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회차 감상용)


내 제안을 들은 수뇌부는 모두 머리를 한대 얻어맞은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아니, 아무리 얍삽하게 간다 해도 턴다고..?”


알파는 어이를 상실했고.


“훗, 그래야 내 동생이지!”


감마는 뿌듯하다는 표정을 지었으며.


“역시 미쳤어..”


내 광기를 한번 맛본 델타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터, 털어..?”


“네. 전투력 손실을 줄이는 대신 필요한 것들만 쏙 빼온다는 전법이죠.”


그리고 나는 품속에 있던 무언가를 꺼내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이런 미친.. 발라클라바?”


“원래 은행을 털든 창고를 털든 강도짓을 하려면 이게 필수니까요.”


나는 의기양양한 얼굴로 팔짱을 끼었다.


완전히 간이 배 밖으로 나온 황당무계한 계획이었지만, 아군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이것 말고 방도가 없었다.


물론 받아들여지지 않을 수도 있었지만 나는 내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안되겠습니까?”


하지만 내 반문에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그렇게 침묵이 몇 분간 이어지다, 누군가의 웃음소리에 정적이 깨졌다.


“푸훗.. 핫핫핫하!!”


“아스널?”


“생각보다 재밌는 제안을 하는군, 꽤나 마음에 들었네. 창고를 털자, 라는 방법은 예상하지 못했는데 말이지.”


“네?”


“하지만 전장에서 중요한 건 바로 시선을 돌려야 하는 걸세.”


“시선을 돌린다고 하시면?”


“창고에서 스테이시스 모듈을 챙기는 사이, 우리가 최대한 시간을 끌어야만 한다는 것이지.”


즉, 양동작전이 필요하다는 이야기였다.


“그럼 동의해 주시는 건가요?”


“애초에 님이 미친 짓 하는게 한두번이 아니고 이건 순한맛이라...”


사령관님이 딴지를 걸며 끼어들었다.


“제가 그 정도로 광인인가요..?”


“애초에 델타랑 싸우겠다고 전속력으로 달리는 기차에 뛰어든다는 거부터가..”


솔직히 내가 한 여러가지 기행을 부정할 수는 없어 머리를 감싸쥐었다.


“뭐 어찌 됐든, 한쪽이 주의를 끄는 동안 부사령관 각하가 몰래 스테이시스를 훔치는 걸로 하지.”


작전이 받아들여진 것만으로 감지덕지했기 때문에, 우리는 머리를 맞대고 일명 ‘창고털이’ 계획에 착수했다.





“이거 생각보다 쫄리네..”


어두운 창고 안, 나는 렌치로 조금씩 문에 달린 자물쇠를 잘라내며 중얼거렸다.


밖에서는 총성과 폭발음이 난무하는 가운데, 다른 대원들이 창고를 지키던 펙스 쪽 병사들과 접전을 벌이며 주의를 돌리는 중이었고, 나는 홀로 스테이시스를 빼돌리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었다.


“예술은 폭발이다 이 오메가 똘마니들아!!”


“어디 이것도 한번 피해보시지!”


두 폭탄광이 화려하게 날뛰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려왔다.


아군의 탄환이 다 떨어지기 전에 이 자물쇠를 빨리 부숴야 하는데..


그렇게 낡아빠진 자물쇠와 씨름하길 십여 분, 마침내 툭 하는 소리와 함께 자물쇠가 땅으로 떨어졌다.


“됐다..!”


재빨리 문을 열자 그 안에는 와인 장식장처럼 수많은 모듈이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었다.


이제 최대한 많이 쓸어담은 후에 이곳을 뜨면 될 일, 손을 뻗어 하나를 집으려던 그 때..


“정지, 거기 누구냐!”


하필이면 이 안으로 들어온 보초병 둘에게 들키고 말았다.


품 안에 있던 블래스터로 제압하려 했지만 하필이면 적이 스테이시스를 장비하고 있던 탓에 그만 늦어버렸다.


파란 에너지를 맞자 총을 꺼내는 동작이 초고속 카메라로 촬영한 것처럼 매우 느리게 느껴졌고, 젤리 속에서 헤엄치는 것 같은 둔함이 온 몸을 짓눌렀다.


