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르면 전 회차 감상가능)


https://youtu.be/4Ji3V3KrflU

https://youtu.be/4Ji3V3KrflU


"알고 있었다니, 대체 언제부터?!"


나는 당황 반 부끄러움 반으로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그 왜, 델타한테서 나 구해내려고 열차에 탔을 때 알았어."


오오 붓다여, 주무시고 계십니까!


하필이면 그때 리앤이 듣고 있었다니!


"망했다.."


나는 그대로 다리에 힘이 풀려 바닥에 주저앉았다.


"왜, 왜 그러는 거야?!"


"오메가까지 쓰러트리고 상황이 다 정리된 후에 말하려고 했는데.."


원래는 오메가까지 우군으로 끌어들인 후 회장의 모가지를 (말 그대로) 따 버린 다음에 리앤에게 정식으로 고백하고 교제 의사를 밝힐 계획이었다.


하지만 내가 델타와 싸우면서 주고받은 이야기를 리앤이 들었을 것이라고는 전혀 상상도 못했으며, 그것 때문에 내 머릿속은 한층 더 복잡해져 갔다.


"세워뒀던 플랜이 다 무용지물이 돼버렸어.."


거기다 볼에 키스까지 받았는데 지금 내 상태는 어떻겠는가.


"아하핫, 원래 나한테 고백할 계획 다 세워뒀었구나?"


"난 언제 말하든 딱히 상관 없었는데.."


리앤은 말끝을 흐리며 얼굴을 붉게 물들이더니 주황색 머리카락 끝을 손가락으로 배배 꼬았다.


오늘 벌써 평소에는 볼 수 없었던 그녀의 모습을 두 번이나 직관했다.


"일단 알게 된 건 둘째치고.."


"들으니까 기분 나쁘진 않았어?"


리앤은 내 질문에 의아하다는 듯 고개를 45도 각도로 갸웃거리며 “기분 나쁠게 뭐 있어?” 하고 물었다.


나는 얼굴을 붉히고 우물쭈물하며 입을 열었다.


"아니.. 왜 나 같은 사람을.."


그러자 그녀는 살짝 화가 난 듯 볼을 부풀리더니 허리에 한 손을 딱 올리더니 손가락으로 내 이마를 톡 치며 소리쳤다.


"실례잖아! 본인이라도 그런 말 하면 용서 안 할거야!"


“지금까지 내가 본 모리아티는 자기 잘못도 아닌데 가족이라는 이유로 참회를 위해 싸우고, 모두가 쉬라고 해도 끝까지 몸을 혹사하는 바보같지만 착한 남자야.”


“그게 뭐가 문제가 되냐고!”


그리고 잠시 머뭇거리다가 조금 잦아든 톤으로 다시 말을 이었다.


“의식을 회복하고 얼마 안 됐을 때, 알파 씨가 병문안을 왔었어.”





“리앤 양, 몸은 좀 어때요?”


“괜찮아요! 금방이라도 걸어다닐 수 있을 정도로 쌩쌩해졌..”


병상에서 벌떡 일어나려던 리앤은 현기증을 느끼고 주저앉았다.


“하하, 아직 안되겠네요.”


“너무 무리하지는 마세요, 충분히 회복한 후에 복귀해도 늦지 않으니까요.”


두 사람은 여러 시시콜콜한 주제로 대화를 나누다가 나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고 한다.


“모리아티는 좀 어때요?”


“골절이랑 중독이 겹쳐 있어서 당분간 요양해야 할 것 같다고 하더라고요.”


“걱정이에요, 늘 무리만 하고..”


알파의 걱정스러운 얼굴을 본 리앤은 늘 그랬듯이 밝은 목소리로 위로해 주며 따끔하게 혼내주는게 좋겠다고 농담을 덧붙였다.


그리고 병문안이 끝나고 조용히 누워있던 때, 그녀는 갑자기 내가 열차에서 했던 말이 생각났다고 했다.


‘리앤은 그냥 바이오로이드가 아냐, 내가 사랑하는 여자야.”


‘나는 리앤 덕분에 구원을 얻었어.’


그 발언을 떠올리니 왜인지 모르게 얼굴이 붉어지는 것을 느꼈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계속 고민하는 날들이 계속되던 중, 무의식적으로 다시 찾아온 알파에게 이 이야기를 꺼냈는데..


"후훗, 그런 이야기를 본인이 듣는 앞에서 할 줄이야.."


알고 있었냐며 묻자 알파는 이런 이야기를 했다.


"진작에 알고 있었어요, 본인이 이야기하기도 했거니와 리앤 양을 바라보는 시선에서 그걸 느꼈거든요."


