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아닌 피보호자의 바이오로이드 - 목록



"Our Base Is Under Attack."







 "알파 님, 22번 포탑이 파괴되었습니- 27번 포탑과 28번 포탑도 파괴되었습니다!"


 "21번 어뢰발사관 파괴! 22번 어뢰발사관도 사용 불가!"


 "30번대 어뢰 발사관으로 어뢰를 보내주세요! 어뢰가 다 떨어졌어요!"


 "3번 음파 방출기 파손!" 


 아쿠아팰리스의 방어 시설을 운용하던 오퍼레이터들이 비명을 지르듯이 보고했다.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서 아쿠아팰리스를 요새화하고 무기들을 잔뜩 준비해 놓았지만, 지금의 사태에서 살아남기에 아쿠아팰리스가 보유한 무기는 턱없이 부족했다. 


 괌까지 이동하는 동안 아쿠아팰리스는 세 차례에 걸쳐 괴물들과 조우했다.


  지금까지는 어떻게든 괴물들을 격퇴했지만 그 때마다 막대한 양의 무기들이 파괴되거나 소모되었고, 아쿠아팰리스의 보호막과 시설은 크게 손상되었다.


 안 좋은 상황은 언제나 그것에 대비할 준비가 되어있지 않을 때, 상태가 좋지 않을 때 찾아온다더니 지금 아쿠아팰리스가 처한 상황이 딱 그랬다. 


 세 차례에 걸친 교전으로 인해서 무기들이 소진되고, 바이오로이드들이 지치고, 방어막은 약화되고, 외부 구조물은 손상을 입은 상태에서 지난 번 공격해온 것보다 더 강력한 괴물들이 더 커다란 무리를 지어 한꺼번에 몰려들었다.


 탄약과 배터리가 다 떨어지거나 무리해서 가동한 나머지 더 이상 작동을 하지 못하게 된 무기들이 침묵하고, 그나마 작동하던 무기들은 하나씩 괴물들이 퍼부어대는 공격에 부서져 나갔다.


 "에데 님, 위험합니다!"


 "백작부인, 무모해요!"


 수중 전투복과 전투 장비를 갖춘 에데가 만류하는 바이오로이드들을 무시하고 수중 출입구로 달려나갔다.


 비록 예전이나 지금이나 최강의 바이오로이드인 라비아타에게는 미치지 못하지만, 그녀 다음으로 강력한 바이오로이드가 에데 당테스였다.


 아쿠아팰리스가 위험에 빠진다면 가만히 웅크리고 있거나 바이오로이드들과 AGS들 뒤에 있느니, 혹은 도망치느니 차라리 앞장서서 무기를 휘두르는 것이 나으리라는 생각에서 신체를 개조하고, 온갖 무기들을 개발하고, 전투 기술을 연마했다.


 수중 도시라는 아쿠아팰리스의 특성상 수중전을 벌여야 할 경우 역시도 고려해서 수중전용 장비들도 만들었고, 시간이 날 때마다 수중에서도 자유롭게 움직이는 훈련을 해왔다.


 양손에 수중에서 사용하기 좋도록 만든 거대한 파일 벙커 형태의 무기를 든 에데가 괴물들을 향해 돌진했다.  


 입을 쩍 벌리고 자신을 향해 쇄도하는 괴물을 피한 에데가 괴물의 몸에다 창살을 비스듬하게 꽂아넣었다. 에데와 괴물이 전속력으로, 서로 반대 방향으로 돌진하자 괴물의 몸에 박힌 창살은 괴물의 몸을 깊게 찢어버렸다. 


 곧바로 다른 괴물이 돌진해오자 이번에도 에데는 살짝 피하면서 창살을 박아넣었다. 이번 괴물도, 그 다음 그녀를 노리고 공격해온 괴물들도 똑같이 몸에 창살이 박혔고, 스스로 돌진하는 속도에 의해서 큰 상처를 입었다.


