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라고?"


사령관의 말에 메이가 되물었다. 중요한 회의라고 해서 왔는데 대뜸 내뱉는 말이 계엄령, 그것도 밥상이 주제라니. 자신이 이 대화의 흐름을 이해하지 못했나 생각하던 메이는 주변을 슬쩍 둘러봤다. 당연하다면 당연하게도 다른 이들도 '이게 뭔 소리야'라며 그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 눈치였다.


"말 그대로야. 현 시간부로 오르카호 최고 지휘권자의 권한을 발동해서 밥상 계엄령을 선포한다."


"아니 그러니까 대체 '밥상 계엄령'이 뭔데? 뭐 잘못 먹었어?"


"맞습니다, 각하. 계엄령은 들어봤어도 그 앞에 밥상이 붙는 건 금시초문입니다."


이상하다 싶을 정도로 진지하게 말하는 사령관이 이해가 되지 않았던 메이는 다시금 반문했다. 마리도 한 마디를 거들자 사령관은 아직 자신의 뜻이 이해되지 않은 것 같다며 운을 띄웠다.


"어제 저녁으로 콩밥이 나온 건 다들 기억하겠지. 그 콩밥에서 콩이 너무 많이 버려졌다고 소완이 건의를 했어. 귀한 식량이 버려지는 일을 줄이기 위해 앞으로는 식당마다 군사경찰이 배치되어 버리는 음식이 없는지 감시할 거야.


쌀 한 톨이 귀한 시대에 식량이 낭비되는 걸 막기 위한 조치니 다들 이해해주길 바라."


사령관의 설명이 끝나자 그 자리에 있는 모두가 어이 없어하는 표정으로 답변을 대신했다. 살다살다 여기가 유치원도 아니고 먹는 걸 감시한다니, 메이는 기가 차서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 와중에 어제 그가 보여준 모습이 떠오른 칸은 이의를 제기했다.


"사령관, 하지만 내 기억으로는 어제 사령관도 콩을 골라내서 버리지 않았나?"


"...그래. 나도 그랬지. 하지만 나는 콩을 가리는 게 아니라 다음 식사를 위해 나눔을-"


"잠깐, 그럼 소완은 음식물을 재사용한 거야?"


"어쩐지 오늘 아침에 콩고기가 나오더니....!"


사령관의 말 한 마디에 좌중은 술렁거렸다. 상황이 잘못 돌아감을 판단한 사령관이 사태를 진정시키려 했으나, 이미 때는 늦은 후였다. 결국 소완이 식품위생법 위반으로 입건된 후에야 회의가 재개될 수 있었다.







"으으... 오늘 밥이 왜 이러지..."


"LRL, 알비스는 초코바가 먹고 싶어..."


그날 저녁, 식사를 받아든 LRL과 알비스는 표정을 찌푸렸다. 음식 낭비를 막기 위해서라고는 하지만, 둘이 받아든 반찬들은 호불호가 심하게 갈리는 것들이었다.


"가지나물, 당근볶음, 멸치 연근조림, 냉미역국, 콩밥"


"분명 어제까지는 달걀말이에 불고기가 나왔는데..."


알비스는 젓가락으로 애꿎은 당근만 툭툭 건드렸다. LRL은 차마 숟가락을 국에 담그지 못하겠다는 표정으로 손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둘이 식사하기 영 꺼림칙하다는 표정을 짓자 안드바리가 옆자리에 앉으며 한숨을 푹 쉬었다.


"에휴... 그래도 어서 먹자. 우리는 그나마 맛있는 거야."


"바리바리, 이게 어딜 봐서 맛있다는 거야?"


안드바리는 젓가락으로 당근볶음을 들어 입에 집어넣더니 말없이 맞은편을 가리켰다. 젓가락 끝을 따라 시선을 돌린 LRL과 안드바리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식사를 시작했다. 안드바리가 가리킨 곳에는 수병이니 맛있게 먹을 거라며 배식받은 해물비빔소스를 꾸역꾸역 먹는 호라이즌 대원들이 있었다.



다음 날도 크게 달라진 건 없었다. 오히려 소완은 밥상 계엄령을 그간 쌓인 스트레스를 풀 기회로 보기라도 한 건지 식단으로는 더 호불호가 갈리는 음식이 나왔다. 새싹보리크릴오일비트 비빔밥을 받아든 LRL은 자신이 받아든 게 과연 먹을 수 있는 게 맞나 진지하게 고민했다. 옆 자리에 앉은 더치 걸은 '내가 광산에 있을 때도 이런 건 안 줬다.'며 한탄했고, 뒤에 앉은 살라시아는 '우리 업계에서도 이건 아니다'라며 식사를 거부했다. 한숨만 푹푹 쉬던 알비스는 식판을 들고 일어났다.


