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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막상 큰소리치기는 했지만, 흥분을 가라앉히고 부사령관은 고개를 돌려 천천히 주변을 훑어보았다.

 

 그녀가 오기 전에 전투가 있었는지 건물은 전투의 흔적으로 엉망이었다. 그녀의 남편인 사령관은 이제 막 환상에서 벗어났다지만, 그를 호위해야 할 바이오로이드들은 저마다의 환상에 빠져있었다.

 

 그나마 메리만이 부사령관을 안절부절 어쩔 줄 모르며 보고 있었지만, 바글바글한 요원들을 보니 뭔가를 기대하긴 힘들었다.

 

 ‘원작에서는 메리가 마스터키를 잘못 눌러서 마키나는 AGS의 통제를 잃었었는데, 나 때문에 그런 일은 없나 보네.’

 

 거기에 팬텀과 레이스도 벌써 낙원 밖으로 보내버렸으니 다이어리에 적힌 원작보다 최악의 상황이었다.

 

 그야말로──.


 “개판이네, 진짜.”

 

 한마디로 정리하니 머리가 지끈거렸다. 이럴 줄 알았으면 팬텀과 레이스를 보내지 말고 같이 낙원으로 왔어야 했나 잠깐 고민했지만, 아무리 그래도 적진이나 다름없는 곳에 아이들을 둘 수 없었다.

 

 누구보다 믿을 수 있는 리리스마저도 환상에 빠져있으니 결국 부사령관 혼자서 현재 상황을 해결해야만 했다.

 

 시뻘건 안광을 번뜩이는 요원들을 보며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하던 차에 갑자기 부사령관의 옆에 네모난 창이 나타났다.

 

 『언니, 혹시 쫄았어?』

 “다, 닥터?”

 

 갑자기 나타난 창에서 들린 닥터의 목소리에 부사령관은 당황하자 닥터가 한심하다는 듯 혀를 차고 있었다.

 

 “쪼, 쫄긴 누가 쫄았다고 그래! 그냥 상황이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개판이길래 어이가 없어서…….”

 『에휴, 언니가 그렇다면 그런 걸로 하고.』

 

 전혀 그런 것 같지 않은 표정이지만 부사령관은 얼굴만 붉힐 뿐, 뭐라 하지 않았다.

 

 『아무튼, 언니. 지금 언니의 신체 능력은 라비아타 언니보다 높으니까 걱정하지 말고 날뛰어도 돼.』

 “라비아타보다?”

 『응, 내가 언니를 그냥 낙원에 보낼 리가 없잖아~ 현재 가상현실 최고 권한은 어렵지만 이 정도 조작은 별거 아니라고.』

 “그런 건 진작 말해줘.”

 

 짓궂게 웃는 닥터가 얄밉게 느껴졌지만, 덕분에 걱정거리가 없어졌다.

 

 “사령관, 이거 받아.”

 “이건, 로자아줄이야?”

 

 부사령관에게 받은 물건을 확인한 사령관은 당황하였다.

 

 “이걸 나한테 주면 어떡해.”

 “괜찮아, 닥터가 도와줄 테니 나는 문제없어. 나보다는 너한테 더 필요한걸.”

 

 메리가 보호 능력이 있었으면 모를까, 안타깝게도 그런 능력이 없는 상태에서 인간인 사령관을 지킬 수 있는 바이오로이드는 없었다.

 

 사령관도 그 사실을 모르진 않았다. 다만 자신보다 부사령관의 몸 상태가 걱정스러울 뿐이었다.

 

 “닥터가 부사령관을 도와주고 있지만, 임신한 상태에서 무리하는 건…….”

 “아, 그러고 보니 말하지 않았네.”

 

 출산을 하고와서인지 아니면 닥터가 손을 봐준 건지 모르겠지만, 튀어나왔던 배는 어느새 사라지고 예전처럼 날씬해져 있었다. 그렇게나 고통스러웠던 배가 순식간에 사라진 게 허전해 부사령관은 배를 쓰다듬으며 사령관에게 담담히 말했다.

