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모음집


54



언제 그랬냐는듯 조용해진 병실에는 딱 한명만이 침대위에 멍하니 걸터앉아 있었다.


"아이고... 하필 잃어버려도 비문을 잃어버리냐..."


자신도 대한민국 군필 남성이라 그런걸까.

지금 쟤네들이 처한 상황이 차마 남일같지 않았기에 본인도 함께 나서서 돕고 싶었지만 함부로 이곳을 나갈순 없는 입장인지라 그저 속으로 잘 찾아내기를 기도해 주는 것 이외엔 할 수 있는것이 없었다.


"별탈 없이 잘 찾아야 할텐데..."


모두가 먹던 식사를 한데 모아 깔끔하게 밀봉한 후 랩으로 감싸 냉장고에 넣어놓은 뒤, 다시 침대에 걸터앉아 멍하니 시간을 보냈다.


"......."


호드의 바보 녀석들이 내가 부사령관 된다고 희한한 헛소문을 퍼뜨리는 바람에 당분간 만나는 사람마다 해명하느라 골치를 좀 썩혀야 할 듯 하다.


"다 나으면, 그땐 진짜 뭐 해야 하지?"


최근들어서 진지하게 생각은 해왔으나 사실 지금도 여전히 시원하게 답을 낸 상황은 아니었다.


"만약 나한테 특기를 물어보면, 뭐라 대답하지... 그냥 엄청 평범하게 살아와서 이렇다 할만한게 없는데."


무엇이든 간에, 무난하고 별거 아닌 일이라면 시간을 들여서 적응할 수 있을 것이다.


"흐음..."


자신이 이 세상에서, 이 오르카에서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명확한 미래나 비전은 떠오르지 않았다.


"...또 이러네...."


그래도, 혼자 있을 때만 이러는게 그나마 다행이라면 다행일까.

또 코에서 피가 흘러내리는 것이 입술 표면을 통해 느껴졌다.


"......."


언제부터 이런 상태였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냥 어느샌가 원래 이랬다는 듯 일상이 되었고, 밤마다 닦아내는건 하루 일과의 마무리과정이 되었다.


"...요즘은, 편하게 잘 수 있다는게 그나마 위안이네."


어째서인지는 알 수 없지만, 어느새 그 "꿈"은 더 이상 꾸지 않게 되었다.


"심심하네..."


자신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바쁜 일과를 보낼 시간이니, 어쩔수 없다면 어쩔 수 없는 거지만.


"......."


책상 맡에 올려놓은 오르카 폰을 조용히 집어 들었다.


"아마... 이 페이지에 연락처가.... 있네."


폰을 집어들어 연락처 앱을 열자마자 오르카의 수많은 연락망이 1렬로 정렬되어 액정에 표시 되었다.


".........."


아까부터 바라보고 있었던 연락처를 유심히 관찰하면서 아무도 모를 혼자만의 갈등을 거쳤다.


"....역시 지금 시간에 연락하는건 민폐려나."


한창 바쁠 시간대 일테니... 방해는 하기 싫지만.



"........모르겠다."



깊게 생각하는것을 그만두고서 화면 최상단에 고정되어 있는 연락처, 사령관에게 전화를 걸었다.






















"...?!!"



사령관은 밥 잘먹다말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휴대전화를 넋을 놓고 쳐다보고 있었다.


주인님..? 갑자기 왜 그러시는...


깜짝 놀란 리리스는 사령관의 알 수 없는 행동을 의아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라, 라붕씨가... 나한테 전화를 걸었어..!!"


?!!



덩달아 깜짝 놀란 컴패니언도 다급한 표정으로 사령관의 휴대폰 주위에 몰려들었다.


지, 진짜야 주인님?! 걔가 먼저 전화를 걸었다니...


라붕씨... 갑자기 안하던 짓을 하다니...

설마, 오늘이 고비인건...!


포이! 그런 재수없는 소리좀 하지 말아욧!


라붕씨가 주인님한테 먼저 연락하는건 이번이 처음 아니에요?!


네... 이번이 처음일거에요. 설마 라붕씨가 먼저 전화를...


주인님! 어서...



리리스와 시선을 교환한 사령관은 긴장이 역력한 표정으로 전화를 수신했다.



"...여보세요?"


...(꿀꺽!)...


































..........


사령관과 라붕이는 병실 구석에 비치 되어있는 테이블에 나란히 마주보고 앉아서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라붕씨?"


"아, 네. 사령관님."


