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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내 알빠냐고.”

 

콰직!

 

장화의 구두가 널브러진 바이오로이드의 소체를 짓밟았다.

 

“운명이고 나발이고, 이미 이렇게 된 걸 나보고 어쩌라고.”

 

“하... 하지만 어떻게...?”

 

흐려지는 시야. 그럼에도 동우는 어떻게든 말을 이어가려고 했다.

 

입에서 터져나오는 붉은 피는 어느새 녹빛의 짙은 액체로 변해 있었다. 질척이며 흘러내리는 것에선 알 수 없는 이질감이 느껴졌다.

 

오리진 더스트.

 

바이오로이드를 도구로 만든 모든 것의 근원.

 

“...”

 

장화는 일그러지는 동우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었다. 수십 개의 자상이 나있는 얼굴은 제대로 된 표정 하나 짓지 못하고 발작을 일으켰다.

 

그럼에도 장화는 끝까지 적개심을 버리지 않았다. 적의 목을 잘라버리지 않고서는 안심할 수 없는 지난 생의 습관이었다. 다만 바닥에 흘러내린 것이 피보다 조금 더 진한 점도를 가졌단 것을 눈치채고 나서야 겨우 숨을 돌릴 수 있었다.

 

-...거...!! 내... 됐... ...!!

 

귓가에 지직거리는 잡음이 울렸다. 시설 내 통신을 막는 부속 인공지능이 사라지자 마침내 오르카 호와 연결이 재개된 것이었다.

 

잠시 시간이 지나자 목소리는 한층 더 뚜렷해졌다.

 

-이 미친 언니들!!! 설마 설마 했는데 대체 뭔 짓을 한 거야?! 데이터가 들어오고 있어! 우리가 이겼다고!

 

지금껏 들어본 적 없는 흥분한 닥터의 목소리. 그것에 장화는 품속에 집어넣고 있던 데이터 디스크를 힐긋 바라보았다.

 

작은 초록빛 LED로 빛나는 디스크. 그녀가 들고 있던 단말기를 통해 오르카호로 무덤의 정보가 전해지기 시작한 것이다.

 

“하.”

 

숨이 턱, 하고 풀린 느낌이었다. 아직 적의 목을 자르진 못했지만 조금은 마음을 편하게 놓아도 되리라.

 

사령관이라면 분명 그렇게 말했을 거야, 라고 생각한 장화는 다시 눈에 힘을 주며 동우를 바라보았다.

 

“야이 씨발 새끼야.”

 

“허읍...!”

 

“덕분에 내가 뒤질 뻔도 하고, 아주 알찬 시간이었어. 내가 마리아 그 년 뒤지고도 백 년을 더 악착같이 살았는데 니 덕분에 죽을 뻔했네?”

 

“커... 커흡...!”

 

힘줄이 돋을 정도로 동우의 멱살을 잡은 장화.

 

“개수작 부릴 게 남아 있으면 더 해봐. 이참에 싹 다 죽여버리게.”

 

장화는 타오르는 적개심을 온몸으로 표현하며 쓰러진 동우의 몸을 잡아 당겼다. 들어 올려진 동우의 몸은 장화의 와이어로 칭칭 묶여 있는 상태였다.

 

간신히 호흡만 이어가며 쌕쌕거리던 동우를 보며 장화가 손가락을 까딱거렸다.

 

“어떻게, 어디부터 잘라줄까? 기대해도 좋아. 너처럼 날 화나게 만든 놈은 전 세계를 뒤져도 몇 없거든.”

 

“나... 나는...!”

 

“마침 니 면상도 내가 제일 싫어하는 년이네? 어디 보자. 어디부터 어떻게 해줄까?”

 

이렇게 애먹은 적은 처음이었다. 애먹게 한 적도 처음이었고. 마리아 리오보로스를 살린 것부터 홍련의 몸으로 자신을 몰아 붙인 것까지, 혐오스럽기 그지없는 전략이었다.

 

손끝을 타고 흐르는 동우의 맥박. 이미 흐릿하긴 하지만 저걸 완전히 끊어버리면 분명 즐거울 것이다.

 

승리감을 만끽하며 장화는 자기를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놀려고 한 간악한 인공지능의 눈을 찬찬히 살폈다. 마침 생긴 것도 홍련인지라, 있는 거 없는 거 다 내려놓고 오랜만에 복수심을 해소시킬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 흠.”

