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명한 핏빛과 같은 선홍색 눈동자가 이쪽을 향했다. 평소와도 같은 날카로운 눈매와, 굳은 신념이 담긴 듯 깊이 있는 눈빛. 본능적으로 평소와 같지만 무언가 다른 이질적인 감각이 등골을 스쳐 얕은 기시감을 남겼다.


그 기시감을 따라 지휘용 패널을 슬쩍 옆으로 밀며 그녀의 눈을 똑똑히 마주 보았다. 어차피 잔당 정리만이 남은 상황, 남은 철충들은 현장 지휘관들의 재량에 맡겨도 충분하다는 판단이었다.


"혹시 고민이라도 생겼어?"

"후훗... 구원자 님께선 역시 여심을 알아차리는 것에 능숙하네요."


조심스럽게 응접용 소파에 몸을 앉힌 베로니카는, 비꼬는 것처럼 말하면서도 이내 자조적인 미소를 지었다.


"이런 베로니카는 익숙하지 않은데..."

"어머, 그건 '큰일'이군요."


농을 건네는 것 마냥 짧게 읊조리면서도, 힘이 없는 음색이 섞인 '큰일'. 힘없이 내뱉어진 한 단어로 그녀의 심경이 어렴풋이 느껴졌다. 항상 자신의 신앙에 따른 신념으로 강철과 같은 굳건함을 유지하는 베로니카를, 이토록 고뇌하게 만드는 존재란 무엇일까? 하지만 그 고민은 이내 이어진 베로니카의 말 덕분에 오래가지 못하였다.


"그저... 사령관 님에게 보일 제 모습이 두려워졌습니다."

"...."


항상 빛을 진리처럼 숭배하던 베로니카는 그 한마디를 끝으로 다시금 그녀의 신앙을 돌이켜 보는 듯 보였다. 마치 객관적인 입장으로 생각을 정리하는 것처럼 지독하리 만치 가라앉은 냉혹한 눈빛. 그것은 이단을 사냥하던 그 눈빛과 같았다.


"저도 알고 있습니다. 제 눈빛이 여성 답지 못하고, 오히려 보는 이들을 두렵게 만들 수 있다고요."


담담하고 평온하게. 베로니카는 자신의 고뇌를 털어놓았다. 자신 앞에서 목숨을 구걸했던 과거 그 이단자들에게 낫을 들이밀던 그 눈빛은, 어느새 서글프고 처량한, 목숨을 구걸하던 그들의 눈빛처럼 서서히 흐려지며 흔들리고 있었다.


"교단에서는 분명 사랑, 헌신, 믿음, 자비... 이런 미덕들을 강조했죠... 허나..."


스스로 행하지 아니하였어도, 선대 베로니카들의 기억을 이어받았기 때문일까. 명백히 죄책감에 짓눌리는 모습으로 베로니카는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그 앙다문 입가에서, 붉은 눈동자처럼 똑같이 붉은. 베로니카의 피가 흘러내렸다.


아무리 조정되는 과정에서 광신의 정도를 덜어냈어도, 스스로의 신앙을 부정하는 것에는 큰 무리가 따를 터. 허나 베로니카는 가볍게 입가에 흐른 피를 스윽 닦아내고는, 말을 이어나갔다.


"붉군요... 제 피도... 마치, 제가 베어온 이단자들의 피처럼..."

"무리하지 않아도 돼. 그건 네가 행한 일이 아니니까."

"아니오. 제 손으로 행하지 아니하였어도... 과오는 과오, 씻을 수 없기에 짊어져야 할 속죄의 값이랍니다."


이교도를 심판하고, 배교자들을 섬멸한다. 그것만이 그녀가 짊어진 사명이었고, 망설임 없이 그 '작업'을 수행했다. 설령 같은 교단의 자매들이라도 신앙이 의심된다면 베었고, 같은 베로니카라 할지라도 그 손속에 망설임은 없었다.


하지만 그 망설임이 생기고 말았다. 손속에는 자비가, 배교자들에게 품은 적대심이, 맹신에 가까웠던 신앙이 모두. 명백하게 새로운 '빛', 그를 만나고 없어졌다.


"분명 망설임은 없었습니다. 그들의 피로 목욕을 하고, 그들의 살점을 가르는 느낌을 손끝으로 느끼면서도... 저는 망설이지 않았습니다."


베로니카는 두려워하고 있었다. 오들오들 떨리기 시작한 다리와, 꽉 다물어진 주먹 사이로 강한 압력에 짓눌린 살점이 조금 삐져나와 있었다.


