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운 사령관 (모음)





*****



 얼마 지나지 않아, 아스널의 아머리가 괌 해변에 도착했다. 섬 깊숙한 곳에서 벌어지는 일전과는 별개로, 해변에는 오직 파도소리만이 정적을 메우고 있었다. 가장 먼저 아머리에서 내린 바이오로이드는 레이스였다. 그녀는 백사장에 발이 닿기도 전에 부스터를 켜곤 쏜살같이 정글 숲 속으로 날아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머지 두 바이오로이드도 모습을 드러냈다.


 "아무래도 여기엔 없는 것 같군."


 "안쪽으로 들어가 봐야겠네."


 "일단 레이스가 돌아오면 따라가자고. 나는 그렇다고 쳐도 자네는 한창 몸조심 해야 할 때이지 않나."


 신호만으론 섬에 무엇이 있는지 알 수 없었다. 그 신호의 정체가 그녀가 그토록 보고 팠던 사령관일 수도 있었지만, 반대로 호기심 많은 바이오로이드들을 호시탐탐 기다리고 있는 철충 무리일 수도 있었다. 그렇기에 아스널은 3명이 모두 같이 정글 속으로 들어가기보단, 레이스를 먼저 들여보내자는 제안을 했다. (빽빽한 숲 덕분에 어느 정도 제한이 있지만) 높은 기동성과 기민함, 무엇보다 은신 능력이 있는 그녀라면 섬에 연결체가 몇 기가 있든 무탈하게 돌아올 수 있었다.


 하지만 그녀를 떠나보낸 레오나의 표정은 전혀 밝지 않았다.


 "걱정 말게나. 그 녀석 어떻게든-"


 "레이스가 걱정되는 게 아니야, 아스널."


 사실 그녀는 의심되는 부분이 한둘이 아니다. 리앤이나 팬텀을 통해서 사전조사가 진행된 것도 아니고, 그녀를 직접 대면하고 확인하는 과정도 너무나 급하게 흘러갔다. 물론 그녀 스스로 리앤이 마지막으로 남긴 녹음을 가져다주기는 했으나, 그녀가 어떤 의도를 품고 레오나에게 협력을 제안한 것인지는 여전히 아무도 알지 못했다.


 사령관을 본 그녀가 그를 향해 손을 건넬지, 아니면 총구를 조준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었다.


 "...혼자 보내기엔 너무 변수가 많아."


 "네 마음은 어느 정도 알겠다만, 그렇다고 해서 다른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지 않나. 나야 최악의 상황이 아니라면 충분히 살아 돌아올 수 있겠지만, 자네는 이제 홀몸이-"


 "나도 알아."


 레오나는 이제 눈에 띄게 부풀어 오른 배를 쓰다듬으며 숲을 바라보았다. 그녀가 내린 결정은 이성적으로는 옳은 결정이었지만, 왠지 모르게 불안함이 가시지 않았다. 자칫하면 보고 싶은 그를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 이 아이를 제대로 보여 주기도 전에 그를 떠나 보낼 수도 있다. 애써 옳은 선택이라고 자기 자신을 설득해보지만, 이상하게도 마음이 전혀 진정되지 않았다. 


 두근


  배 속에서 작지만 힘찬 고동이 느껴졌다. 윗배에 놓여있는 손에도 느껴질 만큼 힘찬 움직임이었다. 이때까지 느꼈던, 온 신경을 배에 집중해야 겨우 알 정도의 약한 태동과는 전혀 달랐다. 그녀는 깜짝 놀라 배를 둥글게 쓰다듬었다.


 마치 아이가 엄마에게 이야기하는 것 같았다. 빨리 가야 한다고, 그녀에게 재촉하고 있었다.


 그녀는 그제야 한 가지를 깨달았다. 그녀가 지금 구하려고 하는 이는 어느 사람도 아닌 사령관이었다. 인류 최후의 인간이자, 오르카호의 수많은 바이오로이드의 정신적 지주이자 보호자. 세상 하나뿐인 이 아이의 세상 하나뿐인 아버지가 될 사람. 무엇보다, 그녀가 이 세상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무슨 일이 있어도 없어지면 안 되는 존재였다.


 그를 구하는 데는 그 어떠한 변수도 용납되지 않았다. 


 "계획이 달라졌어."


 "뭐?"


 "여기서 여유 부릴 시간 없어. 우리도 빨리 들어가자."



*****



 AGS 부대들은 저마다 위치를 지키며 사령관 일행을 제거하러 전력을 기울이고 있었다. 스파르탄 보머와 어썰트는 캡틴의 지시에 따라 각자의 위치에서 일사불란하게 사격을 가하고 있었고, 간간이 떨어지는 셀주크의 영거리 포격들은 땅을 뒤흔들며 바닥에 깊은 웅덩이들을 여럿 만들었다. 포트리스 개체들은 반격의 틈을 조금이라도 허용하지 않으려 맨 앞에서 자신을 고정하였다. 이따금 날아오는 기간테스들의 묵직한 주먹은 바위산을 가를 기세로 사령관 일행을 공격했다.