"그... 몸은 좀 괜찮아? 입원한지 얼마 안됐을텐데, 적응하는데 어려운건 없었어?"


첫 번째로 병문안을 오고 싶었으나, 요즘 업무는 물론, "그 일" 또한 매우 바빴기에 찾아오지 못했던것이 마음에 걸렸던 사령관은 넌지시 물었다.


"저야 뭐 늘 잘 지내죠. 그리고 여기 입원한 뒤로 몸도 엄청 개운해 졌다고 해야하나... 암튼 몸은 아주 멀쩡해요. 딱히 아픈곳도 없고. 하하.."


안심할수 있도록 슬쩍 웃어보이며 긍정적인 대답을 내놓았다.


"그나저나... 의외인걸. 설마, 라붕씨가 먼저 연락을 줄거라고는 상상도 못했거든! 그것도 이런 시간대에..."


"아... 역시 지금 시간에 연락드린건 민폐였을까요? 가뜩이나 바쁘실텐데."


"아냐아냐아냐..! 그런 뜻으로 말한게 아니고.... 그냥, 기분 좋아서 그래. 라붕씨가 먼저 날 만나러 와 준거니까."


"뭐, 제가 부른게 맞긴 하지만, 정작 찾아오신건 사령관님 이지만요."


"어쩔 수 없잖아. 닥터의 허가가 없는 한, 라붕씨는 병실에서 함부로 나가면 안돼니까. 그러니까 그런걸로 부담 안가져도 돼."


닥터의 허락이 떨어지지 않는 한 절대로 나가서는 안돼기에 한동안은 이 병실에서만 지내야 한다고 엄중하게 충고했던 닥터의 말이 떠올랐다.



................



잠시 짧은 침묵이 감돌고 난 후, 먼저 입을 연 것은 사령관이었다.


"...라붕씨."


"네?"


"......."


무슨 말을 꺼내는 것이 좋을까.

고민을 하던 찰나, 라붕이 쪽에서 역으로 먼저 입을 열었다.


"사령관님."


"으, 응?!"


갑작스럽게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흠찟 놀라면서도 똑바로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죄송해요."


"....어?"


예상치 못한 사과를 받은 탓에 순간 멍해졌으나 다음 말을 듣고서 정신이 다시 맑아졌다.


"저 하나 때문에... 여럿 고생하고 계시니까요. 저 치료하려고 애쓰는 닥터나 아자즈는 말할 것도 없고... 사령관님 비롯한 다른 지휘관님들도 저 때문에 신경쓰고 계신게 많을텐데... 예나 지금이나 저 하나때문ㅇ..."



"라붕씨."


더 이상은 필요 없는 말들의 나열 뿐이었기에 이름을 부르며 틀어막았다.


"왜 사과를 하는거야?"


"....네?"


"혹시, 그 얘기 하려고 날 부른거였어?"


"아, 아뇨. 그냥...."


"우리가 라붕씨를 구하는게, 라붕씨가 여기에 있는게 민폐라고 생각하는거야?"


살짝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던 아까와는 전혀 다른 진지한 모습으로 라붕이를 바라보면서 하고싶었던 말들을 이어나간다.


"동료를 구하는데, 그게 왜 민폐라는 건지 난 이해가 가질 않아."


"......."


"라붕씨, 이건 이전부터 말해주고 싶었던 라붕씨가 가진 나쁜 단점인데, 라붕씨는 너무... 자신을 지나치게 비하하는 경향이 있어."


"....비하... 말인가요."


"응. 라붕씨가 이렇게 또 사과하는 이유, 뭔지 알아?"


"......."


"모든게 다 자기 탓이라고 생각하는 나쁜 버릇이 들어서 그래. 왜 항상 그렇게 사과를 하는거야? 라붕씨가 뭘 그렇게 잘못을 했는데? 난 그게 도저히 이해가 가질 않아."


차분하고 점잖은 목소리로 말하는 그 목소리는 마치 아이를 타이르는 아버지와 같은 느낌이었다.


"......."


"....라붕씨는, 우리가 라붕씨를 싫어한다고 생각해?"


"...?!"


마지막 한마디가 귓속으로 들어오자마자 저도 모르게 먼저 입이 열렸다.


"아, 아뇨!! 전 딱히 그런 생각으로 말을 한게..."


"그럼 하지마."


단호한 표정으로 진심을 담아서 부탁을 건넸다.