"그렇게 행해온 살육들이... 빛의 이름으로 행한 모든 일들이..."


베로니카는 핏기가 섞인 침을 삼키고 슬픈 눈초리로 이쪽을 바라보았다.


"결국 세뇌된 거짓 허상을 쫓아... 휘두른 폭력이었고, 무의미한 살인이었을 뿐일까요?"


과거에 같은 고뇌를 한 자매들이 있었다. 그녀들 모두 빛을 찾으며 스스로의 신앙을 의심했고, 결국 '처단' 되었다. 그리고 그 집행부대의 선두에는, 언제나 베로니카가 있었다. 베로니카는 자신의 가슴팍에 붙여진 코헤이 교단의 상징 뱃지를 강하게 움켜쥐었다. 연약한 살갗을 찔러오는 성물이 오늘 만큼은 그녀의 죄악을 심판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때 스러져간 자매들... 배교자들... 모두가 제 눈빛을 무섭다고 말했어요..."

"그건..."

"새빨갛고, 피가 흐르는 눈동자라며... 두려워했어요... 구원자, 당신도 제 눈빛이 두려운가요?"


대답을 재촉하는 것처럼 베로니카가 손을 뻗어 이쪽의 손을 강하게 잡아왔다. 마주한 시선에서 느껴지는 절박함과 강하게 맞잡은 손에서 전해오는 간절함이 생생하게 전달되었다.


"전, 당신을 사랑해요."

"베로니카..."

"그래서 당신에게 두려움을 느끼게 하고 싶지 않아요."

"베로니카."


마치 지옥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 같은 베로니카의 참혹한 고해성사에서 그녀를 건져내기 위해 부드럽게 그녀를 불렀다. 그리고 눈을 마주친 그녀는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그녀가 말한 것처럼 피가 흐르는 눈동자가 아닌, 뜨겁고 투명한 눈물이 흐르는 눈동자.


그 맑은 눈물을 살며시 손을 뻗어 조심스럽게 닦아주었다. 그리고 피가 덜 닦아져 엉망진창인 그녀의 입술 역시 살며시 쓸어 닦아주었다.


"구, 구원자 님... 소, 손에 피가..."

"괜찮아."

"제 죄로 당신이 더럽혀지면...."

"그런 죄들도 모두 내가 짊어져야, 너희들이 말하는 '구원자' 아니겠어?"


교단의 더럽고 어두운 과거는 이미 알고 있었다. 어줍잖은 각오로 교단의 구원자 자리를 냉큼 수용한 것은 아니었으니까.


"과거의 너와 같은 기종의 아이들이 한 짓은... 네 죄가 아니야."

"하지만... 지금의 저도 같은 명령을 받았다면, 망설임 없이 그 일을 행하였을 것입니다."

"하지만 아직 하지 않았지?"

"그건... 궤변이군요."


서글픈 표정으로 대답한 베로니카지만, 드디어 웃는 얼굴을 보여주었다. 그녀의 말대로, 궤변이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지금 행하지 아니하였기에 과거의 일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니. 그녀의 말대로 당장 명령이 있다면, 그녀들은 그것을 망설임 없이 행하였을 것이다.


"아직 너희들의 손에 피가 묻지 않았잖아? 그리고 지금까지 베로니카가 해온 일들에 피가 흐르지 않았어. 지금까지 수많은 아이들을 철충들에게서 구해왔고, 비록 우리들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에서 바스러져 사라진 아이들이 있을지라도... 적어도 베로니카, 네 손에 더러운 피는 묻지 않았어."

"그렇지만..."


베로니카의 눈동자에서 또다시 물방울이 맺혀 떨어졌다. 그리고 그것이 떨어져 옷깃을 적시는 것을 신호로, 나는 그녀에게 확고하게 이쪽의 생각을 전달했다.


"신앙의 시작이 비록 타락했어도, 코헤이 산업의 자금을 위해 교단을 이용해 신도들에게 헌금과 믿음을 강요했어도... 그리고 자신들의 추악한 욕망을 위해 교리를 취사선택으로 이용했어도."


줄줄이 읊어진 코헤이 교단의 추악한 일면에, 베로니카의 어깨가 움찔거렸지만 애써 무시하며 이쪽의 뜻을 계속해서 그녀에게 설파했다.