"이곳에서 깨어나 가장 먼저 제대로 된 대화를 나눈 사람이 리앤 양이고, 자신에게 따뜻하게 대해 준 사람이라는 말도 덧붙였구요."


"미하일이 한 그 얘기는 분명 진심일 거예요, 저랑 지휘관님들 앞에서도 당신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아려온다고도 말했으니까."


알파가 말을 끝마치자 리앤은 그녀 자신이 내게 있어 심적인 안식처가 되었다는 사실에 한편으로 놀라기도 했고, 또 한편으로는 그런 마음을 진작에 알려주지 않은 것에 살짝 뿔이 났다고 했다.


거기에 알파는 결정적인 한 방을 더 날렸다.


"나중에 교제-프로포즈-결혼 순으로 조금씩 관계를 바꿔 나가고 싶다고도 했어요, 정말이지 귀여운 애라니까."


'결혼'이라는 단어 때문에 리앤의 얼굴은 마치 복숭아처럼 분홍빛으로 달아올랐다고 했다.


사실 그녀도 나를 향한 호감이 없지만은 않았다고 했었다.


주변 대원들이 가진 편견과 적대감을 자신의 의지와 지휘관들 그리고 사령관님의 도움으로 극복해내려 애쓰고, 아버지와 자기 자매들의 죄까지 내 잘못이 아니라며 회피하는 대신 속죄하는 자세.


그러면서도 회장과는 다르게 어머니에게서 물려받은 따스함과 상냥함을 잊지 않은 채 다른 이들을 대한 것.


마지막으로 이따금씩 보여주는 바보 같은 면모까지.


그녀가 바라본 나의 모습들은 호감을 주기에 충분했다고 한다.


그리고 알파는 이렇게 물었다.


"미하일과 어떻게 하고 싶으세요?" 


"전.."


"그 애가 그랬어요, '리앤이 거절해도 나는 괜찮아.' 라고."


리앤은 전해들은 말이었지만 바로 알아차렸다고 했다.


내가 한 말은 거짓이었다는 걸.


늘 쓸쓸하고 슬퍼 보인다던 나의 모습을 이미 알고 있었기에, 만약 거절한다면 그나마 남아 있던 따스함까지도 잊어버려 더욱 망가져 버릴수도 있겠다는 무서운 이미지가 머릿속에 떠올랐다는 말을 했다.


그만큼 나는 쉽게 깨지고 상처받는 존재로 비춰졌다는 뜻이겠지.


알파가 돌아가고 나서도 동정심과 호감, 그리고 애정 사이에서 갈등하던 그녀는 그날 밤 꿈을 꾸었는데..


다름이 아니라 나와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키운다는 예지몽 아닌 예지몽이었다고 한다.





"그런 꿈을 꿨구나.."


"꿈에서 깼을 때 엄청 얼굴이 화끈거렸어, 그런 장면을 보리라고는 전혀 상상도 못했으니까."


그렇게 말하는 리앤의 얼굴도 홍당무처럼 잔뜩 붉어져 있었다.


나랑 비슷한 또 다른 꿈이었지만 그 내용을 말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내 것은 그녀에게 착정당하는 것이었으니..


"그래서 그 꿈 꾼 이후에 마음을 정한거야?"


"꼭 그런 건 아니지만, 그때 모리아티가 일어나서 나한테 왔던 것도 한몫했었어."


내가 의식을 회복하고 움직일 수 있게 되었을 때 가장 먼저 찾아간 사람은 그 누구도 아닌 리앤이었다.


온 몸에 미라처럼 붕대를 둘러메고 목발에 깁스까지 한 중상이었지만 납치당해서 곤욕을 당했을 것이 뻔한 그녀가 걱정되어 찾아갔었고, 내 몰골을 본 리앤이 깔깔 웃던 모습이 아직도 내 눈에 선명하게 남아 있다.


"솔직히 말하면.."


"나 그때 좀 부끄러웠다?"


"부끄러웠다고?"


"그런 꿈을 꿨으니까.. 그래서 일부러 더 크게 웃었던 거고."


"흐음.."


"근데 한편으로는 또 기뻤어."


"나를 걱정해서 찾아와 줬으니까.."


그녀는 얼굴을 벚꽃 같은 분홍빛으로 물들이며 배시시 웃었고 그 모습을 보니 어느 정도 확신이 가기 시작했다.


세 갈래 길에서 그녀의 갈팡질팡하던 마음이 '애정' 이라는 노선으로 선로를 결정한 순간이 바로 내가 병문안을 왔던 그날이라고.


그 이후로 언제쯤 제대로 말할까, 하고 기다렸다는 것이 그녀의 설명이었다.


"진작에 다 알고 있었을텐데 왜 먼저 말 안했어?"


