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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낙원에서 나온 이후 부사령관은 그 자리에서 기절했다. 가상현실 속에서야 닥터가 손을 써둬서 끄떡없었지만 현실로 나오니 누적된 피로와 잊고 있었던 후폭풍을 직빵으로 받으니 아플 새도 없었다.

 

 뒤늦게 낙원에서 나온 리리스는 피범벅에 난리난 부사령관의 몰골을 보고 대성통곡했고, 사령관마저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조금만 더 구조대가 늦었다면 직접 안아서 오르카까지 달릴 기세였다.

 

 사령관과 부사령관이 납치되고, 팬텀과 레이스가 두 사람의 아이들을 데리고 필사의 탈출 끝에 오르카에 도달했을 때, 오르카는 발칵 뒤집혔다. 연락이 온 즉시 모든 작업을 중지하고 무적의 용을 비롯해 오메가의 세력을 흡수한 알파와 다른 지휘 부대까지 합류하였다.

 

 덕분에 뒷수습은 무사히 마칠 수 있게 되었고, 부사령관은 3일이 지나서야 의식을 되찾을 수 있었다.

 

 “후우. 너 때문에 죽다 살았는데, 네가 이 기분을 알겠니?”

 “……죄송합니다.”

 

 낙원에서 나온 지 일주일이 돼서야 부사령관은 마키나를 볼 수 있었다. 3일 만에 눈을 뜨고, 리리스며 사령관, 그리고 다른 사람들까지 안정을 취하라며 침대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했고, 아주 알뜰살뜰 보살핌받은 끝에서야 겨우 자유를 찾을 수 있었다.

 

 사람들이 조금 유난 떨고 과하긴 했지만 부사령관도 아이들과 함께할 시간을 가질 수 있어서 나름 보람차게 보내긴 했다. 원래라면 좀 더 침대에 시간을 보낼 수도 있었고, 남들도 바라는 눈치였지만, 부사령관은 마키나를 만나는 걸 이 이상 미루지 않았다.

 

 “들어보니까 독방에서 지냈다며? 어디 불편하거나 힘들진 않았어?”

 “감히 부사령관님께 씻을 수 없는 죄를 지은 몸입니다. 그런 제가 어찌 힘들다고 할 수 있습니까.”

 “불편하면 불편한 거지. 뭐, 그래도 어디 상하지는 않아서 다행이네.”

 

 마키나의 겉모습은 멀쩡했다. 부사령관의 눈물 나는 행적을 알고서 감격한 대원 중 몇몇이 분을 참지 못하고 손을 댔을 거라 생각했는데 사령관이 일찍 조치한 덕분인지 이렇다할 피해는 없었다.

 

 물론 겉으로 상처는 없을지언정 많은 이들의 멸시와 욕을 받아왔지만 그것까지는 어쩔 수 없었다.

 

 “그럼, 일단 물어나 보자. 왜 낙원에 우릴 납치했어?”

 “낙원은 모두의 행복을 위해서였어요. 우린 주인을 잃은…….”

 “나 아직 좀 피곤하거든? 한 문장으로 요약해줄래.”

 “인간님을 구세주로 세워 이상적인 낙원을 만들고 싶었어요.”

 “구세주라.”

 “부사령관님께 이제야 목적을 꺼내게 되었지만요…….”

 

 대답하고서 마키나는 고개를 푸욱 숙였다.

 

 대충 원작을 알고 있었기에 마키나의 목적은 알고 있었다.

 

 원래라면 사령관이 납치되었어야 했고, 사령관에게 마키나 자신의 목적을 꺼내 설득하면서 마지막엔 그건 틀렸다고 사령관이 그녀를 깨닫게 해주어야 했었다.

 

 그런데 정작 사령관이 아니라 부사령관을 납치하면서 마키나는 구세주의 ㄱ자도 꺼내보지도 못하고, 마지막에도 날뛰는 타이런트 때문에 흐지부지해버린 채 낙원은 끝을 마주하고 말았다.