 

 “아들이랑 딸이야.”

 “어?”

 “이름은 사령관이랑 같이 지어주고 싶어서 아직 안 지었어.”

 “서, 설마 부사령관……!”

 “그러니 내 걱정은 말고 네 걱정이나 해. 애기아빠.”

 

 마지막 말은 꺼내고 나니 부끄러워서 부사령관은 재빨리 고개를 돌렸다. 사령관이 어떤 표정을 지었을지 모르지만, 부사령관은 짧게 헛기침을 뱉고 다시 마키나를 마주하였다.

 

 “크흠, 미안. 오래 기다렸지, 마키나?”

 “……놀랐습니다. 몸도 편치 않으실 텐데 직접 낙원에 와주시다니.”

 “어차피 강제로 떠넣을 텐데, 차라리 맨정신일 때 오는 게 낫지.”

 “그렇긴 하지만, 적어도 몸 상태가 안정되었을 때 데려올 생각이었습니다만…….”

 

 아무리 마키나라도 출산 후 쇠약해진 산모를 바로 가상현실에 보낼 정도로 각박하지 않았다. 최대한 회복을 도와 안정되었다 싶었을 때 낙원으로 초대하려고 했으나 부사령관은 시니컬하게 냉소를 지었다.

 

 “내 남편이랑 오르카의 모두를 완전히 세뇌한 뒤에 말이지.”

 “모두의 행복을 위해서입니다.”

 “하, 진짜 마키나 너는 좀 맞아야겠다.”

 

 더는 못 들어주겠다는 듯 부사령관은 닥터가 구현해준 블랙 맘바를 강하게 쥐었다.

 

 “이런 건 저도 원치 않았지만…… 힘으로 하는 수밖에 없군요.”

 

 마키나 또한 이렇게밖에 할 수 없다는 걸 깨닫고 드론을 천천히 일으켰다.

 

 그것을 신호로 요원들이 부사령관에게 달려들었다. 상대는 출산을 막 끝내고 온 인간이다. 아무리 가상현실 속이라지만, 쇠약할 때로 쇠약한 상태인 만큼 마키나는 최대한 난폭하지 않게 그녀를 제압할 생각이었다.

 

 오리진 더스트를 투입한 인간이라지만, AGS를 상대론 한없이 무력할 뿐이다. 그렇기에 부사령관을 잡는 건 전혀 어렵지 않을 거라 여겼지만.

 

 부사령관이 블랙 맘바를 몇 번 쏴 맞추자 그녀를 노린 요원들은 허무하게 무너져내렸다.

 

 “우와, 나 진짜 엄청 쌔졌네?”

 “어, 어떻게 이런…….”

 “정말, 완벽해 닥터!”

 

 벌어진 현상에 경악하는 마키나와 반대로 그제야 자신의 힘을 깨달은 부사령관은 물 만난 고기처럼 날뛰었다.

 

 오르카의 부사령관으로 살면서 그녀는 짬짬이 리리스에게 가벼운 호신술과 사격술을 배웠다, 어지간해선 전선에 나갈 일이 없을 테지만, 그래도 운동 삼아 배웠던 기술들이 가상현실이란 버프를 받은 부사령관은 손쉽게 마키나의 요원들을 격퇴했다.

 

 총알에 정확히 핵에 적중되거나, 그냥 블랙 맘바로 내려쳐서 부수거나 심지어는 발차기에 찢어져 버리는 등 도저히 부사령관을 저지할 수 없었다. 라비아타를 뛰어넘는 신체 스팩이란 게 무엇인지 똑똑히 보여주었다.

 

 “큭, 그렇다면 인간님도 다시 욕망의 세계로 보내…….”

 『미안하지만 그건 더 이상 통하지 않아.』

 “뭣!?”

 

 부사령관의 무쌍에 마키나는 요원들로는 소용없다는 걸 깨닫고 마스터키를 조작했지만, 그녀의 눈앞에 닥터가 나타났다.

