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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필사적인 똥꼬쇼에 히스테릭 부리다 지친 마리아는 결국 푹 잠들었다. 안 그래도 며칠간 잠도 안 잤다던데 조금만 술을 멈추니 업어가도 모를 정도였다. 잠든 그녀를 침대에 눕히자 악몽이라도 꾸는 듯 인상을 찌푸렸다.

 

 “으으, 아아악……!”

 “대체 무슨 악몽을 꾸고 있는 거냐.”

 

 전파를 막아주던 슈트를 벗은 이상 나 또한 휩노스 병 대상자나 다름없다.

 

 언젠가 나도 마리아처럼 잠들 때마다 악몽에 시달려 죽어가게 되는 걸까.

 약이랑 술로 잠들지 않으려고 발악하던 그녀처럼 나도 그렇게 되는 걸까.

 

 “에잉, 이 나이에 무슨 객기를 부려서는.”

 

 뒤늦게 후회가 들었지만, 이미 저지르고 만 거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나는 고개를 털었다.

 

 여전히 악몽에 시달려 끙끙거리는 마리아가 안쓰러워 나는 식은땀이라도 닦아주었다. 그러자 찌푸려진 인상이 풀리더니 편안한 얼굴로 새근새근 잠들었다. 겨우 땀 닦아주는 걸로 악몽이 가신 건지 의문이 들었지만 좋은 게 좋은 거니까 적당히 정리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머지는 외간 남자인 내가 할 수 없으니 바르그한테 넘겨주도록 하자.

 

 “……여제님을 말려주셔서 감사를 전하지.”

 “그랴, 나머지 뒷정리는 잘 부탁하마.”

 

 선실에서 나가는 길 바르그는 내게 꾸벅 고개를 숙여 감사를 전했고, 나는 적당히 손을 흔들어주었다.

 

 경계심 가득했던 처음과 다르게 고개를 숙여주다니, 장족의 발전이로구나.

 

 바르그와의 관계가 진전된 것에 흐뭇해하며 내가 배정된 선실로 돌아왔을 때, 난리가 벌어졌다.

 

 “주인어른, 헤, 헬멧은 어찌하여 벗으신 거옵니까!?”

 “아, 금란아 그게…….”

 

 깜빡하고 헬멧을 두고 왔다. 어차피 전파에 노출된 뒤라 다시 써봤자 소용없을 테니 신경을 껐었는데 헬멧을 벗은 내 모습을 보고 금란이 기겁했다.

 

 “아이고, 주인어른! 이를 어찌하옵니까! 어찌 소첩을 두고 가시려는 겁니까!”

 “진정하렴, 금란아! 나 멀쩡하니까 끄떡없다고!”

 

 금란을 어찌어찌 어루고 달래 보려 노력했지만, 그녀는 바닥에 주저앉아 땅을 치며 대성통곡했다.

 

 잠깐 전파에 닿는다고 휩노스 병에 바로 걸리지 않으니 안심하라고 겨우겨우 달래서야 금란은 눈물을 멈췄다.

 

 라스트 오리진에 전생한 지 50년간 영끌로 가족들 눈에 눈물 흘린 걸 마지막으로 나 때문에 남의 눈에서 눈물 나오게 한 적 없었는데, 그 조숙했던 금란이 눈물을 흘리니 당황스러울 따름이었다.

 

 아무튼 리오보로스의 유산까지 항해하는데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드디어 섬에 도착할 수 있었다.

 

 “……네놈은 지금 놀러 온 줄 아는 거냐?”

 “남국의 섬이면 하와이안 셔츠랑 밀짚모자가 국룰이지.”

 “하아……. 적어도 그 우스꽝스런 헬멧은 벗던지 해라. 보는 사람 답답하게 만들지 말고.”

 “못생긴 얼굴 보기 싫다며?”

 “아오, 저걸 진짜!”

 

 나의 끝내주는 빼쑌 센스에 마리아는 결국 머리를 부여잡으며 히스테릭 부렸다. 안 그래도 시한부인데 저리 성질이 더러워서야 휩노스 병이 아니었어도 제명에 살지 못했을 것 같다.