 

 게다가 만약 부사령관이 사령관에게 마키나의 처분을 맡고 싶다고 하지 않았으면 메리가 아무리 애원해도 마키나는 낙원과 함께 사라졌을지도 몰랐다.

 

 “너도 참 기구하네.”

 “크읏…….”

 

 신경 쓰고 있었는지 마키나는 신음을 흘렸다. 부사령관의 말대로 그녀는 지독한 억까 때문에 억장이 무너져있었다.

 

 “뭐, 낙원은 이미 무너져버렸지만 말이야. 아직 낙원에 대한 미련이 남아있어?”

 “……없다고는 할 수 없군요.”

 “기구한 것만 아니라 구질구질하구나.”

 “……부사령관님은 어째서 낙원을 거부하신 건가요,”

 

 부사령관의 말에 조금 감정이 들어갔지만, 솔직히 마키나는 그녀에게 묻고 싶었던 물음이었다.

 

 “이 세계는 철충들로 황폐해졌어요. 인간도 부사령관님과 사령관님뿐이고.”

 “두 명 더 늘어나서 이제 넷이야.”

 “네, 늦었지만 축하드립니다. 도련님과 아가씨였지요?”

 “응, 얼마나 귀엽고 사랑스러운데! 마키나도 보면 한눈에 반할걸?”

 “그, 그렇게 말씀하시면 저도 보고 싶긴 한데……아, 아무튼!”

 

 애들 얘기가 나오자 부사령관이 주책맞게 헤실헤실 웃었다. 그녀의 갑작스런 모습에 마키나는 순간 페이스에 말려들 뻔했지만. 고개를 좌우로 크게 흔들어 정신 차렸다.

 

 “제 얘기는 이 세상은 멸망했고, 철충들과 끊임없이 싸워나가야만 해요. 물자는 점점 떨어지고, 나아갈 희망은 보이지 않죠. 그러나 낙원은 제 능력으로 철충들의 눈을 속이고 영원히 행복하게 살 수 있었어요.”

 

 마키나는 속에 담겨있던 울분을 토하듯이 말을 내뱉었다.

 

 “부사령관님께서 진정 아이들을 생각하신다면 위험한 바깥이 아니라 낙원을 택하셨어야 했어요.”

 “쓰레기가 뚫린 입이라고 감히 주인님께 막 지껄이네?”

 “리리스는 가만있어. 괜찮으니까 계속 말해봐, 마키나.”

 

 곁을 지키던 리리스가 살벌하게 노려봤지만, 부사령관의 제지에 마키나는 계속 말을 이었다.

 

 “바깥은 철충들과 싸워 나가야 해요. 아이들을 지키기 위해 폐쇄된 잠수정에서 살아야 하고, 설령 무사하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아이들도 당신들을 이어 전장에 나서게 되겠죠.”

 “…….”

 “하지만 낙원은 안전해요. 철충과 싸울 필요도 없고, 아이들이 전장에 나서지 않아도 돼요. 아무런 근심 걱정 없이 평화롭게, 행복하게 지내실 수 있었다고요.”

 

 마키나의 말은 딱히 틀린 건 없었다. 사령관과 부사령관의 자식으로 태어난 이상 언젠가 군 수뇌부가 되어 전장을 나서게 되는 건 정해져 있었다.

 

 아직 옹알이도 때지 못한 아이가 지휘관이 되는 미래라. 어머니로서 흐뭇하기도 하고 불안하기도 한 미래지만.

 

 “그걸 네가 왜 걱정하는데?”

 “네?”

 “네가 애들 엄마야? 누구 덕분에 태어난 아이들을 안아보지도 못하고 떠나보낼 수밖에 없었는데, 네가 왜 걱정하는 거냐고.”

 “그, 그건 제가 한 게 아니고 부사령관님이…….”