 

 닥터가 등장함과 동시, 하늘에 거대한 검은 구멍이 나타났다.

 

 “닥터, 당신 무슨 짓을 하신 거죠?!”

 『가상세계를 구축하는 기계를 조금 손봤어. 히히, 이제 곧 낙원이 무너질 거야.』

 “……당신을 내보낸 건 실책이었군요.”

 

 상황이 워낙 급박했었기에 마키나는 레이스가 닥터를 불러달라는 말에 그녀를 내보낼 수밖에 없었다. 부사령관이 임산부인 것에 충격을 받았고, 상태가 심각해서 마키나도 머릿속이 하얘지는 바람에 닥터 대신 다프네나 다른 의료용 바이오로이드를 내보낸단 생각하지 못하고 말았다.

 

 그리고 그 결과는 무너져가는 낙원이었다.

 

 “아직입니다.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절망적인 상황임에도 마키나는 이를 악, 물고 마스터키를 조작했다.

 

 『미안, 언니. 마키나가 가진 마스터키를 손에 넣지 않는 한 모두를 꺼낼 수 없을 것 같아.』

 “괜찮아, 닥터. 까짓거 뺏으면 그만이야.”

 

 지금의 부사령관은 무적이나 다름없었다. 마키나가 아무리 발악해도 부사령관은 자신이 패배할 거란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래서 자신만만하게 답했는데──.

 

 “크아아아아아──!!!”

 

 높이만 10m를 훌쩍 넘는 엄청나게 거대한 파괴병기 ‘타이런트’가 나타나지 않았다면 말이다.

 

 “…………아니 씨발 잠깐! 얘가 왜 여기서 나와!”

 “해, 해피야?”

 

 갑자기 눈앞에 등장한 해피, 아니 타이런트의 등장에 부사령관은 경악했고, 사령관은 아연실색했다.

 

 “후, 후후. 천하의 인간님도 파괴병기는 무섭긴 한가 보군요.”

 “씨이, 타이런트는 반칙이잖아!”

 “알 바 아닙니다.”

 

 마키나는 기세등등한 얼굴로 타이런트의 머리 위에 자리 잡았다. 원작과 다르게 AGS 통제권을 잃지 않은 게 이렇게까지 상황을 악화시킬 줄 몰랐던 부사령관은 굉장히 골치 아팠다.

 

 신체 스팩이 라비아타를 뛰어넘어봐야 바이오로이드. 오르카 최강 병기 AGS를 정면으로 상대하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무리였다.

 

 “크하하하하하! 전투! 파괴! 광기! 전부 파괴해주마!”

 

 타이런트가 울부짖으며 날뛰기 시작했다.

 

 평범한 칙 계열 철충이면 모를까 정면에선 타이런트를 상대하는 건 죽었다 깨어나도 답이 없어 부사령관은 냅다 달렸다.

 

 “진짜진짜, 아무리 생각해도 저건 무리야!”

 『확실히, 아무리 언니라도 타이런트를 상대로 혼자선 무리긴 해.』

 “으아앙! 도와줘, 닥터에몽!”

 

 조금 전의 자신만만했던 모습은 어디로 가고 부사령관은 눈물을 글썽이며 닥터를 찾았다. 그러나 닥터가 채 대답하기도 전, 부사령관의 뒤로 시뻘건 플라즈마 불꽃이 뿜어져 나왔다.

 

 “아…….”

 

 이건 못 피한다.

 

 타이런트의 프라이멀 파이어를 직감적으로 깨달은 부사령관은 두 눈을 꼭 감았다.

 

 ‘으으, 저거에 맞으면 아픈 걸로 끝나지 않겠지? 아니, 어차피 가상현실인데 설마 죽기야 하겠어? 닥터가 무슨 수를 써주지 않을까?’

 

 예를 들면 강제로 낙원에서 로그아웃한다던가. 이런저런 낙천적인 생각을 순간적으로 한 부사령관은 다가올 충격을 기다렸다.

 

 그러나 그녀를 기다린 건 뜨거운 불길이 아니었다.

