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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야...?”

 

미호가 헛웃음과 함께 말을 내뱉었다.

 

“자기가 무너뜨린 거 맞지? 복도 저거...”

 

“우리가 이긴 싸움이었잖아. 아니야? 왜 갑자기 자기 혼자...?”

 

빠진 어깨를 뚝뚝 되맞추며 미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잘게 조각난 격벽의 잔해, 깍둑썰기 된 채로 무너진 콘크리트 덩어리들이 방금까지만 해도 잘 보이던 장화의 모습을 완전히 가려버렸다.

 

‘뭐지?’

 

격렬한 싸움 속에서 제대로 정신 차리기도 힘든 그녀였지만 다 이긴 싸움이었단 것만큼은 확실히 알고 있었다.

 

혹시 동우가 마지막으로 수를 감춰뒀던 건 아닐까? 최후의 수단으로 자폭 스위치 같은 걸 킨 걸까?

 

하지만 잔해 너머에서 들려오는 건 소름 돋을 정도로 고요한 적막뿐이었다.

 

“대장? 무슨 말이라도 좀 해봐.”

 

파일 드라이버를 지팡이 삼아 서있던 불가사리가 시선을 고정한 채 옆에 있던 바르그를 팔꿈치로 찔렀다.

 

“사전에 얘기 된 거야? 우리가 모르는 뭐 그런 계획이라도 있는 건가?”

 

“...”

 

“아니면 뭐 엠프레시스 하운드끼리 무슨 싸인이라도 주고 받았던가, 그런 거라도 있을 거 아냐. 그게 아니면 자기 혼자 저렇게 급발진 할 리가 있어?”

 

그래도 자기보단 뭐라도 아는 게 있겠지, 그리 생각하며 불가사리는 삐걱이는 몸을 연신 움직였다.

 

장화가 누군지 모르는 건 아니지만 여전히 아는 것보단 모르는 게 많은 상황. 그러니 한때라도 같은 부대에 속해 있었던 바르그가 무슨 말이라도 해주기를 바랬다.

 

“몽구스.”

 

그 기대에 부응하듯 바르그가 잔해를 향해 걸어나갔다.

 

역시 뭐라도 알고 있는 걸까, 남아 있는 대원들은 그녀의 움직임을 유심히 관찰했다. 아니, 그렇게 숨이라도 고르지 않으면 호흡도 제대로 안 될 것 같았다.

 

“힘이 남아 있는 녀석은 와서 도와라.”

 

“뭐?”

 

하지만 바르그가 잔해에 다다랐을 때 한 행동은, 고작해야 무너진 잔해 하나를 헤쳐놓는 것뿐이었다.

 

“이대로 가면 저 멍청이가 죽는다! 빨리!”

 

겨우 침착함을 유지하고 있던 바르그의 얼굴에 당혹감이 진하게 서렸다.

 

아는 거? 웃기는 소리. 애초에 멀쩡할 때도 자기 말은 죽어라 무시하던 장화였다. 그런 년이 이제 와서 대장 취급이라도 해줄 리가 있겠는가.

 

지금까지 했던 것처럼 너무도 자연스럽게 자기 혼자 계획을 꾸리던 장화는 멸망 전에도 그랬던 것처럼 이번에도 바르그를 당황스럽게 만들었다.

 

“섹션 너머는 분진으로 가득찬 상태였다! 이대로 가만히 내버려두면 저산소증에 걸려 뇌사할 거다!”

 

“뭐? 따로 얘기해둔 거 아니었어?”

 

“얘기는 얼어죽을 놈의 얘기! 저 씨발년이 언제 그랬던 적이 있었나!”

 

씨발년이라.

 

확실히 그럴 만한 위인은 아니었지.

 

“... 그럼 뭐야?”

 

부러진 갈비뼈를 으적이던 드라코가 초롱거리는 눈망울을 파르르 떨었다.

 

“자기 혼자 죽으려고 한 거야...? 대체 왜?”

 

“지금 그딴 게 중요한가! 이대로 내버려두면 저 년은 죽는다! 오늘 집으로 돌아갈 때 시체를 들고 가고 싶은 거 아니면 돕기나 해!”