 아무리 에데라지만 이 괴물들을 직접 다 쳐죽이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가능한한 최소한의 힘을 들이면서 아쿠아팰리스에 설치된 무기들이 괴물들을 처리할 틈을 만들거나 괴물들의 신경을 잠깐 아쿠아팰리스로부터 돌리는 것이 그녀의 계획이었다. 그러면서도 지나치게 많은 괴물들의 주의가 한꺼번에 그녀에게 몰리지 않도록, 동시에 아쿠아팰리스의 화망에 휩쓸리지 않도록 신경써서 움직였다.  


 일반적인 인간은 물론 대부분의 바이오로이드들에게도, 왠만한 AGS들에게도 불가능한 곡예였다. 


 에데 당테스, 몽테크리스토 백작부인, 암굴의 여제는 보통의 바이오로이드가 아니었다. 


 무력과 신체 능력은 삼안의 라비아타 프로토타입에 버금가는 바이오로이드였고 연산 능력과 엔지니어로서의 능력은 펙스의 레모네이드 시리즈에 버금가는, 덴세츠 사이언스의 바이오로이드 제작 기술이 총동원되어 만들어진 덴세츠 바이오로이드들의 정점이었다. 


 괴물들 사이를 누빈 에데가 공격을 가하고 빠져나가면 아쿠아팰리스의 무기들이 상처입은 괴물들을 공격했고, 얼마 안 있어 그 자리에는 산산조각난 시체 조각들이나 숨이 끊어진 괴물들의 몸이 둥둥 떠다니거나 해저 바닥으로 가라앉아 사라졌다. 


 아쿠아팰리스와 바이오로이드들, 수중 AGS들의 공격을 받고도 아직 숨이 끊어지지 않은 괴물들을 본 에데가 무기를 고쳐잡고 그 쪽으로 이동했다.


 괴물들의 숨통을 끊어놓으려던 아쿠아팰리스의 오퍼레이터들은 에데가 상처입은 괴물들에게 향하는 것을 감지하고는 다른 쪽으로 무기를 돌렸고, 상처입은 괴물들은 에데의 공격에 제대로 반격하거나 대응하지 못했다. 에데의 무기가 작동할 때마다 머리가 박살이 난 괴물들의 시신이 힘없이 떠다니거나 바닥으로 가라앉았다.


 머메이드와 PECS 출신 바이오로이드들이 에데의 뒤를 이어서 수중전용 장비를 들고 바깥으로 나왔지만 에데만큼 적극적으로 괴물들 사이를 누비지는 못했다. 무엇보다 수중 활동이 가능한 이들이 죽거나 다치면 정말로 큰일이었기에, 이들은 적극적으로 아쿠아팰리스에서 멀어지지 못하고 유사시에는 다시 아쿠아팰리스 내부로 퇴각할 수 있을 정도 거리까지만 나와서 싸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상자가 나오는 것은 필연적이었다.


 방어막 바깥으로 나가서 어뢰를 발사하던 바이오로이드 둘이 괴물이 뿜어낸 음파에 휩쓸려 갈가리 찢겨나가고, 이들이 장착하고 있던 무기들이 유폭을 일으키면서 이에 휩쓸린 바이오로이드들도 큰 부상을 입었다. 근처에 있던 바이오로이드들이 부상을 입은 바이오로이드들을 끌어안고 황급히 아쿠아팰리스로 돌아가자, 그만큼 괴물들을 향해 쏟아지는 화력이 약해졌다.


 바이오로이드들을 죽인 괴물이 아쿠아팰리스를 향해 음파를 발산하고, 아쿠아팰리스에 설치된 음파 발생기가 충격파를 발생시켜서 날아오는 공격을 맞받아쳤다. 