 “타이런트도 생각 없이 탔다가 일 벌인 네가 아이들을 인질로 쓰지 않을 거란 보장은 있고?”

 “읏…….”

 

 퉁명스러운 부사령관의 말에 마키나는 차마 반박할 수 없었다. 무너져 가는 낙원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면 마키나는 무슨 짓이라도 벌였을지도 모르니까.

 

 “차라리 주인 잃은 불쌍한 바이오로이드들을 구원하기 위해서라고 하면 동정이라도 하는데, 아이를 핑계 대는 건 아니지 않아?”

 “저는 그런 게…….”

 “사실은 네가 아이를 갖고 싶어서 그런 거 아니야?”

 “………….”

 

 마키나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어느 순간부터 모두의 행복을 위해서라는 욕망보다도, 아이에 대한 욕망이 앞섰다. 낙원 안에서는 워낙 전투를 치르느라 정신없고 신경 쓸 겨를이 없었는데, 독방에서 홀로 생각에 잠겼을 때는 아이를 위해선 낙원이 필요했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리고 아이의 안전을 위해서 낙원은 존재해야만 했다고, 아이의 어머니에 대고 떠들어댔다.

 

 “아, 아아……!”

 

 자신의 행동을 돌아보고서야 마키나는 무엇이 잘못됐는지 깨닫고,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죄송, 죄송해요…… 죄송합니다…….”

 “뭐를 잘못했는데.”

 “낙원을 만든 대의명분조차 잊고, 부사령관님의 아이를 탐하고 말았어요…….”

 

 마키나는 흘러내리는 눈물도 닦지 못하고, 울먹였다.

 

 “저 혼자만의 안식을 위해 낙원이란 새장을 만들어 그녀들을 가두어 넣고, 남의 아이를 탐낸 제가 역겨워서, 흑…….”

 “뭐를 잘못했는지는 알았나 보네.”

 

 절대 용서할 수 없지만, 한편으론 측은하기도 했다.

 

 차라리 원작대로 사령관을 납치하고 마지막에 자신의 죄를 깨닫고 속죄하는 전개로 갔다면 좋았을 텐데, 하필이면 부사령관이 납치하는 바람에 속죄할 생각조차 못할 정도로 자신을 혐오하게 됐다니.

 

 차라리 원작을 몰랐다면 깔끔하게 원망하고 죽였을 텐데, 그녀한테 악의라고는 전혀 없는 사실을 알고 있으니 찝찝했다.

 

 “리리스. 애들을 데려와 줄래?”

 “괜찮은가요, 주인님?”

 

 대답 대신 부사령관은 싱긋 웃어 보였다. 그것만으로도 리리스는 충분했기에 고개를 살짝 끄덕이고는 나갔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이터니티와 바르그를 대동해 요람을 가지고 왔다.

 

 “낙원은 행복하다는 사실만 남을 뿐, 결과는 물론 아무것도 남지 않아.”

 “네…….”

 

 마키나는 훌쩍이면서 답했다.

 

 “물론 현실은 냉정하고 차갑긴 해. 철충도 잡아야지, 대원들도 생각해야 하고 이런저런 여러 가지 일들로 바쁘고 생각할 것도 차고 넘치지만.”

 

 부사령관은 요람 속에 포근히 잠들어있는 두 천사를 사랑스럽게 바라봤다.

 

 “이렇게 행복이라는 결실을 남길 수 있었어.”

 “아…….”

 

 앙증맞은 두 아기가 잠들어있는 모습을 보자 마키나는 두 뺨을 붉히며 눈이 동그래졌다.

 

 “아들은 에덴이고, 딸은 에델이야.”

 “낙원인가요?”

 “응, 이 아이들이야말로 나랑, 그리고 우리들의 낙원이야.”

