였다.



"...죄송합니다. 그것 만큼은 입이 열개라도... 변명할 말이 없네요."


.........



"펜리르 씨가 말한대로, 저 하나를 위해서 애써준 사람들에게 필요 이상으로 민폐만 끼쳤네요.

그냥... 그냥 마음 한번 굳게 먹고 펜리르 씨가 말한 것처럼 진지하게 마주보면서 대화를 해봤더라면... 그런 멍청한 짓은 하지 않았을텐데."



면목없이 고개 숙이며 사과를 건네는 모습을 묵묵히 지켜보다가 입을 열었다.

지금 여기에 온 이유는, 이런 모습을 보기 위한게 아니니까.


...니가 우릴 무서워 한다는건 처음 만나자마자 바로 알수 있었어.

그렇기 때문에... 널 조금이라도 더 편하게 있게 해주고 싶었어. 그건 나도 그렇고, 우리 자매들도 마찬가지야.



힘도 없는 인간이 밖에서 무방비하게 떠돌아 다니면서 밥도 제대로 챙겨먹지 못하고, 밤에는 혹시라도 습격해 올지도 모르는 철충에게 벌벌 떨면서 지쳐 잠드는... 그런 라붕이의 일상이 머릿속에서 자연스레 그려졌던 펜리르는 무언가 알수 없는 측은함이 계속해서 마음속에서 울려퍼졌었던 감각을 떠올렸다.


이미... 너도 이제는 잘 알고 있겠지만, 너 혼자서 미련하게 다 떠안지 않아도 돼.

남에게 기대는걸 무서워 할 필요도, 부담가질 필요도 없어.



물론, 한때 자신도 사랑하는 주인님을 만나 함께 하기 전까지는 밖에서 홀로 야생에서의 생활을 해왔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자신에게 주입된 늑대의 야생 유전자와, 컴패니언 내애서도 리리스 언니를 제외하면 대적할 사람이 없는 강한 힘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심지어 인간인 라붕이는 인간의 뇌파로 인해서 언제나 목숨의 위협을 감수하며 살아 왔다.

조건 자체가 다르다. 너무나도.



'아무도 없는 세상이니까요.'



그 한마디를 입에 담았던 순간의 라붕이의 시선, 손끝의 떨림, 위축되어 있었던 목소리... 그 말에 담긴 감정은 평소에 호들갑 떨던 그것과는 명백한 차이가 있었다.

유일하게 진심을 함축한 말. 그거면 충분했다.

그것 만으로도 이 눈앞에 요령없고 눈치없는 멍청이를 챙겨줄 이유는 충분한 것이다.


오늘 널 찾아온 이유는, 널 몰아붙이고 화내기 위해서 온게 아니야.

그냥... 다시 시작하고 싶어서 온 것 뿐이니까.



이제는 본론으로 들어가도 좋을 것이다.

더 이상은 바보짓 안할테니까.


이전에... 우리가 했던 약속, 기억나냐?



"...다과회... 말인가요."


역시 기억하고 있구나.

하긴... 우리 방 오기 싫어서 대놓고 질색을 하던게 엊그제 였는데, 당사자가 그걸 잊는게 말이 안돼긴 하네! 킥킥....



"아.... 그때 그건.... 도대체 뭐라 말씀을 드려야 할지..."



이전에 리리스가 먼저 그 이야기를 꺼냈던가.

그거 피할라고 별의 별 생쇼를 해가면서 난리를 피웠던게 떠오르자 또 다시 얼굴이 화끈거리기 시작했다.



"안그래도, 시간이 생긴다면 펜리르 씨에게도 찾아가려고 했어요. 예전에 복도에서 그.... 기분 상하게 해드린 일도 있었으니ㄲ.."


아아! 그만그만!!



갑자기 펜리르가 소리치며 말문을 끊어버렸다.


넌 어떻게 된게 틈만나면 그렇게 사과만 하냐...

내가 아까 말 했잖아! 너 몰아붙이려고 여기 온게 아니라니까.



"제가 잘못한건 사실이니까요. 확실하게 사과드리고 마무리 짓고 싶었거든요."


