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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갑네. 소생은 짝을 찾아 떠돌아다니는 방랑시인, 데카르트 보이저 삿갓이라네."

"짝....?"


사령관은 고개를 갸웃했다.


"그렇다네. 사령관, 그대가 배필과의 사랑에 대한 풍부한 지식을 가지고 있다 들었네."

"어, 음.... 뭐, 그렇다고 할 수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사령관은 머리를 긁적였다.


'당황스럽네....'


그 이유는 대뜸 짝을 찾아 달라고 하는 게 사람이 아닌 AGS였기 때문이다.


'기계가 사랑...? 아니 뭐, 감정이 생겨나는 건 그리 놀라워할 일이 아니긴 한데.'


로크와 알프레드를 시작으로 몇몇 AGS들에게 감정이 생기는 일이 늘어나고 있었다.

누군가는 우정, 누군가는 충정, 또 누군가는 호기심 같은 감정 말이다.

또 다른 AGS가 감정을 가졌다 해도 크게 이상할 건 없다.

하지만 그 감정이 사랑이라는 건 다소 당황스러웠다.


"음.... 저기, 우선 확실히 해두고 싶은 게 있는데."

"무엇이든 물어보게나. 내가 짝을 찾기 위해 필요한 모든 것을 제공하겠네. 지식이든, 무력이든 말이지."

"....데카르트가 짝을 찾는 이유는 그렇게 프로그래밍 됐기 때문은 아니지...?"

"다소 무례한 질문이로군."

"미안."


사령관은 진심으로 사과했다.

데카르트는 잠깐 고민하다가 말한다.


"괜찮네. 무엇이든 물어보라고 한 건 나였으니. 대답하지. 결론부터 말하자면, 짝을 찾는 것은 나의 일생을 걸쳐 알아낸 진리이자, 나라는 존재가 단순히 존재하는 것이 아닌, 이 세상 아래 분명하게 살아 있음을 증명할 수 있는 수단이라네."

"수단이라... 조금 더 설명해줄 수 있을까?"

"기꺼이."


데카르트가 삿갓을 살짝 눌러 쓴다.

얼굴에 그림자가 드리우면서 어두웠던 과거가 피어 올랐다.


"알고 있겠지만 나는, 우리 AGS는 인공지능일세. 너희 인간들은 어떻게 생각했을지 모르지만, 인공지능은 사실 거창한 게 아니야. 인간이 우리의 뇌에 입력한 절차대로 대신 움직이는 게 바로 인공지능이라네. 다만, 판에 박은 듯 움직이는 공장 기계와는 달리 조금 더 유동적이 움직임과 사고가 가능하지. 인간과 기계 사이에 위치한 것이 바로 우리라네. 상당히 에매한 위치에 있는 존재라 할 수 있지."


데카르트가 말한다.


"다만, 때로는 그 에매한 유동성이 기적 같은 결과를 낳기도 한다네. 자네도 본 적 있는가? 인공지능에게 일어나는 오류를 말일세."

"...감정을 가지게 되는 것 말이지?"

"그렇다네. 감정. 그건 사실 우리들에게는 허락되지 않는 것이라네. 바이오로이드가 있는데 굳이 AGS를 또 만들어낸 것이 감정의 결함 때문이었으니 말일세. 그러나 '지능'이라는 게 대체 무엇인지..... 먼 옛날 선악과를 먹은 이브처럼,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 온갖 감정을 세상 밖으로 꺼낸 판도라의 호기심처럼. 우리에게 있어 '지능'은 어떠한 경계를 넘게 해주는 발판이 되었다네."

"발판이라..."


사령관은 진중하게 생각하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임무를 다하기 위해 지식을 습득하기 시작했지. 그러나 나는 기계와는 달라. 슈퍼컴퓨터의 하드는 수백 테라 바이트의 지식을 가지고 있으나 그걸 활용하지 못한다네. 반면, 우리 인공지능은 그 방대한 지식을 활용할 수 있지. 나에게 생겨난 오류는 그런 지식을 활용하면서 생겨났다네."

"무슨 뜻이지?"

"단순히 지식을 받아들이는 것을 넘어 호기심을 품어 버린 것이지. '이건 왜 이럴까?'라는 의문과 함께."

"....!"


단순한 기계는 지식을 받아들이면 그냥 그 상태로 있는다.

그 지식으로 무언가를 하지 않는다.

그저 인간이 지식을 원할 때 내보일 뿐.

그러나 인공지능은 다르다는 이야기였다.


"아마 다른 AGS도 마찬가지일 거야. '왜'라는 의문과 함께 모든 것이 시작되었겠지."

"음...."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그럼, 데카르트는 어떤 의문을 품었어?"

"내가 품은 의문은 하나였다네."


삿갓 아래, 그의 눈에서 은은한 빛이 발한다.


"존재란 무엇인가?"


그가 허공에 의문을 던진다.


"철학자 데카르트는 말했다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이 말을 아는가?"

"알지."