 

 “주인님!”

 “리, 리리스?!”

 

 불꽃이 닿기 직전, 리리스가 부사령관의 앞에 나타나 로자아줄을 전개했다.

 

 직후, 모든 걸 집어삼킬 무지막지한 불꽃이 두 사람을 덮었다. 하지만 그 강력한 플라즈마 불꽃은 로자아줄의 보호막을 뚫지 못했고, 보호막 안에 있는 이들에게 어떤 피해도 입히지 못했다.

 

 이윽고, 영원할 것만 같았던 불꽃이 사라지고 부사령관은 리리스가 자신을 지켜줬다는 걸 인지할 수 있었다.

 

 “리리스…….”

 “주인님!”

 

 진짜로 죽을뻔해서 그런 걸까. 리리스를 만나자 눈가에 눈물이 핑 돌았다. 전투 중인 것도 잊고 당장 울음이 터질 것만 같았을 때, 그보다 먼저 리리스가 부사령관에게 달려들었다.

 

 리리스는 부사령관의 허리를 양팔로 힘껏 끌어안고선 그녀의 품에 얼굴을 사정없이 비비며 쌓여왔던 감정을 쏟아냈다.

 

 “진짜 주인님이야 진짜 주인님이야 주인님의 냄새 주인님의 온기 주인님의 감촉 전부 주인님이야 주인님 주인님 사랑스런 리리스의 주인님 리리스를 떠나지 말아주세요 리리스를 혼자 남겨 두지 말아주세요 사랑해요 그 남자보다 주인님을 사랑해요 제가 바라는 건 오직 주인님의 곁을 지키는 거예요 이 품속에 언제든 안겨서 주인님을 느끼고 싶어요.”

 “그, 그래. 착하다, 우리 리리스. 나도 리리스를 사랑해.”

 “지켜드리지 못해서 죄송해요 주인님 힘드셨을 텐데 곁에 있어 드리지 못해서 죄송 흑, 흐아아아아앙! 보고 싶었어요, 주인님!”

 

 세상 서럽게 우는 리리스를 보니 부사령관은 그녀의 머리를 자상하게 쓰다듬었다.

 

 리리스가 지켜준 것에 안도해 울음을 터트릴 뻔했는데, 부사령관 자신보다 그녀의 사랑스런 메이드가 먼저 눈물을 쏟아내니 쓴웃음이 지어졌다.

 

 좀 더 서로를 끌어안아 온기를 느끼고 해후를 나누고 싶었지만 흉폭한 파괴병기는 그럴 시간을 주지 않았다.

 

 “크아아아아아──!!!”

 

 자신의 공격에도 상대가 무사하자 타이런트는 포효를 내지르더니, 육중한 덩치로 쿵! 쿵! 지면을 울리며 전속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감히 깡통 따위가 주인님한테!”

 

 주인과의 재회를 방해받은 리리스는 살벌한 눈으로 타이런트를 노려봤다.

 

 오르카 최강 AGS조차 리리스에겐 두렵지 않았다. 그저 자신의 주인에게 이빨을 들이댄, 감히 용서할 수 없는 제거할 대상이었다.

 

 순식간에 거리를 좁힌 타이런트가 거대한 아가리를 벌렸다. 보호막 채로 전부 씹어먹을 기세였지만 그 입이 닿기 직전 큰 총성이 울렸다.

 

 “경호 대장의 말에 동의하지.”

 “아스널!”

 “여, 다시 보는군. 부사령관!”

 

 아스널의 20mm 대물저격총에 턱관절이 직격당한 타이런트가 순간 주춤했다. 잠깐 생긴 사소한 틈이었지만 아스널은 놓치지 않고 장갑판이 비교적 얇은 관절에 총알을 박아넣었다. 리리스도 부사령관의 안전을 위해 그녀를 안아 자리를 피했다.

 

 “이딴 것 간지럽지도 않다! 하찮은 것들아!”

 

 아스널의 사격이 자신을 멈춰 세운 것에 분노한 타이런트는 흉폭하게 발을 굴렀다.