 

 만져볼래? 부사령관은 살며시 아기의 볼을 찌르면서 물었다. 보기만 해도 쪼물쪼물 말랑말랑한 볼살에 이끌려 마키나는 침을 꿀꺽 삼키더니 조심스럽게 천천히 손을 움직였다.

 

 혹시라도 그녀가 허튼짓하지 않을까 리리스를 비롯한 두 경호원이 바짝 긴장했지만, 다행히 우려한 일은 없었다.

 

 단지 아기가 잠꼬대로 마키나의 손가락을 잡은 것이 부러울 뿐이었다.

 

 “소, 손을……!”

 “애 깨지 않게 조용히 하렴.”

 “흐읍!”

 

 이제는 완전히 빨개진 얼굴로 마키나는 입을 반대 손으로 막았다.

 

 조금 전의 마키나를 감싸던 자기혐오와 자괴감은 어디로 사라지고, 행복감과 따뜻함만이 채워졌다. 이렇게 작고 연약한 행복에게 마키나는 무한한 감동을 느끼며, 눈물을 흘렸다.

 

 낙원에서는 느껴본 적 없는 행복. 어떤 쾌락과 욕망을 구현하더라도 지금과 같을 수 없다. 지금까지 자신이 만들어낸 행복 따위는 이 앞에서 아무 가치도 없었다.

 

 “……째서.”

 “응? 뭐라고?”

 “부사령관님은, 어째서 저를 살려두신 건가요?”

 

 이토록 행복을 전해주는 낙원을 하마터면 마키나로 인해 잃을 뻔했다. 그녀가 의도한 게 아니었어도 잠깐이지만 생이별하게 만들었다.

 

 이외에도 낙원 속에서 납치하고, 부사령관을 공격하는 등 수많은 죄를 지었고, 다른 바이오로이드들은 마키나의 처형을 당연하다 여겼다. 그리고 마키나 본인 또한 마찬가지었다.

 

 그런데 어째서 마키나 때문에 가장 고생을 많이 한 부사령관이 사령관에게 부탁해 그녀를 살려둔 건지 의문이었다.

 

 “아, 그거 말이야?”

 

 잊고 있던 걸 떠올랐다는 듯 부사령관은 피식 웃었다.

 

 “너 때문에 얼마나 고생했는데 그냥 죽일 수는 없지. 다른 사람 눈치 볼 거 없이 부려 먹고 갈구려고 했지.”

 “그, 그렇습니까.”

 “그리고 이렇게 진짜 행복도 모르고 자신이 옳았다, 정신 승리한 채 죽는 것도 가엾기도 했고. 게다가 애들 태어난 날에 피 보는 것도 좋지 않고.”

 “어, 어음…….”

 

 마키나는 괜히 물어본 것 같아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리고 메리한테 고마워해.”

 “메리, 말입니까?”

 “그 아이, 네가 독방에 갇힌 뒤로 의무실 앞에 밤낮없이 석고대죄했어.”

 

 메리는 눈치가 없는 편이 아니었다. 마키나가 봐주었다고 해도 100년간이나 낙원에서 혼자 쫓기며 살아온 만큼 눈치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렇기에 메리는 이대로 낙원에서 나가면 마키나가 죽을 거란 사실을 알았다.

 

 낙원에서 드디어 마키나를 구원했지만, 죽게 된다. 결코 그녀의 죽음을 두고 볼 수 없어 메리는 사령관에게 빌었다. 그러나 사령관은 마키나의 처분은 부사령관에게 있다고 자신한테 빌지 말라고 했다.

 

 그러나 부사령관은 의식을 잃고 의무실에서 안정을 취하는 중이었다. 이제 막 오르카에 들어온 메리는 물론이고 기존의 대원들도 함부로 들어갈 수 없었기에 메리는 무작정 의무실 앞에 무릎 꿇었다.

 

 하루, 이틀, 삼일. 부사령관이 정신을 차리고 회복하는 그때까지 빌고 빌었다. 부디 마키나를 살려만 달라고.