 음파 공격이 날아온 방향을 향해서 어뢰군과 음파 어뢰군이 쏟아졌다. 피하지 못한 괴물들과 피하지 않은 괴물들의 몸이 넝마가 되어 힘없이 가라앉거나 물 위로 떠올랐다.


 어뢰로 인해 만신창이가 된 괴물 몇 마리의 숨통을 끊은 에데가 또다른 음파 공격을 준비하는 괴물의 모습을 발견하고는 무기를 겨눴다. 


 사용 횟수가 제한되어 있기는 하지만 섣불리 접근하는 것보다는 안전하고 효과도 확실한 방법을 택하기로 한 에데가 괴물을 향해서 무기에 장전된 창을 발사했다. 


 위협을 느낀 괴물이 머리를 돌려 반격하려 했지만 그보다 먼저 에데가 발사한 창이 괴물의 눈 앞에 와 있었고, 괴물이 입을 벌리는 순간 창이 괴물의 코와 벌려진 입을 꿰뚫어 버렸다. 고열과 고압전류로 괴물의 머리 안쪽을 지진 창은 곧이어 폭발을 일으켰고, 괴물의 머리를 완전히 찢어진 걸레짝으로 만들어 놓았다. 

  

 또 다른 괴물이 입을 쩍 벌리고 돌진해오는 것을 본 에데가 회피 기동을 실시하면서 두 개의 창을 쏘아보냈다. 아깝긴 하지만 창 하나만 사용하기에는 너무 커다란 상대였고, 창 하나만 가지고 잡을 수 있을 만큼 큰 부상을 입은 것처럼 보이지도 않았다. 괴물의 입 안으로 들어간 두 개의 창은 2차 가속을 실시하면서 맹렬하게 회전했고, 튼튼하지만 외피에 비하면 파고들기 쉬운 괴물의 근육을 갈아버리면서 틀어박혔다. 


 창이 목구멍에 박히자 괴로워하던 괴물이 피와 살점과 함께 물보라를 입 밖과 목 주변으로 쏟아냈다. 


 치명상을 입고 움직임을 멈춘 괴물의 숨통을 아쿠아팰리스와 바이오로이드들이 쏘아보낸 어뢰들이 완전히 끊어놓았다. 


 여섯 발의 어뢰가 크게 벌려진 괴물의 입 안으로 들어가서 폭발하자 안쪽에서부터 큰 타격을 입은 괴물의 머리가 완전히 부서져서 물 속으로 흩어졌다.


 그녀에게 남은 창의 숫자와 그녀의 눈에 보이는 괴물들의 숫자, 탐지기에 잡힌 괴물들의 숫자를 계산한 에데가 짧게 혀를 찼다. 앞으로 괴물 몇 마리만 처리하면 아쿠아팰리스로 되돌아가서 창을 더 가지러 가야 할 판이었다.


 그나마 아쿠아팰리스에 남아있는 여분의 창은 그리 많지 않았고, 그걸로는 저 괴물들 중 일부밖에 처리할 수 없을 것이다. 

  

 에데를 비롯한 바이오로이드들이 아쿠아팰리스 바깥에서 싸우는 모습, 죽여도 죽여도 계속해서 몰려오는 괴물들의 모습, 육안에는 보이지 않지만 광역 탐지 장비와 연동된 스크린에는 분명히 표시되는 수많은 괴물들을 본 레모네이드 알파가 반복해서 구원 요청을 보냈다. 


 "여기는 아쿠아팰리스입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괴물들의 공격을 받고 있습니다. 지금 당장 지원을 부탁드립니다. 반복합니다."


 [여기는 오르카 저항군 소속 함대, 호라이즌 함대이오. 부끄러운 말이오나 지금 당장 지원군을 보내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오.]


 [흥, 어디 있었나 했더니 아쿠아팰리스에 있었군. 안 됐지만 우리도 지금 도와주러 갈 수 있는 상황은 아니라서 말이지.]  