 

 “그, 그만하세요 타이런트! 이 이상 날뛰는 건 허락하지 않겠어요.”

 “시끄럽다, 바이오로이드 암컷! 내게 명령하지 마라!”

 “꺄악!”

 

 상황이 생각했던 것보다 심해지자 마키나는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타이런트에게 명령했다. 그러나 한 번 날뛰기 시작한 타이런트는 완전히 끝을 보지 않는 한 사령관의 명령도 무시하는 AGS였다. AGS통제권을 가지고 있다지만 타이런트를 완벽히 제어하는 건 무리였나 보다.

 

 감히 자신에게 같잖은 명령을 짖어대는 마키나를 타이런트는 머리를 휙! 하고 흔들어 떨어트렸다. 그 모습이 너무나 처량해 부사령관은 동정심이 들었다.

 

 “타이런트 머리 위에 탈 때부터 저럴 줄 알았어.”

 “어리석네요. 차라리 호랑이 등에 타고 말지”

 “……바이오로이드라면 호랑이를 찢어버릴 수 있지 않아?”

 “크큭, 부사령관의 말이 틀린 말은 아니군.”

 “아, 그러고 보니 너희들, 마키나의 환상에 갇힌 게 아니었어? 어떻게 된 거야?”

 『에헴! 그깟 환영 따위 별것 아니야.』

 

 부사령관의 물음에 닥터가 의기양양하게 답했다.

 

 “역시 우리 닥터에몽이야! 잘했어!”

 『언니의 별명 센스가 좀 그렇지만, 아무튼 아직 전부가 아니라고.』

 “응?”

 

 닥터의 말에 물어보기도 전에 타이런트는 머리에서 떨어트린 마키나를 향해 아가리를 벌렸다.

 

 “아, 안돼!”

 

 타이런트는 그대로 마키나를 물어뜯을 기세였다. 이쪽에서 손을 쓰기에는 늦은 상황이었다.

 

 낙원을 지키고자 했던 가녀린 바이오로이드는 거대한 폭군의 송곳니에 그렇게 형체도 알아볼 수 없게 뜯겨졌어야 했으나 질풍이 불었다.

 

 전장을 가로지르는 질풍은 마키나를 집어 채 순식간에 폭군을 지나쳐 부사령관의 머릿결을 휘날렸다.

 

 “오랜만이군, 부사령관.”

 “칸!”

 

 신속이란 이명을 가진 자답게 순식간에 마키나를 구해낸 칸이 부사령관에게 인사를 건넸다.

 

 그러나 부사령관이 인사를 건넬 사이도 없이, 눈앞에서 먹잇감을 놓친 타이런트가 광폭하기 시작했다. 타이런트는 새빨간 안광을 빛내며 부사령관을 향해 아가리를 벌렸다.

 

 “──아니, 나는 또 왜?!”

 “주인님, 뒤로!”

 

충격에 대비해 리리스가 다시 로자아줄을 전개했다.

 

 다시 한번 플라즈마 불꽃을 쏘아내려는 순간, 타이런트의 주변이 폭발했다. 폭발은 한 번이 아니라 여러 번 하늘에서 떨어져 내렸다. 하늘을 올려다보자 그곳엔 두 바이오로이드가 고고하게 부유하고 있었다.

 

 “저거 지금 부사령관을 공격한 거야?”

 “하극상인가요. 대장이 받았으면 모를까, 부사령관님이 받으시다니, 세상 참.”

 “대령, 지금 뭐라고 했어!”

 “메이! 나앤!”

 

 멸망의 메이와 나이트 앤젤이 타이런트를 보면서 입씨름을 하고 있었다. 두 사람이 반가워서 부사령관이 손을 흔들며 그녀들을 불렀지만, 폭격음에 묻혀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가 보다.

 

 칸에 이어 메이와 나이트앤절까지 나타나니 더 이상 타이런트에 대한 두려움은 들지 않았다.

 

 “메이 소장에게 고마워해야겠군,”

 “오랜만이야, 칸!”