"정말로 그렇게 생각한다면, 정말로 우리를 믿어주고 있다면... 그렇게 틈만 나면 사과하거나 자신을 그런식으로 낮추는건... 하지 말아줘."


"......."


"우리... 갑판위에서 대화했던 거, 기억나?"


"...네. 기억하죠. 당연히."


그걸 어떻게 잊어버릴까. 거기서 못볼꼴이나 보여버리고 도망쳐 버리다 시피했는데.


"그때... 나 엄청 기뻤거든."


"네?"


"처음으로... 라붕씨가 날 진심으로 바라봐 줬잖아. 늘 날 피하고, 마냥 무서워 하기만 하던 사람이, 그 날은 진심으로 나와 마주보고 진심을 이야기 해줬으니까."


"......."


"그때 말했다시피, 난 당신을 절대 포기하지 않을거야. 이건 단순히 총사령관으로서의 책임이라던가, 인류 저항군으로서의 의무라던가... 그딴 형식적인 이유같은게 아냐.

라붕씨는 내 친구니까. 기적적으로 만날수 있었던, 내 친구니까. 그러니까 절대 안놔줄거야. 날 내친다고 해도 내가 멋대로 달라붙어서 끈질기게 옆에 있을거니까."


"사령관...님."


"그러니까... 자꾸 그렇게 자신이 민폐라는 둥, 그런 말은 하지마.

이제야 친해졌는데... 솔직히 좀 서운하달까."


"......."


"친구잖아. 가족이기도 하고, 동료잖아.

당장 무리해 달라고는 하지 않을게. 그냥..."


"네."


"...!"


마지막 말만큼은 본인이 먼저 마무리 짓고 싶은 마음이 강하게 맴돌았다. 그래서 대답했다.


"안할게요."


"........"


"앞으로, 그런 말... 안할게요. 절대로."


"....응. 고마워,"


목에 힘을 주며 최대한 태연하게 말할려고 노력하는 그가 무안하지 않도록 애써 못본체 하며 식어가는 커피잔을 응시했다.


"...고마워요."


"아냐. 고마워 할 건 없어. 별거 아니니까."


"아뇨. 그래도... 고마워요."


"...응."


어쩌면... 지금이라면 가능할지도 모른다.


".........그럼 있잖아."


"네?"


"....."


내심 이전부터 부탁하고 싶었던 것을, 지금이라면 어쩌면...


"그... 사실 예전부터 라붕씨에게 부탁하고 싶었던게 있는데..."


"부탁... 말인가요? 저에게?"


의아한 표정으로 물어보는 라붕이를 애써 바라보면서 우물쭈물 거리면서 말을 이어나갔다.


"저.... 그게..."


"...?"


"그.... 라붕씨만 괜찮다면 있잖아... 우리...."





(띠리리리링)




?!



고요한 정적을 깨는 벨소리가 병실 전체에 울려퍼졌다.


"아...! 미안미안. 벨소리를 켜놨네... 잠시만?"


다급하게 휴대용 단말을 주머니에서 꺼내든 사령관은 말없이 액정 화면을 바라보았다.


"......."


"사령관님?"


"....으, 응?!"


"어, 그... 중요한 연락이시면 저는 신경쓰지 마시고 받으셔도..."


"아, 아냐아냐! 괜찮아! 당장 받아야 할 정도로 중요한건 아니라서....."



.......



"아아! 맞다맞다 참!"


갑자기 무언가가 떠오른 것 마냥 호들갑을 떨기 시작한 사령관은 급히 자리에서 일어나며 사과를 건넸다.


"라붕씨... 미안한데... 내가 지금 급히 처리해야할 안건이 몇개 있거든? 그래서 지금은 나가봐야 할 것 같은데..."


"아, 괜찮습니다. 저야 뭐... 남는게 시간이니까요. 그러니 다음에 또 만나도 상관없어요. 그런데..."


궁금한 표정으로 사령관을 바라보면서 물었다.


"저한테 부탁하고 싶은게 있다고 하셨는데, 그게 뭔가요?"


"에? 아... 그게..."


모처럼 용기내서 말할 타이밍이었지만, 그것을 절묘하게 놓쳐버린 탓에 말을 더듬던 사령관은 아쉬움을 억누르고 최대한 얼버무리며 다음을 기약했다.


"아, 별건 아니고...! 그냥 다음에 만나면 같이 밥이나 한끼 먹자 이런 거였어! 하하하..."