 하지만 아자즈는 이를 아무렇지 않은 듯이 막아내고 있었다. 오히려 여유가 넘치는 건지, 정신없이 날아오는 공격들을 조용히 바라보며 중간중간 그에 대한 감상을 늘려놓고 있었다.


 "가끔 AGS들은 너무 물리적인 타격에만 집착하는 것 같아요. 총알도 그렇고, 주먹도 그렇고. 너무 원시적인 것 같지 않나요? 아무래도 제가 마법 소녀를 흥미롭게 보는 게 이것 때문일지도 모르겠네요."


 "이런 걸 가지고 있으면 그 어떤 것도 원시적으로 보이지 않을까요...?"


 "와..."


 사령관은 포츈에게서 해체자 아자즈에 대한 이야기를 한 번 들은 적 있었다. 그녀는 그때만큼은 특유의 말투도 버리곤 그 바이오로이드의 위대함을 보여주는 정보와 일화를 늘여놓았다. 그는 그다지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저 흔하디흔한, 사실과는 머나먼 거리에 있는, 그런 뜬소문으로 치부했다.


 하지만 앞도 제대로 볼 수 없을 정도의 폭발과 타격을 한 치의 흔들림 없이 막아내는 금빛 기둥을 보니, 그저 이를 멍하니 바라 볼 수 밖에 없었다.


 '예전엔 이런 규격 외의 물건을 가지고 어떻게 전쟁을 한 걸까...'


 물론 모든 인원이 이를 구경할 여유를 가진 건 아니었다. 알프레드는 자신의 연산회로를 바쁘게 돌리며 철문을 열 방법을 찾고 있었고, 그 옆엔 그의 회로가 너무 뜨거워지는 걸 막아주기 위해 스노우페더가 냉기를 불어넣어 주고 있었다.


 "으....음. 이거 생각보다 오래 걸리는군요. 뭔가 이상합니다만."


 "그게 무슨 소리야?"


 알프레드는 답답한지 손으로 땅을 여러 번 내려치고는 말을 이어갔다.


 "로버트는 제 형제와 같은 존재입니다. 저를 베이스로 만들어졌기에 하드웨어가 많이 다를지언정 그를 구성하는 소프트웨어는 저와 크게 다를 바가 없습니다. 원래 이 정도면 분명 뚫렸어야 하는 게 정상입니다만..."


 "...다만?"


 "다른 구성의 코드가 섞여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럼 풀 수 없다는 거야?"


 "아-아뇨. 절대 그런 건 아닙니다. 시간이 조~금, 더 오래 걸리는 정도입니다. 다만 제가 본 적 없는 코드인 걸로 보니, 로버트보다 권한이 높은 자의 보안 코드로 보입니다."


 "팩스에서 로버트보다 높은 권한의 인물이라..."


 로버트가 맡고 있던 프로젝트는 아직도 어디선가 잠들어있는 회장의 신체와 관련이 있다. 즉, 그보다 높은 권한을 가지려면 회장과 밀접하게 관련 있는 인물이어야만 했다. 또한, 알프레드가 코드의 변화를 유사시에 확인하지 못한걸 보니 보안코드의 변화는 분명 최근에 이루어졌을 것이었다. 


 멸망에서 살아남은 펙스 회장과 밀접한 연관이 있는 인물. 사령관의 머릿속에 어떤 바이오로이드가 떠오르려던 순간, 삐빅 거리는 소리와 함께 알프레드의 디스플레이가 반짝였다.


 "열렸습니다! 자, 이제 들어가실 분들은 빨리 들어가시죠!"



*****



 여기저기 떨어져 있는 탄창, 움푹 파여있는 구덩이들. 얼핏 봐도 크나큰 전투가 휩쓸고 간 자리였다. 레이스는 잠시 공중에서 내려와 남겨진 잔해를 이리저리 살폈다.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잔해들은 전부 다 철덩이와 크고 작은 기계부품들이 대부분이었다. 별 소득 없이 다시 수색을 재개하려고 하는 찰나, 그녀의 눈에 부자연스럽게 꺾인 나무줄기들이 눈에 들어왔다. 주변의 나무들은 특정한 방향으로 꺾여 어디론가 이어지는 넓은 길이 만들어져 있었다. 


 "아무래도 저 길을 따라가면 될 것 같군."