 

 정말 오랜만에 만난 칸을 보니 듬직하기 그지없었다. 리리스가 사랑하는 가족이라면 칸은 무적의 용과 함께 동경하는 대상이었다. 만약 부사령관이란 직함이 아니었으면 언니! 라고 불렀을지 몰랐다.

 

 칸의 등장에 부사령관이 눈을 빛내며 꺄꺄, 거리자 리리스가 볼을 부풀리며 그녀의 앞을 가로막았다. 그러다 칸이 구해온 마키나를 보고는 퉁명스레 말했다.

 

 “쓸데없는 짓을 하셨네요, 칸 소장.”

 “그게 무슨 말이지, 리리스 경호 대장?”

 “그 쓰레기는 주인님은 물론이고 이 빌어먹을 세계로 우릴 납치한 원흉이거든요. 찢어 죽여도 시원치 않을 년이죠.”

 “그런 건가, 부사령관?”

 “어, 어 리리스의 말이 틀린 건 아니지만.”

 

 리리스의 말을 듣고 칸의 눈빛이 싸늘해지자 부사령관은 흠칫했다. 그녀가 화를 낸 모습이 처음이었기에 절로 긴장되었다.

 

 부사령관의 반응에 칸은 자신의 실수를 인지하고 표정을 풀었다. 다시 평소의 분위기로 돌아오자 부사령관은 긴장을 풀 수 있었다.

 

 “일단 마스터키를 얻어야지. 이거 없으면 우리 못 빠져나가잖아.”

 “아, 죄송해요 주인님. 제가 생각이 짧았어요.”

 “부사령관의 말대로군. 칸 소장이 아니었으면 타이런트의 배를 갈라야 할 뻔했어.”

 “우와, 그건 좀…….”

 

 생각만 해도 끔찍한지 부사령관은 부르르 몸을 떨었다.

 

 사태가 소강상태로 들어가자 부사령관은 사령관에게 돌아왔다.

 

 “괜찮아, 부사령관?”

 “응, 리리스가 지켜줘서 괜찮아. 너는, 뭐 괜찮으려나.”

 

 닥터가 모두의 세뇌를 풀어뒀는지 사령관은 정신 차린 바이오로이드들에게 뒤늦게 호위받고 있었다. 고생이란 고생은 다 자신이 하고 왔는데 태평하게 바이오로이드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게 못마땅했지만.

 

 리리스가 세뇌에서 풀리자마자 그녀에게 로자아줄을 건네주고 부사령관을 도우러 가라고 했었다. 덕분에 숯불구이가 되는 신세를 피했으니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대신.

 

 “사령관, 마키나의 처분은 내가 맡아도 될까?”

 “나한테 묻는 걸 보니 죽이려는 게 아닌가 봐?”

 “응, 옆에서 두고두고 갈구게. 덤으로 물어볼 것도 있고.”

 “그, 그래. 부사령관하고 싶은대로 해.”

 “고마워.”

 

 아무튼, 의식을 잃고 쓰러진 마키나에게서 부사령관은 마스터키를 손에 넣었다. 이제 이걸로 낙원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었지만, 불길한 생각 하나가 들었다.

 

 “그, 닥터. 혹시 말이야.”

 

 부사령관은 폭격에 휩싸였음에도 하늘을 향해 불을 내뿜어 대는 타이런트를 가리키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쟤 낙원에서 내보내도 밖에서 날뛰는 건 아니지?”

 『어, 음 그건………….』

 

 생각지도 못한 물음에 닥터는 벙찐 얼굴로 말을 잇지 못했다.

 

 “………….”

 『…………몰?루.』

 “뒷일을 부탁할게, 사령관.”

 “어…… 응. 푹 쉬고 있어.”

 “고마워.”

 

 그렇게 낙원에서의 일이 끝을 맞이했다.


낙원의 마지막은 해피 레이드로 마무리


바이오로이드가 아무리 쌔도 해피랑 1:1은 역시 무리였습니다!


다음편은 화요일까지 써오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