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화를 생포하는 작전에 임하기 전 홍련을 따로 불러내 대화했던 시라유리에게 그때 당시의 화두를 넌지시 꺼내자, 그녀는 난감하다는 표정을 보였다. 아무래도 비밀을 지키고 싶었던 모양인데, 우연하게도 나 역시 화장실을 가면서 듣고 말았기에 솔직한 대답을 할 수밖에 없었다.


"응, 딱히 엿들으려고 했던 것은 아닌데, 화장실에 잠시 들르면서 조금 듣고 말았거든. 아무래도 신경 쓰여서 말이야."


살포시 내쉬어지는 한숨과, 숨길 수 없음을 직감한 듯한 표정. 시라유리는 결국 당시의 이야기를 털어놓기 시작했다.


"사령관 님께선... 몽구스 팀... 아니, 라텔 팀에 대해서 알고 계셨지요?"

"라텔 팀? 아..."


몽구스 팀의 모체가 된 프로젝트이자, 두터운 기밀에 쌓여 실체를 접근하기 어려웠던 라텔 팀에 대한 이야기라면 물론 알고 있었다. 선전, 선동을 통해 테러와 폭동을 유도하고, 그곳에 투입되어 진압 작전을 펼치며 실적과 경험을 축적 시킨다. 가히 옛 인류의 잔학성에 대해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던 라텔 팀에 대한 보고서를 생각하면, 지금도 치가 떨릴 정도니까.


시라유리는 그 후로 라텔 팀에 대해 이야기 하기 시작했다. 실험은 성공적이었으나, 홍련 모델과 홍련 모델을 베이스로 삼아 태어난 장화가 어째서 자기 혐오를 갖게 되었는지. 그리고 그 문서들을 폐기하며 시라유리는 어떤 심정이었는지. 모두를 털어놓은 시라유리는 조금은 가벼워진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죄송합니다, 사령관 님... 사령관 님의 결재도 없이 극비 문서를 파기했...."

"괜찮아. 이미 알고 있었던 내용들이고, 그걸로 딱히 너를 책망할 생각은 없어."

"후훗... 여전히 무르시네요."

"이왕이면 친절한 성격이라고 해주겠니?"


가뜩이나 신경 쓰고 있었는데 말이야. 라고 덧붙이며 농을 건네면, 시라유리 역시 가볍게 입을 가리고 웃어주었다. 조금은 누그러진 분위기. 시라유리는 따뜻한 차를 건네며 자리에 앉아 다른 이야기를 시작했다.


"파기한 문서에는 사실... 다른 것들도 있었어요."

"다른 것들?"


건네진 차를 훌쩍이며 시라유리를 바라보자, 그녀는 부드럽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네, 저희들... 080에 관한 내용들이었죠."

"음..."


항상 포커페이스를 능숙하게 유지하는 시라유리의 표정이 급격히 상념에 잠기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시작 될 이야기는 무거운 이야기가 될 것이라는 긴장감에 절로 군침이 삼켜지고, 자연스레 찻잔을 내려놓고 그녀의 입에 신경을 집중하였다.


"당시의 그 선전과 선동... 누가 수행했을 것 같나요?"

"....!"

"후훗, 역시 이해가 빠르시네요. 맞아요, 저희들이 했답니다."


080 기관의 어두운 면모를 많이 알고 있다고 생각했으나, 여전히 베일에 쌓여있던 부분이 많은 집단이었기에 시라유리가 담담한 어조로 고백하는 작금의 내용들에 완벽히 경악을 숨길 수 없었다.


시라유리는 그런 내 모습을 바라보며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따뜻한 차로 목을 적시며 깊은 숨을 내쉬었다. 스스로를 컨트롤 하는 것처럼, 그녀는 자기 자신이 행하지 아니하였어도 결국 과거의 또 다른 자신이 수행해야 했던 일들을 덤덤하게 고백했다.


"순박한 사람들 이었죠. 그저, 오늘 저녁에 밥상에 올릴... 조금의 양식에 망설임 없이 수상한 서류에 지장을 찍는... 그런 사람들 이었어요."