 

 오르카 저항군과 레모네이드 감마가 들려준 대답은 아쿠아팰리스의 바이오로이드들이 듣고 싶어하는 대답과는 한참 거리가 멀었다. 


 무적의 용은 독단으로 지원군을 보내줄 사람도 아니었고, 지원군을 보내줄 수 있는 입장도 아니었거니와 그녀가 지휘하는 호라이즌 함대는 현재 괴물들을 상대로 군사 작전을 벌이는 중이었다. 현재 무적의 용이 이끄는 함대의 상황은 아쿠아팰리스에 비하면 나았지만 그렇다고 당장 부대 일부를 빼서 아쿠아팰리스에 지원군으로 보내줄 정도로 여유롭지는 못했다.


 레모네이드 감마는 무적의 용과 달리 누군가와 전투를 벌이고 있는 상황이 아니었지만, 조금이라도 더 전력을 확보하고자 하는 그녀에게는 아쿠아팰리스를 지원해줄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녀가 보기에 지금 상황에서 아쿠아팰리스를 지원하는 것은 애써 끌어모은 전력을 날려버릴 가능성이 더 커 보였다.


 나아가 레모네이드 감마는 포세이돈 회장의 부활과 군림에 걸림돌이 될 것이 분명한 레모네이드 알파와 에데, 그리고 그녀들에게 협력하는 도당들이 이번 기회에 괴물 밥이 되기를 바라고 있었다.


 [여기는 타- 괌. 조금만 버텨줘. 10분 안에 도착할 테니.]


 타이거샤크가 지원을 간다고 하는 것보다는 괌에서 지원을 간다는 것이 아쿠아팰리스의 바이오로이드들의 사기를 올려주는 데 나으리라 판단한 레오나 1호가 말을 살짝 바꿨다.


 레오나 1호의 목소리를 들은 무적의 용이 안도와 아쉬움이 섞인 한숨을 쉬고, 레모네이드 감마는 짤막하게 혀를 찼다. 만일 타이거샤크가 아쿠아팰리스를 공격하는 괴물들을 쳐부순다면 그 조그마한 꼬맹이의 곁에는 당대 최강의 바이오로이드에다 덴세츠 최고의 바이오로이드, 그리고 레모네이드가 하나도 둘도 셋도 아닌 넷이 붙게 될 터였다. 


 못마땅해하는 표정을 지은 레모네이드 감마가 먼저 통신을 종료했다.


 [도와주지 못해서 미안하오. 무운을 빌겠소.]


 무적의 용도 무운을 빌겠다는 말을 마지막으로 통신을 종료했다. 


 정말로 10분 안에 지원을 올지 어떨지는 몰라도, 최소한 지원이 오는 것만큼은 확실하다 판단한 레모네이드 알파가 아쿠아팰리스 전체에 지원군이 올 것임을 알렸다.


 [10분 후 괌에서 지원군이 올 것입니다! 주민 여러분들은 조금만 더 힘을 내 주십시오!]


 레모네이드 알파의 말을 들은 아쿠아팰리스 내의 바이오로이드들 사이에서 잠깐 환호성이 일었다가 금방 가라앉았다. 지원군이 오려면 최소한 10분이라는 시간을 더 버텨야 했다.


 빠르게 소진되거나 파괴되는 무기들을 가지고, 끝없이 몰려오는 저 괴물들을 상대로.

 

 [어뢰 난사하지 마!]


 [어뢰로 저격질할 여유가 어디 있어!?]


 수중전 무장을 갖추고 출격한 바이오로이드들이 말다툼을 하면서 괴물들을 향해 각자 어뢰를 발사했다. 


 어뢰를 목표에게 딱딱 맞춰서 발사하기에는 돌아가는 상황이 좋지 않았고, 그렇다고 어뢰를 난사하기에는 어뢰가 부족했다. 아쿠아팰리스의 바이오로이드들이 어떻게 어뢰를 발사하든 몰려오는 괴물들을 모조리 없애기에는 역부족이었다.