"먼저 일어날게. 밥 맛있게 먹어."


"알비스! 진짜 갈 생각이느냐? 가면 큰일난다!"


LRL은 알비스를 만류하며 곁눈질로 퇴식구를 바라봤다. 군사경찰 완장을 차고 베레모를 눌러쓴 브라우니들이 퇴식구 앞을 지키고 있다고 주의를 준 LRL은 알비스가 제발 잘못된 선택을 하지 않길 바랬다.


"그래도... 이걸 먹으면 다음에 눈뜰 곳이 병실 아니면 저 세상 같단 말이야."


"저기 봐라. 괜히 탈출을 시도하다 동기부여를 받는 불쌍한 아해들이 많도다. 부디... 저기 합류하지 않길 바란다."


"걱정 마. 내 초코바 서리 경력이 얼마인데. PX에서 보자."


알비스는 걱정은 집어넣으라며 LRL을 격려해준 뒤 퇴식구로 움직였다. 식판을 들고 군사경찰의 눈치를 보던 알비스는 재빨리 잔반통에 밥을 버리고 문 밖으로 뛰쳐나갔다.


"됐어, 성공이다!"


알비스가 탈출의 기쁨으로 환하게 웃는 사이, 뒤에서 군사경찰들이 뛰어왔다. 호각을 불며 뛰어온 브라우니들은 전기충격봉을 꺼내며 알비스에게 경고했다.


"알비스, 널 지시불이행으로 긴급체포한다. 짜릿한 맛 보고 싶지 않으면 순순히 따라와."


"웃기지 마! 알비스는 초코바를 먹으러 갈 거라고!"


알비스가 투항권유를 무시하고 앞으로 달려나가자 브라우니 하나가 무를 꺼내들었다. 그 브라우니가 무를 곤봉처럼 사용해 알비스의 다리를 걸어 넘어뜨린 순간, 경고를 날린 브라우니가 전기충격봉으로 알비스를 지졌다.


"으아아아!!!"


온 몸에 전해지는 짜릿한 충격에 알비스는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전기충격봉을 집어넣은 브라우니는 알비스를 일으켜 세우며 혀를 찼다.


"그러길래 누가 도망치래, 일어서."


"으으... 싫어!'


"한 대 더 맞기 싫으면 일어서."


무를 휘두른 브라우니가 억지로 알비스를 일으켜 세우자 알비스는 더더욱 반항하며 삐뚤게 섰다. 그게 심기에 거슬렸는지, 전기충격봉을 쓴 브라우니는 태도를 교정해주겠다며 동기부여를 실시했다.


"차렷. 반 좌향좌. 엎드려.


하나에 식사는, 둘에 맛있게.


하나!"


"식사는!"


"둘!"


"맛있게!"


"하나!"


"식사는!"


"둘!"


"맛있게!"


식당 밖에서 들려오는 안타까운 전우의 목소리에 LRL은 눈물을 훔쳤다. 대체 어쩌다가 식사시간에 목숨을 걸게 되었는지 한탄하던 LRL은 살기 위해 눈앞의 새싹보리크릴오일비트 비빔밥을 입안에 밀어넣었다.







"달링! 이게 대체 무슨 짓이야!"


"왜 그래? 무슨 문제 있어?"


"문제? 그래, 말 잘했네. 아니 어떻게 알비스한테 전기충격봉을 사용한 거야! 애한테 동기부여를 준 게 말이야 막걸리야!"


알비스의 이야기를 들은 레오나는 즉시 사령관실로 찾아가 항의했다. 아무리 사령관이 선포한 계엄령이라 해도 어린 아이한테 지나칠 정도로 가혹하게 대하는 건 뭔가 잘못되어도 아주 단단히 잘못되었었다. 그녀의 항의를 들은 사령관은 대수롭지 않다는 투로 대답했다.


"아니, 밥을 남겨서 처분을 받은 건 정당하구만. 뭐가 문제야?"


"뭐? 그렇다고 애한테 그런 짓을 해?"


뻔뻔할 정도로 사안의 심각성을 부정하는 사령관의 모습에 레오나는 치가 떨렸다. 그녀는 당장 이 말도 안 되는 계엄령을 철회하라고 소리를 질렀으나, 사령관은 적절한 시기에 그리하겠다며 화제를 돌렸다.