 

바르그의 얼굴에선 다시 한 번 식은땀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평소라면 이렇게까지 반응하진 않았겠지만 지금 그녀는 누구보다도 확실히 죽음의 냄새를 맡았다.

 

오리진 더스트.

 

그녀가 알고 있는 한에서 장화라는 개체가 견뎌낼 수 있는 오리진 더스트의 양은 한계가 있었다. 암살과 사보타주에 특화되도록 일반적인 바이오로이드보단 많은 양을 견딜 수 있게 설계됐지만 그것도 엄연히 정량이 있었다.

 

그 말은 신체가 감당할 수 있는 부하가 있다는 뜻. 그리고 바르그가 아는 한 치사량까지만 도달하지 않으면 어떻게든 소화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녀가 지휘하던 장화의 몸은 은은한 보라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눈도, 손등도, 혈관이 보이는 곳에는 거기에 흐르는 오리진 더스트의 색으로 발하고 있었다.

 

‘죽는다.’

 

그게 그녀가 장화를 보고 내린 결론이었다.

 

“저 미친 년이 이제 와서 무슨 짓을 할지 모른다! 과다 복용 때문에 대가리가 맛이 간 걸 수도 있겠지. 아니, 분명 그런 걸 거다!”

 

“그러면 우리가 뭘 해줘야 돼? 어디서부터 치우면... 크흡!”

 

미호가 입으로 손을 막았다. 손가락 사이론 끈적한 피가 흘러내렸다.

 

‘... 다쳤나?’

 

아니다. 오히려 다치지 않은 게 더 이상하겠지. 뒤에서 진두 지휘하던 자신과 달리 미호는 전면에서 싸워야했다. 저격수가 어울리지도 않게 박투술을 써야 했을 정도로 그녀는 전장 끄트머리로 몰려 있었다.

 

그나마도 드라코와 불가사리가 근접 전투를 도맡아 해준 덕분에 그 정도로 끝났다. 내색하진 않지만 저 둘도 미호 못지 않게 다쳤을 게 분명한 상황. 도움을 기대하는 건 무리였다.

 

“... 제길.”

 

바르그는 손등의 힘줄에 정신을 집중하며 자신의 검을 등에서 꺼냈다.

 

“데이터 디스크를 챙겨서 퇴각해라. 여기서부턴 내가 알아서 하겠다.”

 

“뭐? 그 몸으로 무슨...”

 

“너희한테 걱정 받을 만큼 약해지진 않았다. 게다가 알잖나. 내 몸 하나 희생해가면서까지 저 년을 살릴 생각은 없다.”

 

만약 죽을 놈이 생긴다면 하나로 족하다. 이제 막 희망이 보이는 찰나에 자기 무덤까지 파게 만들 생각은 추호에도 없었다.

 

다만 그럼에도 그녀가 이렇게 필사적인 이유는 사령관과 했던 약속 때문이었다.

 

-바르그가 원하는 건 마리아의 무덤이지? 만들어 줄게. 대신 장화를 살려서 돌려보내줘. 그게 우리의 거래 조건이야.

 

‘... 제길...’

 

계약서도, 녹음도, 그 흔한 서필도 없었던 거래. 거래라고 하기 힘들 만큼 빈약했던 그의 말은 지키지 않아도 될 이야기였다.

 

하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지켜야 했다. 바르그는 알고 있었다. 계약에 목을 매는 인간은 계약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싶은 사람이고, 그렇지 않은 인간은 이미 그로부터 자유로운 인간이라고.

 

마리아가 그랬다. 그녀의 주인은 평생을 계약 속에서 살았다. 제 동생과의 계약, 가문과의 계약, 삼안과의 계약,

 

평생을 계약 속에서 살던 인간이 어떻게 됐는지 아는 그녀였기에 바르그는 사령관이 자신에게 무엇을 해줄 수 있는 사람인지 알 수 있었다.

 

“뒤지지 마라!”

 

콰과과과광!

 

바르그의 대검이 바닥부터 천장까지 거대한 검로를 만들었다. 그녀의 발도에서 시작된 충격파는 잔해에 부딪힌 다음 뒤쪽으로 파도처럼 흘러나갔다.

 

“내 말 들리나 장화!”

 

쾅! 쿠구구구궁!