 

그런데 왜였을까,

 

문득 홍련의 눈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 보였다.

 

그리 추해 보이진 않았다.

 

단지, 조금 지쳐 보였다.

 

“나... 난... 그저 내 아버지의 집을...!”

 

덜덜 떨고 있는 동우. 이미 신체는 오리진 더스트의 부작용을 감당할 수 없는 지경에 돌입했다.

 

녹아내리고 있는 살점이 바닥에 툭툭 떨어졌고, 이대로 내버려 두어도 데이터를 보내기엔 지장이 없을 것이었다.

 

다만 그녀가 원한다면 필요 이상의 고통을 줄 수 있었을 뿐. 원래대로라면 계획했던 복수를 실행해야 할 타이밍이다.

 

헌데,

 

“... 에이 씨발.”

 

장화는 손을 풀썩 내려놓았다.

 

“... 뭐... 하는 거지?”

 

“너, 운 좋은 줄 알아라. 좆 같아서 못 해먹겠으니까.”

 

“... 그게 무슨...”

 

“닥치고 있어. 좆 같아도 참고 하는 게 내 전문이거든.”

 

안 그래도 그녀의 몸 역시 한도에 다다른 상태. 괜한 짓 하면 자기만 손해니 움직이지 말자, 그렇게 생각한 장화였다.

 

저 멀리서 상황이 종료된 것을 보고 바르그가 오는 것이 보였다. 그와 함께 잔뜩 지쳐 보이는 몽구스 아이들이 다가왔다.

 

“우리 이긴 거야? 진짜?”

 

“촌스럽게 굴지 마라. 드라코.”

 

“그 페어리 대장님도 못 했다던 일을 우리가? 진짜? 진짜?!! 그럼 이제 사령관도 괜찮아질 수 있는 거지?”

 

“두 번 말하게 하지 마라. 조용히 좀-”

 

“진짜지?! 미호! 내 얼굴 좀 때려줘! 나 지금 꿈꾸고 있는 거 아닌가 모르겠어!”

 

“... 에휴, 내가 말을 말지.”

 

난도질 된 대검에 겨우 몸을 기대고 있던 바르그가 한숨을 내뱉었다. 맥 빠진 미호는 축 늘어진 손으로 드라코의 뺨을 몇 번 툭툭 건드렸고, 드라코는 눈을 꿈뻑거렸다.

 

“안 아픈데...?”

 

“그럼 아프게 때려줄까?”

 

꾸욱!

 

“아야야야야!!!”

 

드라코의 어깨에 난 부상을 미호가 손가락으로 가볍게 눌렀다.

 

“아파! 나 아파아!!”

 

“그럼 꿈은 아닌가 보네. 뭐하면 한 번 더 찔러줄까?”

 

“아닛!!”

 

“아니면 불가사리가 대신 찔러주는 건 어때?”

 

“그만해... 나도 힘 없는 건 마찬가지야.”

 

파일 벙커를 땅에 박고 숨을 몰아쉬고 있는 불가사리. 그래도 얼굴에는 약간의 여유가 보였다. 늘 홍련의 빈자리를 대신하기 위해 주먹에 힘을 쥐고 다녔던 그녀에게선 보기 드문 표정이었다.

 

적어도 장화가 보기에는.

 

“... 야.”

 

그녀는 손등 위로 자신의 핏줄을 보았다.

 

땅에 흐르는 홍련의 피, 아니, 피였던 녹빛의 무언가와 같이 빛나는 혈관. 심장이 감당하지 못한 오리진 더스트가 몸을 타고 흐르는 것이었다.

 

근육이 흐물거리는 듯했다. 횡경막이 위로 들렸다 순식간에 가라앉는다.

 

장화는 말없이 와이어를 손에 쥐었다.

 

“... 그래. 그게 너의 선택이겠지.”

 

동우는 얼굴을 찡그렸다.

 

삐긋, 얼굴에 스파크가 튀었다.

 

그나마 있는 얼굴 근육도 다 녹아내려 이젠 그걸 보고 어떤 ‘표정’이라고 부르기조차 힘들어졌다.

 

“그게... 너의 지혜로운 선택이겠지.”

 

“...”

