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식사를 준비하는 분주한 와중에도 포티아와 아우로라는 현재 진행 중인 행사에 대해 떠들고 있었다.


그리고 담담한 어조로 흘러가는 듯 중얼거리는 소완의 말이, 분주히 식사 준비를 하던 취사장의 분위기를 환기 시켰다. 평소 프로페셔널 함을 강조하는 소완이 식사 준비를 하며 먼저 입을 여는 경우는 흔치 않았기에, 아우로라와 포티아의 시선이 소완에게 집중되었다.


"주, 주방장 님께서도 관심을 갖고 계실 줄은 몰랐네요."


포티아의 조심스럽고 작은 대답이 주방에 흘러 들었고, 다시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확실히 평소 소완의 성격이나 행실로 보아도, 소완은 그런 행사에 적극적인 관심을 두지 않는 부류였다. 그렇기에 무심히 중얼거리듯 내뱉은 소완의 말에 포티아와 아우로라 모두 입을 다문 것이리라. 그리고 소완은, 포티아의 말에 쿡쿡 웃으며 대답했다.


"소첩도 여자이옵니다. 매일 주방에 틀어박혀 있지만, 그런 행사에 관심이 전혀 없지는 않지요."

"아하하하... 그,그래도 주방장 님께선 스타일이 좋으시니까... 아마, 좋은 결과가... 히익!"


이번에 대답을 한 것은 아우로라로, 이런 어색한 분위기가 싫어서 되는 대로 던져본 말이었으나, 소완의 서늘한 눈빛에 금방 기가 죽어 '하와와' 소리를 내며 눈을 내리 깔았다. 하지만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만든다고 하던가. 소완의 표정이 이내 풀어지며 순수하게 감사를 표했다.


"감사하옵니다. 아우로라 양도 좋은 결과를 보길, 진심으로 응원하겠사옵니다."

"저, 그런데 주방장 님...?"

"왜 그러시지요? 포티아 양."


평소 일에 치여 사는 취사장의 인원들이 느긋하게 수다를 떨 시간이 있을 리 만무했고, 결국 지금까지 서로 기계처럼 일만 하며 지내왔기에 포티아는 지금 이 순간이 더없이 행복했다. 마침 방금 전까지 작은 목소리로 아우로라와 미스 오르카를 주제로 떠들고 있었기에, 이 참에 평소 어려웠던 소완과 친해질 기회가 왔음을 직감했기 때문이다.


"주방장 님께선 몇 등을 예상하세요?"

"음..."


유려한 칼부림으로 재료를 손질하던 손이 뚝 멈추고, 칼을 잡지 않은 손으로 턱을 살며시 어루만지며 고민에 빠지는 소완. 포티아의 질문에 소완의 머리가 분주한 계산을 시작했다.


확실히 예상할 수 있는 것은 우승은 어려울 것이라는 것. 이유야 뭐... 지금까지 주인의 사랑을 얻기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부류였기에 나름 살가운 사이라고 표현할 수 있는 이들은 적었으니까. 그러나 막상 선거가 시작되는 참이니 욕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이왕이면 높은 등수면 좋겠지요... 어렵겠지만."

"하하... 그건 그렇겠죠?"

"그, 그래도 사, 사령관은... 모두를 공평하게 사랑해 주시니까요."


'어렵겠지만' 이라는 소완의 말에 급격히 시무룩해지는 주방의 인원들을 보며, 소완의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가기 시작했다. 처진 눈매에는 예기가 담기고, 작게 미소 짓는 입은 음흉한 계략을 꾸밀 때 나타나는 소완의 버릇. 그것을 잘 알고 있는 주방의 인원들이 순식간에 긴장하기 시작했다.


"아우로라 양의 말대로, 순위가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그저, 부군의 곁에서, 부군의 식사를 준비하는 지금도 충분히 행복한 생활 아니겠사옵니까?"


소완이 피식 웃으며 의외의 말을 내뱉자, 주방의 분위기가 다시금 활기를 되찾았다. 예전에 비해 유순해진 탓일까, 큰 집착 없이 온화한 표정인 소완을 바라보며 아우로라와 포티아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데, 이번 그 행사... 미스 오르카였나요? 그것의 우승 상품은 무엇이옵니까?"

"음, 듣기로는 주인님과 30일 데이트... 그리고 동침권... 맞나?"

"맞아요, 포티아 씨. 그래서 이번에 다들 들떠있죠."


우승 상품의 내용을 듣는 그 순간, 소완의 칼질이 또다시 우뚝 멈추었다.


"그, 그게... 정말이옵니까?"

"네..?"

"우승 상품, 그게 맞느냐 물었습니다."

"히, 히익! 네, 맞아요!"


어느새 아우로라와 포티아의 곁으로 다가온 소완의 표정은 악귀 그 자체가 현세에 강림한 듯 매서웠다. 우승 상품이 '역시 오르카 답다'며 웃고 떠들던 그녀들은, 당장에라도 소변을 지릴 것 같은 공포에 시달리면서도 필사적으로 목을 쥐어 짜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순위가 무슨 의미가 있겠냐' 라고 말하던 소완은, 실성한 듯 웃으며 칼 두 자루를 쥐고 주방 밖으로 나가기 시작했다.


"주, 주방장 님? 어, 어디 가세요..?"


포티아의 질문에도 소완은 그저 걸음을 멈추지 않고 광기어린 표정으로 대답할 뿐이었다.


"후후훗, 조금만 기다리시지요... 저희들의 순위를 올리는 것... 어려울 게 무엇이 있겠사옵니까?"

"네?"

"경쟁자를 모두 물리적으로 제거하면 그만이옵니다. 소첩만 믿고 잠시만 기다리시지요."


근, 수 년 동안 그녀들이 보아온 소완의 표정 중에서, 가장 산뜻하고 해맑은 표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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