 

무뎌질 대로 무뎌져 이젠 검이라기보다 둔기에 가까워진 무구를 가지고 바르그가 외쳤다.

 

바닥에 가라앉아 있던 분진들이 올라왔다. 거대한 모래 폭풍이 휘몰아치는 것처럼 주변이 뿌옇게 일었다.

 

“커헉...! 크흡!”

 

반사적으로 입을 가렸지만 목구멍이 칼칼해지는 것은 막을 수 없었다. 검을 휘두르기 위해 자세를 잡던 것이 순간 흩어져버렸다.

 

하다 못해 한 명이라도 자길 도와줬더라면 이러진 않았을 텐데.

 

원망 반, 걱정 반으로 뒤를 돌아본 바르그는 멀찍이서 몸을 떨던 몽구스 팀을 향해 외쳤다.

 

“꺼지라 했다!”

 

저 푼수들에게 도움을 바래야 할 만큼 몰려있는 걸까.

 

그때 바르그의 머릿속으로 한 가지 생각이 스쳤다.

 

‘... 장화.’

 

저 벽 너머가 아니라 복도에서 몰려오던 고블린들을 막고 있던 장화.

 

고블린 전체를 조종하던 서브 AI가 사라진 지금이라면 어디에 앉아 자기 혼자 쉬고 있을 것이 분명하다.

 

‘그 녀석이라도 있으면 더 빨리 부술 수 있을 거다.’

 

이 빌어먹을 능구렁이 같은 녀석. 지금 충격파를 느꼈다면 무슨 일이 일어났을지 눈치라도 챘을 텐데 지금까지 조용히 하고 있는 걸 보면 또 개인 행동을 하고 있는 걸 거다.

 

몇 번 더 검을 휘두른 다음 바르그는 어깨의 무전기를 입에 가져다 대었다. 마침 조카 같은 푼수들도 사라졌겠다, 남아 있는 힘을 있는 힘껏 쥐어 짜면 무전기 너머로 소리쳤다.

 

“야!!!!!!!!!!”

 

하지만 돌아오는 건 듣는 사람이 부끄러울 만큼 적적한 적막.

 

“야이 개새끼야!!!!!!!!!!!!!!!!! 대답해!!!!!!!!!”

 

머리 위의 강아지 귀를 쫑긋거리며 바르그가 소리쳤다. 그럼에도 들려오는 말은 없었다.

 

“하아... 하아... 이 개새끼가...”

 

오르카 호로 들어간 다음에 좀 나아졌나 했더니 여전히 지 혼자 사는게 천직인 년이로다. 그리 생각하던 바르그는 없는 기운을 짜네 검을 들어 쥐었다.

 

구출하진 못하더라도 안에 상황이라도 보자.

 

그리 생각하며 쥐고 있던 검법을 바꿨다. 베는 것이 아니라 찌르는 식으로, 두꺼운 잔해들을 단숨에 뚫어버릴 생각으로 바르그는 뒷발에 힘을 주고 어깻죽지를 휘둘렀다.

 

콰앙!

 

“하아... 하아... 하아... ... 하아?”

 

간신히 너머를 보일 만큼만 뚫린 구멍. 그 너머로 시선을 돌린 바르그는 머릿속으로 물음표를 세웠다.

 

 

 

*

 

 

 

“하여튼, 성깔 더러운 건 어디 안 간다니까.”

 

몇 번인가 빽빽 거리며 개새끼를 읊어대던 바르그의 목소리에 장화가 넌저리를 쳤다.

 

“머리에 여우귀까지 달려 있는 애가 누구보다 개새끼라고 하는 건지. 아니면 고양이 귀였던 건가?”

 

지금까지 자기가 잡아준 고블린이 몇 마린데 저거 대꾸 한 번 안 했다고 욕하는 꼴이라니. 어지간하면 자기도 대꾸하고 싶었지만, 애석하게도 그럴 상황이 아니었다.

 

그녀는 바닷바람을 맞고 있었다.

 

“예전부터 꼭 자기 말대로 안 하면 저 지랄을 했었는데, 오르카에 온다고 사람이 다 바뀌는 건 아닌가 봐.”

 

“안 그래?”

 

그녀 앞에는 또 다른 장화가 있었다.

 

“......”

 

“뭔 말이라도 해봐. 이대로 있으면 곧 죽을 거 같은데.”