 

장화는 그걸 보았다. 그리고 거기서 느꼈다.

 

체념.

 

어째서인지 그 표정이 그렇게 보았다. 

 

이유를 말하라 하면 말하지 못할 것이다. 흘러내리는 물에서 감정을 읽을 수 없듯이 흘러내리는 살점 덩어리가 유의미한 표정을 지을 수는 없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그게 보였던 이유는,

 

“야.”

 

거울.

 

거울을 보는 것 같아서.

 

“뭐 때문에 그렇게 열심히 살았냐?”

 

“... 내게 묻는 건가?”

 

“그럼 너 말고 누가 있는데.”

 

“... 그런다고 내가 두려워할 것 같나? 사냥감의 목을 아가리에 물고 한계까지 몰아붙이는 건 너희 사냥개들의 특징이지. 나는 안다.”

 

피해자들을 죽음의 문턱까지 끌고 가고 협박하는 것. 엠프레시스 하운드가 가장 자주 사용한 고문법이었다.

 

이토록 거대한 인공지능 시설의 최고 레벨 보안 섹션, 그곳의 담당 인공지능이라면 뭐라도 얻어낼 수 있을 것이다. 동우는 장화가 그리 생각하고 있다 생각했다.

 

“뭐... 옛날에 그런 적이 없다고는 못하겠네.”

 

“얼마든지 고문해봐라. 내 마지막 단말기가 사라지더라도 너희에게 알려줄 것은 단 하나도 없으니까!”

 

동우는 홍련의 얼굴로 입술을 깨물었다. 부러진 이빨로 깨문 아랫입술에서는 피가 흘렀다.

 

붉은색의 피가. 아직도 저 몸에서 나올 수 있는 붉은색이 있다는 것이 놀라울 따름이었다.

 

마치 죽음을 각오한 순교자처럼 동우는 결의를 다졌다. 고통 센서를 끊으려 했지만 이미 망가진 섹션 내에서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있는 대로 그녀를 자극했다. 지금의 소체도 장화의 이성을 흔들어 놓기 위해 일부로 홍련으로 선택했다.

 

앞으로 무슨 고문을 겪어야 할까, 멍청하게 바이오로이드의 소체로 메인 코어를 업로드한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며 동우는 눈을 꼭 감았다.

 

마치 그 생각이 맞다고 하는 듯, 장화의 와이어가 스치는 소리가 들렸다.

 

“...!”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동우가 기대했던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얼마나 기다렸을까, 주변은 어색하리만큼 고요했다. 초승달처럼 실눈을 뜬 동우의 눈에는 묵묵히 자신의 할 일을 하는 장화가 보였다.

 

“... 뭐 하는 거지?”

 

“바보짓.”

 

“뭐?”

 

“나중에 내가 보면 존나 멍청한 짓이라고 할만한 짓.”

 

스륵, 스륵.

 

몸을 묶고 있던 와이어가 풀렸다. 동우는 자신의 두 발이 땅을 딛고 서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내가 이 날을 얼마나 기다려왔는데... 에휴, 씨발. 앓느니 못하지.”

 

“... 대체 왜?”

 

예상했던 것과 전혀 다른 그녀의 행동. 동우는 온몸에 흐르는 고통도 잊을 만큼 당황스러워했다.

 

인공지능의 예상, 그건 일반적인 의미의 예상과는 많이 다르다. 동우 정도의 인공지능이 내리는 예상이라 하면 그건 차라리 예언이나 필연에 가까울 정도로 틀린 적이 없었다.

 

실제로 장화의 손은 흔들리고 있었다. 동공은 흔들렸고 눈은 마주치지도 못하고 있었다. 억지로 동우를 풀어주고 있는 것이다. 동우의 예상이 맞았다는 얘기였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맞을 뻔했다.

 

아무리 기다려도 동우가 내릴 수 있는 결론은 자신의 예상이 틀렸다는 것이었다.

 

“세상에 바보처럼 사는 건 존나 바보 같은 짓이라 생각했는데, 그건 또 아니래.”

 

장화는 말없이 동우를 보았다.

 

동우의 눈에는 장화가 보였고, 그녀가 보고 있는 바이오로이드가 보였다.

 

“그런데 내가 지금까지 존나 열심히 살았거든. 그래서 바보짓은 살면서 해본 적이 없는데...”

