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그의 체온을 즐기며 하릴없이 시간을 보내던 도중 들려온 뜻밖의 질문에 놀라 그에게 반문했다. 하지만 정작 질문을 던진 그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처음의 질문을 재차 던지면서 여전히 시선을 서류로 향해 내려놓고 있었다.


"응, 네 성향에 오르카의 분위기가 맞지 않을 것이라 생각해서 말이야. 솔직히 금방 떠날 줄 알았거든."

"에이~ 븅신아, 그렇게 싫었으면 그 야한 메이드 복을 입고 카페에서 알바까지 했겠냐?"

"하핫, 그것도 그렇지만."


말로는 저렇게 톡 쏘아붙였지만, 솔직히 처음에는 금방 떠나갈 생각이었다. 어디까지 합류한 목적은 '장화의 도움 요청' 때문이었으니까. 아무리 얼굴에 철판을 두른 편이었어도 낯짝 두껍게 그대로 눌러 앉을 작정까진 없었다만, 흘러가듯 자연스레 눌러 앉아 지금에 이르렀으니 그의 궁금증 또한 어느 정도는 이해가 되는 편이다.


"그냥 핫팩, 네가 재밌었거든. 마지막 남은 '인간 님' 이라니 흥미가 솟기도 했고."

"내가 재밌고 흥미로운 남자라니... 영광이야."

"생각보다 여자를 밝히고 거기에 변강쇠라는 사실에 놀라기도 했지."


가볍게 도발하자 그는 그저 껄껄 웃으면서 업무를 계속 이어나갔다. 그 후로 잠시 지속되는 어색한 침묵 속에서, 스스로 왜 정착하게 되었는가 생각해 보았다. 말로는 결코 인정하지 않았지만 역시 가장 큰 이유는 그의 존재 때문.


과거에 보아온 인간들이란, 보통 바이오로이드를 쓰고 버리는 도구 정도로만 여겼다. 그에 비해서 이 생체 핫팩은 우리들을 전적으로 존중하며, 심지어는 맞춰주기까지 하는 별종이라는 사실에 흥미가 솟았다.


'생긴게 내 취향이기도 하고.'


남자 취향이란 제각각이며 하물며 바이오로이드란 기본적으로 인간에게 호감을 느끼도록 설정되어 있으니, 처음 그를 보고 느꼈던 친밀감 역시 결국 유전자에 각인 된 본능 정도로 치부했으나, 그의 곁에서 지금까지 시간을 보내며 도달한 결론은 '난 역시 이 녀석이 좋아.' 였다.


"야, 핫팩! 웃지 말고 들어봐. 웃으면 진짜 진짜 화낸다?"

"뭐야, 대답해주지 않을 것처럼 그러더니... 걱정 마, 천아. 웃지 않을게."

"뭐래... 븅신이....크흠, 아무튼... 뭐 대충 생각해 봤는데."

"왜 머물게 된 건지?"


서류를 구석에 밀어내며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경청의 자세를 보이는 그에게, 스스로 도달한 결론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핫팩도 알다시피, 난 원래 소속감은 눈 씻고 찾아봐도 찾을 수가 없는 조직 소속이었거든?"


여제의 사설 조직인 엠프레시스 하운드. 거기에 온갖 더러운 임무를 수행하는 일원이었기에 잡히면 버려지는 것이 일상이니 당연히 소속감 따위는 눈꼽 만큼도 없었다. 물론 그 시절엔 그런 것들에 불만을 갖지도, 따로 고민해본 적도 없었으니 상관 없었지만 말이다.


"그래서 혼자 떠돌아 다니면서 가끔 명령이 떨어지면 명령이나 수행하고, 재수 없이 잡히면 버려지는... 아무튼 그런 '소모품 1' 정도였단 말이지?"

"음... 소모품이라..."


소모품이란 단어에 눈썹을 꿈틀 거리는 그를 보니 자연스레 미소가 지어졌다. 그의 입버릇인 '너희들은 도구가 아니다.' 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그는 우리들을 소중하게 대해주는 별종이었으니까.


"그런데 그런 방황하는 연약한 사춘기 소녀에게, 어디에서 따뜻한 생체 핫팩이 나타나서는 '여기에 있어도 돼.' 라고 말하니까... 뭐 거기에 꽂힌 거겠지."

"하하핫! 사춘기 소녀라니, 연약하고 감수성 풍부한 사춘기 소녀 치고는 입버릇도 험하고 들고 다니는 무기도 살벌한데 말이야."

"뭐래, 븅신아! 진짜 죽을래?"

"미안~ 미안."


그의 말투를 따라하듯 흉내 내면서 말하자, 그의 입가에 다시금 웃음기가 번져나갔다. 역시, 나는 그의 웃는 얼굴을 보고 싶었던 모양이다. 이래저래 그에게 말했지만, 결국 저것도 솔직한 심정을 완벽히 고한 것은 아니었다. 그저, 솔직히 말하자면 어둡고, 절망적인 이야기일 것이 뻔했으니 그의 웃음을 지키기 위해 약간의 가공을 했을 뿐.


'사실, 너와 만나고 나는 처음으로 살아보고 싶어졌어.'


지금껏 명령이다 뭐다 해서 죽지 못해 살아가던 생애를 보내며, 기계처럼 먹고, 자고, 타겟을 죽이는 사냥개로 살아온 나에게 그는, 삶의 목적을 주었다. 순수하게 그와 함께 보내며 지내는 지금의 시간이 너무나 달콤하고 행복했기에, 진심으로 살아가고 싶어졌다.


'나에게 따뜻한 품을 내어주고, 언제나 내 응석을 잔뜩 받아주는 바보 같은 너에게... 나는 삶의 이유를 얻었으니까.'


지금까지 명령이 내려진 타겟의 목덜미를 물어 뜯던 사냥개는, 이제 자신의 의지로 사랑하는 이를 지키는 번견이 되었다. 물론, 그런 비유를 끔찍이 싫어하는 그였지만, 난생 처음으로 갖게 된 삶의 이유. 그의 미소를 지키기 위해 나는 사냥개의 신분을 던져내고 그의 충실한 번견으로써 그를 지키기 위해 지금까지 남아있는 것이리라.


"그보다 핫팩!"

"응?"

"나도 대답했으니, 이제 핫팩이 대답해봐. 오늘은 몇 시간 동안 할까?"


그의 대답을 들을 것도 없이, 바로 그의 품에 안기며 그의 입술에 내 입술을 겹쳤다. 

삶의 이유를 준 그에게 감사를 담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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