"모리아티 입으로 직접 듣고 싶었거든, 그게 더 분위기 있으니까."





"그럼 이제 어떻게 말해야 할지 알겠지?"


"...녜?"


"자, 부사령관은 이 초천재 미소녀 형사에게 좋아한다는 말을 전합니다, 실시!"


또다시 나는 그녀의 잔꾀에 걸려들고 만 건가, 하고 생각하며 나는 헛기침을 하고 자세를 가다듬었다.


그리고 무의식적으로 품속에 간직해왔던 '그것'을 꺼내어 뚜껑을 열었다.



"에..?"


리앤도 이런 전개까지는 예상하지 못한 듯 했다.


"...자비로운 리앤 양, 조금 이른 감이 있지만 당신을 향한 마음을 주체할 수가 없습니다."


"이런 저라도 괜찮다면.."


"함께 이 세상의 끝을 보러 가 주셨으면 해요."


"저와 함께 걸어가 주셨으면 합니다."


"좋아합니다, 아니.."


나는 잠시 숨을 고른 후 다시 그녀에게 나의 마음을 전했다.


"...사랑합니다."


잠시 정적이 흘렀고 해는 완전히 수평선 너머로 사라졌다.


건조한 여름밤의 바람이 발치를 훑고 지나가는 것 외에는 풀벌레를 비롯한 그 무엇도 아무 소리를 내지 않았다.


그리고 잠시 후..





리앤은 울기 시작했다.


"어?! 울어?!"


"흐윽.. 흑.."


"미..미안해, 역시 내가 너무 성급했.."


허둥지둥 케이스를 집어넣고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아 주려던 그때.


"아니, 아니야.. 슬퍼서 우는 게 아니라.."


"너무.. 흑. 너무 기뻐서.."


기뻐도 눈물이 나올 수 있다는 것을 나는 오늘 처음으로 깨달았다.


"내가.. 내가 네 마음을, 이 반지를 받아도 되는 걸까? 난 한낱 형사 바이오로이드일 뿐인데.."


나는 방긋 웃으며 울고 있는 그녀에게 나지막히 방금 전에 했던 말을 되돌려 주었다.


"그런 말 하면 나도 용서 안 할거야."


"내가 본 너는 쾌활하고 언제나 밝은 모습으로 사람들에게 힘을 주잖아, 그럼 문제 없지?"


"그리고 나한테는.. 너밖에 없어."


리앤은 울다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고 나는 눈물을 조용히 손으로 닦아 주었다.


그 후 나는 케이스에서 조용히 '그것'을 꺼냈다.



각 날개에 7개의 보석이 박힌 나비가 올려진 약지에 꼭 맞는 구속구.


크기도 작고 손도 자유롭게 쓸 수 있었지만, 손가락에 낀 그 순간부터 인연의 쇠사슬로 두 명의 죄수를 엮어 인생이라는 가장 길고 아름다운 종신형을 함께하도록 만드는 족쇄.


가장 약해 보이면서도 그 무엇보다 견고하며 결코 깨지지 않을, 자비롭고 풍요로운 구속을 주는 물건.


나는 그것을 리앤의 손가락에 끼워 주기 전 마지막으로 물었다.


이걸 끼우면 더 이상은 예전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서로에게 구속당할 것이라고, 그럼에도 괜찮냐고.


하지만 그녀는 그 어느때보다 아름답게 웃으며 기꺼이 구속을 받겠다 답했다.


나는 그녀의 대답을 듣고 자작나무 가지와도 같은 그 하얀 약지에 족쇄를 채워 주었다.


그녀도 내 손에 족쇄를 채웠다.


그리고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았다.


"...나도 사랑해, 반숙 계란 같은 남자."


나는 그녀의 허리를 잡고 끌어당겨 분홍빛이 도는 입술에 나의 것을 가져다 포개었다.


버터와 설탕의 냄새가 섞여 달짝지근한 향이 내게로 전해져 왔다.


그와 동시에 내 마음 속에 있던 모든 감정이 흘러나와 모두 한 곳에 뒤엉켜 녹아들고 하나가 되었다.


리앤은 내 목에 팔을 감았고, 우리는 한 번 이마를 맞댄 채 서로를 바라보며 싱긋 웃었고 다시 길고 긴 달콤한 입맞춤을 나누었다.


쏟아질 것만 같은 별이 가득 박힌 여름 밤하늘 아래에서 우리 둘은 한낮의 더위보다 더 뜨겁게 끓어올랐다.





미안하다 내 흐접한 필력으론 이 정도가 한계였다


어쨌든 우리 바보병신 미하일도 사랑을 찾았다

근데 야스씬을 넣어야 할지말지 고민이네


재밌게 보셨으면 댓글과 개추 좀 주십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