"그러고보니 요즘 들어 PX 이용자가 늘었던데, 이유가 뭐 같아?"


"진심으로 묻는 거야? 당연히 식사가 그렇게 나오니 다들 식당에 안 가려고 하지."


"이런... 이렇게 되면 과잉조리로 식재료가 낭비되는데. 좋아, 현 시간부로 PX를 폐쇄한다."


"뭐?!"


사람들이 식당에 안 가면 메뉴를 바꾸거나 조리양을 줄이면 될 터인데, 고통의 근원이 뇌라고 뇌를 파괴하는 전략을 취하는 사령관의 모습에 레오나는 사령관이 소완과 모종의 거래를 한 건 아닌지 의심까지 들었다.


"달링, 뭐 잘못 먹었어?"


"어허! 식재료 낭비를 막기 위한 방법이야!"










"그러니까... 이제 PX가 폐쇄된다고?"


"네, 사령관님의 명령이에요."


"안돼! 제발 냉동 하나만 팔아줘! 오늘 저녁은 민트 마요네즈 피클 튀김이었다고!"


가면 갈수록 오르카호의 식사는 막장이 되어가는데 유일한 희망인 PX마저 막히자 상황은 점입가경으로 치달았다. 점점 식사를 못하겠다는 인원이 늘어남에 따라 단속을 목적으로 한 군사경찰 수만 늘어갔고, 단속을 피하려고 억지로 식사를 하다가 응급실에 실려가는 인원이 속출했다. 당장 전투에 투입될 병력도 모자란 판국에 비전투 손실이 하늘을 찌르자 지휘관들은 더 이상 이 상황을 좌시할 수 없었다.


"각하, 이건 아닙니다. 병사들의 사기가 바닥에 떨어졌습니다."


"의식주에서 가장 중요한 식이 박살이 났다. 이대로는 싸울 수 없어."


"호라이즌을 대표하여 밥상 계엄령 철회를 적극적으로 건의하오."



하지만 그녀들의 의견은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사령관은 매우 확신에 찬 목소리로 그녀들을 가리키며 건의를 일축했다.




"해로운 의견이다."









상황은 최악으로 치달았다. 오르카호 대다수 인원들이 식사를 거부하며 밥상 계엄령 철회를 요구하는 집회를 열자, 사령관은 앞으로 식사는 수르스트뢰밍으로 통일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이에 참다못한 인원들은 사령관실로 몰려가 단식투쟁까지 시작했다.



"밥을 달라! 이대로는 먹을 수가 없다!"


"식사는! 전투다! 영양 급양!"


"식사는 생존에 앞선다!"



사령관실 앞이 문전성시를 이루자 사령관은 혀를 찼다. 자신의 뜻을 모르는 이들에게 굳이 이해시킬 필요는 없었기에 그는 해산을 지시했다.



"쯥, 다들 내 대의를 모르는군.


리리스! 해산시켜!"


"리리스 언니는 이미 시위대에 가 있어요."


"뭐? 페로, 그게 뭔 소리야!"


"리리스 언니가 다른 건 다 참아도 지코에 밥을 말아먹는 건 못 참겠다고 하셨어요."


"젠장... 그럼 페로, 네가 가서 해산시켜."


"아뇨, 저도 허니버터 고등어 순살 튀김은 못 참겠어요. 시위대에 가기 전에 마지막 인사를 하러 온 거랍니다."



자신의 충직한 심복이었던 컴패니언마저 등을 돌리자 사령관은 더 이상 버틸 수가 없었다. 결국 밥상 계엄령 지시는 철회되었다.



"만세!!! 이제 저녁이 제대로 나온다!"


"탄두리 치킨에 인도식 커리라니... 이게 식사지!"


"식사는! 전투다! 정량 배식!"



오르카호 인원들이 마침내 돌아온 식사의 행복을 만끽하는 동안 사령관은 홀로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대의를 위해 한 일이라고 믿었건만, 정작 그녀들의 표정을 보니 그의 선택은 그릇되었던 것이 확실했다.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이런 책은 읽지 말 걸 그랬어."



사령관은 나직히 한탄하며 손에 든 책을 불에 던졌다. <마오쩌둥 일대기>라는 책이 잿더미로 변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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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근무 설 때 떠오른 아이디어로 쓴 단편. 분명 초반에는 유쾌한 병맛물로 가려했는데, 어째 쓰다보니 훈련병 시절의 안 좋은 추억이 섞이면서 마오쩌둥 결말이 나버렸다....


지나가던 달필가에게 어정쩡한 결말을 리파인해 주기를 부탁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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