 

 섬에 도착한 뒤 우리는 탐사하기 전에 준비를 갖췄다. 원작을 떠올리면 앙헬의 금고에는 각종 함정과 경비 AGS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거기에 100년이란 시간을 보내면서 중2병에 걸린 원작과 달리 풀파워 로크 하나도 아니고 둘이나 있을 거다. 무턱대고 들어갔다간 휩노스 병으로 죽기 전에 감전으로 인생 하직이다.

 

 마리아도 원작은 모르지만, 앙헬이 거주하고 있는 만큼 그녀가 할 수 있는 만전의 준비를 하였다. 엠프레시스 하운드 소속 바이오로이드를 전부 데려온 그녀와 다르게 바이오로이드들을 전부 저항군에 보낸 내게는 금란밖에 없었지만, 나를 지켜줄 수 있는 ‘친구’가 둘 있었다.

 

 “오늘 잘 부탁한다, 페레랑 빙룡아!”

 “위대한 하피의 왕 이 페레그리누스만 믿으라고!”

 “……몇 번이고 말하지만 그대여, 나의 이름은 빙룡이 아니라 글라시아스다.”

 “내가 나이를 먹어서 이름이 다섯 글자가 넘으면 기억이 아리송해서 그래~”

 “그럼 적어도 페레그리누스처럼 앞의 두 글자만이라도 불러다오.”

 “하지만 빙룡이가 더 정감 가는구만”

 “크하핫, 친구 말대로 빙룡 누님이 정감이 가긴 하네.”

 

 페레그리누스도 경박하게 빙룡이라하자 글라시아스는 날개를 휘둘러 그를 후려쳤다. 뒤늦게 페레그리누스가 호들갑 부리며 피하긴 했지만, 딱 봐도 한동안 삐져있을 것 같다.

 

 두 AGS는 혹시라도 있을 일을 위해 철의 왕자가 은둔하고 있을 알래스카의 연구소를 탐색하다 인근 비스마르크 사옥에서 만난 걸 인연으로 친해지게 되었다.

 

 철충과 휩노스 병 때문에 비스마르크가 망한 뒤 떠돌면서 몇 없는 인간이나 바이오로이드를 지켜주었다는데, 100년 뒤인 원작에서도 정의로웠던 만큼 지금도 정의로운 친구들이었다. 그렇기에 그들은 나를 지켜달라는 부탁을 흔쾌히 받아주어서 고마울 따름이었다.

 

 공연용으로 제작된 AGS지만, 인게임에서도 OP급 성능을 가진 만큼 현실에서도 강했다. 이 둘이라면 제아무리 로크라도 나를 지켜줄 수 있을 것 같다. 정말이지 이 동네는 군용으로 제작된 것들보다 연극용으로 제작된 것들이 더 강한 어이없는 동네다.

 

 “좋았어. 이제 앙헬의 금고로 가보세!”

 “똑바로 길 안내해라. 만약 지금껏 말한 게 거짓이면 네놈만큼은 내 손으로 죽이겠다.”

 “아 거 속고만 살았나. 믿어보라니까.”

 

 모든 준비를 마친 뒤 분위기 깨는 마리아에게 투덜거리며, 나는 문서에서 나타내는 위치와 원작에서 해안절벽에 있었다는 걸 떠올리며 나섰다. 아무래도 처음 오는 곳이다 보니 조금 헤매는 바람에 마리아의 눈초리가 따가웠지만, 어찌어찌 이 천혜의 섬에서 앙헬의 금고로 추정되는 인공적인 시설물을 발견할 수 있었다.

 

 시설물로 들어가기 위한 동굴 입구가 무진장 두껍고 단단한 금속제 문으로 막혀있었지만, 우리의 빙룡이랑 페레의 빔으로 손쉽게 부술 수 있었다.

 

 그렇게 동굴로 들어가자 처음엔 미심쩍어하던 마리아는 점점 깊어질수록 쏟아지는 금은보화와 사치품을 보고는 확신에 찬 표정을 지었다.

 

 “틀림없군. 이것들은 리오보로스 본가에 보관된 것들이야.”

 “거봐, 내 말이 맞지?”

 “그래, 네놈의 말대로 여기에 정말 앙헬이 있을 수 있겠군.”

