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나 눈을 감았을까? 아니 눈을 뜨고있었을까?

눈을 감아도

눈을 떠도

앞에 보이는것은 칠흑과도 같은 광석뿐.

한줄기 빛조차 허락되지 않는

손끝만으로 벽을 지지대 삼아 기듯이 들어가고

마스크를 써도 폣속 깊숙이까지 석탄가루가 쌓인다.


털썩.


아...702호.

또 하나의 영혼의 지지대가 쓰러져버렸다.

슬퍼하면 안된다.

우리는 다른동료가 쓰러져서 꿈틀거릴지라도 우리의 일을 벗어날 수 없다.

우리를 만들어준 증오스러운 인간의 명령이니까.

열심히 곡괭이질을 하고, 단단한 암반이 나오면 자신의 몸의 절반정도 되는

낡고 먼지에 쌓여 더럽혀진 드릴로 자신의 발 밑을 파내야한다.


"아... 제기랄.. 또 쓰러졌네."


"그래도 봐, 아직 살아있어. 거기로 보내."


"뭐.. 저녁 술값은 나오겠네. 어이, 167호. 702호 데리고 숙소로 가서 약 먹이고 씻겨서 대기해."


아아.. 또 나구나. 

또 내 손으로 나를 지지해주던 친구를 또 절망의 구렁텅이에 몰아넣는구나.

차라리 내가 쓰러졌더라면

내가 죽을수 있더라면 

기쁘련만

702호를 업어들고 지하광산 레일에 실어서 지상으로 나간다.


반짝...


아직 일이 한창일 시간이라 햇빛이 찬란하게 702호와 나를 비추지만...

우린 새까만 먼지를 뒤집어쓴 도구일뿐...

먼저 702호를 내려 숙소로 데려가기전에 먼지를 털고 숙소로 데려갔다.

예전 인간들이 쓰던 컨테이너 박스.

그 안에는 바닥에 널부러진 낡고 색이 바랜 이불들.

그리고 옆칸에 1평이 될까말까한 작은 칸.

702호는 작업복을 벗어서 빨래더미에 던져두고는 그 칸으로 들어가 차디찬 물을 자신에게 끼얹으며 먼지를 씻어냈다.

...

해줄수 있는것은 없다.

힘을 쓸 수 없는 우리는 용도가 없으니까.

이불 구석자리에서 멸망전 인류의 폐허에서 줏어온 봉투샴푸를 꺼내어 702호에게 건네주었다.

한 명 한 명이 떠날때마다 하나씩 건네주었던것이 벌써 마지막 샴푸...

702호는 머뭇거리다가 희미하게 미소짓고는 그 봉투샴푸를 받아들였다.

하지만 너무나도 먼지에 찌들어서일까 티도 잘 나지 않았지만 씻고나온 702호의 표정은 조금은 밝아져있었다.


"...고마워 167호."


"무섭지 않아?"


"무섭지..."


아주 조금 이야기를 나누고 702호가 낡은 팬티만 입고 나오자 문 밖에서 기다리기라도 한듯

작업반장인 배불뚝이 인간과 현장 관리하는 실눈의 인간.

그리고 처음보는.. 매서운 눈의 인간... 셋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고생했다. 167호. 이만 작업장으로 돌아가도록."


"...네."


현장관리하는 인간의 가벼운 말이지만 거역할 힘도,

거역할 권리도

거역할 마음도 없다. 우린 도구니까.


"아니, 너도 여기서 봐라."


작업반장의 말.


"...네?"


"보라고."


"...네"


문 옆에 서서 처음보는 인간이 702호를 구석구석 살펴보기 시작했다.

피부를 손가락으로 문질러보기도 하고 머리카락을 펴보기도 했고

여러가지 방법으로 만져보았다.

702호의 얼굴이 붉어졌지만 저항할 권리도 없었기에 그저 가만히 있을 수 밖에 없었다.


"흠, 상태가 좋지는 않네요. C급 중고 매매가는 7,600G정도 드릴수 있겠네요."


"네? 그것밖에요? 적어도 9,000G정도는 주셔야..."


"저희는 안사도 그만입니다."


처음보는 인간은 갑의 위치에서 반장에게 702호의 가격을 설명하고 있을뿐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더치걸들을 치료하는데는 돈이 더 많이 드니까요.

폐기하더라도 폐기비용이 지금보다 더 드니까요. 

판매하는거겠죠.

702호의 표정도 썩 좋지는 않습니다. 팔리지 않는다면 한알에 1G도 안하는 싸구려 약을 먹고 

흙투성이 물을 마셔가며 다시 땅속에 가야하니까요.


"...알겠습니다. 7,800G에 팔죠."