"큭.."


"잠깐만, 이 인간님 자세히 보니까 오메가님 동생이라는 분 아냐?"


"일단 데려가자구, 중요한 사람이니까.."


두 보초병에게 양 옆을 붙들리고 나는 그대로 군용 트럭으로 속절없이 끌려나갔다.


이대로 오메가 빌딩으로 간다면 계획이 완전히 틀어지게 될 거라고 생각한 그때..


퍽 하는 소리와 함께 날 붙든 두 명이 스르르 땅바닥으로 무너짐과 동시에 느리게 흘러가던 시간이 다시 원래대로 돌아왔다.


“뭐.. 뭐지?”


“부사령관이라는 분이 이렇게 무방비하면 안 되죠.”


노이즈가 끼었지만 부드러운 목소리의 마스크를 한 은발 여성이 배후에서 나타났다.


“당신은..”


“메이터에요. 이렇게 빨리 만나리라고는 생각 못 했는데.”


그녀는 손을 뻗어 나를 일으켜 주었다.


오랜 세월을 홀로 싸워 온 것인지 꽤나 억셌으며, 왠지 모르게 익숙한 손길이기도 했다.


“감사합니다.”


그녀가 구해준 덕분에 잠시 위기에서 벗어날 수는 있었지만, 더 많은 파수병들이 이쪽으로 몰려오는 것을 나는 볼 수 있었다.


지금 수중에 있는 무기라곤 달랑 권총 하나와 겨우 챙긴 스테이시스 모듈 하나.


이것만으로는 저 수를 막기엔 역부족이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지만, 그래도 해볼 수밖에 없었다.


맨 앞에 서 있던 병사가 고압전류를 두른 진압봉을 휘두르려는 순간, 나는 간발의 차로 피해 스테이시스를 발사하여 제압했다.


천천히 쓰러지는 동료를 보며 다른 경비병들은 잠시 주춤했고, 다시 그들을 제압하려 하던 그때..


갑자기 메이터 씨가 품에서 매그넘을 꺼냈다.


그러고는 소음기처럼 생긴 무언가를 꺼내 총구에 장착하고는 맨 앞에서 달려오는 녀석에게 쏘았고, 곧 구름처럼 새하얀 증기가 뿜어져나와 나를 비롯한 모두의 시야를 가렸다.


“연막탄이다!” “인간님은 어디에 있어!” “빨리 찾아내!” 같은 보초들의 고함만이 귀를 가득 채우는 가운데, 목덜미를 확 잡아채는 손길과 ‘이쪽으로’ 라고 속삭이는 말소리가 느껴졌다.





정신을 차려보니 자욱한 연기를 뚫고 창고로 다시 돌아와 있었고, 바닥에는 미처 챙기지 못했던 스테이시스 모듈 여러 개가 바닥에 나뒹굴고 있었다.


고개를 돌려 보니, 메이터 씨가 팔짱을 끼고 나를 가만히 응시하고 있었다.


“어째서 저를 구해주신 거죠?”


“시간 낭비니까요, 저렇게 많은 수를 혼자서 상대한다는 건 .”


그녀는 냉철하게 판단하여 날 구한 것 같았다.


“...그리고 너를 잃을 수는 없으니까.”


“뭐라구요?”


“아니에요, 마저 챙겨요.”


무언가 이상한 말을 들은 것 같았지만, 한시가 급했기 때문에 흩어진 장비들을 최대한 많이 자루에 쓸어담았다.


팔이 빠질 정도로 무거워질 때까지 담은 후, 뒷문으로 나가보니 이미 그곳엔 스틸라인의 오도봉ㄱ.. 아니 두돈반이 대기중이었다.


“부사령관 각하! 괜찮으십니까?”


“괜찮아, 저분이 구해줬..”


메이터 씨를 가리키려고 뒤를 돌아봤으나, 이미 그녀의 흔적은 온데간데없었다.


“누구 말씀이심까?”


“응? 어, 아니야..”


하지만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할 수 없었기에 나는 트럭에 올라타 도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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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터 떡?밥 투척

입대하기 전에 완결낼 수 있을까

재밌게 보셨다면 개추와 댓글 많이 달아주십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