 

 정말로 앙헬을 죽일 수 있는, 설령 죽어있더라도 그 시체를 부관참시해 이 세상에서 흔적도 남기지 않을 수 있다는 기대에 마리아는 그 어느 때보다 얼굴이 밝았다.

 

 마리아가 저런 얼굴을 지을 수 있단 게 신기해서 잠깐 바라보았더니, 내 시선을 느낀 건지 그녀는 나와 눈을 마주쳤다.

 

 “무슨 일이지. 기분 나쁘게 빤히 바라보고.”

 “내 살면서 당신이 그렇게 기뻐하는 얼굴을 지은 게 신기해서 봤어.”

 “……기분 나쁜 녀석 같으니라고.”

 

 마리아는 고개를 획 돌려 내 시선을 피했다. 어째 젊은 여자들이나 할 법한 동작 같았는데 나잇살 먹은 할망구가 저러니 어처구니가 없어 웃음만 나왔다. 괜히 좋은 분위기 흐려질까 나는 궁금했던 거나 물어봤다.

 

 “그나저나 앙헬을 죽이고 난 뒤엔 뭐할 거야?”

 “앙헬을 죽이고 난 뒤인가…….”

 

 한평생을 복수를 꿈꿔온 마리아였다. 그러나 그 복수는 원래라면 죽을 때가 되어서도 이루지 못했고, 엠프레시스 하운드에게 앙헬의 잔재를 전부 파괴하라고 명령하면서 생을 마감하였다.

 

 하지만 내 개입으로 앙헬의 금고에 온 그녀는 숙원을 달성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과연 마리아는 복수를 이룬 뒤 무엇을 할지 궁금했다.

 

 “……바보 같은 질문이군. 어차피 이 몸으로 살아봤자 얼마나 살겠다고.”

 

 휩노스 병에 걸린 현실에 마리아는 자조하였다.

 

 “내겐 시간이 없다. 아직 앙헬을 찾지도 못했는데, 그런 쓸데없는 생각에 시간 쓸 생각 없다.”

 “……그렇구만.”

 

 마리아는 시한부다. 그리고 굳이 병이 아니더라도 우리도 나이를 먹을 대로 먹은 고령인데 이제와서 뭔가를 하기에는 너무 늦은 참이었다.

 

 새삼 우리가 황혼기에 접어들었다 생각하니 씁쓸하기만 했다.

 

 “잠깐! 쉿……다들 들리십니까?”

 

 금란이 모두를 멈춰 세우자 선두에 있던 바르그가 눈을 감고 귀를 기울였다.

 

 “그러고 보니 이 울림은……헉!”

 “주인님!”

 “여제님을 보호하라!”

 

 날카로운 제트음이 점점 가까워지자 바이오로이드들은 각자의 주인을 지켰다. 그동안 오면서 상대해온 경비 AGS와는 다른 심상치 않은 소리에 나는 물론이고 다들 긴장의 끈을 놓지 않았다.

 

 이 좁은 동굴에서 고속으로 날아올 존재라면 그 녀석뿐이다.

 

 바람을 헤집고 검고 불길한 모습을 한 로봇 ‘RF87 로크’가 모습을 드러냈다.

 

 “네 녀석은…….”

 

 로크의 모습을 확인한 마리아는 그가 누구인지 짐작하는 듯했다.

 

 “앙헬의 호위 로봇이로군.”

 “이거 멸망한 세계에도 불구하고 겁 없이 이곳을 침입한 자가 자신의 주제도 모르는 자칭 여제였군요. 거기에 감히 앙헬 공께 대적하기 위해 만든 인형들에, 그리고…….”

 

 안면부의 발광체가 불길하게 번뜩이며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특이한 헬멧이군요. 뇌파를 차단해서 순간 인간이 아닌 줄 알았습니다.”

 “내 헬멧이 좀 멋있긴 하지.”

 “경박한 어조에 비대한 지방 덩어리에 품위 하나 엿보이지 않는 걸 보아 부를 가치도 없는 인간이군요. 의장용 바이오로이드와 연극용 AGS까지, 아무리 봐도 광대나 다름없습니다.”

 “저거 지금 나랑 누님한테도 시비 거는 거야?”

 

 잠자코 보다가 시비를 받은 페레그리누스는 어처구니가 없어서 글라시아스를 봤지만, 그녀는 무심히 로크의 말을 듣기만 했다.