"처음 그 말을 익혔을 때, 나는 생각했다네. 나는 지금 생각한다, 그러면 나는 존재하는가?"


그가 먼 허공을 응시하며 읖조렸다.


"데카르트의 말에 따르면, 나는 존재한다네. 나는 생각하기 때문이지. 내 머릿속에는 수많은 지식이 들어 있고, 나는 그러한 지식을 활용할 수도, 그 지식에 의문을 품고 사색에 잠길 수도 있다네. 즉, 나는 존재하는 셈이지. 그러나.... 그러나 무언가 부족했다네. 나는 분명 존재해. 하지만 무언가 부족했다네. 내가 존재한다는 걸 조금 더 명확하게 밝혀줄 무언가가....."


잠시 그가 입을 다물었다.

사령관은 그가 무얼 보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한참을 고민했지. 내 부족함을 '채울 수 있는' 것이 대체 무엇인지 찾았다네."
"부족함을 채울 수 있는....?"


사령관이 중얼거렸다.

문득,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설마...."

"눈치챈 것 같군."


그가 웃는다. 삿갓 아래 그림자에서 안광이 발했다.


"인간은 혼자서는 완벽하지 않다네. 그러나 배우자와 맺어짐으로써 한 가정을 이루지. 그렇게, 인간이라는 종족을 이어가는 개체로써 완벽해진다네."


그렇게 말하는 삿갓은 어쩐지 웃고 있는 듯했다.


"완벽함. 나는 그 단어를 보자마자 직감했다네. 나의 공허함을 채울 수 있는 것은, 바로 나를 이해해줄 나의 짝이라는 것을. 그렇게 내가 나아갈 방향을 찾았다네."

"그래서 짝을 찾아 다니는 거구나."

"바로 그렇다네. 인류의 희망을 찾아 우주를 떠도는 보이저 2호처럼. 나는 이 세상을 정처없이 떠돌며 나의 희망을 찾고 있다네. 그 여정을 사령관. 그대가 조금 도와주었으면 하는군."

"음... 좋아, 대강의 사정은 이해했어."


대강의 사정은 이해했다.


"하지만 데카르트. 배우자를 찾는 건 쉬운 일이 아니야."

"각오하고 있다네. 얼마나 시간이 걸리든..."

"아니, 단순히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그런 이야기가 아니야."

"그렇다면?"

"조건이 여러 가지가 있어. 우선은-"

"조건?"


데카르트가 고개를 갸웃했다.


"그건 동의할 수 없는 말이로군, 사령관. 사랑에는 조건이 없다네."

"아니, 사랑에도 조건이 있어."

"내가 아는 바와 다르군. 난 납득할 수 없다네."

"그럼 쉽게 예를 들어볼까. 데카르트. 넌 배우자를 찾는 이유가 너의 부족함을 메꾸기 위해서라고 했지?"

"그렇지."

"그건 반대로, 상대가 네 부족함을 채우지 못하면 배우자로 삼지 않겠다는 말이야."

".....!"

"왜냐하면, 너에겐 그 상대와 결혼할 이유가 없으니까."

"음....."


그가 진지하게 고민한다.

그리고 몇 초 후, 결론을 내놨다.


"과연, 그렇군. 사령관 고맙네. 벌써 그대에게 한 가지를 배웠군."

"뭘 그렇게까지야."

"사랑에도 조건이 있을 수 있군. 사랑에 조건이 없으려면..... 나는 그 무엇과도 결혼할 수 있어야 하겠지."


뭔가 핀트가 조금 어긋나게 받아들인 것 같지만.... 사령관은 굳이 말하지 않았다.


"음, 그런 이야기가 되겠지."

"좋아, 시작이 좋군. 또 다음 가르침을 부탁한다네."

"두 번째는, 서로 이해하고 존중하는 마음이야."

"이해?"


사령관은 고개를 끄덕였다.


"결혼은 전혀 다른 두 사람이 하나가 되는 과정이야. 톱니가 맞물리는 것처럼. 그런데 두 개의 톱니는 서로 똑같지 않아. 처음 만났을 때는 서로 전혀 다른 외형을 하고 있지. 그래서 완전히 맞물리려면 서로 자기 자신을 갈고 깎아내면서 모양을 바꿔야 해. 그게 서로를 이해하고 존중해주는 자세지."

"맞물리기 위해 서로를 깎고 모양을 바꾼다라.... 그렇다면, 방금 그대 말을 듣고 내 고집을 꺾은 것도 이해와 존중이라 할 수 있나?"

"맞아. 이해가 빠르네."

"이해와 존중... 훌륭하군. 세 번째는?"


사령관은 잠깐 고민한다.

그는 지금까지 다른 바이오로이드 대원들과 사랑을 나누었던 것들을 떠올리며 조언을 삼을 만한 것을 생각했다.


"세 번째는 즐거움이겠네."

"즐거움이라 함은?"

"그 상대와 함께 대화하거나 하면서 시간을 보낼 때, 그 시간이 즐거워야 평생 함께할 수 있겠지."