 

홍련.

 

장화는 눈앞의 홍련을 보고 있었다.

 

그리고는 다시 자신을 보았다. 자매기로 만들어진 둘이 서로를 마주 보는 것은 거울을 보는 것과 다름 없었다.

 

“이번에 한 번 해보지 뭐.”

 

차락. 차락.

 

동우의 몸을 묶고 있던 마지막 가닥이 풀렸다. 마치 부드러운 머리카락이 스쳐 지나가듯, 하얀 와이어가 동우를 허공으로 풀어주었다.

 

철푸덕, 녹아내리는 몸 탓에 제대로 된 착지도 할 수 없었다. 동우는 자신의 몸이 무력하게 땅 위로 흩어지는 것을 보았다.

 

“... 야.”

 

장화가 그를 다시 불렀다.

 

그것이 세 번째였다.

 

“그렇게 열심히 살 필요 없다. 그렇게 살아도 안 될 건 안 돼.”

 

“......”

 

“눈에 보이는 거 다 죽이면 자유로워질 거 같지? 안 그러더라.”

 

그녀는 거울을 보고 말했다.

 

“생각해보면 당연하지. 천아 그 년처럼 지맘대로 사는 년도 결국 마리아 명령 하나면 손 하나 까딱 못하는데 나라고 뭐 달랐겠냐. 그냥 뒤지라면 뒤지는 거지.”

 

“... 그런데 말이야.”

 

장화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

 

그리곤 말없이 손을 바라보았다.

 

희미하게 느껴지는 온기.

 

다섯 손가락에 깍지를 끼고 묵묵히 자신을 감싸주었던 그 사람이 했던 말을 기억했다.

 

“세상에 안 그런 사람 없더라.”

 

사락.

 

고요한 봄바람처럼, 기다란 실들이 쌓여간다. 거대한 싸움으로 풀어헤쳐진 가닥들을 다시 한 타래씩 묶어 올렸다.

 

“어? 뭐야, 갑자기 무슨...”

 

“장화? 지금 뭐 하는 거냐! 그 통로를 막아버리면...!”

 

건너편에 있는 동료들과 자신을 이어주는 좁다란 통로. 장화는 반대편으로 자신의 데이터 디스크를 던졌다.

 

“... 지금... 대체 무슨 짓을...”

 

“알잖아. 너나 나나, 용서 받지 못할 짓을 했다는 거.”

 

병원에서 오리진 더스트를 쑤셔 넣었을 때부터 각오했던 일.

 

그녀도 알고 있었다. 아무리 자신의 몸이 특별하다 한들 그만한 양을 견뎌낼 수 있을 리 만무하단 걸.

 

“저 애들은 몰라도 난 오르카 호에 어울리는 사람이 아니야. 더러운 살인자, 배신자지.”

 

다만 자신이 회개할 수 있다면, 그 방법은 단 하나일 것이었다.

 

“몽구스고, 바르그고, 운이 좋으면 오르카에서 같이 살아가겠지. 예쁜 옷도 입고, 티격태격 싸우기도 하고, 지들 좋아하는 가족 놀이도 하고.”

 

“......”

 

“근데 난 그런 바보짓 도저히 못하겠거든. 그러니까 안 갈 거야.”

 

죽지 않기 위해 싸웠다.

 

살면서 두려워 하는 것이 딱 하나 있었고, 그 하나를 피하기 위해 살았다.

 

그런데 그 두려운 것이 제 목전까지 다가왔다 생각했을 때,

 

-장화야.

 

이름이 들렸다.

 

“그러니까.”

 

그거면 충분했다.

 

“이게 내 마지막 바보짓이야.”

 

온통 붉은빛의 장미였던 자신의 인생에 처음으로 하얀색이 되어준 그 사람이면 족하다.

 

장화는 조용히 시선을 돌려 죽어가는 동우를 보았다.

 

홍련을 보았다.

 

홍련과 닮은 과거의 자신을 보았다.

 

“... 그래.”

 

그리고 말했다.

 

“미안했다.”

 

돌아오지 않는 대답.

 

허나 그게 중요하지 않음을 알았다.

 

그제야, 붉은색 위에 하얀 점 하나가 떨어지고 나서야,

 

장화는 용서를 구할 수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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