 

 “앙헬 공께서는 영면을 앞두고 최후의 만찬을 보내고 계십니다. 당신들 같은 패배자 무리에게 함부로 방해받게 두지 않겠습니다.”

 “앙헬이 아직 살아있나 보군!”

 

 앞의 비아냥보다 앙헬이 아직도 살아있다는 사실이 더 불쾌했는지 마리아가 인상을 찌푸렸다. 하지만 그가 아직 살아있어서 자신의 손으로 죽일 수 있다는 사실에 기대감을 품고 있었다.

 

 “더 이상 앙헬의 무덤지기 따위의 말을 듣고 있을 필요 없지. 엠프레시스 하운드에게 명한다! 앙헬의 피조물을 모조리 파괴하고, 앙헬의 수급을 내게…….”

 

 채 말이 끝나기도 전에 마리아는 다리가 풀려 휘청 넘어지려는 걸 내가 간신히 받쳐주었다. 아, 이거 다시 수마가 찾아오는 거구나. 안 그래도 피로로 충혈되었던 눈은 실핏줄이 터졌는지 새빨갰고, 눈꺼풀이 바르르 떨리는 게 잠들지 않기 위해 그녀는 사력을 다하고 있었다.

 

 “제, 젠장……여기까지, 와서 잠들 수, 없어……! 술! 술을 가져와!”

 “마리아…….”

 

 전장 한복판에서 술을 찾는 마리아의 외침에 이름 모를 하운드 소속 바이오로이드 한 명이 로크를 경계하면서 조심히 그녀에게 챙겨온 술병을 건넸다.

 

 “저 고철만 넘으면 앙헬이 있어. 바라고 바란 그 앙헬을 내 손으로 죽일 수 있다고!”

 

 나한테 하는 말보다는 자신한테 하는 말처럼 몇 번이고 되새기며 마리아는 술을 껄떡껄떡 목구멍에 부었다. 냄새만으로도 머리가 아찔해질 정도의 독주와 수상한 알약 뭉치를 먹어서야 그녀는 다시 일어섰다.

 

 “그때까지 난 절대 죽지 않아!!!”

 “패배자의 추한 몸부림이 실로 무의미하다는 걸 깨달으셔야 할 겁니다.”

 “앙헬의 수급을 내게 받쳐라!”

 

 피를 토하는 마리아의 명령에 엠프레시스 하운드가 로크에게 달려들었다. 오랜 시간 앙헬의 모든 것을 파괴하기 위해 제조된 바이오로이드인 만큼 하나하나가 공격적이고, 뛰어난 성능을 가지고 있었다.

 

 내가 라비아타 저항군에 보낸 바이오로이드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움직임과 파괴력을 보였지만, 상대는 블랙리버 테크놀러지의 최고 역작이자 마지막까지 앙헬의 곁을 지킨 최강의 무덤지기였다.

 

 뻥 뚫린 하늘이 아닌 폐쇄된 동굴 안을 말도 안 되는 기동을 보이며, 바이오로이드의 공격들을 모조리 피해냈다. 동시에 전격을 쏘아내고, 날개와 전기가 흐르는 날카로운 발톱을 이용해 그녀들을 공격하였다.

 

 이미 지형이 익숙한 로크는 수적 열세임에도 어렵지 않게 엠프레시스 하운드를 상대하였고, 그녀들 또한 각 개체의 스팩과 다수의 우위로 밀리지 않았다.

 

 “이봐, 친구. 우리도 나서야 하는 게 아닐까?”

 “페레그리누스의 말이 맞다, 그대여.”

 “너희가 나서면 금방 끝나기야 하겠지만.”

 

 언뜻 보면 대등한 상태로 보였지만 사실은 그렇지도 못했다.

 

 로크는 보호해야할 대상이 이미 안전한 곳에서 이쪽을 관망하고 있는 반면, 우리는 보호해야할 대상인 노인네 둘, 그것도 한 명은 언제 죽을지 모르는 시한부가 전장에 노출되어 있으니까.

 

 한마디로 굳이 전력으로 싸우지 않더라도──.

 

 “주인어른!”