 

 애초에 죽일 생각도 없었는데, 메리의 간절함을 보니 엄격했던 마음도 스르륵 녹아내렸다.

 

 “그러니 메리한테 잘해. 그 아이는 가족이잖아.”

 “가족이라…… 저는 그 아이에게 심한 짓만 했는데…….”

 “어차피 시간은 많으니까 심한 짓을 했으면 나중에 직접 사과하면 돼.”

 

 메리를 생각지도 못했던 자신에게 자조하는 마키나에게 부사령관은 조언을 던져주고, 이내 진중해졌다.

 

 “시간이 꽤 됐네. 그럼, 오르카의 부사령관으로서 마키나에게 처분을 내릴게.”

 “뜻대로 받겠습니다.”

 

 올 것이 왔구나 싶었는지 마키나는 순순히 고개를 숙였다.

 

*

 

 “아무리 생각해도 주인님은 너무 자비로우셔요.”

 

 조금 전 마키나에게 내린 처분을 두고 리리스는 투덜거렸다.

 

 “겨우 동침이랑 휴가 영구 제한이라니. 너무 가벼운 게 아닌가요?”

 “동감이다. 적어도 사지 하나는 뽑아야 했습니다, 주인님.”

 “바르그 양의 말대로예요. 주인님한테 한 짓을 생각하면 눈이랑 혀도 뽑아도 모자란데!”

 “……너희들 언제부터 그렇게 척척 맞았어?”

 

 딱히 마키나를 죽일 생각도 없고, 전력으로 써야하는데 팔다리를 뽑으면 그럴 수가 없다. 그래서 휴가와 동침 영구 제한 말고도 봉사활동 1,000시간에 자원탐색도 꾸준히 참여하는 등 그 외 오르카 복지혜택에 제한을 걸기도 했는데 저 둘은 그래도 부사령관이 내린 처분이 불만이었나 보다.

 

 언제부터 친했다고 리리스와 바르그가 함께 이렇게 해야 했네, 저렇게 해야 했네 얘기하는 걸 들으니 부사령관은 절로 질색했다. 그리고 그건 부사령관만 듣기 싫은 건 아니었나 보다.

 

 “히, 히에에엥!”

 “어휴, 우리 아들, 딸. 누나랑 언니들이 하는 말이 무서워서 깼니?”

 “헉! 죄송해요 도련님, 아가씨!”

 “크흠!”

 

 잠에서 깬 아이들의 울음소리에 리리스는 다급히 에덴을 들어서 달랬고, 바르그는 어쩔 줄 몰라 헛기침했다. 부사령관도 남은 에델을 달래기 위해 안았지만, 갓난아기였던 부사령관을 돌보았던 경험을 가진 리리스에 비해 초보 엄마인 그녀로서는 당황스러울 따름이었다.

 

 “제가 안겠습니다, 마님.”

 “정말 누굴 닮아서 이렇게 우는 건지. 부탁할게, 이터니티.”

 

 부사령관에게서 에델을 받은 이터니티는 능숙하게 아이를 달래주었다.

 

 “착하죠, 우리 아가씨. 착한 아이는 죽을 때가 아니면 우는 게 아니랍니다~”

 “이터니티? 저기 이터니티야? 애한테 그게 할 말이니?”

 “하지만 아가씨, 설령 죽더라도 이터니티는 무덤까지라도 따라간답니다. 죽음 뒤의 사후 세계에서도 울고 계시더라도 그곳에서 눈물을 닦아드릴게요~”

 “어, 어버버버…….”

 

 악의는 없다. 오히려 주인을 죽어서라도 끝까지 지키겠다는 이터니티의 충성심이겠지만, 옆에서 듣는 사람 입장에선 꺼림칙했다. 멸망 전 삼안에서 내보인 최고급 걸작 모델이었음에도 이터니티의 판매량이 저조한 이유를 대충 알 것 같았다.