"밥..이요? 네... 그거야 뭐 크게 어려운 것도 아니니까 굳이 부탁하실 필요는 없어요. 다음엔 제 쪽에서 전화 드린뒤에 먼저 찾아갈테니까 그때도 잘 부탁드릴게요."


"...?! 그래?! 그래주면 나야 고맙고! 라붕씨가 그렇게 말해주니까 엄청 기대되네! 그럼... 또 갑판 위에서 둘이서 먹을까!"


"가, 갑판인가요... 글쎄요. 지금 당장은 나갈 수가 없는 몸인지라..."


추억과는 별개로, 나름 부끄러운 흑역사가 새겨진 장소인지라 거기는 잠시 미뤄두고 싶었다.


"아... 하긴, 그렇겠네. 암튼! 나 지금 당장 일하러 가야해서 오늘은 이쯤에서 마무리 짓자."


자리에서 일어난 사령관은 걸음을 재촉하며 문 밖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럼, 다음에 또 보자 라붕씨! 밥 잘 챙겨먹고! 무슨일 있으면 꼭 나나 닥터 부르는거 잊지마?!"


"네네. 걱정마세요. 저도 알거 다 아니까요. 그러니 너무 걱정 안하셔도 돼요."


"하하! 그래그래. 그럼 먼저 들어가볼게. 몸 잘챙기고 푹 쉬어!"


밝게 웃으며 입구를 나서는 사령관을 마찬가지로 웃어보이며 손을 흔들어 배웅해 주었다.














"......"


초조한 발걸음으로 방으로 돌아온 사령관은 주머니에서 폰을 꺼내들어 전화를 걸었다.


"...보고해줘."


여어! 친구. 라붕이랑 놀고 있는데 방해한건 아닌가 모르겠네.



"아냐, 괜찮아. 그것보다... 어때? 오늘은 성과가 있었어?"


...미안. 현재로서는 특이사항이 없어.



"그..렇구나. 응, 알았어."


죄송합니다 사령관님... 로크 씨와 글라시아스 씨도 현재로서는 성과가 없습니다.



"아냐. 너희는 지금도 충분히 잘 해주고 있으니까 그런 소리 하지 않아도 돼."


알바트로스에게는 따로 연락 받은것이 없긴 하지만, 아직까지도 이렇다 할 이야기가 없는것을 보아하니, 녀석도 마찬가지 일것이다.



"...그래."



어느 정도는 예상한 바였지만, 그래도 일말의 희망 또한 품고 있었기에 아쉬운 기분이 느껴지는건 어쩔 수 없었다.


...친구.



"응?"


방금전까지 라붕이랑 같이 있었던거... 맞지?



"어... 그렇긴 한데, 그건 왜?"


그럼 혹시... 뭐라도 들은게 있어? "그 이야기"에 대해서 라던가.



"미안. 오늘은 그냥 병문안 차원에서 찾아간 거라서, 그런 대화는 하지 않았어."


...그래. 하긴, 로크가 이전에 말한 것도 있으니까. 녀석 말대로 그 이야기를 우리쪽에서 먼저 꺼내는건 지양해야겠지.


우선 저희는 수색범위의 바깥을 향하고 있습니다. 통신범위를 벗어나지 않는 한도 내에서 자의적으로 탐색 반경을 늘려나가겠습니다.


한동안은 돌아가기 힘들것으로 보이는 만큼, 연락이 뜸해지는건 감안하도록 해라.



"응. 알았어. 힘들겠지만 부탁할게."


우리가 힘들게 뭐 있겠나.

마음고생 하는 녀석은, 따로 있으니 말이야.


에이다나 알바트로스로부터 따로 받은 연락같은건 없지?



"응. 당분간은 힘들지 않을까 싶어."


대륙을 살~짝 횡단할 수도 있다보니 통신이 살짝 불안정 해질수 있다는 점, 양해바랍니다.

그럼, 저희는 이만 임무 수행을 위해 통신을 종료하겠습니다!


우리 없는 동안 그 녀석좀 잘 돌봐줘!


크하하하!!! 우리 마왕군에 또 다시 영입할 새로운 인재 아니더냐!! 훗날을 위해서 건강관리는 필수라는 것을 본인에게 전해두거라!!


에, 골타리온씨... 라붕씨랑 같이 일하려고요?


그야 당연하지!! 이미 그 녀석이 사인할 표준근로계약서를 완성해 두었다! 거기에 김라붕이 희망하는 연봉과 근로조건만 기입한 후 싸인만 한다면 바로 계약 할 수 있도록 말이야!