처음보는 남자는 조금 한숨을 내쉬고는 고개를 끄덕인 후 서류에 사인을 하고는 702호를

자신의 겉옷을 입혀준 후 차에 태우고는 떠나가버렸습니다.


"저게 좋아보이냐? 167호?"


제 표정에 부러워하는 티가 났나봅니다. 작업반장님께 혼날게 뻔합니다.

...하지만 작업반장님은 조금 착잡한 표정을 짓더니 저를 데리고 사무실로 가셨습니다.

사무실에 들어가기 위해 먼지를 털어내려 했지만 괜찮다며 그냥 들어오라 하셨습니다.

매일 먼지 날린다며 욕을 하셨는데.. 이상합니다.


"일단 167호... 아니 더치걸."


처음입니다. 우리를 번호가 아닌 개체 이름으로 불러주신건.


"지하에 몇명이나 남았냐?"


이것도 처음입니다. 지하엔 항상 작업하는 동료가 있으니까 몇명인지 관심도 주지 않으셨으니까요.


"..아마 7명정도 남았을거에요."


작업반장님은 앞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불을 붙이며 한숨을 길게 내쉬었습니다.


"후... 너는 자유가 되면 뭘하고 싶냐?"


"...네?"


한번도 생각해본적이 없었습니다. 태어날때부터 제 역할을 알고있었으니까요.

이렇게 외소한 몸으로 태어난것도 좁은 광산에서 일하기 위해서라는점을 알고있었으니까요.

반장님이 왜 이런걸 묻는지 모르겠습니다.


"얌마, 태식아."


반장님이 현장관리자님을 부르십니다.


"지하 애들 다 꺼내서 월급이랑 퇴직금 주고 다 내보내."


...! 해고일까요? 저희는 또 어디로 가는걸까요?


현장 관리자님이 지하 친구들을 호출하러 가신사이 반장님은 다시한번 저에게 물으셨습니다.

뭘 하고 싶냐고.

그러자 머릿속에 잊어버렸던 기억이 났습니다.

이곳에 배치된지 얼마 안되었을때, 많이 힘들었을때, 출근하면서 본 구정물사이에 피어있는 작은 꽃.


"...꽃이.. 보고 싶어요."


작업반장님은 의자에 등을 기대어 담배연기를 깊이 빨아들이고 내 뱉으며

하.. 하하 하면서 웃음을 터트리셨습니다.


"애들 다 데리고 왔슴다."


"퇴직금이랑 월급이랑 다 해서 애들 정산해주고 보내라."


관리자님은 지하에 있던 친구들을 데리고 씻기고 카드와 그나마 깨끗한 옷을 주고

그녀들을 '해고' 했습니다.

평생을 지하에서 일만 하도록 태어난 더치걸들은 자신의 월급과 옷을 보며 적응을 못했지만

하나 둘씩 그 자리를 떠났습니다. 마지막 더치걸까지 떠나고 관리자님도 떠나자 

반장님은 다시 입을 여셨습니다.


"...나랑 가지 않겠냐?"


...? 제가 잘못들은걸까요? 작업반장님이 저에게 같이 가자고 해주셨습니다.

아뇨.. 그럴리 없죠. 평생을 땅굴속에서 더러운 일만 하던 저에게...


"같이가자. 우리집으로. 마누라도 새 딸이 생겼다고 하면 좋아할테니까."


...제가 잘못듣지 않았습니다. 눈앞에 비라도 떨어지는 걸까요? 눈앞이 흐립니다.

온몸이 떨립니다. 감기 걸렸을때보다 더 주체가 안됩니다.

온몸에 힘이 빠지고. 입이 벌려지면서 아아.. 하는 소리만 나옵니다.


"아...으아아아...아아아아앙...!"


어째서일까요? 두들겨 맞지도 않았고

슬픈일도 없는데 울음이 멈추질 않습니다. 

반장님은 천천히 다가와 저를 꼬옥 안아주십니다.

그리고 반장님의 차에 같이 타고 반장님의 집으로 향했습니다.


몸에서 냄새가 나지 않을까.. 적지 않은 고민을 했습니다. 

인간님들은 더러운걸 싫어하시니까요.

...그런데 저곳은...?


"어서와 더치. 아내와는 여기서 만나기로 했어."


반장님이 데려와주신곳은 놀이공원입니다.

입구부터 화려하고 으리으리합니다. ...처음봅니다. 이렇게 화려하고 웅장한곳은...

지하에 있을때에 비해서 너무 괴리감이 있어서 오히려 차분해지네요.


"아내는 30분정도 걸린다는구나. 같이 이것저것 타면서 놀아볼까?"


"..네! 반장님."