 

 바르그에 리리스까지 얼굴이 굳어버렸을 정돈데, 훗날 아이들이 커졌을 때를 생각해 진지하게 상담을 해야겠다고 부사령관은 다짐했다.

 

 에델은 저 소름 돋는 말을 이해하진 못했는지 이터니티의 나긋나긋한 목소리에 방실방실 웃고 있었다. 울음을 그친 아이를 보며 이터니티는 행복한 미소를 살며시 지으며, 리리스의 품에 안긴 에덴을 보았다.

 

 “리리스님, 에덴 도련님도 제가 달래도 되겠습니까?”

 “아, 아니요. 괜찮아요, 이터니티양. 제가 달래드릴 수 있으니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알겠습니다.”

 

 리리스의 거절에 이터니티는 아쉬운 기색을 보였지만, 꺄르륵 웃는 에델을 보고는 다시 미소를 지었다.

 

 “정말 행복해요. 리리스님처럼 저도 주인님을 요람에서부터 모실 수 있다니.”

 “그렇게 좋아, 이터니티?”

 “네, 아가씨의 곁에 있으면 너무 행복해서 모든 것을 잊게 돼요. 저의 입장, 우리의 적 그리고 죽음까지. 아마 이게 주인님과 함께하는 영원이겠죠? 함께해요. 이 세상이 끝난 후에도 영원히.”

 “그, 그러니?”

 

 다시 한번 말하지만, 악의는 없다. 저것이 이터니티란 바이오로이드의 특징이니까 넘어가도록 하자. 에델도 좋아하는데 문제없다며, 부사령관은 애써 고개를 끄덕였다.

 

 “그, 그나저나 지금 어디로 가는 중입니까 주인님?”

 “격납고로 가고 있어. 아직 AGS한테 애들을 소개한 적이 없으니까.”

 

 에덴과 에델이 태어난 뒤로 오르카의 모든 부대원들이 앞다투어 두 아이를 보기 위해 난리였다. 하도 질서고 뭐고 개판이라 사령관과 날을 정해 부대 시찰을 하면서 소개해주었다.

 

 사령관, 부사령관의 부대 시찰에 오르카의 두 축복이 온다는 걸 듣자 각 부대는 청소에 돌입했는데, 특히 불굴의 마리는 두 눈에 실핏줄이 선명하게 드러날 만큼 사활을 걸고 스틸라인 대청소 작전을 벌였다.

 

 아무튼, 바이오로이드 부대는 모두 들렀고 이제 알바트로스 휘하의 AGS 로보테크만이 남은 상황이었다. 하지만 이날 사령관은 아메리카의 일로 자리를 비울 수밖에 없었다.

 

 사령관의 부재로 부대 시찰을 캔슬할 수도 있었지만, 그래도 아이들과의 만남을 기대하고 있을 몇몇 AGS들을 위해서라도 부사령관 혼자 나서기로 하였다.

 

 “부하들을 아끼시는군요.”

 “나처럼 부족한 인간을 위해서 싸워주는데 내가 해줄 수 있는 만큼 대우해줘야지.”

 “주인님은 전혀 부족하신 분이 아니세요!”

 “제가 본 인간 중에서 주인님은 전혀 부족하신 분이 아닙니다.”

 “후후, 고마워 둘 다.”

 

 양쪽에서 기운을 북돋아 주는 경호원의 말에 부사령관은 조금 자신감이 드는 것 같았다.

 

 “주인님에게 부족한 게 있다면 제 주인도 보필하지 못한 무능한 메이드를 둔 것뿐입니다.”

 “……바르그 양, 그거 저를 보고 하는 소리인 걸까요?”

 “말하지 않아도 자신의 잘못은 인지하는군.”

 “저기, 얘들아?”

 

 갑자기 분위기가 험악해지기 시작하자 부사령관은 살짝 불안해졌다.

 

 “지금 뭐라고 했죠? 제가 주인님을 보필하지 못한 무능한 메이드라고?”