그렇게 미안하면, 이번주에 우리 숙소로 한번 놀러와! 리리스 언니도 그렇고, 다른 애들도 너 걱정 많이 했으니까.



"......리리스... 경호 대장님... 인가요."


그래 임마. 니가 여기서 제일 무서워 했던 우리 큰언니.



"......."


나 참... 리리스 언니도 알게 모르게 니 생각 많이 한거 알긴 하냐?! 티를 안내는 것 뿐이지.

너 오르카 나갈 타이밍 제일 먼저 예측하면서 대책 세워야 한다고 먼저 얘기 꺼낸것도 리리스 언니라구!

예전부터 궁금했던건데, 왜 유독 리리스 언니를 그렇게 무서워한거야? 혹시 무슨 일이라도 있었어?


"에"



왜... 리리스를 그렇게나 무서워 했냐니....


'챈문학에선 제일가는 또라이년으로 나오니까 여기서도 그럴것 같아서... 라고 말할순 없잖아...'



인터넷 커뮤니티에 자주 나오는 2차 창작물에서 썅년으로 자주 나오니까 그게 당연할 줄 알았다. 라는 말을 얘한테 하면 도대체 어떤 반응을 보일까. 아마 난 찢겨죽지 않을까.


...라붕아?


"아니.... 그....."


응...??



도대체 뭐라 말하지....



'최대한 자연스럽게 넘어갈 만한 핑계가....'


.......



참... 변함없이 어정쩡한 녀석이다.


말하기 애매하면 됐어.



"......."


그 당시의 이유야 어찌됐든, 지금도 우릴 예전처럼 마냥 피하거나 하진 않을거잖아.

그렇지?



밝게 웃으며 이야기하는 펜리르를 그저 조용히 바라보았다.


못다한 이야기가 있다면, 모두가 있는곳에서 다 같이 하자. 내가 오늘 여기 온 이유는 너도 이미 알고 있겠지만, 그 날 제안했던 다과회 초대하려고 온거야.



"...네."


너랑 여기서 제일 먼저 만난건 우리인데, 정작 제대로 대화 해본적은 한번도 없는게 늘 아쉽더라. 그러니까, 이번주에 다과회나 열까 하는데,

굳이 대답 필요없지?



".....꼭 갈게요. 반드시."


...응. 고마워.



전하고 싶었던 것을 끝낸 펜리르는 자리에서 일어나 입구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럼 난 간다. 몸조리 잘하고!

아, 그리고 제발 부탁이니까 이제 사고좀 적당히 쳐라 응?!



"아하하... 명심할게요."


히힛! 알면 됐고. 그럼 준비되면 내가 데리러 갈테니까 그때 보자!



산뜻하게 인사를 끝내고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는 펜리르를 배웅해주고서 다시 방 안으로 돌아와 펜리르와 이야기를 나누었던 자리에 앉았다.



"......."



내 쪽에서 찾아가려고 했는데, 펜리르에게 먼저 선수를 빼앗긴것 같아 살짝 무안한 마음이 들었다.



"...닥터가 기다리겠네. 서두르자. 신체검사도 받아야 하니까."



다과회... 분명 첫날이었던가.

리리스가 먼저 이야기를 꺼내었던 주제.



"리리스는... 도대체 어떤 사람일까."



내가 여기 나가려는걸 제일 먼저 직감하고서 먼저 그 이야기를 꺼냈다고 펜리르가 말해줬지.



"......."



상관없다. 안그래도 내 쪽에서 찾아갈 생각이었으니까.



"우선은 가자. 애 기다리게 하는건 미안하니까."



자잘한 생각은 접어두고서 앞날만을 생각한다.

이상한 설정과 상상에 매몰되어 앞뒤 안가리고 바보짓 하는것도 지겹다.

더 이상은 마냥 겁먹고 피하지 않아도 된다는걸 이제는 잘 알고 있으니까.



















이게 뭐라고 50화를 넘기냐ㄷㄷ

원래는 20화까지 쓰고 유기하고 튈라했는데 여의치가 않네. 암튼 극후반부 진입했다!







재밌게 보셨으면 개추랑 댓글좀 주십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