"아빠라고 해주면 좋겠구나~"


저를 봐주면서 미소짓는 반장님. 

정말 저를 딸로 대해주시는거 같습니다. 

저는 이제 인간님의 딸이 되는거겠죠? 

그럼 아빠라고 불러도 되는거겠죠...?


"...네! 아빠."


저는 반자...아니 아빠의 손을 잡고 놀이공원에서 파는 가벼운 옷을 사서 갈아입고 여러 놀이기구를 탔습니다.

지하 레일에 광산전차보다 느리고 위협적이지 않은 제트코스터라는것을 탔지만

상쾌한 바람이 귓가를 스치는게 너무나도 즐거웠습니다.

더치걸들이 이런 생활을 앞으로 맛볼수 있다고 생각하니 정말 기뻐졌습니다.

그리고 이런 생활을 선물해주신 양아버지에게도 너무 감사했습니다.


...하지만...


신이 계시다면 우리 더치걸들을.. 아니죠.

다른 더치걸들은 좋은곳으로 갔을테니까 저를 정말 싫어하셨나봅니다.

갑작스럽게 대 관람차가 폭발을 일으키며 무너졌습니다.

수많은 인간님들이 죽었습니다.

인간님들이 데리고 다니던 바이오로이드랑 인간의 피가 섞여 거대한 피웅덩이가 생겨났습니다.


"꺄아아아아아아 / 으아아아아악!!"


인간님들과 바이오로이드의 비명소리

그리고 연달아서 폭발이 일어났습니다. 하늘에서 운석덩어리같은게 떨어졌습니다.

그 운석에서 지렁이같은게 나왔고 놀이동산을 지키던 AGS들을 파고 들었습니다.

그러자 인간님들의 도망을 돕던 AGS가 인간들을 죽이고 점점 더 아비규환이 되어갔습니다.

얼른 도망쳐야 합니다.. 아.. 아빠는 어디에...


...아빠는 어느새 무너진 건물의 잔해에 하반신이 깔려있으셨습니다.


"아.아빠.. 아빠...!"


"얼른 파내-! 제기랄. 어차피 못써먹을거 좀 놀아주고 C구역에 팔아버릴랬더니 이정도도 못하는거냐?"


...? 잘못들은걸까요? 아빠는 저를 아껴주신다고 하셨는데.. 딸로 삼아주겠다고 하셨는데..

잘못들은거겠죠...?


"허억.. 허억... 야이 빌어먹을년아. 힘좀 내보라고! 벌써 의식이 날아가기 시작했단 말야!"


열심히 파내보지만.. 아무런 도구도 없이 돌을 들어내봐야 얼마 파내지 못하고 추가로 무너진 돌덩이에 깔려..

생긴지 하루도 안된 아빠는 죽어버렸습니다...

주변을 둘러보지만.. AGS들은 우리 바이오로이드들은 전혀 신경쓰지 않았습니다.

인간님들의 복수를 하겠다며 공격한 바이오로이드만을 죽일뿐이었죠.

그 AGS들은 인간님들을 모조리 죽였다고 판단했는지 대부분의 AGS는 떠나갔고

남은 AGS들은 전원을 끄기라도 한듯 그자리에서 미동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 이게 대체 무슨일일까요...

제게 너무 행복한 일이 생길까봐 하늘이 화내신걸까요?

이제부터 저는 뭘하면 될까요? 뭘해야 할까요?

아...그렇죠. 마지막에 화내긴 하셨지만...

아빠말대로라면 엄마가 계실테니까..

저랑 또 가족이 되실분이 계실수도 있으니까...

인간을.. 찾으러 가야겠죠...

그렇지만 폐허가 된 이 놀이공원엔 안오시겠지만...

702호를 데려가신분이 또 오실수도 있으니까...

광산으로.. 가야겠죠...


...

...

...


달력을 다 쓰고도 몇개의 벽에도 체크를 가득가득 해서 매직도 나오지 않을무렵

매일 지지직 소리만 나던 라디오에서 새로운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이 통신을 듣는 바이오로이드는 본 라비아타 통령의 이름아래 저항군의 이름에 소속되어

인간님을 수색하고 철충을 몰아내는데 힘을 보태주시길 바랍니다. 모이는곳은...-


반장님 방에 놓여있는 낡은 지도를 비교해보니 머지 않은곳입니다.

인간님이 언제 오실지 모르니 문을 잠그고 열쇠를 낡아버린 우유주머니에 넣고 창고에 놓여있던 깨끗한 드릴과 안전모를 챙겨쓰고

깨끗한 작업복을 챙겨입고 출발합니다.

...


그곳에 가면... 거짓으로라도 나를 아껴줄 인간을 찾을수 있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