 “틀린 말을 한 게 아니지. 다른 대원들의 행방 때문에 내가 자리를 비우지만 않았어도 주인님께서 봉변당할 일은 없었을 거다.”

 “하! 전 주인의 환영이나 보고 헥헥 쫓아갈 개새끼가 말은 잘하네요.”

 “주인님의 위신을 깎을 천박한 말투군. 오늘 네 녀석을 주인님께 어울리도록 바로잡아주도록 하지.”

 “저야말로 주둥아리를 나불거리는 개새끼를 오늘 복날 개 패듯이 손봐주도록 하죠.”

 “……너희들 방금까지는 척척 맞지 않았니.”

 

 리리스와 바르그는 당장 오르카 내 무기 반입이 금지되지만 않았어도 총칼을 뽑았을 것 같다. 언제 싸울지 불꽃이 튀기는 이 와중에 이터니티는 두 아기를 보며 웃느라 여념이 없었다. 주인 외에는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는 이터니티의 신경 줄이 이럴 때는 부러웠다.

 

 아직 격납고에 도착하지도 않았는데 벌써 지치는 기분이다.

 

 “후우, 리리스. 바르그. 당장 싸움을 멈추고──!”

 

 부사령관은 유모차에서 아이들을 번쩍 들어서 그녀들의 품에 안겼다.

 

 “애들 잘 들고 있어. 오늘은 유모차 없이 움직일 거야.”

 “주, 주인님?! 아니, 갑자기 애를 들라고 하시면…….”

 “헉!”

 

 아무리 험악한 분위기의 바이오로이드라고 해도 아기의 방실방실한 얼굴 앞에서는 흐물흐물 녹아내렸다. 심지어 리리스는 미래의 남편이나 다름없었기에 베시시 미소 지었다.

 

 그리고 그런 두 사람을 이터니티는 부러운 눈빛을 짓고 있었다.

 

 아무튼, 부사령관은 마침내 격납고에 도착해 AGS를 맞이할 수 있었다. 알바트로스가 뭔가 위엄있는 말을 하다가 아기들이 울어서 당황하기도 하고, 알프레드가 만져보려다가 호들갑을 떨고, 스파르탄 부대가 준비한 장기자랑을 보이며 웃음을 터트리기도 했다.

 

 이렇듯 AGS들도 아이들을 환영하고, 축하해주는 모습에 부사령관은 역시 오기를 잘했다 생각했다.

 

 낙원에서 사령관과 부대원들에게 제대로 두들겨 맞은 타이런트는 만남을 거부했고, 부사령관은 마지막 한기를 맞이했다.

 

 “안녕, 초롱아~”

 “……그 이름으로 부르지 말아주십시오, 부사령관 각하.”

 “알았어. 미안해, 로크.”

 

 낙원에서 깨어난 로크는 3일 넘게 구석에서 혼자만의 시간을 가졌다고 들었었다. 이제는 다 털고 괜찮은 줄 알았지만, 아무래도 초롱이라는 이름은 그의 트라우마로 각인된 것 같았다.

 

 부사령관은 딱히 로크와 얘기할 거리가 없었다. 접점도 부족하고, 로크도 사령관 외에는 그다지 호의적이지도 않았기에 조금 부담스럽기도 했다. 그래서 아이들을 소개해주고 그대로 가려고 했는데 의외의 일이 벌어졌다.

 

 “앙헬의 무덤지기를 여기서 보는군.”

 “당신은 그때 술주정뱅이의 사냥개군요.”

 “응? 너희 아는 사이었어?”

 

 로크와 바르그.

 

 리오보로스의 인간을 따른 AGS와 바이오로이드의 첫 만남은 오르카가 아니었다.



다음편은 100년전 라붕이, 그리고 리오보로스 두 사람으로 시작됩니다~


라붕이는 과연 어떻게 마리아를 꼬셨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