 

온 몸이 보라색으로 은은하게 빛나는 장화. 그런 장화를 보며 위화감을 느낀 장화는 작게 숨을 내뱉었다.

 

“네 몸이지만 내 몸이기도 하니까 알아. 그 정도로 오리진 더스트를 쑤셔 넣었으면 앞으로 얼마 못 살겠지.”

 

“... 대체 왜...”

 

“아니, 사실 지금껏 살아있는 게 기적이지. 우리가 아무리 신체 강화를 해도 소닉붐이 터질 만큼 빠르게 움직일 순 없어. 그런데 넌 그렇게 했잖아.”

 

그녀가 동우를 상대로 어떻게 싸웠는지 화면 너머로 지켜봤다. 슬레이프니르처럼 발을 디딜 때마다 충격파가 터져나왔고, 홍련과 싸울 때는 아예 촬영조차 안 될 만큼 격렬하게 움직였다.

 

신체의 한계를 몇 단계씩 뛰어넘은 상태. 같은 장화로서 그녀가 얼마나 미친 짓을 했는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장화였다.

 

“기껏 잘 싸워놓고 그렇게 하면 누가 박수라도 쳐줄 것 같았어? 아닌 거 알잖아. 뒤지면 끝이야. 누구도 기억해주지 않는다고.”

 

“... 왜 나한테...”

 

“왜 따라왔냐고? 그야 그대로 내버려뒀으면 어디 으슥한 대로 가서 주인 잃은 강아지마냥 뒤질 게 뻔했으니까.”

 

장화는 그녀가 서있는 땅을 가리키며 말했다.

 

“더러운 콘크리트, 들어오는 햇볕이라곤 저 위에 있는 구멍이 전부. 엠프레시스 하운드의 접선 장소 중 하나잖아. 상태를 보니까 안 쓰인지 꽤 된 거 같지만.”

 

“......”

 

“다 이긴 싸움에 그 짓하는 이유가 별거겠어? 조용히 기지 밖으로 빠져 나와서 어디 가서 혼자 죽으려 했겠지.”

 

벽에 묻은 먼지를 손가락으로 슥 훑은 장화가 말없이 하늘을 올려다 봤다. 무슨 옛기억이라도 떠오르는 것처럼, 그녀의 눈에는 알 수 없는 미련이 차있었다.

 

“... 다 아는 듯이...”

 

손목의 자줏빛 혈관에 떨리는 시선으로 장화가 말했다.

 

“다 아는 것처럼... 말하지 마.”

 

“그렇게 말하려 한 건 아닌데.”

 

“넌... 넌 다르잖아.”

 

돌아갈 곳이 있고, 반겨주는 사람이 있다.

 

“오르카 호로 돌아가면 몽구스 애들하고 같이 지낼 수 있을 테고... 홍련하고 오늘 있었던 일을 얘기할 수도 있을 거고...”

 

그리 생각하려 했던 것은 아니었다. 자기 한 몸 보신하기도 힘든 마당에 남들의 얼굴에 관심을 둔 적은 없었다.

 

다만 조용히, 소름 돋을 정도의 적막이 감도는 오르카 호의 감금실에서 장화는 수많은 사람들을 보았다.

 

웃는 사람들, 우는 사람들, 기뻐하거나 울적해 하는 사람들,

 

알비스 십 수 명이 우르르 몰려와서 한 번에 창고를 털어버렸다며 진저리를 떠는 안드바리, 린티에게 노래를 알려주느라 우울증이 생겨버린 뮤즈, 안무 연습 중에 뼈를 접질린 에라토와 그걸 낑낑거리며 데리고 온 블랙 하운드.

 

한 사람의 얼굴에 수십 개의 표정이 피어올랐다. 일생에 적막이라곤 언제 어디서 기습이 날아올지 대비해야 했던 장화에겐 그들의 표정이 날아오는 비도처럼 선명하게 들어왔다.

 

그러나 그렇게 될 때쯤이 되면, 그녀들 모두가 똑같은 표정으로 장화를 바라보았다.

 

경멸.

 

“내가 있을 자리는 거기에 없어.”

 

“......”

 

“그러니까, 그냥 가. 이제 더 이상 못 걷겠어.”