 

 우리 일행 중 가장 뛰어난 기감을 가진 금란이 검을 고쳐잡아 내 앞을 막아섰다. 무언가를 느낀 금란의 행동에 나는 직감적으로 여전히 술을 마셔대는 마리아를 끌어안아 대비했다. 그리고 수 초도 되지 않아 눈부신 섬광이 우릴 휩싸였다.

 

 “감히 어느 안전이라고 주인어른을!”

 

 금란이 외친 직후, 전격이 쏟아졌다. 그러나 금란은 오로지 검 한 자루로 단칸에 베어버렸다.

 

 “우와.”

 

 검으로 번개는 아니지만 그래도 전격을 베어버리다니. 판타지에서만 되는 줄 알았는데 이걸 현실에서 보게 되니 감탄이 절로 나왔다. 아니지, 이미 게임 세계에 빙의한 것부터가 판타지인데 검으로 전격을 베든 번개를 베든 상관없나.

 

 아무튼 전격이 쏘아진 곳을 보니 그곳에는 역시나 로크가 한 기 더 있었다.

 

 “……하나가 아니었던 건가?”

 

 마리아도 정황을 파악했는지 술을 마시는 것도 잊은 채 로크를 노려보고 있었다.

 

 “이거 아깝게 되었군요. 힘들이지 않고 손쉽게 처리할 수 있었는데.”

 “그거 아쉽게 되었구만.”

 

 역시나 원작대로 이 시기의 로크는 단일 개체가 아니었다. 처음엔 혼자 나타난 게 이상해서 혹시 몰라 지켜보고 있었는데 역시나 앙헬의 수하답게 생각하는 것도 음흉하다.

 

 “괘, 괜찮으십니까, 여제님!?”

 “나, 는 괜찮……다!”

 

 뒤늦게 상황을 파악한 바르그가 안부를 묻자 마리아는 자신의 건재함을 드러냈지만, 술을 멈추자 온몸을 바르르 떨고 발작 증세를 보이는 게 전혀 괜찮지 않았다. 전형적인 알코올중독자의 모습이었다.

 

 술과 약으로 잠드는 걸 필사적으로 막고 있다만, 그 부작용으로 간은 무너질 대로 무너졌는지 붉게 물든 눈에서도 황달이 눈에 띄었다. 이걸 살아있는 사람이라고 볼 수 있는 걸까. 너무나 처절한 그 모습에 나도, 바르그도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제발, 앙헬을 죽여, 줘……. 이제, 코앞이야. 그러니, 부탁이야……제발, 앙헬을, 죽, 여……!”

 

 떨리는 손으로 내 옷깃을 붙잡으며, 마리아는 간절하게 외쳤다. 나는 결코 상상하지도 못할 고통을 느끼고 있을 텐데도, 끝까지 앙헬을 죽여달라는 그녀의 절박함에 나는 울컥하였다.

 

 그저 그녀의 한을 좀 풀어, 장화를 비롯한 엠프레시스 하운드 소속 바이오로이드들이 해방되기를 바란 마음이었다. 적당히 앙헬의 무덤에서 난동 부리면 끝나는 줄 알았는데, 마리아의 복수심은 내가 생각한 것 그 이상이었다.

 

 “나, 나는…….”

 

 머릿속이 하얘지는 것 같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갈팡질팡하는 사이에, 나를 대신해서 다른 이의 목소리가 울렸다.

 

 “마지막까지 추하군, 마리아.”

 

 뚜벅뚜벅.

 

 어디선가 울린 목소리와 동시에 구둣발 소리가 들렸다. 소리는 예민하지 않은 내 귀에도 울릴 만큼 점점 가까워지더니, 그곳을 바라보자 목소리의 주인은 우리를 무심히 내려다보고 있었다.

 

 “앙, 헬……!”

 “오랜만에 보는군. 마리아, 그리고 졸부.”

 

 블랙리버 유한회사의 CEO, 리오보로스 가문의 총수, 그리고 이 악연의 종착지──

 

 ‘앙헬 리오보로스’가 그곳에 있었다.



라붕이, 최종 보스와 마주치다!


리오보로스 구성원은 명줄이 질기긴 한가봅니다.


다음편으로 외전 끝내고, 일요일이 끝나기 전까지 올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