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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신화 중에 자신의 꼬리를 삼키는 뱀이 있지."


꼬맹이가 말한다.


"그 뱀은 평생 자기 몸을 삼켜도 끝이 없을 정도로 거대했다고 하네. 그리하여 윤회의 상징이 되었지."

"우로보로스."

"알고 있군?"
"알지. 네 이름을 따온 신화잖아."


애늙은이 말투를 쓰는 소녀, 우로보로스가 미소를 지었다.


"그럼 이야기가 빠르겠군. 자네도 알겠지만, 우리는 생존자의 경험을 바탕으로 전투 경험을 이어 받으며 축적하네."

"그렇지."


바이오로이드은 서로의 경험을 공유한다.

생존자의 경험과 지식이 전투에 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블랙리버는 '죽은 자'의 경험도 필요하다고 여겼고, 죽기 직전까지의 경험을 실시간으로 전송하는 장치를 개발했지."

"분명 싸우다가 죽는 순간의 기억을 공유하는 거였지?"

"그래."


상당히 잔인한 일이었다.

타인의 죽음이라고 해도, 머릿속에서 생생히 재생되면 자신이 죽는 거나 마찬가지일 테니까.

심지어 모습마저 똑같다면 기억에 혼동이 안 생길 수가 없다.


"뭐, 걱정하는 대로, 대부분은 정신이 망가지고 말았어. 하지만 딱 하나, 살아남은 피톤이 있었네."

"......"

"그 피톤이 개조되어 이어진 것이 바로 나, 윤회의 우로보로스일세."

"그럼 지금 우로보로스의 기억은 그 피톤부터 쭉 이어진 거야?"

"그렇다네."


그 말은, 지금까지 그녀가 수십 번 이상의 죽음을 겪었다는 이야기다.

말로는 그냥 기억을 옮길 뿐이지만 그건 제삼자가 봤을 때의 이야기.

실제 본인은 정말로 윤회하는 것처럼 계속 죽음을 경험한 것과 마찬가지였다.


"죽은 자의 기억이, 새로운 육체에서 다시 시작하지.

그리고 그 육체가 죽으면 또 다시 새로운 몸으로.

'우리'는 다수였지만, 결국 하나로 이어졌다네.

수많은 우로보로스들이 기억을 이어받으며 회차를 반복했어.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반복될 거라네."


한 번의 죽음도 두려운데 그걸 수십 번 계속 반복하는 기분은 대체 얼마나 절망적일까.

인간은 물론이고 바이오로이드들도 견디기 힘든 일.

어마어마한 정신력이 갖춰지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분위기가 무겁네.'


사령관은 섣부르게 입을 열지 않았다.


"아까 꼬리를 먹는 뱀에 대해 말했지."

"응."


그녀가 손가락을 빙글빙글 돌리며 말을 잇는다.


"우로보로스는 윤회와 무한을 상징하네.

꼬리를 먹기만 하는 게 아니라, 꼬리를 먹기 위해 머리를 움직이고, 결국 몸이 회전하지.

이해하겠나? 우로보로스는 꼬리의 끝을 문 상태로 제자리에서 회전하는 것이네.

당시 우로보로스를 생각해낸 학자들은 그것이 무한으로 여겨졌지.

물론, 지금 인류의 시점에서는 그게 우둔한 짓으로 보일 테지만."


우로보로스는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그러나 눈빛에는 미소가 없다.

일자로 찢어진 뱀의 눈은 오랜 시간 되풀이된 죽음으로 지쳐 있었다.


"우로보로스 너는..."

"나도 우로보로스가 우둔하다고 생각하네."


그녀가 사령관의 말을 끊었다.


"무한히 이어지지만 결코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채 세상이 멸망했지.

몇몇 회차에서는 과거로부터 배운 것을 망각하고 똑같은 일을 되풀이했다네.

또는 비슷한 상황에서 결국 돌파구를 못 찾고 죽기도 했지.

거창하게 윤회니 뭐니 했지만, 나 역시 꼬리의 끝만 물고 제자리에서 회전을 반복하는 '무한'의 굴레에 빠져 있다네."


우로보로스는 여전히 미소를 짓고 있다.

그 미소가 무겁지 않고 가벼워서 더 안쓰럽게 느껴질 정도였다.


"혹자는 우로보로스의 신화를 이렇게 해석하기도 하지. '자기가 자기의 꼬리를 먹기 시작하면, 결국 그 어떠한 것도 남지 않는다.'라고."


꼬리를 삼킨 뱀에게 남는 건 결국 절단된 자신의 머리 뿐일 거다.


"실제로 그리 되었지. 인류가 망했으니까."

"우로보로스...."

"그러나 나는 좌절하지 않는다네. 내가 아주 헛된 일을 했던 것은 아니라고 믿어."


뱀의 눈을 한 소녀가 그를 바라본다.

이번에 지은 미소는 조금 진심이 담겨 있는 듯했다.

눈빛이 살짝 번뜩이며 되살아났다.