이번에도 두 장 겹쳐서?


물론! 법적으로 매우 중요한 계약절차이지!

인재를 영입하려면 그에 맞는 대우가 필요한 법이니 말이야!

김라붕은 우리 차기 마왕군의 수석 참모겸 비서로서 마왕군의 세계정복에 협력시킬 것이다!


하하! 그건 그거 나름대로 볼 만하겠네.


자자! 수다떨 시간은 없습니다! 다음 강하 지점까지 곧 머지 않았으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사령관님! 이만 실례하겠습니다!



"응. 부탁할게. 그렇다고 너무 위험한 짓은 하지말고."



알프레드의 마지막 말을 끝으로 교신을 종료한 사령관은 의자에 걸터앉아 라붕이에게 건네줄 대원증을 꺼냈다.


"...하아아.... 또 타이밍 놓쳐버렸네..."


원래라면 아까 만났을 때가 건네주기엔 최고의 타이밍 이었으나, 이번에도 우물쭈물 대다가 기회를 놓쳐버렸다.


"지금 하고 있는 이 행동... 이대로 괜찮은걸까."


라붕씨를 내버려 두고 싶지 않았다.

지금은 잘 웃고 지내는것 같아 안심이 되면서도, 가끔씩 보여주는 씁쓸한 모습을 도저히 못본체 할 수가 없었다.


"만약, 정말로 이미 늦어버린거라면..."


정말 로크가 말한대로, 이미 라붕씨가 소중히 여겼던 사람은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닐지도 모른다. 어쩌면... 이 모든 행동들은, 라붕씨를 또 다시 상처입히는 결말을 불러올지도 모른다.


"...아냐. 아직 포기하기엔 일러."


순간 또 다시 흔들릴 뻔한 결심을 애써 굳히고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직... 가능성이 있으니까. 조금이라도 가능성이 남아있다면, 그거면 충분해."


그렇게 조용히 읊조리고서, 책상위의 패널을 집어들어 다시 한번 수색경로와 비밀리에 가용할 수 있는 정찰 자산들을 다시 한번 재검토하며 재차 계획을 쌓아 나가기 시작했다.


1분 1초라도 더 빨리 찾을 수 있도록.



























 




편의점에서 라붕이에게 멱일 간식을 사서 돌아가던 천아는 복도를 걸으며 생각에 잠겼다.


그래도 요즘은 밥은 잘 먹는것 같으니까. 과자도 잘 먹겠지?



언제 또 찾아갈지 고민하며 콧노래를 흥얼거리던 천아는 문득 햇살이 내리쬐는 창 밖을 바라보았다.


.......



이전에, 라붕이가 자신에 대한 것을 이야기 해주었을 때와 같은 주황빛 노을이 하늘을 물들이며 오후의 끝이 다가옴을 알리고 있었다.


.....2023년...



이 세상의 사람이 아니며, 애초부터 다른 시간대를 살아가던 "외부인" 이라는 그의 고백을 들었을 때, 넌지시 바라본 그의 눈빛은 어느 때보다도 진지하고... 진심만이 담겨 있었다.


............



한마디 한마디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을 때마다 보여주었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게 느껴지는 것만 같다.

행여나 자신이 이상한 사람으로 보이지는 않을까 불안해 하는 모습.

그럼에도 용기를 내어 나에게 모든걸 털어놓아 주는 기특한 모습.

...더 이상은 만날 수 없는, 사랑하는 사람에 대해 이야기 하며 슬퍼하는 모습.


물론 다른 세계, 그것도 다른 시간대의 인간이며 이 세계의 사람이 아니라는 말은 예상치 못한 대답이긴 하였으나,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다.

그 바보가 뭔 이야기를 하던간에, 난 그를 믿어주기로 마음 먹었으니까.


두 번째... "이물질"



유독 "두 번째" 라는 단어에 집착을 해왔던 모습은 더 이상은 보여주지 않고 있기에 지금은 자신을 비롯한 오르카의 모두가 마음을 한시름 놓은 상태이긴 하나, 유일하게 라붕이의 과거에 대한 것들을 들은 천아 만큼은 아직도 마음 한켠에 무거운 무언가가 지워지지 않았다.


실제로 만난 적은... 없다고 했지.

그저 서로가 서로를 바라만 보는, 그런 사랑.



그가 이 세상에 떨어지기 전, 특색도 특출난 점도 없는 자신에게도 존재했다고 했던 유일한 보물.