"너희들은 타락하지 않았어. 오히려 세상에 강림한 재앙에, 너희들의 신앙은 더욱 고결한 빛을 발하며 신도들을 지켜나갔지. 그 누구보다 앞장서 철충들을 베었고, 약한 노인들과 어린이들을 지켜냈으며, 신념을 지키기 위해 싸워나갔지... 그 결과가 스스로의 죽음일 지라도."

"그건... 그저 모듈에 의해..."

"모듈이 이식 되었어도, 스스로 거부한다면 소용없어. 그건 네가 더 잘 알겠지."


확실히 제 아무리 강한 모듈이라도 완벽한 세뇌란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렇기에 신앙을 의심하고 죽어나간 자매들이 있었고, 그 자매들을 베어온 베로니카 자신마저도 지금 흔들리고 있었으니까.


"인간은 이중적이고 악한 구석이 있어. 하지만, 옳은 길로 이끌어나갈 수 있겠지. 그래서 교육을 하고 신앙의 이름으로 정의를 피력하는 거야. 많은 사회적 규범이 그래서 만들어 졌으며, 그래서 법전이라는 이름으로 존재했지."

"구원자 님..."

"물론, 사악한 자에 의해 사회적 규범이며 교단의 교리까지 변질되어 사익을 위해 이용될 수 있지만, 그럼에도 너희들의 고결한 뜻은 흐트러지지 않았어."

"고결한 뜻...."

"그래, 그 고결한 뜻이 앞으로 만들어질 세상에 필요해. 우리 앞에 놓여진 강대한 적들을 물리쳐도, 그 이후의 세상을 만들어 나가는 것은 쉬운 일이 결단코 아니겠지. 그래서 너희들의 그 숭고하고 고결한 뜻, 비록 어긋나고 방황할 지라도 굳건히 다잡아 줄 그런 아이들이, 나에게는 절대적으로 필요해."


마주 앉아 부드러운 눈빛으로 베로니카를 보며, 평소 마음에 들어 암송하고 있던 교단의 교리 중 하나를 읊조렸다. 지금 상황에 가장 알맞은 가르침이자, 베로니카가 가장 먼저 내게 알려준 빛의 가르침.


"빛께서 이르시길, 선한 마음은 나약하고, 악한 마음은 쉬이 그 마수를 뻗나니."

"....그에 빛께서 길을 밝혀주시어, 그 어둠을 뿌리칠 구원을 주리라."

"그래, 어둠은 뿌리칠 수 있어. 그리고 난, 베로니카의 손을 절대 놓지 않을 거야."


이제야 베로니카의 얼굴에 잔잔한 미소가 돌아왔다. 희망의 불씨를 잃은 듯 꺼져 가던 그녀의 눈빛은 빛을 머금었고, 떨리던 손은 잠잠해졌다.


"죄송합니다... 이 밤중에 구원자 님을 귀찮게 해드렸군요... 이 죄에 대해서는 어떤 벌이라도 굳게 받겠나이다."

"그럼, 지금부터 침실로 갈까?"

"....."


아뿔싸. 


딱딱한 분위기를 풀기 위해 건넨 농담에 베로니카의 표정이 싸늘하게 굳었다. 그저 지금의 이 내려앉은 분위기가 견디기 힘들어 건넨 농이었거늘, 눈 앞의 경건하고 딱딱한 수녀 님께선 진지하게 정색할 정도로 어이가 없던 모양....


"....그럼 잠시만 시간을 주시지요. 올바른 복식을 갖추고, 정결한 몸가짐으로 구원자 님의 축복을 받겠습니다."

"어?"

"구원자 님께서 축복을 내리겠다 하시지 않았습니까? 설마, 거짓이셨나요?"

"아, 아니... 그건 그냥 농담..."

"그렇... 군요..."


급격히 시무룩한 표정으로 돌아가는 베로니카를 보니, 결국 본래 뜻과는 전혀 다른 말들이 입 밖으로 삐져 나가기 시작했다.


"아니야! 절대 아니야! 지금부터 모든 일정을 비워둘게!"

"훗... 계획대로..."

"응?"

"아닙니다, 구원자 님... 그럼 바로 몸을 정갈히 하고 돌아오겠나이다."


서둘러 인사를 건네고 방을 나선 베로니카의 붉은 빛 눈동자가 사냥감을 향한 맹수의 눈동자로 돌변해 있었다. 아무래도 이건, 사랑이 무서운 대원의 마음에 불을 지펴버린 것일지도 모른다. 


"하, 하하... 나... 괜찮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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