 "2번 음파 발생기 작동 불능입니다!"


 "40번대 어뢰 발사관에 어뢰가 다 떨어져 갑니다!"


 [일단 급한대로 어뢰를 조립하고 있거든요, 그렇지만......]


 아쿠아팰리스가 가진 무기와 탄약도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괴물들과의 음파 싸움을 벌이던 아쿠아팰리스의 음파 방출기 하나가 산산조각이 나고, 무리해서 가동하던 방출기 하나는 작동을 멈췄다. 어뢰가 다 떨어진 어뢰 발사기들이 작동을 중단하고, 아쿠아팰리스 내의 공장에서는 어떻게든 어뢰와 무기를 만들어서 보급하기 위해서 AGS들과 바이오로이드들이 안간힘을 썼다. 


 그녀의 슈퍼컴퓨터인 케스토스 히마스를 이용해서 할 수 있는 것은 뭐든지 시도해보는 레모네이드 알파의 전신에서 식은땀이 비 오듯 흘러내렸다.


 괌에서 지원군을 보내겠다고 약속한 10분이 마치 10년처럼 느껴졌다.

 

 괴물들을 상대하는 과정에서 창 몇 개를 더 소모한 에데가 치밀어오르는 짜증과 불안감, 초조함을 가라앉히면서 아쿠아팰리스에 그녀가 있는 방향 쪽으로 그녀에게 필요한 물건들을 보내줄 것을 부탁했다. 그녀가 아쿠아팰리스로 돌아가서 재정비할 여유가 없었다. 


 그녀의 편이 발사하는 어뢰와 음파 어뢰, 쇄도하는 괴물들과 괴물들이 날리는 공격들을 아슬아슬하게 회피한 에데가 청백색으로 빛나는 무기들을 괴물들에게 쑤셔박았다. 그녀가 든 수중전용 병기가 섬광을 발할 때마다 괴물들의 몸 한 구석이 터져나갔고, 그녀 주변의 괴물들이 시체가 되거나 고통에 몸부림쳤다.


 언제 괌에서 지원군이 오든 간에, 그녀가 해야 할 일이자 할 수 있는 일은 단 한 가지였다. 


 아쿠아팰리스를 향해 접근하는 괴물들을 한 마리라도 더 죽이는 것. 


 그것뿐이었다.


 



 타이거샤크가 바닷속으로 공간전이했을 때 찬란하게 빛나는 워프 게이트나 섬광 같은 현상은 일어나지 않았다. 공간전이를 하자마자 괴물들의 관심이 쏠리는 것을 막기 위해서 일부러 그런 현상이 일어나는 것을 억제한 탓이었다.


 이들이 공간전이한 장소는 아쿠아팰리스에서 약간 떨어진 곳이었다. 아쿠아팰리스의 위치와 거리, 그리고 괴물들의 숫자와 위치를 파악한 타이거샤크가 빠른 속도로 전진했다.


 "더럽게도 많네."


 레이더에 표시된 괴물들의 표식들과 원격 감지장치가 보여주는 괴물들의 모습을 본 레오나 2호가 투덜거렸다. 


 원래 지상군 부대의 지휘관이었지, 함장 노릇을 해본 적은 없었던 레오나들에게 무지막지한 괴물들의 모습과 숫자는 안 그래도 작지 않은 부담감과 압박감을 늘려주었다.


 "그 별의 아이들이 도와준다면 좋을 텐데."


 레이라미아들도, 유갈리안티들도, 타이거샤크의 마법사들도 님프의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원래대로라면 별의 아이들은 누군가의 편의를 위해서, 누군가를 도와주기 위해서 움직이는 존재들이 아니다. 별의 아이들이 지금까지 시젠에게 명백하게 호의를 가지고 움직였다는 것이 비정상적이었다. 하나도 아니고 둘씩이나.