그 바보가 유일하게 사랑했다는 그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을 때, 조금이지만 "그 사람"이 부럽다고 생각해 버렸다.


그 바보가... 설마 그런 얼굴로 우는 모습을 보여줄 줄은 몰랐는데 말이야~



과연 어떤 사람일까. 얼마나 매력적이고 소중한 사람이길래 그 바보가 그렇게나 사랑했던 걸까.

얼마나 사랑했기에, 그렇게나 슬퍼한 걸까.


...지금... 일어나 있겠지?



어차피 허가가 없는 한 병실에서 멋대로 나오지는 못할 것이다.

예전에는 모두와 함께 찾아가느라 둘이 있을 시간은 마련하지 못했지만, 어쩌면 지금같은 애매한 시간대라면 그 녀석도 혼자 멍하니 누워있거나 하지 않을까.


새끼~ 오늘은 어떤 방식으로 골려줄까나~



라붕이에게 줄 간식이 들어있는 봉투를 한번 더 훝어본 뒤, 방향을 정 반대로 틀어 그 바보가 누워있을 병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음? 천아로구나. 그대도 라붕이의 병문안을 온 것이냐?


......



혼자 있을 것이라는 의외의 예상과는 달리, 이미 자신 이외에도 먼저 온 사람이 한명, 있었던 모양이다.


히루메? 니가 여긴 왠일이야? 너도 얘 보러온거야?


그렇다. 라붕이가 입원을 했다는 소식을 들어서 말이야. 조만간 찾아오려고는 했는데...

주방의 마녀가 하도 부려먹는 바람에 조금 늦고 말았구나...



요 근래에 취사지원 및 요리 실습으로 인해서 주방에서 살다시피한 히루메는 가차없이 자신을 부려먹던 소완의 모습을 떠올리자 몸서리 치기 시작했다.


으으...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꼬리의 털이 좀 날렸다고 하거니와, 그 정도의 불호령을 내뱉다니...

첩의 꼬리는 워낙 풍성하여 어쩔수 없단 말이다...!


아...하하.. 그것 참, 고생이 많았네.



딱 봐도 개고생한 티가 나는 몰골이었던 지라 어느 정도는 측은함을 느끼던 천아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히루메에게 물었다.


근데, 정작 걔는 어딨어? 안보이는데. 혹시 또 검사 받으러 갔나?


아, 라붕이라면 지금 화장실에 있다. 들어간지 어느정도 시간이 지났으니 이제 곧 나오지 않겠느냐.


흐음... 그래.



히루메의 말에 납득한 천아는 근처에 있던 의자에 걸터앉아 히루메를 향해 물었다.


그나저나, 넌 언제 온거야? 너도 온지 얼마 안된것 같은데.


첩도 그렇게 오래 되지는 않았느니라. 대략 10분 정도?



사소한 대화를 주고받던 도중, 천아는 히루메가 꼬옥 쥐고 있던 검은 봉투가 눈에 들어왔다.


응..? 그 봉투는 뭐야? 뭔가 엄청 많이 들어있는것 같은데.


음? 아... 카엔에게서 얻어온 유부 초밥이니라.

사실, 이전에 라붕이와 함께 먹으러 가기로 약속을 했던 참이었는데... 너도 알다시피 라붕이의 건강이 여의치가 않으니까 말이다.

그래서! 이 몸께서 카엔에게 직접 부탁해서 넉넉하게 포장해 왔느니라~!



싱글벙글 미소지으며 봉투 내용물을 보여주는 히루메는 뿌듯하게 웃으며 카엔 특제 유부 도시락을 자랑하였다.

 

헤에~ 너도 먹을거 싸왔냐? 나도 얘랑 먹을라고 간식거리 이것저것 사왔는데, 

아, 이참에 내거랑 같이 먹을래? 나도 맛있는거 꽤 많이 사와서 나쁘지 않을것 같은데.


오... 그것도 나쁘지 않겠구나. 좋다! 그렇다면 셋이서 다 함께 나눠먹자꾸나!


그나저나... 얜 도대체 화장실에서 얼마나 죽치고 앉아 있는거래? 변비라도 있는거 아냐?


그, 글쎄다... 사실 나도 그 생각을 하고 있긴 했는데... 그래도 이제 곧 나오지 않겠느냐?


...또 쓰러진건, 아니겠지...


.......



천아와 히루메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라붕이가 들어가 있을 화장실 문을 바라보았다.
























전여친 + 현여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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