 

풀썩,

 

주저 앉아버린 장화가 작게 숨을 몰아 쉬었다. 팔뚝의 핏줄은 한가을 단풍처럼 울긋거렸다.

 

또르르, 힘없이 떨어진 장화의 손이 주머니에서 흘러내렸다. 그와 함께 차가운 금속 코어도 함께 떨어졌다.

 

-삐빅---삐—삐

 

차가운 금속의 색처럼 차가운 기계음.

 

동우였다. 말하는 법마저 잊어버린.

 

“... 가.”

 

“그런다고 갈 거였으면 내가 오지도 않았겠지. 너도 장화라면 알 거 아냐.”

 

“......”

 

“뭔가 대꾸라도 해주면 좋겠는데.”

 

평소였다면 진작에 꺼지라고 했겠지.

 

하지만 지금의 장화는 ‘꺼져’의 ‘ㄲ’ 발음조차 제대로 하기 힘들만큼 늘어져 있었다.

 

기운이 없었다. 이대로 있다면 정말로 죽을 것처럼 사지에 근육이 부드럽게 이완되었다.

 

“......”

 

고작 이렇게 죽으려고 지난 백 년을 살았던 걸까.

 

“......”

 

사실 생각해본 적 없었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고민하느라 어떻게 죽어야 할지 생각할 시간을 뺏겨버렸다.

 

“있잖아.”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장화가 무릎을 가슴께로 모으며 쭈구렸다.

 

“내가 어떻게 여기 왔는지 궁금하지 않아?”

 

“... 궁금하지 않았다면 말 안 걸 거야?”

 

“아니. 내가 말 안 걸면 너 뒤질 거 같거든.”

 

“... 개새끼...”

 

“그거야 내가 니 몸에 화살 박아 넣었을 때부터 사실이었던 거고.”

 

장화가 장화의 가슴을 가리키며 말했다.

 

“어떻게, 말 해줄까, 말까? 들어서 손해볼 건 없을 텐데.”

 

“... 씨발.”

 

씨발.

 

장화들 사이에선 긍정의 의미를 말하는 단어였다.

 

“말 한 번 예쁘게 하네.”

 

장화는 빙그레 웃으며 바닥의 먼지를 털고 주저 앉았다.

 

“어디서부터 얘기를 해야 하나... 그래. 그거부터 해보자. 내가 언제 오르카 호로 왔는지 알아?”

 

“......”

 

“그게 언제였더라... 몇 년 전이었나? 뭐, 그게 뭐가 중요하겠어. 중요한 건 나도 너랑 똑같은 이유로 왔다는 건데.”

 

“... 뭐?”

 

장화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오르카 호에 있는 홍련을 죽이는 거. 나도 그게 목적이었어.”

 

“... 뭐라고?”

 

“생각해보면 이상하잖아. 사령관은 우리가 누군지 다 알고 있는데 어떻게 오르카 호에 홍련이 있다는 사실이 우리 귀까지 흘러들어왔을까?”

 

생각해본 적 없는 의견이었다.

 

“그리곤 떡하니 한반도에 오르카 호를 두었지. 마치 우리 보고 찾아올 테면 찾아오라고 하는 것처럼.”

 

“... 대체... 왜?”

 

“글쎄, 왜일까? 나쁜 목적이었다면 얼마든지 나쁜 목적이었겠지. 그런데 내가 아직 살아있는 걸 보면 그건 아닐 거 같지 않아?”

 

장화는 일부로 끝말을 흐리며 장화에게 대답을 유도했다.

 

마치 생각해보라는 것처럼. 희망찬 생각을 포기하지 말라는 것처럼 장화는 어깨를 으쓱이며 말을 이었다.

 

“있지, 나도 사실 처음엔 너처럼 홍련을 죽이려 했다가 크게 다치고 도망갔어. 간신히 살아남은 채로.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오르카 호가 나 하나 못 죽이는 게 이상한 거였는데 말이야.”

 

“......”

 

“옆구리에선 피가 줄줄 흘러내렸고, 걸을 때마다 온몸의 뼈에서 으득거리는 소리가 났지. 그래도 꼴에 홍련 앞에서 뒤지긴 싫다고 어떻게든 도망쳤는데 그 짓하다가 주마등이 보이더라고. 백 년짜리 주마등. 그거 보니까 아, 죽는 게 이런 거구나, 그 소리가 절로 나왔지.”