 그 두 별의 아이들이 이번에도 타이거샤크를 도와줄 가능성은 있지만 장담할 수는 없었다.


 그리고 별의 아이에게 기대지 않더라도 이들에게는 아쿠아팰리스를 공격하는 괴물들을 작살낼 방법들이 여러 가지 있었다.  


 "정말로 저 정도의 숫자를 이길 수 있는 건가요?"


 [충분합니다.]


 함교 안팎을 파랗게 빛나는 마법진으로 가득 채운 세피리아크들과 레이라미아들, 함선 여기저기에 달라붙은 네 기의 유갈리안티들이 베라의 질문에 기계적으로 대답했다. 


 "못 이기면 저주할 거에요." 

 

 농담이 약간 섞이긴 했지만 대부분이 진담인 베라의 말에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다인슬레이프와 알비스는 각자가 가진 전열화학포와 방패를 꼭 쥐고 함교 바깥을 주시했다. 물 속, 함교에서 벌이는 전투에서 그녀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사실상 없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손 놓고 놀 생각은 없었다. 혹시라도 있을지 모르는 일에 대비해서 두 사람은 최대한 신경을 곤두세웠다.    


 ".......괴물들이 움직이기 시작했어."


 ".......아직이야."


 "아직입니다."


 레오나 2호와 1호, 아르망 추기경이 레이더 상의 표식과 원격 감지장치가 보여주는 영상, 함교 관측창 바깥으로 보이는 풍경을 번갈아 쳐다보며 짤막한 말을 주고받았다. 


 타이거샤크의 존재를 알아차린 괴물들 일부가 접근해오자 오퍼레이터들도, 지휘를 맡은 두 레오나들도, 그녀들 곁에 각자의 무기를 들고 선 시스터즈 오브 발할라 바이오로이드들도, 보조를 맡은 아르망 추기경도 모두 바짝 긴장했다. 


 함선 바깥에 달라붙은 유갈리안티들과 함선에 탑승한 채로 무기를 발사할 수 있도록 설계된 함선 측면 공간에 자리잡은 아드라스테이아들은 괴물들에게 가진 무기를 쏟아부으라는 지시가 내려오기만을 기다렸다. 

 

 ".......지금!"


 레오나 1호와 2호의 입에서 똑같은 말이 똑같은 타이밍에 튀어나오자 함교 안팎을 가득 채운 파란 마법진들이 하얀 색으로 빛났고, 타이거샤크를 향해 돌진하던 괴물들의 몸이 하얀색의 요동치는 광선에 휩싸였다. 


 광선에 휩싸인 괴물들 중에서 비교적 약한 괴물들은 힘없이 바닥으로 가라앉거나 수면 위를 향해서 떠올랐고, 비교적 크고 강한 괴물들은 고통스러워하면서 몸을 뒤흔들었다. 괴물들이 한 번 몸을 흔들 때마다 괴물들의 몸이 찢겨져 흩어지고, 구정물 같은 체액들이 주변으로 흩뿌려졌다.

 

 "표효, 발사!"


 용의 머리처럼 생긴 타이거샤크의 선수가 레오나 2호의 지시에 따라 입을 쩍 벌렸다.


 이미 언제라도 발사할 수 있도록 준비되어 있던 '범상어의 표효(Tigershark's Roar)', 일명 '어흥포'가 첫 번째 공격에서 살아남은 괴물들과 첫 번째 공격의 유효 범위 바깥에 있었던 괴물들을 향해서 푸른 광선을 토해냈다. 


 푸른 광선에 직격당한 괴물들이 사라진 자리로 타이거샤크가 거침없이 나아갔다. 


 두 차례의 공격의 유효 범위 바깥에 있던 괴물들이, 아쿠아팰리스 이외에도 또 다른 무언가가 오고 있음을 감지한 괴물들이 타이거샤크를 향해 아까 전보다 더욱 빠르고 사나운 기세로 돌진했다. 