"이렇듯, 인간이 남아 있으니까. 물론, 자네를 구한 건 내가 아니었지만."

"내가 있게 된 배경에는, 분명 네 비중도 있었을 거야."

"그리 말해주니 고맙군. 자네가 심성이 바른 인간이라 다행이네. 안심하고 몸을 맡길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

"다들 좋게 봐주고 있어. 부족함이 많은 사령관이지만."


겸손한 자세를 보이자 그녀가 만족스러운 듯 미소 지었다.


"오면서 봤는데, 죽어도 잊지 못할 얼굴들이 있더군. 반가운 얼굴들이었어. 잘 지내고 있던 모양이라 안심일세."

"응, 너무 잘 지내서 탈일 정도로. 특히 누구누구가."

"아아, 알만하군. 내 통제가 없으면 어디로 튈지 모르는 펭귄이 하나 있지."

"너도 펭귄이라고 하는구나."

"내가 그 녀석을 제비로 인정하는 건 제비답게 행동할 때뿐이라네."


두 사람은 미소를 교환했다.

처음 만나는 사이인데도 같은 주제로 웃음이 나온다.

이건 좋은 징조였다.


"조금 이야기를 나눠봤을 뿐이지만 자네가 어떤 남자고, 어떤 지휘관인지 대강 알 것 같군."

"그래?"

"여러 기억을 가진 만큼 많은 사람을 만나 봤으니까, 조금만 이야기를 해보면 됨됨이를 알 수 있다네."

"좋게 봐줘서 고마워."

"그러니까 자네를 믿고 한 가지만 말하겠네."

"응?"


소녀가 다리를 꼰 채 말한다.


"나는 기억을 전생하는 형식으로 윤회하며 존재해왔다네."


사령관은 가만히 들었다.


"처음에는 사명감에 불타올랐지. 여러 죽음을 겪으며 정신력으로 몰려도 참고 버텼었네. 인류를 위해서."

"....."

"그러나 바이오로이드라고 해도 한계는 오는 법이더군."

"한계라...."

"이제 내가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다네. 지금까지 축적된 기억이 너무 방대해. 끔찍한 죽음을 너무 많이 겼었어."


'역시....'


'죽은 자'의 기억을 실시간으로 전송 받는 블랙 리버의 프로젝트는 실패작이다.

처음 몇 번은 괜찮을지 몰라도 수십 번, 수백 번 쌓인 죽음을 감당할 수는 없다.


"이건 자네에게만 하는 말이지만, 나는 방황하고 있었네. 지친 정신을 달랠 곳이 필요했지. 간절하게. 인류가 멸망했을 때 나를 지탱하던 사명감이 고꾸라지면서 더욱 버티기 힘들어졌었다네. 수백 번의 죽음을 반복하며 내 자신을 잃어가고 있단 말일세."

"......"

"그러니, 마지막 남은 인간이여."


소녀는 천진난만한 미소를 지으며 그를 보았다.

그러나 눈은 메말라 있었다.

그 나이에 어울리는 감정들.. 행복, 기쁨, 질투, 성욕 같은, 소녀라면 응당 가져야 할 감정들이 없다.

이미 옛적에 전부 쏟아내고 메마른 우물처럼 텅텅 비어 있었다.


"자네가 나의 윤회를 끝내주겠나?"

"......"

"우리를 승리로 이끌어다오. 그리하여 나에게 안식을 다오."


소녀의 마지막 남은 눈물이 뺨을 타고 흘렀다.

그런데도 눈은 여전히 메말라 있었다.


"그렇게만 해준다면, 내 모든 것을 걸고 자네를 위해 일하겠네."


마지막 눈물마저 빠져나오고 남은 건 텅 빈 미소였다.

사령관은 소녀의 손을 잡는다.

다행이 온기는 아직 남아 있었다.


"이길게. 반드시."

"......"


소녀가 피식 웃었다.


"말이 길어졌군. 바깥에서 인기척이 느껴지네. 나를 기다리고 있구먼. 오랜 회포를 풀러 가도 되겠나?"

"잠깐."

"무엇인가?"


사령관은 소녀의 뺨에 묻은 눈물을 닦아주었다.

그리고 눈을 똑바로 마추지며 다시 말한다.


"우리는 이길 거야. 빈말이 아니야. 날 믿어. 반드시 승리로 이끌어줄게."

"........"


소녀가 그를 빤히 올려다보다가 옅게 웃었다.

그녀가 사령관의 양쪽 뺨을 잡고 가까이 끌어당기며 키스했다.

소녀의 입술은 촉촉했고, 몸에서는 은은한 젖비린내가 났다.


"응. 믿는다네."


아주 살짝이지만, 그녀의 눈에서 한 가지 감정이 살아났다.


우로보로스는 문을 열고 나가자마자 스카이 나이츠 대원들과 왁자지껄 떠들기 시작했다.


그런 그녀를 보며 사령관은 다짐한다.

절대 저 희망을 꺼트리지 않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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