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의 조용히 업무만 처리하는 그의 모습에 익숙해진 탓일까? 그의 뜬금없는 질문에 잠시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과거부터 해오던 일이 험한 편이었기에 두려움이란 딱히 생각해본 일이 없었으나, 그의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 머리를 굴려보았다.


가장 먼저 생각난 것은 역시 추위. 제작 과정에서 뱀의 유전자가 섞여 들었기에 체온 조절이 취약하여 늘 핫팩을 끼고 살아야 했다. 홀로 떠돌던 시절에 얼마나 많은 밤을 추위와 투닥이며 지냈는지 생각해보면, 역시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었다.


"일단 추위겠지? 늘 끼고 다니는 핫팩이 없으면 너~무 괴롭거든..."

"역시 그런가? 오르카의 온도는 괜찮고?"


걱정스러운 시선을 보내는 그의 눈빛을 마주 보면, 알 수 없는 기분에 괜시리 코끝이 간지러웠다. 역시 이런 분위기는 어색했기에 다급하게 말을 이어가며 애써 그의 시선을 피하게 된다.


"그리고 알비노 체질 때문에 너무 뜨거운 햇빛도 괴로운 편이고 말이야. 그건 그거대로 무섭지."


곰곰이 생각해보면 오류 덩어리에 제약이 참 많은 몸뚱이라 할 수 있겠지. 추위에 취약한 주제에, 따스한 햇빛을 마음껏 느끼지도 못하다니. 홀로 방황하던 시절에는 이런 고민을 할 정도로 넉넉하지도 않았고, 주변에서 이런 걱정을 해주는 이도 없었기에 생각지도 못했지만.


그 시절에는 그저 명령이 떨어지길 기다리며 숨어서 대기하다가 명령이 오면 그 명령을 기계처럼 수행할 뿐이었다. 이제 얼굴조차도 기억이 흐릿한 여제는 분명 우리와 같은 '사냥개'에게 큰 관심이 없는 인간이었으니까. 솔직히 말하자면 지금 눈 앞에 있는 저 남자가 이상한 부류일 것이다. 세상에 어느 인간이 사용하는 '도구'에게 편의성을 제공한단 말인가.


구시대의 인류에게 우리들은 그저 유용한 도구.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그나저나 내가 무서워 하는 건 왜 물어봤어? 그거로 날 길들여 보려고? 핫팩~ 음흉해~"

"아니. 그런 것들을 알아둬야, 너희들을 대할 때 주의할 수 있으니까."

"...."


어색한 마음에 장난을 쳐도, 망설임 없이 돌아오는 대답에 다시금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그는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진지한 눈빛으로, 진지한 마음으로 우리들을 대해주었다. 그의 저런 태도는 마치 '너희는 도구가 아니야' 라고 주지 시키는 것처럼 느껴졌다.


'안돼... 착각하지 마... 그는 인간이고, 우리는 바이오로이드야... 서로 입장이 달라...'


차갑게 착각하지 말라 브레이크를 거는 이성과, 그것에 대비되는 서서히 녹아드는 마음. 그의 저런 태도에 결국 사냥개는 주인 될 인간의 애정을 갈구하게 되었다. 그저 명령을 수행하고, 주인이 손짓하는 적의 목덜미를 물어 뜯어야 할 사냥개는, 가장 중요한 마음인 '냉정함'을 잃게 되었다.


가능하면 아주 많은 시간을 그의 곁에서 보내고 싶다는 이 마음을 지키기 위해서는, 아이러니 하게도 그를 향한 마음을 조금은 접어야 하는 것이다.


"하핫, 핫팩! 넌 인간이라구. 네가 우리들의 편의를 봐줘서 뭐하게? 그런 거 쓸데없는 감정이야."

"너희들의 입장이 그러해도, 내 마음은 그게 아니니까."


그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그저 사람 좋은 미소를 지어 보이며 대답할 뿐이다. 지금의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의 처음부터 지금까지 이어진 저 변함없는 태도에 모두들 결국 녹아내린 것이리라.


"그리고 난 너희들과 동등한 관계를 맺고 싶어. 바이오로이드와 인간이 아닌, 동등한 존재로 말이야."


지나친 이상론이다. 말도 안되는 헛소리다. 어찌 됐든 우리들은 피와 살로 이루어 졌으나 만들어진 존재일 뿐이고, 그는 명백히 인간과 인간이 결합되어 잉태된 인간이다. 하지만 이렇게 머리가 알고 있는 사실은, 그저 그의 입으로 직접 듣는 동등한 관계를 맺고 싶다는 말에 한 여름의 아지랑이처럼 흐지부지 되며 흩어졌다.


바이오로이드란 근본적으로 인간에 대한 사랑을 입력되어 만들어 진다. 그렇기에 기본적으로 그에게 호감을 느낀 것은 명백히 사실일 것이다. 하지만, 지금 두근거리는 이 심장은, 그저 입력된 감정이 아닌 진심으로 그를 향한 두근거림이었다.


'한심하네... 나도...'


분명, 예전의 여제가 봤다면 싸대기 한 두대 정도는 날아왔을 그런 표정이겠지. 엄청 한심하고, 엄청 애처로운 그런 표정일 거야. 사랑에 빠진 소녀와 같은 감성은 이미 애저녁에 버렸다고 생각했으나, 나는 결국 그에게 길들여져 버렸다.


"무엇보다 그러면 이 세상이 너무 딱딱하잖아?"

"응?"

"어차피 남은 인간은 이 세상에 나 혼자잖아. 그럼 앞으로의 세상은 내가 기준이겠지?"

"그렇겠지?"

"그럼 그걸로 좋잖아? 난 너희들을 사랑하고, 함께 살아가고 싶으니까. 이렇게 동등한 관계로 계속!"

"푸훗! 어이구~ 이 븅신아~"


결국 터져 나오는 웃음을 숨기지 못하고 그의 앞에서 환한 미소를 보였다. 언제 이렇게 속 편하게 웃어본 적이 있었는가 생각해 보면, 이 역시 그와 만나고 나서 생긴 변화 중 하나겠지. 사냥개에게 감정은 필요 없었으니까.


하지만 바보 취급을 당하면서도 내 웃음에 함께 기분 좋은 듯 웃어주는 그를 바라보면, 나는 진심으로 지금의 감정을 숨길 수 없을 것이다.


"방금 하나가 새로 생긴 거 같아."

"어떤 게?"

"내가 가~장 무서워 하는 거 말이야."

"뭔데? 말 해줘."


마치 흥미로운 장난감을 눈 앞에 둔 소년처럼, 그의 눈망울이 호선을 그리며 나를 바라보았다.


"음~ 그건 말이지."

"응! 그게 뭔데, 어서 말해봐!"

"비밀이야~"

"뭐? 야! 좀 말해줘~"


실망했다는 듯 아쉬운 표정을 짓는 그를 바라보며, 비밀로 숨기기로 한 새로 생긴 무시무시한 것을 곱게 접어 마음 한켠에 밀어 넣는다.


'내 목숨보다 소중한 너를 잃는 게, 나는 가장 무서워.'


"이 천아 님을 세상에서 가장 사랑한다고, 100번 속삭여 주면 말 해줄게~ 자, 핫팩! 말해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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