 이번에는 타이거샤크 곳곳에 탑재된 방어체계와 세피리아크들이 준비한 방어 마법들, 그리고 자신들의 차례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던 유갈리안티들과 아드라스테이아들의 공격이 사방으로 쏟아졌다.    


 "막대한 에너지 반응이 감지되었습니다!"

 

 "괴물들의 움직임에 변화가 감지되었습니다! 괴물들이 저쪽으로 몰려가고 있습니다!"


 지원군의 도착을 감지한 아쿠아팰리스의 오퍼레이터들의 흥분과 기쁨이 가득한 목소리가 아쿠아팰리스 안팎의 바이오로이드들에게 전해지자, 아쿠아팰리스 안이 환호성으로 가득 찼다. 


 오퍼레이터들을 지휘하고 있던 레모네이드 알파도, 막 디코이에 실려서 자신에게 배달된 무기들을 챙기던 에데의 표정도 밝아졌다. 

 

 "여기는 괌의 타이거샤크, 지금 도착했어."


 "도움에 감사드립니다! 딱 맞춰서 와주셨군요!"


 "버티느라 고생 많았어. 갑작스럽게 미안하지만 바깥에 나가 있는 모든 바이오로이드들을 아쿠아팰리스 안으로 들여줄 수 있겠어?"


 레오나 2호의 말에 레모네이드 알파가 잠시 머뭇거렸다. 바깥에 나가있는 바이오로이드들 모두 휴식과 재정비가 필요하기도 하고, 바깥에 바이오로이드들이 없는 편이 지원군이 가진 무기들을 쏟아붓는 데에 더 편리하기는 하겠지만 아직 바깥에는 괴물들이 많이 있었고, 지원군이라고는 하지만 외부 세력이 접근하고 있는데 바이오로이드들을 전부 안으로 들이는 것도 불안했다.

 

 말을 꺼낸 레오나 2호도 레모네이드 알파가 바로 답을 줄 거라고 기대하지는 않았다. 레모네이드 알파가 머뭇거리는 동안 그녀는 동형 자매와 함께 스크린에 떠오른 기호들과 영상들, 그리고 함교 관측창 바깥으로 보이는 광경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알겠습니다. 모든 바이오로이드들은 아쿠아팰리스로 귀환하세요."


 결정을 내린 레모네이드 알파가 아쿠아팰리스 바깥에 나가있는 바이오로이드들을 모두 불러들였다.  


 괴물들과 싸우고 있던 바이오로이드들도 레모네이드 알파와 똑같은 생각을 품고 있었지만, 결국에는 그녀가 내린 지시를 따르기로 했다. 일부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남아있는 어뢰들과 무기들을 가지고 아쿠아팰리스로 돌아갔고, 일부는 돌아가기 전 마지막 남은 어뢰들과 무기들을 괴물들에게 쏟아부었다.  


 마지막으로 괴물 몇 마리를 시체나 산송장으로 만든 에데가 아쿠아팰리스로 되돌아올 때쯤, 타이거샤크가 아쿠아팰리스에서 어렴풋이나마 그 모습을 관측할 수 있을 정도로 가까워졌다. 


 네 유갈리안티들과 함선 여기저기에 설치된 무장들이 섬광을 쉴새없이 뿜어내면서 괴물들을 휩쓰는 모습을 본 아쿠아팰리스의 바이오로이드들 사이에서 다시 환호성이 터져나왔다. 대부분의 바이오로이드들이 타이거샤크를 향해 환호와 응원을 보내는 가운데 일부는 의심과 경계 가득한 시선을 쏘아보냈다. 


 "괌에서 보낸 증원군이 설마, 저거 하나뿐인 건...... 아니겠지?"


 "하지만 아무리 봐도 저거 한 척 말고는 더 없는 것 같은데......."