 길을 따라 날아가다 보니, 여기저기서 포탄 소리가 들려왔다. 그녀는 광학 미채 망토를 쓰고, 포탄 소리가 나는 쪽으로 향했다. 그 곳에 도착한 그녀의 앞에는 수많은 AGS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들키지 않도록 AGS 무리를 빙 둘러가니, 그들이 정면에 있는 노란색 구를 일제히 사격하고 있는게 보였다. 끊임없이 터지는 폭탄의 영향으로 땅이 너무나 크게 흔들렸으나, 그녀는 노란색 구 안에 있는 바이오로이드로 추정되는 몇몇 인물들을 볼 수 있었다.


 "흰색 제복... 저런 제복을 입은 바이오로이드가 있었나?"


 그녀를 먼저 보낸 레오나가 저기 있을 리는 없었다. 그녀 이외에 흰색 제복을 입은 바이오로이드도 본 적 없었다. 


 "본 적 없는 새로운 바이오로이드의 가능성일 수-"


 그때, 한 번도 느껴 본 적 없는 파장이 그녀의 머릿속을 통과했다. 너무나도 익숙한 이 느낌. 마치 태어나기 전부터  각인된 것 같았다. 이 짜릿한 전류는 레이스의 머리를 떠나지 않고 계속해서 울려댔다. 마침내, 그녀는 그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좋아. 이제 이걸 보고하기만 하면-'


 하지만, 세상 일은 쉽게 흘러가지 않는 법.


 "레이스. 뭐하나 했더니 이런 장난질을 하고 있을 줄이야."



*****



 늘 차고 있었던 이어폰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한동안 들어보지 못했지만, 그녀는 그것의 주인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사-사령관님."


 "오랜만이야. 여기 리리스가 격납고에서 너를 봤다고 해서. 분명 너를 거기 보내지는 않았을 건데... 어떻게 된 거지?"


 생각해보니, 그녀는 에릭 밑에서 사용하던 통신기기를 그대로 가지고 있었다. 설마 이렇게 작은 물품 하나에도 역추적 기능을 달 줄은 생각조차 못했다. 아니, 간과하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 그녀에게 통신을 연결했다는 건, 그녀가 어디 있는지 이미 알고 있다는 뜻이었다. 그 말은, 지금까지 에릭에게 위치를 실시간으로 알리고 있었다는 것. 마치 도망가는 쥐를 굳이 바로 잡지 않고, 쫓아가 쥐구멍의 위치를 알아내는 것과 같았다.


 "듣지 마! 언니! 저 인간 말 듣지 말고 송신 끊어버려!"


 엣된 여자아이의 외침이 들려오자, 위태위태하던 레이스의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비밀 장소에 있지도 않던 닥터까지 잡혔다는 건, 이미 다 알고 있었다는 뜻이었다.


 "너는 어째 거기서도 일 못하는 건 똑같냐, 에휴."


 등 뒤로 식은땀이 흘렀다. 눈앞이 캄캄해져 바로 옆에서 벌어지는 치열한 전투는 이제 전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한곳에 우두커니 있는 걸 보니, 타겟을 찾은 모양이네?"


 "타겟...? 무-무슨 말은 하시는 겁-"


 "생각해봤어. 네가 이렇게 배신한 건 너무 괘씸하지만, 네 덕분에 반동분자들을 대부분 잡을 수 있었거든. 아무도 안 쓰는 수복실 뒤쪽에 숨겨진 공간이 있었을 줄이야. 다프네 녀석의 요망한 미소에 깜빡 속았지 뭐야?"


 "으흐흑...레이스 씨..."


 퍽하고 누군가를 발로 차는 소리가 났다.


 "닥쳐. 저년은 일단 거기로 보내."


 "그래서... 모두의 반대를 무릅쓰고 너를 살려주려고 했는데 말이야..."


 "통신 꺼요, 레이스씨! 사령관님을-크억!!!"


  또 다른 익숙한 목소리. 당장 몇 시간 전 아머리 내에서도 들었던 목소리였다. 하지만 숨소리가 섹섹 새어나오는 그녀는 그때보다 훨씬 힘겨워 보였다. 꼭 살아 돌아올 거라고 비장하게 뛰어내리던 모습이 아직 생생했다.


 "요 찌끄레기가 우리 앞에 끼어들어서 말이지. 다 잡을 수도 있던 걸 놓쳐버렸거든. 정말 화가 나더라고. 다 죽여버려야 직성이 풀릴 것 같아. 그래서..."


 바이오로이드들의 비명이 수신기를 통해서 들려왔다. 


 "명령이야, 레이스. 그 녀석을 죽여. 그 다음 너도 죽어버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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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운 사령관 (모음)


중간에 휴가 끝나고 잠시 군대에 갇혀있느라 늦었네...

최대한 그 전에 쓰려고 했는데 못 써서 미안하다.


이제 드디어 요정마을 이야기도 끝나간다! 

언제적 요정마을인지

요게 끝나면 다음엔 아마 바로 최종장 들어가지 않을까 싶네.


아직까지도 기다려주는 라붕이들 모두 정말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