 

장화는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했다.

 

“그러다가 사령관을 만났지. 그 사람이 그 때 뭐라 했는 지 알아?”

 

그녀의 주머니에선 잔잔한 기계음이 들렸다.

 

“죽지 말라더라.”

 

“...... 씨발.”

 

속으로 나오는 헛웃음을 뱉어내는 장화였다.

 

“그래서... 그 사람이 나한테 죽지 말라 하라고 그랬어? 자기 대신 얘기 좀 전해달라고?”

 

“응.”

 

“하아... 하하하... 하여튼 바보 같은 사람이라니까.”

 

그래도 인간 사이에 끼어 살면서 온갖 인간 군상은 다 봤다고 생각했는데 이런 멍청이는 처음 본다.

 

사령관 생각을 하자 장화는 왠지 모를 웃음에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럼... 돌아가서 말해줘. 세상에 죽고 싶은 인간이 어디 있겠냐고. 나도 이대로 뒤지긴 싫은데 어쩔 수가 없네.”

 

쿨럭, 우연찮게 나온 기침엔 자줏빛 혈액이 묻어나왔다.

 

“뭐, 사람 하나 뒤지는 게 뭐 그리 대수라고 그래. 앞으로 자기보다 빨리 죽을 바이오로이드 수도 없이 만날 텐데 나 하나 가지고... 커흡!”

 

“... 괜찮냐?”

 

“... 아니. 안 괜찮아. 보면 알잖아.”

 

쓴 바람이 그림자 속으로 불었다. 장화의 머리카락은 회색빛으로 흩날렸다.

 

곧 죽을 이의 머리카락은 붉은색이라기보단 하얗게 질린 회색빛이었다.

 

“나도... 참... 궁상이다. 마지막에 만나는 년이 나랑 똑같이 생긴 년이라니.”

 

“왜, 나 말고 딴 사람이었으면 좋겠어?”

 

“그래. 차라리 나 혼자였으면 더 나았겠다.”

 

잠깐의 정적.

 

혼자면 더 좋았을 텐데, 라는 생각 뒤로 조용히 고개를 들이미는 희망.

 

“보고 싶은 사람이 있지?”

 

“...... 씨발.”

 

“말 한 번 예쁘게 하네.”

 

장화는 조용히 미소를 지으며 등을 돌렸다. 저벅거리며 은신처 밖을 향해 걸어가는 장화의 발걸음에 먼지가 일었다.

 

삐빅. 삐빅.

 

주머니에서 흘러나오던 기계음이 조금씩 커져갔다.

 

“있지, 나도 죽을 때가 되니까 보고 싶은 사람이 있더라. 그 때는 몰랐는데 나중에 돌이켜보니까 그런 사람이 있더라고.”

 

“......”

 

“그럼 여기서 질문.”

 

삐빅.

 

“내가 그 얘기를 누구한테 해줬을까?”

 

삐빅. 삐빅. 삐빅.

 

기계음의 빈도수가 더욱 커져갔다.

 

“이번에 바르그가 임무에 나갈 땐 널 지켜달란 부탁을 듣고 갔지. 미호랑 드라코, 불가사리도 마찬가지고. 그런데 나는 조금 다른 임무를 받았어.”

 

그와 함께 장화의 심장 박동도 빨라졌다.

 

“도망가게 하지 말아라.”

 

“이번에는 나처럼 혼자 죽어가는 사람이 없게 만들어라.”

 

“만약 그런 사람이 있다면,”

 

삐빅. 삐빅. 삐빅.

 

장화는 빛을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사령관에게 위치를 보내라.”

 

흐린 눈, 자줏빛 피로 물든 시야에 장화의 그림자는 서서히 사라졌다.

 

하지만 그녀의 눈에는 한 사람의 신형이 아른하게 남아 있었다.

 

“...... 어떻...게...”

 

죽어가는 자신.

 

늘 그랬듯 말없이 체념하고 조용히 스러지려던 장화에게로 기다란 그림자가 드리웠다.

 

“장화야.”

 

아주 따스한 그림자가.

 

“... 사...령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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