 약간의 시간이 지나자 환호성이 잦아들고, 불안함이 가득한 수군거림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괌에서 보낸 증원군은 저 용 비스무리하게 생긴 커다란 함선을 제외하면 없는 것 같았다. 


 에데와 레모네이드 알파는 타이거샤크에다 다른 증원군은 없는지 물어보고 싶은 마음을 억눌렀다. 방금 전에 괴물들을 잔뜩 쓸어버린 것만 봐도 강력한 함선임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었지만 과연 저것 하나만으로 지금 상황을 타개할 수 있을지 걱정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타이거샤크에 탄 바이오로이드들은 여기서 괴물들을 상대로 끝장을 볼 것인가, 아니면 적당히 싸우다가 아쿠아팰리스와 함께 괌으로 공간전이할 것인가를 진지하게 고려했다. 

 

 "샤크튜리아 님, 아쿠아팰리스를 공간전이시키는 데 얼마나 걸릴까요?"


 [10분 정도 소요됩니다.]


 "괴물들을 상대로 끝장을 본다면 승산과 걸리는 시간은 얼마나 될까요?"


 [제가 지원한다면 승산은 90%, 걸리는 시간은 약 4분에서 6분 정도입니다.]


 ".......그렇다면 아예 끝장부터 보는 편이 낫겠네요. 지원을 부탁드리겠습니다."


 괌 상공에 떠 있지만 타이거샤크의 전투 상황을 원격으로 지켜보고 있을 사크튜리아와의 대화를 마친 아르망이 두 레오나를 쳐다보았다. 고개를 끄덕여보인 두 레오나가 각각 함선과 아드라스테이아들, 유갈리안티들을 지휘했다.


 "감속하면서 파장 어뢰 발사!" 

 

 "전 아드라스테이아, 유갈리안티, 모조리 퍼부어!"


 타이거샤크와 아드라스테이아들이 발사한 에너지 어뢰가 물 속에 파문을 일으키면서 쏘아져 나갔다. 폭발하는 대신에 힘이 다 떨어질 때까지 경로선상에 있는 모든 것들을 갈아버리면서 나아가는 에너지 투사체들과 접촉한 괴물들의 몸이 갈가리 찢겨나갔다. 


 파장 어뢰 공격으로부터 살아남거나 이를 피해간 괴물들을 맞이한 것은 유갈리안티들이 선물하는 폭발성 에너지 투사체들과 무자비한 녹색의 연쇄 광선, 그리고 괴물을 버터 자르듯 잘라버리는 위력의 보라색 광선과 아드라스테이아들이 발사한 폭발성 어뢰들이었다.   

  

 함선 주변으로 청백색으로 빛나는 마법진들이 펼쳐지면서 괴물들이 쏘아보내는 음파 포격을 막아내고, 쏟아지는 포화를 뚫으며 달려드는 괴물들의 몸을 찢어발겼다.

 

 [샤크튜리아, 지원 개시합니다.]


 샤크튜리아가 타이거샤크에 탑승한 모든 이들에게 알리는 것과 거의 동시에 또다른 마법진이 이번에는 수면 바로 아래, 괴물들이 있는 곳 위에 생겨났다. 


 타이거샤크에 탑승한 마법사들이 만들어낸 마법진보다 훨씬 더 크고, 훨씬 더 환하게 빛나는 마법진이 천천히 회전하면서 빛을 뿌렸다.


 마법진에서 광선 세례가 쏟아진다든가,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런 쇼가 벌어져야 할 필요도 딱히 없어 보였다.


 그저 거대한 마법진이 펼쳐진 것만으로도 괴물들이 고통스러워하면서 몸을 뒤틀어대다 산산조각난 살덩어리들로 흩어져가거나 계속해서 쏟아지는 타이거샤크의 공격이 닿는 순간 분해될 정도로 약해졌다. 


 끝이 보이지 않을 것 같던 괴물들의 공세의 끝이 보이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