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물이 따로없군."

짓뭉개버릴 생각으로 내지른 건틀릿이 고온의 검에 반토막이 났다. 가지고 왔던 드론도 용과의 싸움으로 2개 모두 파괴되었다.

남은 무기라고는 케스토스 히마스에 의해 강화된 신체능력뿐.

이렇게까지 궁지로 몰린게 과연 얼마만인가.

가슴이 뛰고 피가 들끓는다.

붉게 빛나는 저 눈을 짓뭉개고 싶다. 투쟁심 넘치는 저 얼굴을 일그러뜨리고 싶다.

아아-! 이 얼마나 멋진가!!

서로 쓰러지기 일보직전인 상황, 그럼에도 더욱-! 쇠할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 싸움의 유열감!

라붕, 나는 너를!!

부수고 싶다!!



-치이이익!!-

"하아... 하아..."

뜨겁다. 도신에서 올라오는 열기에 손이 타들어간다. 그와동시에 살이 타는 불쾌한 냄새가 진동하기 시작한다. 자칫 잘못하면 목숨이 위험해진다는 닥터의 경고가 빈말은 아니였던 모양이다.

고통을 참고 고개를 들어 감마를 바라본다.

열화에 의해 반토막이난 건틀릿을 제외하면 감마의 몸은 상처하나 없이 깨끗하다.

다시 고개를 숙여 손을 바라본다. 시간이 지날수록 검을 쥐고 있는 손은 느리지만, 확실하게 열화의 열기에 타들어가고있다. 싸움을 길게 끌면 위험해지는건 내쪽이다.

만약 여기서 내가 진다면 어떻게 되는걸까...

살아있는 상태로 포로가 된다면 아마 펙스 수장들의 부활을 위한 실험재료가 되겠지, 설령 죽는다고 할짇라도 그리 쉽고 편안하게 죽지는 못하리라.


'만약, 펙스 수장들이 부활한다면...'


펙스 수장들의 부활, 그것은 지옥의 악마를 이 세상에 강림시키는 것과 다를바 없다. 그리고, 그렇게 된다면 저항군이 지금까지 쌓아올린 모든것이 무너지게 된다.

-꽈악!!-

그것만큼은, 그런 일은 무슨일이 있어도 사절이다.




각오를 다지고, 다리에 힘을 실고 손은 검을 고쳐 쥔다.

침착하게 자세를 취하고 땅을 벅차 그대로 감마에게 돌진한다. 위에서 아래로, 사선으로 크게 베이는 검.


-슈욱!-

손 끝에서 느껴지는 묵직한 감각, 이번에야 말로 베어냈다고 생각했다.

"느려."

하지만 그 일격을 아슬아슬하게 몸을 비틀어 피한 감마는 그대로 한쪽 손목을 붙잡고선 복부에 주먹을 내지르기 시작했다.

일격, 이격, 삼격.

주먹이 복부에 꽂힐 때마다 내장이 뒤틀리고 입에선 피가 뿜어져나온다. 그럴 때마다 의식도 점점 흐릿해져간다.


"이... 이건... 위험-"


-퍽, 퍽!!-

얼마나 지났을까. 내 힘이 빠졌다고 판단한 감마가 끝장을 내기 위해 손에 힘을 모으기 시작했다.


"끄...끄으윽, 하아압-!!"

아직 의식을 유지하고 있던 나는 그 틈을 노려 손에 들고있던 검을 위로 높이 들었고, 그대로 검의 손잡이로 감마의 머리를 내려찍었다.

"커헉!"

갑작스러운 반격에 자세가 무너지는 감마, 붙잡힌 손의 힘이 빠지는게 느껴지자마자 이때다 싶어서 그대로 감마의 복부를 발로 차 거리를 벌리는데 성공했다.

"크크큭, 이 망할 새끼가."

"피차 남말할 처지는 아닌거 같군요."

서로 상당히 많은 양의 데미지가 누적된 상태다. 아마도 다음 일격이 서로의 마지막이 될것이다.

다시금 검을 고쳐잡고 자세를 잡는다.

그와 동시에 케스토스 히마스에 의해 감마의 근육이 팽창되기 시작한다.

-쾅!!-

지면이 무너지고, 무서운 속도로 감마가 돌진해온다. 정면으로 되받아치면 위험하다.

발과 발의 간격을 벌린다. 양 손으로 검을 붙잡고 길게 뻗은 다리 쪽에 위치시킨다.

열화의 최대 사정거리는 2.5m, 상황은 아까 건틀릿을 베어냈을 때와 흡사하다.

점점 다가오기 시작하는 감마.

"하아압-!!"

아래에서 위로, 다시 한번 사선으로 크게 움직이는 도신.

-촤아악!!-

카학!!

긴 싸움 끝에 열화의 도신이 감마의 몸을 베는것에 성공했고, 내 의식은 거기서 끊겼다.





"...네놈의 승리다 라붕."

검을 쥔 채로 바닥에 쓰러진 라붕과 그와 반대로 아직 서 있는 감마.

얼핏 보면 승자는 라붕이 아닌 감마인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감마는 자신의 승리가 아닌 라붕의 승리를 선언했다.

"방금전의 그 일격, 굉장했다고?"

왼쪽 어깨부터 오른쪽 허벅지까지 내려오는 깊게 베인 상처, 라붕이 의식을 잃어버리기 직전에 그녀의 몸에 새긴 상처.

감마의 케스토스 히마스의 일부는 열화의 열기에 의해 녹아내리고 그 기능을 상실했다. 가지고 있던 모든 무기를 잃어버린 것이다.

"어나이얼레이터도 아마 지금쯤이면 용이 지휘하는 함대에 완전히 박살나있겠지."

"라붕공!!"

이어지는 감마의 푸념과 그와 동시에 저 멀리서 라붕을 부르는 용의 목소리.

"전원, 감마를 포박하고 서둘러 라붕공을 수복실로 호송하라!!"

"...나중에 깨어나면 서로 찐하게 이야기나 나누자고 라붕."


그렇게 유례가 없을 정도로 규모가 컸던 펙스와의 전쟁은 저항군의 승리로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