"즐거움이라....."


삿갓이 고민한다.

고민하는 뉘앙스가 꼭 즐거움이 뭔지 모르는 듯했다.


"사령관. 나는 지금 이 대화가 무척 흥미롭고, 계속 이어가고 싶다. 또 호기심이라는 감정 외로 마음이 들뜨기도 하는군. 이런 것이 즐거움인가?"

"음, 그렇다고 볼 수 있겠지."

"훌륭하군. 그럼 또 다른 것이 남았나?"

"마지막으로...."


솔직히 이 주제는 조금 민감한 부분이라 말하기가 꺼려졌다.

그러나 삿갓이 했던 말이 떠오르자 마음이 변했다.


-내가 존재한다는 걸 조금 더 명확하게 밝혀줄 무언가가.....


'데카르트는 진심으로 배우자를 찾고 있어. 자기 고집을 꺾을 정도로 진지하게.'


그렇다면 망설일 이유가 없다.


"마지막은 외형이야."

"외형이라, 내가 기계인 것을 두고 말하는 겐가?"

"네 외형도, 그리고 네 배우자가 될 누군가의 외형도. 모두 포함해서 한 말이야. 외형보다는 마음이라고 하지만, 사실 외형도 중요한 요소거든."

"외형, 그렇군. 이해했다네. 확실히, 중요한 요소지. 기계인 나의 모습을 받아들인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겠지."

"...맞아."


'뭔가 살짝 핀트가 어긋난 것 같지만.'


남이 삿갓을 볼 때가 아닌, 삿갓이 남을 볼 때를 말한 거였다.

하지만 뭐, 한꺼번에 너무 많은 걸 알려줘도 독이 될 뿐이니까.

다음에 또 알려주면 되겠지.

라고 생각했다.


"그런 요소들을 고려해서 배우자를 찾으면 돼."

"그럼 정했다네."

"응? 벌써?"


빨라도 너무 빨랐다.


'혹시, 금방 사랑에 빠지는 성격인가?'


막 보자마자 사랑에 빠져서 첫눈에 반했다고 프로포즈하는, 그런 부류일까?

그러면 적당한 배우자를 찾기가 참 어려울 텐데....


"그대라네, 사령관."

"예?"

"그대여, 나의 배우자가 되어주오."


삿갓이 예를 갖추며 고개를 숙였다.


"어.....? 잠깐, 데카르트. 대체 왜 그런 결론이 나온 거야?"

"그대는 사랑에 조건이 있다 하셨소."


데카르트가 말한다.


"나는 그대에게 배우자를 찾는 대신 나의 모든 것을 제공하겠다고 했소. 지식이든, 무력이든 말이지."

"...그랬지."

"나의 모든 것을 바치겠소, 그대여. 그 대신, 나의 사랑을 받아주오."


골이 아파온다. 대체 어디서부터 잘 못 된 걸까. 세상이 빙글빙글 돌았다.


".....잠깐만. 난 인간이야. 너는 AGS고."

"나에게 외형은 중요하지 않소. 그대도... 나를 받아주실 거라 믿으오."

"아뇨, 누구 멋대로."

"나는 이미 이해와 존중을 보였소. 그대의 말에 따라 '사랑에는 조건이 있다'라는 주제를 받아들였으니. 이제 그대 차례오. AGS라도 편견 없는 사랑을 보여주시오. 톱니가 물리려면 양쪽 모두 깎여야 한다. 그대가 했던 말이오. 즉, 양쪽 모두 이해와 존중이 필요하지 않겠소?"


그가 뱉은 말을 고스란히 인용했다.

빠져나갈 구멍이 없었다.


'빌어먹을 인공지능!! 왜 이렇게 쓸데없이 똑똑한 거야!'


그는 처절한 심정으로 외친다.


"즈, 즐거움은? 즐거움은!! 즐겁지는 않았잖아!"

"나는 그대와 함께 하며 즐거웠소. 그대도 그렇지 않소?"

"아니야!"


사령관이 외쳤다. 필사적인 외침이었다.

그러나 데카르트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아니, 그대의 눈에서 즐거움을 보았소. 나에게 사랑에 대해 알려줄 때의 목소리는 기쁨이 섞여 있었고, 나를 보는 눈빛에서는 감동과 경외를 보았지. 표정 또한 미소를 짓고 있었소. 인공지능은 나의 분석이니 틀림 없소."


눈빛에 망설임이 없다. 말투에 물러섬이 없다.

데카르트는 이미 마음을 정했다.


"......난.. 난, 난 남자야. 너도 남자고. 도, 동성 끼리는 결혼 못 해!!"


사령관은 최후의 카드를 꺼냈다.

너무 놀란 나머지 말투가 어려졌지만... 그 정도로 절박했다.


"그것 또한 문제 없지."


데카르트가 일어난다.

마치 번개 같은, 노란 안광이 사령관을 응시했다.


"내가 낭자로 보면, 낭자인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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