이어진 그녀의 고백은, 나 역시 찝찝하고 착잡한 기분을 여실히 느끼게 해주었다. 자신의 이름도 쓸 줄 모르는 이들에게 접근하여 반동적인 성격의 단체에 가입하는 서류에 지장을 찍게 만든다. 그리고 서서히 그 세력을 넓히며, 주어진 현실에 분노하도록 여론을 형성하고, 그들의 뒤에서 암약하며 서서히 집단적인 광기 상태를 유도한다.


그 후로는 쉬운 일이었을 것이다. 모두가 폭력이 동반된 폭동 행위를 결행 할 것을 도모한 즈음엔, 의뢰주인 기업에게 거사의 실행 일자와 장소를 넌지시 귀뜸 해주면 되는, 아주 간단한 일.


허나, 그 작전을 실행한 당시의 080에겐 다른 선택지 따위는 없었다.


"모두 '명령 받은' 일을 했을 뿐이니까요..."

"...."


그래, 시라유리의 말대로 명령이 절대적으로 우선 되는 바이오로이드들은, 그저 자신의 마음을 집어 삼키는 죄책감을 애써 외면하며, 일을 진행했을 뿐이니까.


"하지만, 과거 그녀들의 유산을 저희가 물려받은 것이라면... 그녀들의 원죄 또한 물려받아야겠죠."


시라유리는 그것까지 말하고는, 이쪽을 향해 흔들림 없는 시선을 보냈다. 계속해서 흔들리던 그녀의 시선은, 굳건한 신념을 담은 눈빛으로 변해 한치의 흐트러짐 없이 똑바로 전달되었다.


"그렇다고 사령관 님께서 슬퍼하시고, 고뇌 하실 필요는 없어요."

"시라유리..."

"저는, 아니... 저희들은 모두 같은 생각이니까요."


그것까지 말한 시라유리는, 자리에서 조심스럽게 일어나 방 한켠에 놓여있는 그녀의 활을 집어 들며 말을 이어나갔다.


"저희들은 알고 있답니다. 사령관 님께서는, 저희들의 본 모습을 알면서도 스스럼없이 받아준 분이라는 것을요."

"당연하지. 너희들이 어떤 모습이던 간에, 내가 사랑하는 이들이라는 것은 변함 없을 테니까."

"활이 없으면 화살은 쓸모가 없게 되는 법이죠. 그래서 저희들은 사령관 님의 화살이랍니다."

"적어도 내가 존재하는 한, 그 화살이 너희들을 상처 입히는 곳으로 쏘아질 일은 없을 거야."


대답에 망설임은 필요 없었다. 이것이 본연한 내 진심이니까. 설사, 모든 것들을 잃는 한이 있어도, 나는 그녀들을 상처 입히는 일에 그녀들을 몰아 넣을 생각 따위는 추호도 없다.


"흐음~ 그건 곤란하네요... 적어도 저, 시라유리는... 사령관 님을 위해서 라면... 어떤 악행이라도 할 수 있어요."

"하핫, 그렇다면 '물려받은 원죄'는 씻어내기 힘들어 지겠는 걸?"

"그럴지도 모르지요... 하지만..."


쿡쿡 웃는 소리와 함께, 시라유리는 그녀의 활을 내게 건네주었다.


"예전에 말한 것처럼... 이미 더러워졌다고 더러워지지 않게 노력하는 것을 포기하는 건 미련한 짓이니까요."

"그 노력, 헛되이 되지 않도록 계속 노력할 작정이야."

"그래서 그 활을 사령관 님에게 온전히 맡길 생각이에요. 사령관 님을 그 누구보다 믿기에, 저는 당신만의 화살이 되겠습니다."

"너희들이 쏘아질 미래는, 지저분하고 음울하지 않을 거야. 내가 그런 미래를 만들 테니까."


'오늘, 새로운 화살이 생겼다.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는, 나만의 화살이.'


'오늘, 새로운 목표가 생겼다. 사령관 님을 위해, 망설임 없는 화살이 되는 목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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